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08
*시리즈물
*퇴고안함, 오탈자 검수만
*캐붕주의, 문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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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미치나리의 앓는 소리에 모두가 눈을 돌려 그에게 집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그는 오른쪽 발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아있었다. 축구선수에게 발은 생명인데 하필이면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미치나리 씨 괜찮아요?"
"으응. 괜찮아. 아까 오는 길에 살짝 삐끗해서 그래."
하필 미치나리는 그전에 한 번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다시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아 그의 등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노사카는 상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심각한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지겠지만 어두우니 발밑을 조심해야겠다고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담력시험을 하게 된 것도 미치나리의 아이디어 때문이고,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모두가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버린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치나리 탓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캡틴'이니까.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아차려주는 사람들이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가도 돼."
사쿠마는 주저앉은 미치나리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어차피 보살이 있는 곳까지는 도착했으니 어서 목걸이만 제자리에 걸어두고 빠져나오면 제한시간 안에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쿠마군 말이 맞아. 너무 상심하진 마."
그 옆에는 시로가 미치나리에게 손을 뻗었다. 시로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미치나리는 다리를 절뚝대며 모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더 이상 미치나리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진심을 알고 있고 그의 성격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만 모였으니까. 미치나리는 동갑 캡틴 2명에게 살포시 웃으며 더 이상 상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보살은 찾았어?"
"아직이요. 다만 여기에 있는 건 확실해요."
노사카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말했고 타츠야는 노사카에게 넘겨받은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불빛을 쏴보았다. 반딫불이들이 있어서 주어서 큰 빛을 비출 필요는 없지만 일단은 확인차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조금 쉴까?"
시간이 촉박할수록 다급해진 5명에게 쉬자고 말을 꺼낸 건 시로였다. 이미 다들 피곤해졌을 무렵인데 또 이렇게 피곤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자니 그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휴식을 취하고자 온 합숙인데 우리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 남자의 정체를 파악할 생각만 하니 더 초조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
모두 쉬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부원들을 두고 이곳으로 온 것도 모자라서 이상한 남자에게 휘둘리고 있으니 남은 부원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낙심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쉬었다가 가자'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들에게는 '캡틴'이 없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성실하게 남자가 제안한 이 담력시험을 열심히 수행하였다.
"그러자. 어차피 지금 시간으로는 뭘 해도 이미 늦었어."
미치나리는 시로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초조해진 2학년 캡틴들을 진정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치나리와 시로의 말에 나머지 4명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수줍어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나와야지."
미치나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표정을 풀고 다들 이리로 와서 앉아보라며 손짓을 했다. 6명의 캡틴들을 미치나리를 중심으로 둥글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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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거기서 히로토가 혜성처럼 등장했죠."
"그때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
"우리도 비슷한 경험 있었는데!"
"한 팀에 한 둘은 말썽쟁이 부원이 있기 마련이지."
동그랗게 둘러싸여 캠프 파이어라도 하듯 6명은 그 자리에서 불까지 피워놓고 각 팀의 이야기보따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말썽쟁이 부원들, 다른 팀과의 시합, 이 합숙 초대장을 받았을 때의 팀의 반응, 아까 낮에 받은 기념품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까보단 편하고 진정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이좋게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걸 보니 그들은 이미 친구가 된 걸로 보였다.
"그 사람과의 약속은 안타깝게 됐네."
남자와 했던 약속을 떠올린 노사카는 말을 내뱉었다. 노사카의 말에 다들 조금 침묵을 이어갔지만 다시 편해진 표정으로 '어쩔 수 없지 뭐' 라며 웃어넘겼다. 노사카도 그들의 반응을 보더니 빙긋 웃으며 다시 수다에 동참했다.
"그래서 보살님은 찾았어?"
"아직 안 가본 곳은 저 나무 뒤쪽이에요."
사쿠마의 질문에 타츠야는 손가락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상당히 우거진 나무라 너무 어두워서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 같이 가면 무섭지 않을 거라는 사쿠마의 말에 타츠야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아이들도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와줄까?"
"... 고마워."
미치나리는 여전히 시로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체격차이가 꽤나 나는데도 전혀 힘들어하는 구석이 없었다. 만나본 것이라고는 하쿠렌과 라이몬의 시합 때뿐이었는데 그 둘은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말을 하고 어색했던 기류를 단 번에 바꿔놓았다. 어쩌면 가장 듬직한 성격이고 나이가 많아서 서로 통하는 게 많아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아, 찾았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세이류였다. 반딫불이들의 인도를 받아 나무 뒤편의 우거지 풀숲을 헤집으며 보살을 찾아냈다. 정말 아까 봤던 그 보살과 똑 닮은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청색의 보자기를 두른 보살이었다. 앞에 봤던 보살은 홍색의 보자기를 두르고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미즈카미야 군이 찾은 것 같아요."
