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진해] 조선시대au 조각 소설
*트위터에 말해준 조선시대au 썰이 너무 좋아서 쓰게 된 소설....
*조각 소설이라 짧막한거 여러개 있음.
*갱신(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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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자의 이름은 정진해
한성 안에는 다양한 고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양반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양반 고을이 존재한다. 정1품을 많이 배출시킨 가문이 줄지어 있는 고을. 고을 밖의 장내에서는 양반가문은 재수가 없다며 혀를 차기 마련이었다. 왕의 예쁨을 조금 받는다는 이유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군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거나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화려한 투구를 일부러 쓰고 다니는 등의 아주 꼴에 뵈기 싫은 짓을 하고 다니는 가문들이라며 눈초리를 내보냈다. 그 가문 중 한 가문은 장성한 남자들이 많아 무관직에 오르는 일이 빈번한 탓에 고을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성으로 입성한 후에는 더 잘나가겠다며 호언장담을 내뱉던 정씨 가문의 어르신은 7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10명의 딸을 낳았다. 아내도 셋이나 있었다.
첫째 아들은 무관직 중에서도 가장 올라가기 힘들다는 최고 권위직에 올랐다. 그의 얼굴은 깨끗하고 남자다웠으며 용맹한 성격 덕분에 시집 안간 처녀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있는 아낙네들도 좋아라했다.
둘째 아들은 형과 비슷하게 장군이 되었다. 수군을 지휘하는 최고직에 올랐다.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자주 집을 비운 탓에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모두 무관직에서도 꽤나 이름있는 직급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혼인도 하여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곱째는 달랐다.
그의 이름은 정진해. 이름에 '바다 해'가 들어가는 사람치고는 바다를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불쌍한 청년이다. 막내 아들이지만 뒤에 셋째 부인이 쌍둥이 아들을 더 낳은 덕에 막내라는 타이틀은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즉 진해에게 있어서 '이 집안에서 더이상 너는 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진해는 그렇다 할 직책을 받지 못했다. 고작해야 작은 마을 정도의 대문을 지키는 일을 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진해에겐 따분한 일이었다. 양반 고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으며 질 나쁜 사람들이 모여사는 특별관리 지역도 아니었다. 오히려 경복궁과 가까운 편이라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살았고 세금도 더 잘내는 지역이었다. 그러니, 이렇다 할 일이 없었다.
있으나 마나한 직업이었다.
진해의 취급은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있으나 마나한 자식이었다. 첫째부터 시작하여 여섯째까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을 정도로 노력해서 살고 있지만 진해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그를 회피했다. 그에게 주어진 군청색 두루마기도 그닥 비싼 것도 아니었다. 진해의 취급은 딱 그정도였다. 그렇기에 진해는 집안을 더 싫어하게 되었고 불만이 아주 많았다.
2. 그녀의 이름은 민윤성
한성 가까이에 열리는 오일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과일가게가 있다. 모두가 그 과일을 가장 좋아했고 합리적인 가격에 신선한 과일 맛에 모두가 반했다. 모두가 그 과일가게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애초에 이름을 걸고 할 정도로 이름있는 가게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오일장, 삼일장에 잠깐씩 나타나 과일을 팔고 사라지는 사람이다) 모두가 '과일 민씨네' 라고 하면 그사람을 떠올렸다. 조금씩 과일을 판 덕분에 목돈이 금방 마련되었고 사업을 크게 벌리기 위해 과일이나 채소같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붓이나 돗자리같은 기성품을 팔기 시작했다. 사업은 크게 성공했고 장 내 모두가 민씨를 찾았다. 민씨에게는 아들은 없고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민윤성.
귀하게 얻은 딸인만큼 민씨는 딸을 예뻐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기만점이었다. 참하고 밝은 소녀가 가게 일을 도우니 가게가 활기차지고 모두가 좋아했다. 덕분에 그녀에게도 혼담이 많이 왔다. 그래봤자 모두 상인의 자식들이었다.
민씨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공동사업을 하다가 친구가 돈을 들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민씨는 당장 신고하여 사기죄로 그를 처벌하길 원했지만 범인이 워낙 잽싼 탓에 한성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그 이후로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친구와 사업을 하기 위해 모든 돈을 가져다 바쳤는데 그 돈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한순간에 민씨는 빚더미에 내앉았다.
윤성은 착하게도 아버지의 힘이 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좋아하던 꽃신도 팔고 모든걸 다 내놓았다. 그럼에도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거기에 가뭄이 오면서 대흉작이 되어 쌀값이 많이 올라 배를 곯는 일도 허다했다. 민씨는 아내와 상의한 후에 결국 최후의 방법을 썼다.
"윤성아. 이 아비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너는 이제부터 정씨 가문의 일곱째 아들과 혼인을 하게 될 것이다. 나와 어멈도 너를 잃고 싶진 않지만 더이상 너가 배를 곯는 것음 보기 힘들구나. 정씨 가문이 우리의 빚을 갚아주기로 하셨다. 대신 아직 장가를 못간 일곱째 아들의 부인이 되어달라고 하더라."
