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나] 나유렌 <키워주세요>
*나유렌 초단편
*토끼수인 렌+남친셔츠(?)+알몸이 좀 나옵니다
*얼마전에 토끼의 날인거 알아서 급하게 씀. 나도 렌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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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주세요>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어느 날, 나유타는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은 단순히 복수의 도구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옛말이다. 이젠 노래하는 게 좋았다. 밴드 동료들과(친구라고 불리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절대 친구라고 부르지 않았다) 쟈이로악시아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시끄러운 자동차 엔진소리와 눈부시게 빛나는 네온사인은 도쿄의 특징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이 축축하게 젖은 몸부터 씻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꾹 참고 걷고 있었다.
"삐이- 삐이-"
작은 동물 소리가 나유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고개를 돌려 가로수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상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비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상자 안에는 아기 토끼가 한 마리 들어있었다. 새하얀 솜털이 온몸을 덮고 있는 걸 보아서는 아직 새끼인 듯싶었다. 나유타는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토끼를 잡아 올려 품에 앉았다. 비에 맞아 추운지 오들오들 떨고 있었으며 상자 안에는 약간의 먹이와 물이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비에 젖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젖은 상자에는 수성펜으로 쓴 건지 흘러내리는 글자로 '키워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이 토끼를 버리고 간 모양이다. 평소라면 이런 연민은 생기지도 않는데 새벽감성이라도 돋았는지 나유타는 이 토끼를 계속 품에 앉은 채 집으로 귀가했다.
나유타의 집에는 냥코타로라고 하는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셰어하우스로 쟈이로악시아 멤버 전원도 살고 있었다. 남자 다섯 명과 고양이 한 마리라는 꽤나 다이내믹한 환경에 어린 토끼 한 마리가 추가되니 얼마나 정신이 없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더군다나 냥코타로가 이 아기토끼를 헤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걱정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나유타는 집으로 돌아와 데리고 온 토끼를 아무 말 없이 보여주었다.
"겍, 웬 토끼? 어디서 주워왔냐?"
레온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냥코타로 하나만으로도 케어가 벅찬데 토끼까지 키우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아~ 이 토끼를 행복하게 해주자."
료는 돌봐줘야할 동물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토끼는 사탕 먹냐며 과자를 들이밀자 그런 거 안 먹는다며 나유타가 토끼를 뒤로 잡아끌었다.
"이미 데리고 온 이상 어쩔 수 없네. 우선 목욕부터 시키자."
미유키는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어른스럽게 대처했다. 토끼 사료를 사러 나가야한다느니, 건초가 필요하겠다느니, 스토스토에게 전화해서 조언을 구하자느니, 마치 토끼 엄마가 된 것 같았다.
"흐음.... 이 토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켄타는 토끼에게 얇게 썬 당근을 내어주며 유심히 관찰했다. 류스케와 린타로가 키우는 라비 같은 품종은 아니고 그렇다고 산토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토끼는 켄타에게서 받은 당근을 오물오물 씹어먹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나유타가 토끼를 데리고 샤워실로 향하자 나머지 네 명은 토끼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냥코타로를 키우고 있으니 동물이 한 마리 더 느는 것 정도야 괜찮다. 모르는 게 있으면 류스케나 린타로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고 저 토끼도 나유타를 꽤나 신뢰하는 것으로 보였고 나유타도 토끼를 애정하는 걸로 보였다. 샤워실에서 쿠당탕탕 거리는 소리는 났지만.
"우선 토끼가 잘 곳을 만들어주자. 비에 맞아서 많이 지쳤을테니-...."
띵동-
때마침 쟈이로의 셰어하우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왔다. 켄타는 자신이 나가겠다며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었고 앞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의 와타루와 유우토가 있었다. 의외의 손님에 놀란 켄타는 무슨 일이길래 땀까지 흘리며 급하게 뛰어왔냐고 묻자 와타루는 침도 삼키지 못하고 말했다.
"형 늦은 시간이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혹시 토끼 못봤어?"
"토끼?"
"이정도 크기에 하얀색 털을 가진 토끼예요!"
옆에서 유우토가 더 큰소리로 말을 하자 시끄러워진 현관 쪽으로 눈을 돌린 레온이 찾아온 손님이 유우토인걸 알고 뒤따라 나왔다.
"토끼라면 나유타가 한마리 데리고 왔어. 설마 그 토끼 버린 거 유우토 너냐?"
"그런거 아니야! 우리도 놓친 거라고."
"놓쳐? 너네 토끼를 키웠던가?"
유우토가 허둥대며 이야기하려고 하자 와타루가 막아 세우며 그를 진정시켰다. 와타루는 차분히, 그러면서도 말에는 걱정이 한가득 묻어있게, 켄타에게 사실을 토로했다. 켄타가 그 토끼를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한건 착각이 아니었다. 언제 한번 와타루의 요청으로 아르고나비스 셰어하우스에 갔을 때 토끼를 본 기억이 있었다. 그 토끼와 매우 흡사하게 생겨서 형제나 같은 품종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예 같은 개체라니. 켄타는 그 토끼가 너희가 키우는 토끼냐고 묻자 두 사람은 땀을 삐질 흘리며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실은 그게-..."
