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이레/시리즈

[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05

닌란(NINRAN) 2024. 2. 3. 20:00

*시리즈물

*퇴고 못함. 오탈자 검사만 함

*캐붕 주의. 문체 이상함 주의

 

 

 

============================================================================================

 

 



 저녁식사가 무르익자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일 아침 일정을 말해주었다. 내일 스케줄은 쉬웠다.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한 재료를 구하는 것. 지금 당장은 너무 어두우니 재료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이 미션은 저녁을 성대하게 차려주었으니 아침은 스스로 해 먹으라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자의 단호한 말에 아이들은 조용히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단호한 말 뒤에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의 스크린을 또 봐도 괜찮다며 이번에는 세이쇼 학원의 캡틴에게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아직 안끝난거야?"

 "나도 아츠야랑 소메오카군 보고 싶은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앞에 두 캡틴들의 이산가족상봉과도 같은 모습을 보고 나니 하쿠렌의 캡틴인 시로는 먼저 만난 두 캡틴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 옆에서 라이몬의 캡틴인 미치나리는 딴지를 걸었지만 시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시로의 부러운 눈빛을 봐 버려서 마음이 약해진 세이쇼 학원의 캡틴인 세이류는 먼저 보라며 리모컨을 시로에게 건네주었다.


 "정말 그래도 돼? 보고싶은건 둘 다 똑같잖아."

 "괜찮아요. 먼저 보셔도."

 "그럼 사양않고."


 시로는 처음에는 살짝 머뭇거리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갈 곳을 못 찾았지만 세이류가 리모컨을 더 가까이 내주자 그의 진심을 확인했다. 그의 얼굴은 담담하고 무념무상인 얼굴이었다. 진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얼굴 하나는 잘 숨기는 듯했다. 결국 시로는 머뭇거리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세이류가 건넨 리모컨을 잡아들었다.


 "고마워. 이건 어떻게 쓰는거지?"

 "그냥 누르면 되는거 아닐까요?"

 
 리모컨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시로는 스크린을 향해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켜졌다. 분명 남자가 세이류에게 건네주었을 리모컨일 텐데 시로가 본 스크린에는 하쿠렌의 축구부원들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동생인 아츠야, 강화위원으로 온 소메오카, 새로 들어온 나에가 보였다. 그 3명 뒤로는 다른 하쿠렌 부원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소메오카는 가장 가운데 앉아서 시로가 나오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다들 한 마디씩 하라고 뒤를 돌아봤다. 와글거리는 하쿠렌은 하나둘씩 시로에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고 싶다는 둥, 소메오카가 빡빡하게 군다는 둥, 아츠야가 제대로 연습을 안 나온다는 둥... 이 대부분이었다. 하쿠렌에서 나올 때는 걱정 말라며 부원들을 달래줬던 믿음직한 캡틴인 후부키 시로였는데 스크린 안에서 시로를 반겨주는 하쿠렌의 얼굴들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후부키씨...?"


 세이류는 시로가 아무말을 하지 않고 있어서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며 바라봤다. 시로의 얼굴에는 얕게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반짝이는 무언가가 뺨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시로의 얼굴에 떨어지는 액체를 본 세이류는 저것이 '그리움'의 눈물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형님, 내 말 들어봐. 오늘도 이 잘난 공주님이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연습을 하나도 못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아츠야도 훈련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당께!"

 "아 둘 다 시끄러워! 어쨌든 이렇게 보이지만 다들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한테 말한 것처럼 실컷 즐기고 오라고."

 
 소메오카는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로에게 걱정말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아츠야는 쑥스러운지 소메오카의 손을 뿌리치고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소메오카는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로를 향해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이 두녀석은 내가 책임지고 돌보고 있을 테니까 너는 걱정 마라. 모처럼의 휴가인데 캡틴이 제대로 즐기고 와야 부원들의 사기가 오르지. 그렇지?"

 "당연하지~!"

 "소메오카군..."


 소메오카는 이말을 하고 난 후에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답지 않게 부끄러운 소리를 했다며 쑥스러워했고, 아츠야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도깨비 같이 생긴 사람이 얼굴에 안 맞는 소리를 한다며 놀리기 바빴다. 나에도 아츠야의 말에 동의하며 소메오카 놀리기에 동참했기에 소메오카는 더 창피해졌다. 소메오카가 약간의 짓궂은 장난을 당하고 있는 걸 보니 시로는 눈에서 머물고 있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래도 소메오카를 놀리는 두 악동들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시로는 다시 캡틴으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었다.


 "아츠야, 소메오카군을 너무 놀리면 못써. 내가 없는 동안은 네가 아니라 소메오카 군이 주장이니까."

 "아츠야군은 자기가 주장이 된 것처럼 행동한당께~"

 "공주님도 너무 사람을 놀리면 안돼요. 부원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공주님이 축구부에 들어온 이유도 모두가 즐겁게 축구하기를 바란 거죠? 그렇다면 쓸데없는 싸움은 일어나서는 안되잖아요."

 "하하, 너도 한 방 먹었네!"

 
 시로의 꾸지람을 들은 두 악동들은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시로는 소메오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소메오카군. 나 없는 동안 잘 부탁해. 곧 돌아갈 테니까."

 "걱정 말라니까. 너 나갈때도 잔뜩 기대하며 나갔는데 벌써 돌아오고 싶다는  말은 넣어둬라."

