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장르/아르고나, 프라메모

[프라메모] 아루챠코 <들판>

닌란(NINRAN) 2024. 6. 13. 22:06

**보이드라 1화 이후의 시점

**아루챠코가 여행을 합니다

**챠콜화이트 가사 다수 포함

**챠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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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진실만을 말하려고 해도 내 자신이 허락하지 않아 거짓말이 입밖으로 나와버린다. 그래서 아마 너에게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포챠코님이 만들어 놓은 이 왕국에 타인이 들어오는 건 싫었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모든 걸 허락해주었다. 내 안의 검은 심장 안에 있는 미끄럼틀을 재미있게 타는 네가 정말 행복해보였다. 

 

 "챠코! 뭐해~ 얼른 이리로 와~"

 

 너와 여행을 간다고 말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도 포챠코님의 호기심이 옮은거겠지. 펙클님의 발언도 신경쓰였고 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나도 몰랐던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될 거라 믿었다. 물론 이 예상은 맞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이 여행이 즐거워서 아직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떨어지는 모래시계처럼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간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면 해. 너와 더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나는 늘 흑백을 확실하게 해왔다. 옳은 것, 그른 것을 완벽하게 나누지 않으면 내 자신이 불안했다. 그런데 너를 만나면서 흑백을 가리는걸 모호하게 하게 된다. 난 늘 거짓말로 남을 속여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너를 속이며 여행을 같이 떠난 것이다. 그래도 역시 나 자신의 마음은 속일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좋아할일도 없을테니까. 

 

 "챠코?"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 이리로 오라니까."

 "괜찮아. 난 여기에 있을게."

 

 나약함이 뒤얽혀서 그림자가 잘라지지 않는다. 내가 검은색이라면 너는 완벽한 흰색. 때묻지 않은 그 순수함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그때 시즈를 만나서 내가 그 아이를 설득하지 못해서 좌절하고 있을 때 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너의 장점이자 내가 본받고 싶은 점이다. 생각한 만큼 눈이 부셔서 너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지금도 저만치 떨어져서 나를 부르고 있는 너를 간신히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다. 

 

 "....역시 들이 잘어울리네."

 

 난 포챠코의 왕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네가 말하는 시골 풍경이 어떤지 잘 모른다. 내가 태어나자 본 풍경은 스프레이로 귀여운 그림을 그려놓은 벽과 파쿠르 슬라이딩 등이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우뚝 솟은 건물들도 나에게는 당연한 풍경이지만 너에게는 처음보는 것들이었다. 아하하, 처음 네가 포챠코 왕국에 왔을 때 표정이 기억나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햇살을 충분히 머금은 너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내 마음은 전달하지도 못한채 바람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다. 손을 뻗으면 닿지 않을테니까 손을 뻗을 수도 없다. 그건 아마 너를 좋아한 나의 죄다. 그런 죄를 가진 나에게 먼저 다가온건 너였다. 지금도 우뚝 서서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잖아...

 

 "응? 왜 그래 아루? 즐길만큼 다 즐겼어?"

 "챠코 이거 줄게."

 "으왓."

 

 너와 나의 거리가 3cm도 될락말락할 때 멈춰서서는 내 후드를 강제로 벗겨버린다. 그리고 그 위로 살포시 화관이 씌워졌다. 너는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들판을 보고는 고향 생각이 난다며 먼저 들어가 잔뜩 웃어놓고는 내가 안들어오니까 토라져서 들판을 나왔다. 그 들판에서 잔뜩 가져온 꽃들을 이리저리 엮어서 화관을 만든 것이다. 다 큰 남자가 묵묵하게 작은 꽃들을 엮어서 악세사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에게 화관을 씌워주고는 드디어 개운해졌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겨 들판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갔다. 

 

 "뭐하는거야 아루."

 "헤헤 챠코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들판의 한가운데까지 들어가서야 너는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잡은 손은 계속 놓치지 않고 있다. 안돼. 이러면 손을 타고 내 심장소리가 전해질 것 같잖아. 나는 나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라 남을 좋아하는 이 기분을 전달하고 싶지 않다. 알려지면 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게 두려워서 아직도 검은색의 마음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다. 역시 너를 마음대로 좋아한건 나의 죄가 맞다. 

