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장르/아르고나, 프라메모

[아르고나] 나유렌 -인어공주 01

닌란(NINRAN) 2024. 8. 15. 12:22

**오늘도 시리즈 소설

**2는 언젠가 나옵니다

**인어공주 렌 x왕자 나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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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인어에게 있어서 최고의 환경이다. 인어들이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헤엄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 바다에도 인어들이 살고 있다. 푸른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아직 어린 티가 얼굴에 묻어나는 청년. 겉으로 봤을 때는 인간이랑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꼬리 쪽을 보면 그가 인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이 인어의 이름은 렌. 렌은 형제들과 바다를 헤엄치는 걸 좋아했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 힘도 세고 꼬리도 윤기가 흘러서 항상 렌의 우상이었다.

 "곧 렌도 그렇게 될거야."
 "상심하지마! 나도 어릴 땐 그랬어~"
 "응..."

 형제들은 렌을 다독여주었다. 렌은 형제들과 다르게 꼬리도 작았고 힘도 세지 않아서 늘 형제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 때문이었을까, 렌은 남들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했다. 인어는 대체적으로 다른 해양생물들보다 훨씬 힘이 세기 때문에 '바다의 황제'라고 불렸다. 인어에겐 천적이 없고 인어도 다른 생물들을 해치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렌은 달랐다. 요령이 없어서 남들보다 뒤처졌고 작은 물고기 떼한테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형제들은 렌을 구해주며 렌에게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아 형제들은 늘 걱정이 태산이었다.

 "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천적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우린 조급해하지 말고 렌을 기다려주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렌이 다른 물고기들에게 크게 다치면 어떡해. 그게 걱정되는거지."
 "에이, 설마 뭔 일 나겠어? 우리도 있는데."

 형제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렌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렌은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약하게 태어나고 막내였기 때문에 뒤쳐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 렌에게도 딱 한 가지 장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노래'였다. 인어의 노래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도 하며 실제로도 노래를 잘 부르는 인어는 인어들 사이에서도 추앙받는다. 렌이 그 정도의 노래 실력을 가지는지 아닌지는 알기 어렵지만 확실한 건 렌에게도 '무기'가 있다는 것이다. 

 렌은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겼다. 누군가 자기 노래를 듣고 있다는걸 눈치채면 바로 숨어버릴 정도로 다른 사람이 듣는 걸 싫어했다. 정확히는 부끄러워한다는 거실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날도 렌은 형제들에게 한소리를 듣고 혼자 헤엄쳐서 해수면까지 올라갔을 때였다. 

 "후우...."

 렌은 근처 바위에 올라가서 축축해진 몸으로 걸터 앉아 눈을 살포시 감았다. 달빛을 머금은 바다는 눈부셨고 새벽의 하늘은 새까맸다. 그 새까만 하늘에 빛나는 조각달 하나와 조각달 주위에 저마다 밝은 빛을 내뿜는 별. 그리고 달과 별의 빛을 반사한 해수면이 마치 별가루를 흩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예쁘다...."

 렌은 두 눈을 반짝이며 노래를 시작했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힘차게 내뱉는 노래가 해수면을 타고 넓게 뻗어나갔다. 그리고 하늘로 높게 올라갔다. 렌은 손을 뻗어 달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마치 달에게 고하듯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

 렌이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을 무렵 선함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어떤 왕국이 있었다. 선함에는 꼿꼿하게 서서 함장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날 선 군인들이 있었고 함장은 다름 아닌 왕국의 왕자였다. 이 주변 왕국이라 함은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자이로 왕국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왕국의 왕자는 나유타라고 하는 사내. 나유타는 딱딱한 표정으로 바다를 탐색하고 있었으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귀에 꽂혀, 그 일대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나유타님, 이 일대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혹시 잘못들으신건 아닌지요."
 "......"
 "나유타님?"
 "비켜."

 나유타는 주변을 수색하던 군인을 밀치고 직접 나서겠다며 뱃머리에 섰다. 조심하라는 부하들의 말은 이미 나유타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의 귀에 들린 건 조금만 방심하면 홀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의 '인어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인상을 팍 쓰고 중얼거리던 나유타는 뱃머리에서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어디에도 사람의 형체는커녕 물고기의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나유타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분명 들렸어. 이 귀로 들었다고.