타츠야는 세이류에게 다가가 축축한 그 어둠의 풀숲을 헤집으며 보살을 찾아냈다. 세이류가 손가락으로 돌로 된 보살을 가리키자 타츠야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모두를 불렀다.
"그러면 이제 목걸이를 둘러주고 떠나면 되겠네."
사쿠마는 노사카를 쳐다보며 말했고 노사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를 표하며 보살님께 목걸이를 둘러주었다.
"소원을 빌고 가는 건 어떨까요?"
노사카는 그냥 가기 아쉬운지 모두에게 소원 한 가지씩 빌고 가자고 제안했고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좋아'하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노사카를 기준으로 6명이 일렬로 서서 청색 보자기를 부른 보살에게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원은 이미 한 뜻으로 모두 같았다.
'부원들 모두가 싸우지 않고 아프지 않게 잘 지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덤으로 어서 이 합숙에서 벗어나서 학교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라고.
-
미치나리의 발목이 어느 정도 나아서 잘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쯤 반딫불이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반딫불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모두 허둥지둥 대형을 맞췄다. 올라올 때 했던 그 일렬로 선 기차놀이 대형말이다.
"내려갈 때도 필요한 거였나?"
사쿠마가 가장 앞장서서 손전등을 들고 있었고 노사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형의 필요성이 지금 있는 건지 중얼거렸다. 가장 먼저 대형을 맞춘 사쿠마가 얼굴이 빨개지며 해산하라며 손을 허공에 대고 휘적거렸다. 다른 아이들도 창피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대형을 맞추자는 말이 없었는데 습관처럼 왔던 상태 그대로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 서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노사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다시 대형을 맞춰서 돌아가자고 말했다.
"안 해!"
자신들의 몰꼴이 창피했는지 노사카를 제외한 5명의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절대 안 한다고 선언하며 새침한 표정으로 흩어져서 산기슭을 내려갔다. 노사카는 꽤나 흥미롭다며 팔짱을 꼈고 도착지점에 있던 그 보살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동료들과 같이 내려갔다.
"시간초과입니다."
내려오는 도중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새들과 벌레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헐레벌떡거리다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로 도착한 6명의 캡틴들은 남자의 무표정의 말에 힘이 쭉 빠져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한 번만 봐.... 안 되겠죠."
봐준다는 달콤한 말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저런 면에서는 상당히 고지식하고 원칙주의였다. 더 길어지게 생긴 지옥의 합숙을 어떻게 끝을 낼지 아이들을 고민했다. 남자는 실패했으니까 내일 아침 미션이 있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 수면을 취하라 했다. 그의 말투는 이전의 낮에처럼 가볍고 밝은 톤이 아니라 명령하듯 딱딱하고 뾰족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시가 박혀있듯한 톤이었다. 남자는 그 말 말고는 아무말 하지 않고 내일 아침에 보자며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사라졌다.
"뭐 어쩔 수 없나?"
"생각보다 빡빡하네. 저 사람."
"대체 정체가 뭘까?"
담력훈련이 끝나고 난 후에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가면서 그동안 저 남자에게 쌓였던 말들을 쏟아부었다. 단 한명. 노사카 유우마만은 남자에 대한 불평을 늘여놓지 않았다. 남자가 저렇게 딱딱하고 차갑게 말할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숙소 반대쪽 남자가 사라진 그 자리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 노사카! 뭐해?"
"먼저 가 계세요. 저도 좀 있다가 들어갈게요."
노사카의 행동이 조금 수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노사카니까 알아서 잘 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노사카를 뒤로하고 수다를 떨며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노사카군? 아직 안들어갔나요?"
"당신을 기다렸거든요."
"저말인가요?"
노사카가 남자가 사라진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자 남자가 언제 온지도 모르게 성큼성큼 노사카에게 다가가서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며 험악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노사카는 남자를 향해 도전장을 내민거나 다름없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잠시 이야기 나눠봐도 될까요?"
"저같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눠봤자 재미없습니다."
남자는 하하 웃으며 노사카를 다시 별장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노사카는 멈춰서서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부르는게 좋을까요? 음, 선배님?"
"네...?"
노사카는 남자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남자는 몸이 순식간에 굳어지는걸 느꼈다. 노사카는 남자가 당황하는걸 놓치지 않고 더 파고들었다. 남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8.5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