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덩] 대만준호(미츠코구) <무제>(미완)
*이것도 노트북 뒤적이다가 나온 옛날옛날 글
*미완인데 완성시킬 생각도 없음....
*백업용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사실은 농구부 부주장이었다니?!
*미츠이 히사시x코구레 키미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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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이 히사시는 지금이야 집이 잘살지만 옛날에는 잘사는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 성공으로 미츠이가는 대성을 누렸고 높은 빌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전에는 고층까지는 아니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멘션(한국의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이것은 그 미츠이 히사시가 10살일 때 생겼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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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가와현의 호시바라 멘션은 지어진지 20년이나 된 옛날 주거형태다. 그런 곳에 미츠이가는 이사를 왔다. 병원처럼 생긴 하얀 직사각형 건물에 다 똑같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게 히사시는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이사온 곳에 도착하자마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애꿏은 신발의 코를 푹푹 찍어대는걸 보신 미츠이 부인은 히사시의 손을 이끌고 억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음 어디보자 몇 층이었죠?' '10층' 무미건조한 별 쓰잘대기 없는 말이 오고갔다. 미츠이씨는 물론이고 미츠이 부인도 달가워 하지 않았다. 미츠이씨가 하던 사업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큰 사업도 아니어서 잃을 것도 별로 없었지만 늘 좋은 옷만 다려입고 짤랑이던 손목시계도 차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사업의 실패는 가족을 잃어버린 것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히사시는 고작 열살 남짓한 남자아이었지만 대충 알건 아는 나이었다. 집안이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자기네 가족이 왜 이런곳에 왔는지도 알고 있었다. 잦은 전학으로 인해 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그런 섬세한 아이었다. 아들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츠이 부부는 집안에 들어오자 마자 척척 짐을 풀어나갔다. 히사시는 그 사이에서 동떨어져서 '히사시' 라고 히라가나로 써진 상자를 열어서 아동용 농구공을 꺼내들었다. 현관 근처에서 농구공을 몇 번 튀기더니 재미가 생겼는지 그걸 들고 마루와 부엌을 왔다갔다 했다.
"히사시! 농구공을 가지고 집안에 들어오면 안되는거야!"
중년 여성의 째지는 소리가 히사시의 귀에 때려박혔다. 그 소리가 너무 고압적이라 히사시는 움츠러들어 농구공을 조용히 품안에 안기만 했다.
"놀고 싶으면 밖에 가서 놀아라. 보니까 놀이터에 농구골대가 있던데. 밥 먹을 때가 되면 부를테니까 가서 놀고 와."
미츠이씨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아버지의 허가가 떨어졌다. 히사시는 아버지의 말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아동용 농구공을 품안에 꼬옥 안아들고는 현관문 밖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던 찰나에 옆집에서 굽이 높은 힐을 신은 여자들이 쏟아져나왔다. 아니 쏟아져 나왔다기에는 두명밖에 없었다. 열살 남짓한 남자아이는 연상 여성의 기백에 완전히 눌려버렸다. 자기보다 훨씬 큰 키와 늘씬하게 빠진 다리가 어머니한테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강력한 기백이었다. 거기에 짤랑거리는 목걸이와 귀걸이 등이 히사시의 눈길을 끌었다. 풍성한 머리를 뒤로 넘기며 수다를 떨던 여자들이 그제서야 작은 남자아이가 있다는걸 눈치챘는지 무릎을 구부리고 히사시와 눈을 마주쳤다.
"어머, 못보던 아이네? 귀엽다~"
"얘 이름이 뭐니? 못보던 얼굴인데 이사왔니?"
히사시네가 이사온 날은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7월 말 정도였다. 곧 8월이 다가오고 좀 있으면 2학기가 시작되는 그 계절에 이사를 왔다. 그러니 이 성숙한 여성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허벅지의 반 정도 되는 짧은 청바지와 시원하게 파인 상의에 히사시는 정신을 못차렸다. 히사시에게는 누나는 커녕 사촌 중에서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귀하게 자란 도련님. 친가댁에 가면 항상 '도련님(坊ちゃん)'이라고 불리는 몸이었다. 그런 히사시에게 연상의 여성, 그것도 이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매력적인 여성의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었다.