윤성은 아버지의 말을 다 이해하고 더이상 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만 대답했다. 속이 깊은 아이인만큼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한 어멈은 윤성을 꼭 안아주었다.
3. 제가 싫다면 그렇다고 말씀하시지요
정씨 집안의 막내 아들이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소식에 혼레식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모여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조용히 혼례를 치루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공개적으로 혼례를 하기로 했다. 정씨 집안 어르신은 이미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었으며 민씨 집안의 어르신은 그에 비해 아직 젊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도 그럴게 첫째 아들과 일곱째 아들의 나이차는 이미 20살이 넘게 났다.
진해가 먼저 입장했다. 북과 장구가 얼쑤절쑤 춤을 추고 꾕과리가 쟁쟁 울려퍼졌다. 그래도 결혼을 한다고 약간의 소년티가 있던 진해도 어엿한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나있었다. 멋스럽게 쓴 관도 꽤나 잘어울렸다.
뒤이어 윤성이 입장했다. 얼굴을 푹 수그린채 도와주는 여자들을 따라 살금살금 진해에게로 다가갔다. 볼에 빨갛게 칠한 연지곤지와 족두리가 어우러져 제법 숙녀티가 났다. 윤성은 조심스레 얼굴을 들었고 난생처음으로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있었다.
4. 최악의 첫날밤
부부의 첫날밤은 그 마을 사람들이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엿볼정도로 마을 내의 핫이슈인데 진해와 윤성 부부의 첫날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은 각방을 썼다. 먼저 각방을 제안한건 진해였다.
"그쪽은 빚 때문에 저와 결혼한 것이죠. 그리고 저 역시 집안 사람들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둘 다 원치않은 결혼을 하게된 셈이니 단 둘이 있을때도 각방을 쓰도록 합시다."
진해는 차갑게 말하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아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방문을 걸어잠그고 등불을 키고 책을 읽었다. 윤성은 정씨 집안으로 시집을 온 셈이니 아는 사람이 없는게 당연했다. 고작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제부터 함께 살아갈 남편뿐인데 남편은 각방을 쓰자고 선언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윤성은 이 막막한 상황을 풀어나가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서방님이 그러자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둘 다 부부의 서약을 맺었는데 언제까지고 각방을 쓰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버님도 손주 걱정을 하실텐데 그때까지도 각방을 쓰실건지요?"
진해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더니 자기가 졌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자신의 방으로 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불은 각자 썼고 절대 몸을 섞는 일은 없었다.
5. 시댁살이
진해의 집은 집성촌에 있었으며 뼈대있는 양반 가문이었기 때문에 늘 친척들이 득실댔다. 그런 곳에 멋모르고 시집을 온 윤성이 아니꼬운 어른들은 윤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언제는 얼음물로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가 언제는 펄펄 끓는 물로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진해의 여동생들은 윤성에게 예쁜 옷을 주겠다며 실컷 가위질을 해서 너덜너덜해진 모시옷을 내어주고는 자기들끼리 예쁘다며 꺄르륵 웃었다. 조금이라도 화낼만도 한데 윤성은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윤성의 반응이 재미없다고 생각한 어린 동생들은 곧바로 윤성에게 흥미를 잃고 관심을 껐다.
시어머니는 윤성에게 아주 엄격했다. 여러 문무관들을 배출한 가문답게 어머니도 그에 걸맞게 예의범절이 남달랐다. 특히 어디 가문인지도 모르는 천한 것을 데려왔다는 것에 굉장한 수치심을 느낀 시어머니는 윤성에게 더 엄격하게 굴었다. 다른 며느리들과 다르게 윤성은 특별 취급이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이 결혼을 무르고 집밖으로 나가라는듯이 윤성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럼에도 윤성은 꿋꿋하게 헤쳐나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온 이상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곳에서 살아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시댁살이가 아주 힘든것만은 아니었다. 윤성이 시댁살이로 고생을 하면서 조금씩 도와주던 어린 여종이 있었다. 나이는 아직 많이 어려 서당에서 한글을 깨우치기에도 벅찬 나이었지만 마음씨는 아주 고운 아이었다. 이 여종은 윤성이 안주인(시어머니)에게 괴롭히는걸 알고 안주인이 없는 곳에서 윤성을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윤성과 함께 뒤에서 호박씨도 까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었다. 여종은 자신도 이곳에 팔려온 것이고 집이 가난하여 형제들을 모두 내보냈는데 형제들 중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형제가 바로 손윗 언니라고 했다. 언니의 나이가 윤성과 비슷하여 그거에 연민을 느끼고 윤성을 많이 챙겨주었다.
여종과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매의 연을 쌓아갈때즈음에 여종은 윤성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언니 사실 저 언니에게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어요..."
"무엇이니?"
"저도 사실 진해 주인님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언니라는 좋은 짝이 있는데도 제가 이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니. 지금이라도 당장 싫어하게 될것이지만 이곳에 처음왔을 때부터 상냥하게 대해주시던 진해 주인님이 너무 좋아서... 그만.... 하지만 저는 그래봤자 여종의 몸. 천한 것이 양반 가문의 도련님과 연을 맺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계속 참고 있었는데.... 흑... 정말 죄송해요..."