 

 "하늘을 봐봐."

 "하늘?"

 "응."

 

 너의 말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을이 지고 있어 주황색으로 내리쬐는 태양광이 지면을 쭉 타고 들판에 안착했다. 들판은 주황빛깔을 잔뜩 머금은 탓에 황금색으로 빛났다. 포챠코님은 자기 전에 책 읽는걸 좋아해서 자기 전에 늘 동화책을 같이 읽는데 그 동화책에서 본 적 있다. 금은보화가 땅에 마구잡이로 흩뿌려진 보물섬이 있다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 들판은 마치 그 동화책에서 본 보물섬에 온 기분이다. 눈이 부셨다. 제대로 눈을 못뜨겠어. 너는 어떤 얼굴로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져서 슬쩍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강아지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수에 찬 눈빛이 멋있었다. 너의 눈 색은 한점의 나쁜 색 없이 깨끗하고 투명한 레몬색이어서 그랬을까 주황빛을 머금은 들판과 아주 잘 어울렸다. 

 

 "예쁘다."

 "응. 그러게. 이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달려온거야?"

 "물론 그것도 있지만 뭔가 이 들판 말이야 챠코랑 닮지 않았어?"

 "나랑?"

 "응. 지금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려서 챠코를 바라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아."

 

 헤헤. 너는 또다시 상쾌한 웃음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어디가 천사같다는거야. 그런거 들어본적도 상상해본적도 없어.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해준게 너무 기뻐서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 잡은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지금 너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표정을 봤다간 내가 먼저 그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릴 것 같다. 난 여태까지 검은색과 흰색을 잘 구분해왔다. 하지만 이젠 잘 구분하지 못하겠어. 잘 속였다고 생각하지만 나 자신까지 속이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챠코?"

 "......웃."

 "응? 왜 그래?"

 

 시선을 아래로 내린채 계속 조용히 있는 내가 걱정이 되어 너는 허리까지 숙이며 나의 표정을 살핀다. 그래도 내 표정은 보이지 않아 의아한 표정이다. 나는 지금까지 늘 완벽하게 해왔는데 너를 만나면서 그 구분하는걸 잘 못하겠어. 어느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회색'이 되어있다. 

 

 "....하아."

 "챠코? 왜 그래? 응?"

 "별거 아니야. 그보다 이제 슬슬 해가 지는데 들판을 나가는게 좋지 않겠어?"

 "아 그러네. 숙소도 찾아야하고.... 못찾으면 어떡하지."

 "노숙하는 수밖엔 없겠지."

 "오 노숙! 좋은데? 챠코랑 둘이서 누워서 별을 보는 것도 좋다~"

 "아하하, 노을 다음에는 별이야? 그래 알았어. 그럼 노숙하자."

 

 지금은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마음을 너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며 네가 나에게 씌워준 화관을 소중하게 껴안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들판을 빠져나가 너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먼저 들판을 빠져나간 나를 저만치 멀리서 바라보며 너는 곧장 주인을 향해 달려오는 강아지처럼 전속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팔을 크게 벌리고 그대로 다이빙하듯 안았다. 생각보다 훨씬 큰 힘에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 힘도 애정도 모두 받아들여서 그 사랑을 똑바로 마주하게 될거다. 아니, 내가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 

 

 "화관 고마워. 어떻게 만든거야?"

 "내 고향에서는 내가 아이들이랑 자주 놀아주거든. 아이들한테 배웠어."

 "헤에- 잘만들었던데. 고마워."

 "........역시 잘 어울릴거라 생각했어."

 

 품안에 넣고 꼬옥 안아주던 너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서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일부러 크게 웃었다. 아마 부끄러운걸 들키고 싶지 않은거겠지. 

 

 "그거 알아? 그 화관 썼을 때 챠코 정말 예뻤어! 내가 상상한거 그대로야. 정말 천사 같았거든. 앞으로도 화관이든 뭐든 만들어줄테니까 나랑 쭉 같이 여행하자!"

 

 그 말을 들은 나도 부끄러워져서 화관을 품안에 소중히 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색 심장은 점점 회색으로 물들어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심장이 하얀색으로 되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너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