 "......저기다."
 "네? 저쪽에 누가 있어요? 누구냐! 어서 나와!"
 "어이! 소리 치지마!"

풍덩-

 나유타는 선대 왕의 영향으로 음악에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청각이 발달되었다. 그 덕분인지 인어의 노래를 단번에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망할 부하 녀석이 감히 인어를 놀라게 해서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나유타는 얼굴을 찡그리며 뱃머리에서 내려와 부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뭐 하는 짓이냐는 나유타의 말에 부하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고 부하의 얼굴을 보더니 더 화가 치밀어 오른 나유타는 혀를 차고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인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유타님 아무리 그래도 이젠 위험하니까 그만 돌아가는게...."
 "인어를 찾아라. 작은 단서라도 좋아. 샅샅이 뒤져."

 나유타는 그말을 하더니 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까 노래를 부르던 인어를 찾기 시작했다. 부하들은 위험하다며 그를 말렸지만 그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돌풍이 불어와 거대한 파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워낙 넓고 방대하여 인간 따위가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대한 자연은 인간을 멸망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거대한 파도가 배 안으로 들이쳐서 선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유타가 배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나유타님!"
 
 나유타의 오른팔이자 그의 상담인으로 있는 켄타가 급하게 손을 뻗어보았지만 이미 나유타는 배에서 떨어지고 난 후였다. 풍덩 소리와 함께 나유타가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켄타는 지금이라도 같이 들어가서 찾아보겠다며 급하게 배에서 내리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

 "켄타씨! 진정하세요! 나유타님은 괜찮을 거예요!"
 "그래 진정해 켄타!"

 주변인들의 호소로 켄타는 다행히 진정을 되찾고 나유타 수색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나유타가 바다에 빠진 지 수십 분... 수영을 할 줄 알더라도 이 정도 시간이 흘러도 올라오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증거. 

 "나유타...."

 켄타는 조용히 읊조렸다.


-


 렌은 나유타의 부하가 큰소리로 외친 탓에 깜짝 놀라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큰 굉음이 들리고 바다 안이 어지러워지자 렌은 직감적으로 해수면쪽에 큰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챘다. 형제들보다 몸집도 작고 힘도 약한 렌은 무서워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았지만 자신의 음악을 들어준 나유타라는 사람이 걱정되었다. 렌은 자기 노래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인어가 아닐지라도 렌은 상관없었다. 굉음이 넓게 퍼져 무서웠지만 바다에서 가장 권력 있는 인어가 도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해수면으로 올라갔다. 

 "저사람은.... 아까 그 사람이다!"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사람을 눈치채고 급하게 헤엄쳐 그 사람을 구해내었다. 가까이 마주하니 아까 자신의 노래를 들어준 사람 같았다. 인간은 물속에서 살 수 없다고 하니 어서 육지로 올려줘야 해. 렌은 그렇게 생각하고 나유타를 육지로 올려주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나유타의 몸을 만지고는 이대로라면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할 것 같아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상냥한 노래를 불렀다. 인어의 노래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 아닐지 지금 여기서 시험해 볼 기회였다. 

 "으윽..."

 이윽고 나유타가 정신을 차리고 렌은 자신의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다. 나유타가 완전히 의식을 되찾기 전에 어서 바다로 돌아가야했다. 오늘도 형들에게 혼나겠다. 렌은 나유타의 얼굴을 한 번 더 각막에 새기고 급하게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나유타님! 나유타님!"
 
풍덩-

 켄타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이 나유타를 찾기 위해 육지에서 탐색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나유타를 찾아내었다. 나유타를 발견한 켄타는 어서 그를 따뜻한 수건으로 감싸고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나유타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까 치유의 노래를 불러주던 푸른 머리의 청년이 아니라 자신의 상담인인 켄타여서 내심 아쉬워했다. 


-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나유타는 자이로 왕국의 왕이 되어 국정을 꾀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마저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인것을 받아들이고 상담인인 켄타와 쓸만한 부하들을 곁에 두고 생활하고 있었다. 바다에 빠진 후로 나유타의 안위가 걱정된 부하들은 그를 바다에 절대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꼭 건너야 했다. 그리고 나유타는 아직 그때의 인어를 찾지 못했다. 