쿠당탕탕-
샤워실 안쪽에서 들리는 엄청 큰 소리에 켄타는 나유타가 샤워실에서 넘어진거라 생각하고 곧장 샤워실로 뛰어갔다. '실례할게' 한마디만 하고 샤워실 문을 활짝 열자, 수증기로 뒤덮인 샤워실 안쪽에서 타일 바닥에 등을 붙이고 넘어져있는 나유타와 하얀 토끼.... 는 어디로 가고 나유타 위에 겹쳐져 같이 넘어진 렌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타일을 밟고 미끄러졌는지 얼굴을 찡그리고 도무지 제대로 일어나질 못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모두 나체였다. 뒤늦게 상황을 보러 온 미유키, 료, 레온이 그 모습을 보자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료는 고양이처럼 입을 둥글게 말아 올리며 샤워실 문을 닫으려고 했다.
"우리가 방해했나봐. 사이좋게 지내~"
"료찡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문 열어!"
수증기가 걷히고 켄타는 샤워실을 제대로 탐방했다. 구석까지 눈을 돌렸지만 나유타가 데려온 그 햐안 토끼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집에 오지 않았던 렌이 뜬금없이 있었다.
"이상하네, 나유타가 방금 토끼를 데리고 샤워하러 가지 않았어? 토끼는 어디갔지?"
그러자 렌이 고개를 푹 수그린채 조용히 손만 들었다. 나유타는 이 사실을 알고 데려온 걸까, 아니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왜 나나호시 렌이 여기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덩달아 와타루와 유우토가 연신 사과하기 시작했다. 별일 없으면 괜찮다고 말해도 세 사람은 계속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렌이 밖에 나갔다가 점쟁이 할머니한테서 점을 받다가 수상한 약을 건네줘서 그걸 마시고 토끼가 되었다고 한다. 그대로 집으로 귀가한 후에 아르고나비스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그 점쟁이 할머니를 다시 찾아갔지만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이대로 토끼로 계속 살면 아르고나 활동에도 무리가 있을걸 안 렌은 혼자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집 밖을 나섰고 영문도 모른 채 길바닥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자가 보여서 그 안에 들어가 좀 쉬고 있으니 어떤 학생이 와서 그 모습을 딱하게 여겼는지 가지고 있는 수성펜으로 '키워주세요'라고 써놓고 간 거라고 한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구나."
"아무튼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렌, 집으로 돌아가자."
유우토가 내민 손에 렌도 덩달아 일어나 그의 손을 맞잡으려던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유타가 렌의 손을 덥석 잡았다. 렌이 고개를 까딱 수그리면서 나유타에게 무슨 할 말 있는 거냐고 묻자 나유타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손잡은걸 이제야 확인하고 별거 아니라며 다시 손을 놓아주었다. 정말 자신이 데려온 토끼가 렌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지만 샤워실에서 알몸으로 있는 걸 본 인상 맨 정신으로 그와 대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유타는 밖에 있는 본인의 옷을 입고 가라며 렌을 밖으로 내보냈다.
"에췻!"
"거봐~ 멋대로 돌아다니니까 그렇지. 그 점쟁이 할머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렌, 정말로 기억 안나?"
"으응... 기억은 안나지만 이제 괜찮을 것 같아. 토끼로 변신한건 한순간이었고 이제 약기운도 떨어졌으니까 안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음.... 감으로?"
렌은 평소에는 멍하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성격이지만 가끔 감이 날카로울 때가 있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럼 그때 의문의 약은 왜 먹은 거냐고 유우토가 따지며 묻자 렌은 그냥 어쩌다 보니 먹게 되었다고 얼머부렸다. 그것이 정말로 생각 없이 먹은 건지 아니면 렌이 어떤 계획이 있어서 먹은 건지는 모른 채로. 나유타의 옷을 빌려 입은 렌이 다음에 만날 때 깨끗하게 세탁해서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나유타는 괜찮으니 마음대로 쓰라며 관심 없는 척을 했다.
"그럼 학교에서 보자."
"......."
쟈이로악시아 전원에게 신세 많이 졌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현관문이 철커덕하고 닫힌 후에야 나유타도 이제 자기도 피곤하니 쉬어야겠다며 방으로 돌아갔다. 나유타를 제외한 모두는 아직도 어리둥절했지만(미유키는 토끼의 행방을 묻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듯 했다) 곧네, 내일이면 모두 까먹고 평소대로 돌아올 것이다. 나유타도 마찬가지였다. 방으로 돌아온 나유타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옷을 걸쳐 입은 렌의 모습이 아직 눈에서 가시지 않았다. 비슷한 키에 비슷한 체구. 둘 다 몸이 워낙 가벼워서 옷 사이즈도 비슷했다. 렌에게 조금 긴 나유타의 카디건은 렌의 손등을 다 가릴 정도였다. '세탁해서 꼭 다시 돌려줄게'라고 말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그 옷에 렌의 체취가 조금이라도 묻어있기를 바랐던 탓도 있었다. 그럼 샤워실에서 갑자기 손을 잡은 건? 그건 왜 그랬지? 무의식이라고 해도 분명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의도를 지금 알아차린다 한들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옆에 있지도 않고 벌써 가버렸으니까. 정말 그 상자에 쓰여있던 대로 계속 키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의미 없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 가족법 수업이던가...."
평소에는 잘 챙기지도 않는 교과서를 챙겼다.
자신의 옆자리에서 검은색 가디건을 입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렌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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