[타케쿠쿠] 마지막 초상화
*트위터에서 끄적인거 다시 좀 다듬는 새드썰....
5학년 로반의 공동임무에서 타케야만이 추가시험을 보게 되었다. 타케야만 혼자 뒤쳐졌다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닌자답지 않은 행동을 해서 시험에 낙제한 것이다. 타케야 하치자에몽은 생물위원회를 하면서(또는 개인적으로 성격이 부드러워서) 인정을 베풀지 않아야 하는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인정을 베푸는 등, 상냥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임무 실패도 그런 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부로와 라이조에게 깃발을 전해주어야했는데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고 포대기로 쓰라고 임무에 필요한 깃발을 주고 만 것이다. 깃발이야 다시 가져오면 되니까 크게 문제될리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게 끝난다면 닌자는 왜 존재하겠는가.
타케야 하치자에몽은 그 시점부터 임무실패 판정을 받았다.
로반의 공동임무가 끝나고 5학년들은 뒷풀이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치야가 타케야때문에 우리까지 실패할뻔했다며 빈정거리며 말하자 라이조랑 칸에몽이 너무 그렇게 꼽주지 말라며 말렸다. 그러나 타케야는 여전히 말이 없고 뒷풀이도 너희들끼리 하라며 자리를 떠났다. '거봐 사부로~ 너때문에 쟤 화났잖아;' 이런말을 들어도 타케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실패한 것도 실패한거지만 더 참을 수 없었던건 그 어린 아이와 더 어린 갓난아기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뒷풀이가 무르익고 왁자지껄 떠들어댔지만 타케야는 혼자 밤거리를 산책하며 추가시험을 고뇌하고 있었다.
"아쉽게 되었네."
구름을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조각 달의 빛이 땅에 드리워지고 또랑또랑한 말소리가 울려퍼졌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쿠쿠치 헤이스케. 나무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와 타케야를 위로하는 말투로 말했다. 뒷풀이는 안갔어? 나는 로반도 아니잖아. 이반의 쿠쿠치는 타케야보다 훨씬 머리도 좋고 실력도 좋다. 무엇보다 오늘처럼 바보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녀석임에 분명하다. 그런 반대되는 면에 끌렸을까, 타케야는 늘 쿠쿠치를 부러워했고 또 존경했다. 타케야는 혹시나 해서 쿠쿠치에게 오늘 있었던 어이없는 실수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역시 쿠쿠치는 '나같으면 그냥 지나치겠어' 라고 말할 뿐이다. 쿠쿠치는 어린 아이가 당장 죽을 것도 아니였고 깃발로 포대기를 만든다고 해서 그 갓난아기가 바로 울음을 멈추는 것도 아니라며 이성적인 판단을 늘어놓았다. '역시 그렇지? 괜한 말 해서 미안해.' 심심한 사과를 뒤로한채 쿠쿠치와 함께 달을 바라보아.
추가시험은 장기전이다. 넉넉잡아 일주일은 필요하다. 일주일간 친구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건 아쉽지만 그중에서도 쿠쿠치의 얼굴을 그렇게 긴 시간동안 못보는건 슬프다. 위원장대리 이런 의미로 둘만의 사랑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고 승부욕도 있는 이성적인 쿠쿠치와 다르게 타케야는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열정적이고 쉽게 뜨거워지는 남자다. 서로의 다른 면에 끌린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쿠쿠치를 알아가면 갈수록 이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닌자는 왜이리 힘든거지? 모든일에 쉬운일은 하나도 없는거야? 물론 내가 직접 선택한 길이지만 한사람을 사랑하는것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뭐야? 달을 처다보는 흑발의 소년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서 당장이라도 꽉 껴안아버리고 싶지만 그것마저도 참아야만했다.
부엉이가 막 잠에 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꽤나 이른 새벽. 타케야는 누구보다 빨리 일어났다. 방에 있는 곤충들은 생물위원들이 돌봐줄테니까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도 미리 말해놨다. 임무를 나가는건 밤인데 왜이리 새벽부터 눈이 떠진걸까. 타케야는 일어나 천천히 하치라이와 칸쿠쿠(아니 조합을 이렇게 씨피처럼 쓰면)의 방을 지나치며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특히 쿠쿠치의 얼굴은 더 보고싶었다. 아직 안일어났겠지? 타케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얼른 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건 막 일어나서 머리가 헝클어져있는 곱슬머리의 소년이다.
"벌써 나가게?"
임무는 밤부터. 지금부터 가봤자 의미도 없다. 무엇보다 일주일간 학교에 없는데 그전에 해치워야하는 일도 많다. 위원회일도 해놔야하고 부탁해야할것도 있다. 아직 나갈건 아니지만 저절로 눈이 떠졌어. 나도 참... 긴장되나봐. 헤이스케는 긴장따위는 안하겠지? 이런 말을 잘도 술술 내뱉는구나. 쿠쿠치는 헛웃음치며 '긴장은 누구나 하지' 이런 말로 타케야를 안심시켜보지만 타케야는 이런 장기임무는 처음이라 긴장이 가시지 않는다.