"얘! 이름이 뭐냐니까?"
"아...아...."
히사시는 더이상은 못참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그 여성들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통과해 다른 길로 뛰어들었다. '얘 그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라는 누나(연상의 여자)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품안에는 농구공을 꼭 껴안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러던 마침, 막다른 길에서 튀어나오는 또다른 사람을 미쳐 보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히사시가 큰 소리를 내며 뒤로 확 넘어졌고 그걸 본 누나들이 급하게 그쪽으로 뛰어왔다. 상체에 걸친 얇은 옷 사이로 가슴골이 드러났고 뛸때마다 흔들리는 그 상체에 그만 히사시는 심장이 너무 뛴 나머지 그자리에서 눈을 꼬옥 감았다.
"어머나 얘 좀 봐! 괜찮니? 얘 정신 좀 차려봐!"
"어떡해 열사병인가봐. 집으로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얘 집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일단 우리집으로 데려가서 열 좀 식혀줘야겠다. 약속은 조금 늦겠지만."
"하긴 아이가 우선이지."
히사시의 귀에서 그 누나들의 성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실 누나들의 품에 안기는건 그닥 나쁘진 않았다. 이전부터 히사시는 마마보이로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서 여성의 부드러움을 느끼는걸 즐겼다. 하지만 그건 어머니니까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런 성숙한 누나들의 사이에서 끼어서 살을 부대끼는걸 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살갗이었다. 어른 여성이라고는 학교 선생님과 자신의 어머니밖에 없었는데 그외의 여자에게 안겨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 낯섬에 히사시는 너무 큰 자극이 와서 그만 그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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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 남자아이에게 갑자기 찾아온 일생 최대의 고비. 히사시는 섬세한 아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누나들에게 둘러싸여 숨막히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조숙한 아이라면 오히려 행운이라며 그 누나의 가슴에 파묻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겠지만 히사시에게 이것은 비극이었다. '난 여자친구를 사귄다면 절대 연상하고는 사귀지 말아야지' 고작 10년 산 남자아이는 신세한탄을 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푹신한 감촉이었지만 절대 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모호한 감촉이 정신을 차린 후에야 몰려왔다. 아이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빨간 방울 머리끈으로 한쪽 머리를 묶고 있는 어떤 아이의 모습이었다.
"어, 일어났다. 언니~ (일본에서는 누나도 언니도 모두 姉ちゃん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사람 일어났어~"
처음보는 아이었다. 아니 이 멘션에서 두 번 이상 본 사람은 없지만 아까 봤던 누나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히사시는 이 아이가 순간 자기를 구하러 온 '여신'으로 보였다. 아이는 빨간색 방울로 왼쪽 머리를 묶고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아이였다. 아까 봤던 누나들과 다르게 그 나이대에 맞는 귀여운 티셔츠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usagi'(토끼)라고 프린트가 된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주름잡힌 빨간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큰 안경도 한몫했다. 히사시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기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아니면 그보다 어리거나. 자길 빤히 쳐다보는걸 알았는지 여자아이는 '음?'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저기. 여긴 우리집인데 아까 쓰러져서 데려왔어. 몸은 좀 괜찮아?"
"으응..."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쉬어. 물 가져다줄까?"
"아, 응."
"알았어."
히사시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집과 똑같은 구조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알록달록한 소품들이 정신 사납게 전시되어 있었다. 티브이 앞에도 책상 위에도 하물며 벽에도 스마프(일본 남자 아이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딱봐도 최신 유행하는 것들로 잔뜩 꾸며진 그런 집이었다.
"자, 여기 물."
"응?"
"물 마셔."
"아, 응. 고마워."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더니 바로 옆에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물을 가져다 준 여자아이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물을 다 마신 히사시는 시원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행이다. 머리는 안아파?' 하며 걱정어린 목소리로 여자아이가 말했다. 사실 여자아이 치고는 약간 낮은 음이었다. 히사시는 그 여자아이에게만큼은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아까 그 기백이 쎈 누나들에 비하면 이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게 분명하니까. 괜찮았다.
"물 고마워. 아까 그 누나들은..."