여종은 그렇게 훌쩍이며 윤성에게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를 했다. 생각해보면 미안할것도 없었다. 윤성은 진해를 좋아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 여종이 먼저 좋아하고 있었을텐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윤성은 울고 있는 여동생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결국 와앙하고 울어버린 동생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계속 달래주었다.
6. 도대체 어디가 상냥한데?
동생의 말대로 진해는 천성이 착했다. 집성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력에 눈이 멀어서 욕심이 많고 야망가들이었지만 진해는 그런거 별로 필요없어 했다. 하지만 위의 형제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아버지에게는 볼품없다고 무시당하고 어린 여동생들도 그를 만만하게 본 탓에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썩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을때는 드디어 갈때까지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아들을 도구 취급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진해는 화가 많이 나있었다.
처음 윤성이 집에 왔을 때 일부러 차갑게 대한 것도 없지 않았다. 자신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하면 이 지옥같은 집성촌에서 똑같이 마음을 빼앗기고 썩어가야 하니까. 진해는 윤성이 하루빨리 이곳에서 나가기를 바랐다. 아무리 정략결혼이라도 마음을 주지 않는 남편이 미워서 떠나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진해는 더욱더 차가운 시선으로 윤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의동생 여종의 증언과 윤성이가 본 진해의 행동으로 짐작하건데 진해는 나쁜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핏줄들이 보고 있지 않은 곳에서 여종을 비롯한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마을밖에서는 노인들과 아이들을 잘돌보는 선량한 청년이었다. 진해를 심성으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여종이 왜 반했는지 알것도 같았다.
윤성이 시어머니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도 윤성 앞에서는 차갑게 돌아섰지만 윤성이 안보이는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큰소리를 치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다. 윤성은 그걸 모두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은 상냥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어쩌다가 저렇게....'
7. 본심
윤성은 진해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 왜 자신을 피하는지. 왜 안보이는 곳에서 그렇게 상냥하게 해주는지. 왜 본심을 숨기는지.... 하지만 윤성은 진해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진해가 계속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가운데 여종이 갑자기 고열로 쓰러졌다. 시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은 일일히 종까지 신경써줄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죽게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성은 몰래 의자매를 맺은 사람이어서 쉽사리 내버려둘 수 없었다. 어머니가 보고계시지 않을때 의동생을 천으로 감싸안아 재빨리 집성촌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윤성은 집성촌 밖으로 나가본적도 없고 모르는 동네라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숨을 가쁘게 쉬고 기침을 계속하는 의동생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진해가 나타났다.
"이 시간에 뭐하고 계십니까?"
"도,도와주세요! 이 아이가 열이 안떨어져요. 의원을 찾아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어떡하죠? 이 아이 죽을 수도 있어요!"
"...... 제가 의원이 어디있는지 압니다. 따라오세요."
진해는 윤성이 안고 있는 여종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황급히 대문을 열었다. 앞장 선 진해의 등이 매우 커보였다. 이만큼 듬직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진해는 윤성이가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확인하면서 마을의 의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늦지 않아서 아이는 금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재빠르게 대응해준덕에 아이가 살 수 있었다고 의사가 칭찬을 했다. 둘은 당연한 일을 한것이라며 쑥쓰러워했고 진해를 보고 정씨 집안의 도련님 아니시냐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비용은 제가 지불할게요."
"아닙니다. 진해 도련님께는 늘 신세지고 있으니까요."
"신세라뇨?"
"모르십니까? 이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글을 깨우치게 된 이유가 모두 진해 도련님이 아이들에게 글공부를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공부 거처는 이 의원이고요. 이 아이도 원래는 까막눈이었는데 진해 도련님이 글을 알려주신 덕에 종노릇을 하고 있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세요. 돈은 지불 안하셔도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데 돈을 받을수야 없지요."
의사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고 진해가 집밖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따뜻한 사람이구나. 진해는 의사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올렸다. 아 웃었다. 웃을 수도 있구나 이사람.
의동생이 안색이 좋아지고 윤성도 한시름 놓았다. 진해는 아이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며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이 기회 아닐까? 윤성은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잘 웃으시네요. 왜 지금까지는 웃지 않으셨어요? 당신이 굉장히 마음씨가 곱다는 것도 바로 알게 되었지만 왜 그걸 숨기고 있죠?"
"그건...."
진해는 아픈 여종의 뺨을 어루만지며 마음이 누구러들었는지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놓았다. 막상 윤성에게 다 털어놓으니 마음이 후련해진 기분이 들었다. 진해의 과거사를 들은 윤성은 진해의 손을 꼭잡고 당찬 얼굴로 미래를 약속했다.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이 집에서 같이 살아남자고. 기댈 곳이라고는 이제 둘 밖에 없으니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이 작은 손으로 무엇을 지키겠다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진해는 윤성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그러겠다며 진심으로 윤성을 바라보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진해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