"한 번만 껴안아도 돼?"
"언제는 하지말라 하면 안했나"
눈을 내리깔고 양팔 벌려는 쿠쿠치를 향해 타케야가 달려가 와락 껴안았다. 일주일이 지나면 볼 수 있는데 왜 벌써부터 가슴이 아플까. 어릴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왜 요즘은 조금만 안보여도 힘들까. 쿠쿠치의 형체를 손으로 더듬어본다. 이런 몸이었지. 이렇게 생겼지. 여기가 이랬었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억으로 더듬을 수 있도록 더 자세하게 더듬고 껴안는다. 쿠쿠치는 타케야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천천히 마음을 정리해.
낮부터는 미뤄둔 위원회를 해치운다. 짐도 쌌고, 동물들 먹이도 주고 사육장 청소도 했다. 이러면 이제 정말 할일은 하나뿐이다.
"란타로. 미안하지만 초상화 하나만 그려줄 수 있어?"
꼬마 화가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사진도 없지만 란타로라면 분명 사진처럼 멋진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초상화는 필요없다. 단지 자신을 바라보고 웃어주는 헤이스케를 떠올리고 싶을 뿐이다. 란타로는 맡겨만달라며 작은 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헤이스케를 따라다니며 얼굴을 그렸다. 입과 눈이 활짝 웃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 두부를 먹으면 이런 표정을 지었던가. 아, 벌써 까먹을 것 같아. 가기전에 한번만 더 보여달라고 해야지. 란타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그림을 받아들고 고이 접어서 품에 넣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학교를 떠나야하는 시간이.
대문 앞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이라고 했지만 5일이면 금방 끝날거라며 별거 아닌듯 얘기했지만 저마다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장기임무는 처음이지만 반드시 끝내고 돌아올거라고 한명씩 작별인사를 해주고 마지막으로 쿠쿠치에게 인사를 해.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없어. 아침에 다 했거든. 그냥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야.
여기서 더 이야기 하면 떠나기 싫어질거야. 그러면 난 또다시 추가시험을 받겠지.
이러다가 6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어쩌지? 나혼자 뒤떨어져서 너랑 같이 졸업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꾹 참으며 눈물의 이별을 하지 않고 미소의 이별로 마지막을 장식해. 그러나 쿠쿠치는 이미 알고 있을거야. 방금까지 울었던 것도, 눈물이 나오는걸 참으면서 막은 것도, 그 모든게 자기와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거라는 것도.
***
장기임무에서 실패하면 그건 죽음과도 같다. 위험해지면 돌아와야해. 그러나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저학년도 아니고 4학년도 아닌데 5학년씩이나 되었으면서 임무를 내팽겨치고 자기 혼자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것만큼 수치스러운 것도 없다. 죽더라도 닌자로 죽어야한다. 예전같았으면 그렇게 했을텐데 왜 지금은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면 이리도 힘들어지는 것인가.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려면 적의 동태를 잘 살펴야한다. 정보수집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자세.
그러나 타케야가 간과한게 있다면 세상에는 더 뛰어난 닌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눈을 떴을땐 이미 다리 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처량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머리를 세게 맞아서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주체할 수 없어 손만 간신히 뻗어서 품안에 있는 그림을 펼쳐본다. 눈부시게 웃고 있는 헤이스케의 얼굴이. 자기를 보고 환하게 웃는 헤이스케의 얼굴이. 티끌없이 맑고 고운 얼굴에 피가 튀기 시작한다. 손가락에 묻은 피도, 입에 흐르는 피도, 이마에서 흐르는 피도 모두 훔칠 겨를이 없다. 어떻게든 저 얼굴을 뇌에 각인시켜야한다. 각막에 각인시켜야한다. 죽더라도 내가 가슴속에 묻어두고 천국에 갈 수 있게.
역시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닌자를 그만두어야했다.
그림을 잡고 있는 손이 점차 느슨해지고 피가 묻은 해맑은 소년의 얼굴은 바람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상인들의 손에 잡혀 그림의 주인을 찾아가 건너건너 닌술학원까지 오게 되었다. 벌써 여긴 일주일도 훨씬 넘었다. 오지 않는 소년을 기다리며 매일마다 대문앞에서 찾아가는 흑발의 소년은 바람을 타고 넘어온 그림 하나를 잡았다. 순수한 미소를 얼굴에 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그 위아래로 튀긴 핏자국이. 얇은 종이 한장을 구겨가며 품에 안고 학원이 떠나갈정도로 크게 울어봤자 죽은 소년은 돌아오지 못한다. 잔뜩 구겨지고 눈물때문에 그림이 번져 형체도 알 수 없어질때까지 울었다. 그제서야 친구들이 급하게 뛰쳐나왔지만 여전히 그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쿠쿠치만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