"아, 언니들이야. 언니들이 너무 극성 맞아서 놀랐지? 나도 가끔 놀라. 하하하."
여자아이가 머리를 살짝 누르면서 얘기했다. 히사시가 깨어났다는 말을 들은 누나들이 갑자기 너도나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어머 일어났니? 괜찮아? 머리는 안아프고?"
"키미짱이 물 가져다 준거니? 기특하네~"
"머리에 이상이 없으면 다행인데."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얘, 집은 어디니? 데려다줄게."
또 극성맞은 누나들의 조잘거림이 지속되자 히사시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몰라서 점점 몸을 수그렸다. 그걸 단번에 알아차린 여자 아이가 누나들을 내쫓으면서 히사시에게 말을 걸었다.
"갑자기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놀라잖아! 그보다 농구공 가지고 있던데 농구 좋아해?"
"응?"
"농구 말이야."
여자아이는 히사시의 근처에 놓여있던 아동용 농구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농구공. 맞아 나는 농구를 하려고 했었지. 히사시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바로 농구공을 잡았다.
"너무 귀엽다~ 얘도 키미짱처럼 될 수 있을까?"
"남의 집 아이잖아. 그정도는 자제해."
"아쉽다~ 그래 키미짱도 농구 좋아하는데."
"그러네. 키미짱이랑 같이 농구하면 되겠다. 일대일 할 사람 찾고 있었잖아."
히사시는 농구라는 말에 눈을 꿈뻑이며 그 '키미짱'이라고 불리는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키미짱...?"
"아,응. 내 이름이야. 부끄럽지만."
키미짱은 쑥쓰러운지 얼굴을 수그렸다. 그러자 누나들이 갑자기 키미짱의 등을 밀어서 히사시와 둘이 붙여놓았다. 키미짱이 히사시에게 안겨오자 아기처럼 분유냄새가 났다. 아니면 베이비 파우더라고 해야하나.
"우왓!"
"아,아... 언니!"
"아하하~ 너네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귀엽다~ 이참에 키미짱 친구가 되어주라. 쟤 숯기가 없어서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거든."
"그래~ 키미짱이 물도 가져다주고 방까지 옮겨줬는데 친구 해줘라~"
히사시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져서 키미짱을 덥썩 안았다. 여자아이를 안는건 처음이었기에 히사시는 자신이 안아놓고서는 더 놀랐다.
"어머나~ 쟤들 뭐하는거야~? 얘, 안을거면 확실하게 안아야지! 이렇게 꽈악하고!"
"꺄아~ 몰라 미쳤나봐~"
누나들은 히사시를 놀리는 투로 음흉한 얼굴로 서로를 꽈악 안는 시늉을 했다. 허니, 달링하면서 서로를 그렇게 부르던 누나들은 히사시와 키미짱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므흣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키미짱이 먼저 히사시에게서 떨어져서 누나들에게 한 마디 했다.
"이제 그만 그만! 이 애가 당황해하잖아. 언니들은 너무 장난이 심해. 자자, 빨리 나가세요~ 약속 늦는다며~"
"어머어머 얘 좀 봐라. 너네 우리 없다고 막 이상한 짓 하는거 아니지?"
"키미짱 수상해~"
"네네, 알았으니까 빨리 가세요."
키미짱은 누나들을 현관문으로 밀어냈다. 다 밀고 나서야 현관문이 콰당하고 닫혔다. 키미짱은 생긴건 귀엽게 생겼는데 의외로 기백이 세구나. 히사시는 그렇게 생겼다.
"언니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미안해. 많이 놀랐지? 저런 사람들이야. 정말 못말려."
"그,그래..."
"그런데 넌 이름이 뭐니?"
"히...."
"히?"
자기 이름을 제대로 못말하는 히사시가 안쓰러웠는지 키미짱은 이름은 됐으니 농구하러 나가자고 했다. 키미짱이 문을 벌컥 열고 현관문 밖에서 편한 운동화를 신고 기다리고 있자 히사시가 이불을 박차고 농구공을 들고 뛰쳐나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집 밖을 나가서 신나게 농구공을 튀겼다.
"일대일 하게?"
"응. 나 예전부터 일대일 할 상대를 찾고 있었거든."
