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타키] 내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썰처럼 보이는 독백체의 짧은 글
*시처럼 보이기 위해서 끄적임.... 의식의 흐름 조심.
*타키버전, 아야베버전 따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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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 편]
내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 잘난 얼굴이 추하게 변한다면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그때가 된다면 정말로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 몸을 쥐처럼 동그랗게 말고 숨을 죽이며 살다가 정말로 숨이 죽어버릴 것이라며 쉽게 떠들어댔다.
내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귀족이라고 칭송받들어지는 시기도 지금 뿐이다. 나에게 있어서 내놓을 만한 것은 귀족 가문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 이 잘난 얼굴과 실력으로 귀족을 뛰어넘는 닌자의 본질을 보여주고 말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너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차가운 날붙이를 세워 너의 목을 그어버린다면 너는 한마디 하지 않고 죽어갈 것이다.
네가 사랑한 것은 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너의 목을 그어 언젠가 너를 죽인다면 더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끼고 나 마저도 핏물을 뱉으며 죽어갈 것이다. 나의 눈부신 얼굴이 눈물로 일그러져서 너를 마주할 수 없게 될때야 말로 나의 장례식이다. 언젠가는 너를 안을 수 없다는 현실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재가 될 것이다.
네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아야베 키하치로. 내가 너를 좋아한 이유는 네가 너의 얼굴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잿빛의 머리칼도 화려한 외모도 모두 너와 잘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있다면 너의 외모도 나의 외모도 빛을 바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의 얼굴을 사랑하는 나와 너의 얼굴을 사랑하는 너가 만난다면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닌자가 나타날 것이랴.
내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고요히 잠든 너의 얼굴에 짧은 입맞춤을 하고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옆마을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고요함 속에 너와 나는 평화의 공기를 폐 안으로 집어넣으며 잠에 들었다. 그건 너의 얼굴도 나의 얼굴도 아닌, 핏물을 뒤집어 쓴 닌자의 얼굴이었다.
언젠가 나를 위해 죽어줄 너를 위해
애정을 담은 연가를 지어본다.
사랑하는 나의 전우여.
*
[아야베 키하치로]
너를 사랑한건 내가 아니다.
너의 말이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았고 경박한 몸짓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를 사랑한 것은 너 자신이지 내가 아니었다. 언젠가 너와 내가 날붙이를 들고 마주하는 날이 올 때 즈음이면 나는 너를 위해 먼저 전쟁의 재를 마시게 된다. 귀족이라는 역겨운 신분을 들먹이며 이 곳에 들어와서 실력을 갈고 닦던 너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너의 모습이. 날개가 돋아나지 않아 추악하게 땅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조용히 숨을 죽이는 여신의 얼굴처럼.
내가 사랑한건 너의 얼굴이다.
여신의 날개가 돋아나지 않아 땅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눈을 감은건 내쪽이었다. 더럽혀진 성스러운 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더럽혀진 신이라도 후광이 비쳐보여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너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땅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에 조용히 사려있는 여신의 얼굴이었다.
조용히 죽어가는 여신의 찬란함이
가련하게 피어나는 너의 얼굴에서 여신의 찬란함을 보았다. 피안화를 안고 꼿꼿하게 누워있는 너의 얼굴에서 후광이 사라져갔다. 길게 뻗은 속눈썹을 나의 투박한 손이 겁도 없이 닿았다. 여신의 마지막 날개를 잡은 나는 그대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너를 만진 것 자체가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치욕의 끝에서 나의 죄를 용서해 준 것도 너였다.
내가 사랑한 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너를 범하려고 한 나의 죄를 안다 한들, 나는 구원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나는 더욱 깊이 땅을 팠다. 쥐새끼마냥 몸을 웅크리고 조용히 숨을 죽여갔다. 땅속까지 흘러들어오는 너의 후광에 미쳐버린 나는 너를 위해 죽어갈 것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너를 향해 날붙이를 꺼내들고 목을 그어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결국 너를 죽이지 못하고 여신의 날개를 꺾어버릴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건 귀족의 옷감이다. 마지막에는 나는 추악한 인간의 탈을 쓴 성스러운 닌자로, 너는 성스러운 여신의 탈을 쓴 역겨운 귀족으로 임종을 맞이하겠지.
언젠가 너를 위해 죽어줄 나를 위해
이별을 담은 애가를 지어보길
사랑하는 나의 친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