 "칫."
 "나유타 왜 그래?"
 "펜이 부러졌어."
 "그렇구나. 다른걸로 준비시킬게."
 "아니, 내가 직접 갔다 오지."
 
 나유타는 일부러 펜을 부러뜨리고 그를 빌미 삼아서 잠깐 산책하겠다는 핑계를 댔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임을 알고 있었던 켄타는 그렇게 하라며 친히 외출용 옷을 꺼내주었다. 나유타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다지 싫어하는 티를 내진 않았다. 나유타는 궁전에서 입는 화려한 왕의 의복보다는 귀족들이 입는(또는 군인들이 입는) 실용성이 보이는 깔끔한 옷을 입고 궁전을 나섰다. 나유타는 궁전 밖을 돌아다니며 이 왕국의 생활상을 둘러보고 있었다.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고 원래 목적이었던 펜을 사려고 상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서오세.... 폐, 폐하!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상점은 나유타가 거느리는 군대에 소속해 있는 군인의 가업으로 친척의 일을 도와주러 온 나유타의 부하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였다. 나유타는 귀찮은 말은 다 생략하고 펜 하나를 사러 왔다며 목적만 얘기했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 펜은 어떠신가요? 아주 잘써지고 동방국가에서 수입한 펜으로-"
 "말을 못알아듣는거야 아님 돈이 없는 거야?"
 
 나유타는 옆에서 중후한 나이대로 보이는 상점의 주인(아마도 그 부하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다)과 어떤 청년이 이야기하는 걸 듣게 되었다.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고 답답한 상인은 청년에게 '돈이 없다면 물건을 팔 수 없어' 라며 주의만 주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 이 사람이 아까부터 전혀 말을 안하고 손에 잡은 물건을 도무지 놓질 않아서... 폐하에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나유타는 가까이 다가가 청년을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나유타는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에 바다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그 사람을.... 사람인지 인어인지 정확하게 구분은 가지 않았지만 몽롱해진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억지로 뜬 눈에 새겨진 그 파란 머리의 청년이 생각났다. 틀림없이 이 녀석이다. 나유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 그래서 그 물건 살거야 안 살 거야?"
 "......."
 "도통 말을 안하니 원..."
 "그 물건 가격이 얼마지."

 놀란 상점 주인이 폐하에게 어떻게 돈을 받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 왕국에 도둑으로 몰리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니 이번만 특별히 자기가 내준다며 금화 한 개를 주인에게 주었다. 청년이 가진 그 액세서리의 갚은 금화 한 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잔돈은 필요 없다며 쿨하게 떠나는 나유타를 향해 큰 절을 올린 상점가 부자는 금화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금화였기 때문이다. 간신히 액세서리를 손에 넣은 청년은 멍하니 눈만 꿈뻑이다 나유타와 눈이 마주쳤다.

 "어이."
 "......"
 "따라와."
 ".....?"

 푸른 머리색의 청년은 그때 나유타를 구해준 인어가 맞았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느러미가 아닌 인간의 두 다리가 지면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유타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말도 안하는 저 녀석을 데리고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장을 빠져나와 한적한 공원이 나왔고 그곳에 나유타와 렌이 서있었다. 

 "너 말 할줄 모르는 거냐?"
 "......"
 "말을 할 수 없다면 종이에 써."

 나유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아까 산 펜과 종이를 렌에게 건넸다. 렌은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펜과 종이를 받고 천천히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렌...? 그게 네 이름이냐?"
 "......"
 
 렌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나유타의 눈치를 살폈다. 나유타는 아무리 봐도 그때 자신을 구해준 인어가 이 '렌'이라는 남자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도 전혀 안 하는데 그런 노래가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를 대했고 렌도 나유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말을 할 수 없는 렌이 딱하기도 하고 렌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정확히는 렌이 그때의 인어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나유타는 그를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저 녀석이 분명해. 하지만 어째서 말을 하지 않는거지? 말을 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지느러미도 없고. 나랑 떨어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유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렌과 궁전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