 "아하하, 내가 그랬나?"


 소메오카의 무덤덤한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단단한 바위 같은 남자지만 오직 그 바위 같은 남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설원의 프린스라 불리는 후부키 시로밖에 없을 것이다. 소메오카의 진심을 전해 들은 시로는 이만 끊는다며 리모컨의 전원을 눌렀고, 하쿠렌의 모두도 손인사를 하며 스크린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스스로 끄셨네요."

 "이제 더이상 할 말은 없으니까. 다음은 누가 할 거야? 아, 세이쇼 차례였지?"

 "아뇨 전..."

 
 세이류는 왜인지 시로가 건네주는 리모컨을 받지 않았다. 시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왜 망설이냐며 리모컨을 세이류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직 마음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건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없이 땅만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시로는 세이류에게 부원들이 보고 싶지 않은 거냐며 질문했지만 세이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미즈카미야군,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해도 될까?"

 "노사카..."


 망설이는 세이류 앞에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오우테이츠키노미야의 캡틴인 노사카 유우마였다. 시로는 세이류가 먼저 받았으니 차례가 오는 건 당연하다며 세이류보고 먼저 보라고 했지만 노사카는 세이류를 향해 무덤덤한 얼굴로 물어봤다.


 "그렇다면 어서 보지 그래?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 뭘 그리 망설이는거야?"

 "....."


 노사카는 세이류의 행동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는 단호하게 물었다. 혹여나 스크린에 비친 사람이 없을까 봐,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 듯 보였다. 결국 세이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억누른 채 입술을 꾹 닫고 노사카에게 리모컨을 넘겨주었다. 노사카는 세이류가 더 완곡하게 돌려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고집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더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데 그러기에는 세이쇼 학원의 캡틴은 너무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고마워."

 "어서 켜봐. 혹시 모르잖아."


 세이류는 애써 웃으며 노사카에게 스크린을 켜보라고 부추겼고 노사카는 안그래도 그럴 참이었다면서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세이류도 자기 부원들을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까 전에 하쿠렌의 부원들이 시로를 보고 이야기하는 걸 보고 나니 자신도 시로처럼 눈시울에 붉어져서 아무 얘기도 못할까 봐, 부원들이 하는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해주고 울어버릴까 봐 보지 못했다. 혹여라도 부원들이 걱정하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될까 부끄러웠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인한 마음씨를 가진 것이 캡틴으로서의 자질인데 세이류는 그걸 하지 못할까 겁이 난 것이다.


 '정말 내가 캡틴에 어울릴 만한 사람일까?'


 세이류는 두 손을 빤히 쳐다보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내가 캡틴에 어울릴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대 캡틴이 된것도 모두의 성원에 이끌려하는 수 없이 나가게 된 것이니까. 


 "그나저나 우리 주장은 누구로 해?"
 
 "음 그러게. 시라토리 너는 어때?"
 
 "난 그런거 적성에 안 맞아. 미즈카미야. 네가 하는 건 어떨까?"
 
 "내가?"


 얼떨결에 시라토리를 포함한 다수의 부원들의 추천을 받아 캡틴이 되었지만 그 단어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까 봐 늘 조심조심했고, 부원들을 잘 챙겨주고 언제라도 믿음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열심히 훈련했다. 그래도 '캡틴'에는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항상 겸손하게 행동했다.


 '난 아직 캡틴으로서 자격이 없어.'


 세이류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남들보다 몇배는 더 노력하고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미즈카미야군?"

 "어,어..?"

 "역시 너가 먼저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눌렀는데 니시카게가 아니라 하이자키 군이 나와서 말이야."

 
 분명 리모컨은 노사카에게 전해줬을텐데 스크린에 비친 것은 오우케이가 아니라 세이쇼 동료들이었다. 세이류가 얼떨결에 그 리모컨을 받아 들었을 때 그의 뒤에 이 합숙의 주요 원인인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깜,깜짝이야!"

 "제가 그랬지 않았습니까. 이 리모컨은 세이쇼의 주장의 것이라고."

 "하지만 제가 노사카에게 준..."

 "세이쇼 주장의 것입니다."


 남자는 세이류의 말허리를 자르고 자신의 말을 또박또박 전달했다. 세이류가 다시 반박을 하려고 했으나 남자는 세이류의 면전에 대고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보기 싫으신건가요?"

 "네?"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 싫으신 건가요?"


 남자는 뒷짐을 진 채로 허리를 쭉 피고는 우람한 자태를 뽐냈다. 합숙에 오게 된 것도 친구들과 헤어지게 만든 것도 모두 저 남자 탓인데도 남자는 오히려 세이류에게 마지막 경고라며 말을 이어갔다.


 "이 리모컨은. 당신의 것입니다."


 남자는 세이류의 손을 잡고는 리모컨을 다시 한 번 더 꽉 잡게 하였다. 세이류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된 게 모두 저 남자의 탓인데도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세이류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른 채 리모컨을 받아 들고는 남자를 힘껏 째려보고는 홱 뒤돌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캡틴!"


 그 어두컴컴한 밤에 쨍하게 비추는 스크린의 빛이 세이류의 몸을 감싸 안았다. 세이류의 눈에는 빈틈없이 꽉 찬 스크린이 보였고, 그 스크린에 담긴 부원들의 얼굴도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6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