"뭐, 핸디(핸디캡)이라도 줘?"
"얕보는거야? 없어도 되거든?"
"오~ 세게 나오는데~"
히사시는 공을 튀기다가 멀리서 3점슛을 날렸다. 깔끔하게 들어가자 키미짱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골대를 바라봤다. 히사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키미짱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한쪽으로 묶은 저 머리스타일, 잔뜩 주름진 치마, 조금 촌스러운 토끼 티셔츠가 귀여워보였다. 아까 안을때 난 베이비파우더 냄새도 나쁘진 않았다.
"어? 다시 안해?"
"....집에 들어가야 해."
"그렇구나. 그럼 내일도 하자! 너 같은 멘션에 사는거 맞지?"
"그렇긴 한데...."
히사시는 농구공을 가지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다 키미짱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키미짱을 바라보았다. 똑같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기껏 묶은 머리가 땀으로 인해 헝클어져있었다. 그런데 귀여워보이는건 왜일까.
"내일 몇시?"
"음~ 아직 방학이니까 아침먹고 모이는거 어때? 다른 친구들도 불러올게. 여기 우리 나이 또래 애들이 여러 명 있거든. 같이 농구하면 재밌을거야. 3대3 어때?"
"난 일대일이 하고 싶은데..."
"앗 그렇구나. 으음~"
히사시는 약간 뚱한 표정을 내비쳤다. 키미짱이랑 일대일 하는거 재밌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그런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열살 남자아이의 어리광에 불과했다. 그러자 키미짱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알았어. 내일 일대일 승부하자. 내일은 안질거야! 그럼 아침 먹고 모이기다?"
"좋아."
"그럼 내일보자. 그러니까 이름이..."
"히사시야."
"히사시군. 음. 알았어 기억해둘게. 내일봐 히사시군!"
"어 내일보자 키미짱."
히사시는 그대로 농구공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잔뜩 흙으로 더럽혀진 옷을 보고 어머니는 경악을 했지만 농구를 했다면 그걸로 다행이라며 아버지는 웃어넘겼다. 근자한 웃음이 히사시의 등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내일 아침에 '키미짱'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런건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목욕탕에 들어간 히사시는 키미짱을 생각했다. 그 방울 귀엽던데. 티셔츠는 좀 구리지만. 치마도 귀여웠지. 생각해보니 양말에도 무늬가 있었어. 토끼를 좋아하나? 내일 농구 하고 펫샵에 가자고 할까. 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자신이 열이 오르는 것도 모르고 계속 키미짱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너무 오래 씻는거 아니냐고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자신이 키미짱 생각으로 가득한지 몰랐다.
내일이면 또 키미짱을 만날 수 있구나. 이 병원같은 답답한 멘션에도 자신의 편이 있다는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히사시는 잘때도 온통 키미짱 생각뿐이었다. 내일은 무슨 티셔츠를 입고 올까. 아마 토끼겠지. 햄스터여도 귀엽겠다. 빨간색을 좋아하는걸까 그런데 운동화는 파란색이던데. 히사시는 결국 떨리는 감정을 주저하지 못하고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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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시는 새벽 6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평상시라면 엄마가 깨워주지 않는이상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히사시가 스스로 일어난 것이다. 히사시는 일어나서 자기가 누운 자리를 정리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농구공과 골대가 프린트된 누빔 이불을 척척 정리했다. 부모님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이불을 한쪽으로 가져다 치웠다. 매일 아침마다 하는 것을 했다. 일어나서 이불개기, 양치하기, 세수하기.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고 있었다. 단지 키미짱과 농구를 하기 위해였다. 그 단 하나의 이유가 히사시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부모님이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아직 있는데..."
얼굴과 머리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어내며 무엇을 할지 곰곰히 생각했다. 일단 저 답답한 커튼 밖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을 쬐고 싶다. 어린 아이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였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7월 말. 후끈한 날은 히사시의 궁금증을 막지 못했다. 곤히 잠든 부모님 주변을 지나 베란다로 작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따사로운 햇빛은 아니지만 뜨거운 햇빛이 히사시를 맞이하고 있었다.
"덥네..."
"어라? 히사시군이잖아."
"응?"
익숙한 목소리가 히사시의 귀에 틀어박혔다. 반사신경처럼 목소리를 듣자마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미짱이다. 키미짱이 있었다. 까치집을 잔득 만들어놓고 비몽사몽한 얼굴로 히사시를 바라보았다. 아직 잠이 덜깬 모양인지 연신 하품을 하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빨간 방울에 분홍색 티셔츠는 아니지만 여전히 촌스러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은 멸치 티셔츠다. 후아암. 하품을 하던 키미짱은 히사시에게 물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부지런하네."
"뭐 이정도야. 너도 일찍 일어났잖아."
"이 시간대에 햇빛을 쐬면 기분이 좋거든."
키미짱은 난간에 팔을 올려놓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하늘은 청명하고 높았다.
"아침먹고 일대일 잊지마."
"그것 때문에 일찍 일어난거야?"
"웃... 아니거든!"
"아하하~ 알았어~"
키미짱의 집이 자신의 집 바로 옆이라는걸 처음알았다. 히사시는 이 사실이 너무 기쁘고 흥분되었다. 매일마다 문을 열면 키미짱과 마주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누나들은? 아직 자는 중. 시시콜콜한 대화를 몇번 나누더니 키미짱이 덥다며 베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들어갈려고?"
"밥 먹어야지. 너랑 일대일 할려면."
"....그래!"
히사시는 키미짱의 말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순식간에 집안으로 쏘옥 들어간 키미짱을 따라 히사시도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먹고 바로 연습이다! 그렇게 열살의 남자아이는 힘차게 아침밥을 먹고 스스로 옷을 갈아입었다. 미츠이 부인은 아들의 색다른 모습에 놀란 기색이 염력했지만 미츠이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자서 알아서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며 부인을 말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고. 너무 늦지 마렴!"
"네-!"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전히 멀어져 가는 아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혼자서 밥도 먹고 친구도 사귀는구나. 다행이다. 아들의 기특함에 엄마는 아주 적은 눈물을 흘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달콤한 여름방학때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이른 아침에 놀이터에 도착한 사람은 히사시. 그리고 키미짱이었다.
"어, 히사시군!"
"여어."
"밥 일찍 먹었네?"
"당연하지. 오늘도 안져."
"과연 그럴까?"
키미짱과 히사시는 즐겁게 농구를 했다. 땀이 더운 여름날 땀이 턱밑으로 줄줄 흐르는 것을 애써 손목으로 훔쳐가며 농구를 계속했다. 히사시는 순식간에 3점슛을 쐈고 당연히 이번에도 히사시의 승리였다. 어제는 아동용 농구공이라 아쉬웠는데 오늘은 보통의 농구공으로 승부를 벌였다.
"또 졌네."
"당연하지. 애초에 넌 내 상대가 안돼."
"웃, 다시 해!"
"좋아!"
키미짱도 승부욕은 있었다. 히사시에게 단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다. 히사시의 농구 실력이 뛰어난건 알고 있었지만 키미짱도 농구를 좋아하고 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또래의 남자 아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아앗!"
"이번에도 내 승리다!"
"어딜...!"
키미짱이 높게 뛰어올라 히사시가 던진 공을 손으로 막아냈다. 난생 첫 블로킹이었다. 자신이 공을 쳐냈다는 기쁨이 몰려오기도 잠시 공중에서 길게 날아오른 키미짱은 그대로 히사시의 안면으로 떨어졌고 둘은 땅바닥에 내리앉았다. 약간 숨이 막힌 히사시는 버둥거렸고 키미짱은 아프다는듯이 그자리에서 꼼짝을 못했다. 어제와 같은 베이비파우더 향이 났다. 포근한 향기에 매료된 히사시는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열사병이었다.
"아야야... 미안해 히사시군. 괜찮아? 어? 히사시군!"
매미가 줄기차게도 울어대는 한여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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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히....군....사시..."
아까의 그건 뭐였을까. 어째서 농구를 하다가 갑자기 기절 한거지? 농구는 실내 스포츠인데 야외에서 해서 그런걸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10살 남짓한 아이의 작은 머리로는 '사랑'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그런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아까 기절한 것은 열사병 때문이라.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했다.
"히사시군!"
"으...으...."
"히사시군 정신 차려봐! 히사시군!"
"으....키미짱...?"
"아, 이제 정신을 차렸구나. 다행이다. 어디 잘못된 줄 알고 엄청 걱정했어."
키미짱은 히사시의 옆에서 그가 깨어날때까지 봐주고 있었다. 히사시군을 무척이나 불렀는데 전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이대로 죽은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말을 들은 히사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표정을 구기며 죽기는 누가 죽냐, 따위의 말을 하고는 누워있던 벤치에서 번쩍 일어났다.
"앗, 그렇게 바로 일어나면 위험해."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승부는?"
"4승 1패. 히사시군의 승리네."
"1패? 내가 언제 졌는데?"
"아까 나한테 블로킹 당했잖아. 그러니까 1패."
"쳇. 그것도 승부에 들어가는 거냐고..."
히사시는 폴짝 뛰어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냈다. 머리에도 모래가 잔뜩 끼어있었다. 머리를 아무리 잘 털어보려고 해도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잘 털어내지 못했다. 찝찝한 기분이 들어 이걸 다 해치우고 가고 싶은데... 히사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때마침 키미짱이 자리에서 일어나 히사시의 옆으로 가서 머리를 톡톡 털어내주었다. 키가 비슷하고 덩치도 비슷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만히 있어봐. 내가 털어줄게."
"으,응..."
동갑내기 여자 아이에게 받는 손길이 그닥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까 맡았던 포근한 향이 히사시의 코를 찔렀다. 키미짱이 머리를 털기 쉽게 약간 고개를 수그려 주었다. 그리고 키미짱이 입은 티셔츠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 오전에는 멸치였는데 지금은 도토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 티셔츠를 보자마자 웃음이 새어나온 히사시는 간신히 입을 막고 웃음을 삼켰다. 한결같이 구린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귀엽다고도 생각하던 것이었다.
"다 됐다. 응? 왜 그래?"
"아,아냐... 아무것도..."
히사시는 연상의 이성보다는 연하, 또는 동갑의 이성에 오히려 마음이 갔다. 연하의 이성을 보면 그토록 원하는 여동생을 얻은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았고 동갑의 이성을 보면 말이 통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 느낌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동성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단 한가지 체질에 안받는 사람이 연상의 여성이다. 히사시는 동갑이라고 생각되는 키미짱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히사시군. 얼굴이 빨간데 괜찮아?"
"어,어어? 괘,괜찮아! 완전 멀쩡한데?"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제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건가 싶어서. 괜찮으면 상관없고."
"저기 키미짱."
"응?"
히사시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키미짱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
"뭐가?"
"다른 애들에 비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무슨..."
"응? 나는 정말 궁금해."
히사시는 불타는 눈동자로 키미짱을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꾸욱하고 키미짱의 어깨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깨를 잡은 히사시의 손을 힐끗 보던 키미짱이 작게 웃고는 히사시의 손을 부드럽게 내빼주었다.
"만난지 얼마 안되긴 했지만 우린 정말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아. 마치 아주 어릴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그...그래...? 에헤헤..."
"응. 히사시군은?"
"으응?"
"히사시군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
발그레진 뺨을 긁적이던 히사시가 멈칫하더니 키미짱의 돌직구에 크게 놀랐다. 키미짱은 그 둥근 안경안에 들어가 있는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히사시를 바라보았다. 점점 다가왔다. 이제는 히사시의 코앞까지. 조금만 다가가면 서로의 코가 맞댈 수 있을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응? 응? 히사시군은 어떤데? 키미짱의 기대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냐니.... 그야....
히사시는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러자 키미짱이 도망갈까 히사시의 손을 부여잡고 두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드디어 서로의 코가 마주쳤다. 콩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주 작은 귀여운 종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키미짱의 머리에도 히사시의 머리에도.
"어...."
"응? 어떤데?"
"음....."
"빨리 말해봐. 궁금하단 말이야."
"......읏."
히사시의 정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키미짱은 더 두근댔다. 어제 만난 이 아이가 나랑 어떤 관계가 될지 그게 궁금해졌다.
"여자....친구...."
"응?"
"여,여자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해...!"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