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진해] -전생체험 ver.1
앤오님을 위한 윤성진해 글이옵니다.
윤성진해는 전생현생후생까지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하니까요^^
사실 제목 예전 글에도 써먹었던건데 내용은 다르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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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체험?"
"응. 예전에 유행했던건데 다시 떠오르는 모양이야."
"전생이라고 해봤자 뱀이랑 렛서판다 이런거 아닐까?"
"설마~"
여느때와 같은 휴일 낮이었다. 낮이라고 하기에는 비가 올것만 같은 꾸물꾸물한 날씨여서 초저녁 같았다. 비가 올것만 같아서 피크닉도 포기하고 집안에서 뒹굴며 게임을 하다가 할것이 없어져서 쇼파에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윤성이는 잡지에 소개된 '전생체험'에 눈이 갔다. 진해도 슬쩍 어깨너머로 보니 콧수염이 난 전생체험을 해주는 아저씨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있었다.
"이 사람은 전생에 공주였대. 이사람이 최면술사인가봐."
"뭔가 신용안가게 생겼는데..."
진해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콧수염이 멋드러지게 나있어서 뭔가 최면술사보다는 피에로같은거에 잘어울리는 인상이었다. 윤성이는 진해의 표정을 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꺄르륵 댔다. 윤성이의 웃음을 보니 진해는 가슴이 따뜻해지는걸 느꼈다. 저 햇살같은 웃음이 전생에도 같은 웃음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 진해는 윤성의 손에 들린 잡지를 뺏어 들었다. 놀란 윤성이는 눈을 꿈뻑이며 잘보고 있던걸 왜 가져가냐며 볼을 불리며 진해에게 다시 잡지를 달라고 내뺐다.
"뭐야 왜 가져가!"
"이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전생체험?"
"응."
윤성이 팔을 휘적이며 잡지를 뺏어들자 진해는 다시 잡지를 내주며 심심한데 전생체험 한번 해보는거 어떠냐고 먼저 말을 내뱉었다. 윤성의 작은 귀가 빠짝 올라가며 큰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 상당히 흥미로워보이는 표정이었다. 진해가 손가락을 인중에 가져다대며 잡지 속의 최면술사 흉내를 냈다. 어설프게 간드러진 목소리와 손가락으로 표현한 콧수염이 너무 웃겼는지 윤성은 배를 잡고 발을 동동거리며 웃었다. 진해의 상상속 최면술사는 그런 인상인가보다.
"자자~ 그러면 민윤성씨! 이곳에 누워서 천천히 눈을 감아보세요~"
"하나도 안닮았어. 푸하하하."
진해가 일어나서 손짓으로 윤성을 쇼파로 안내하자 윤성도 웃다가 결국 맞춰주자는 생각으로 쇼파에 편하게 누웠다. 잡지를 유심히 지켜보던 진해는 윤성을 상대로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제대로 걸릴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잡지에 나온대로 차근차근 하고 있었다. 설마 걸리겠어? 윤성이 키득거리며 진해가 하는 방식대로 맞춰주고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당신이 태어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진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윤성의 고막을 간지럽히더니 눈앞이 뱅글뱅글 돌아가는걸 느꼈다. 진짜 최면인가? 싶다가도 조금 무서워진 윤성이 손을 들어 진해를 불러보았지만 몸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최면의 세계로 돌아가는듯 싶었다. 정말 최면에 빠져서 전생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윤성은 자신의 전생이 내심 기대가 되었다. 어떤 전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어? 뭐야. 이게 내 전생이야?
눈을 질끈감고 몸이 이끌리는대로 편히 누웠던 윤성은 저절로 열리는 눈꺼풀에 못이겨 전생의 기억을 마주하게 되었다. 눈앞에는 불빛도 없고 새까만 공간밖에 없었다. 설마 나의 전생은 없고 이게 첫생인가?!
"나 그러면 전생이 없는거야?"
"리아님, 불도 안켜시고 뭘 하고 계신겁니까."
"엥...?"
한 노파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윤성이 생각했던 새까맸던 공간이 환하게 바뀌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전생의 세계로 온 윤성을 반겨주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큼지막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달려있었다. 윤성이 입을 뻐끔거리며 손가락으로 샹들리에를 가리켰다. 말도 안나오게 신기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윤성은 샹들리에 다음으로 노파를 바라보았다. 안경을 낀 할머니로 보였다. 하지만 복장도 그렇고 청소를 해주는 사람인가 싶었다. 전생에 나는 정말 잘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파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리아님 괜찮으세요?"
"네? 저,저요?"
"리아님이 여기말고 또 어디계신다고... 혹시 아까 넘어진게 어디 잘못된거라도?!"
"아,아녜요! 그냥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서 헛소리 한거에요. 고마워요."
노파가 한걸음에 윤성에게 다가와서 얼굴을 살포시 잡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안심할수는 없다며 좀 더 누워있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성은 정말 괜찮으니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쪽으로 걸어나가자 노파가 신발도 안신고 어딜가시나며 뛰어와 신발을 건네주었다. 집안인데 신발을 신다니 여기는 외국인가? 그러고보니 나보고 아까 리아라고 했지. 윤성은 생각을 곱씹으면서 웃는얼굴로 고맙다고 말하며 신발을 받았다. 굽이 낮은 예쁜 빨간색 구두였다. 나는 이런 구두를 신으며 자랐구나. 윤성은 다시 한번 더 여기가 전생의 기억임을 상기하고는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여기...집 맞아?"
"리아님 그런데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지금 밖이 너무나도 소란스럽습니다."
"밖이라뇨?...아, 그게 저 정말 아픈게 아니고 잠 때문에 비몽사몽해서요."
"레오님의 취임식이 정해지고 난 후로 레오님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쥐어짜듯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레오님이라면...."
"리아님 오라버니십니다."
윤성은 노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상황을 다시 정리했다. 윤성의 전생은 황가의 딸이었다. 큰 대국을 거느리고 있는 나라의 공주로 영특하고 예의가 바르러서 임금의 사랑을 받고 자란 공주. 노파도 알고보니 자신의 시녀였다. 그리고 지금 왕으로 군림해있는 사람이 윤성의 전생의 오빠인 레오라고 한다.
"아무튼 지금 나가시는건 위험합니다. 아까도 에르키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에르..아, 네! 그랬죠 그랬죠."
윤성은 더이상 생각 안나는 말을 한다면 정말로 이 시녀가 걱정이 되어 이곳저곳에 말을 하고 다닐까봐 일부러 생각 나는척을 했다. 그러자 시녀는 숨을 크게 몰아 내쉬며 에르키님은 기억하시는군요. 이라면서 정말 다행이라며 말했다. 그 시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 '에르키'라는 사람이 넘어진 윤성을 자신의 침대까지 옮겨주었다고 한다.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며 시녀에게 에르키가 어디있냐고 묻자 시녀가 빙긋 웃었다.
"역시 리아님은 에르키님에게 상냥하시군요."
"하하...뭐..."
윤성은 딴청을 피우며 시녀에게 에르키는 어디에 있냐며 물었다.
"리아님, 무슨일로 저를 부르십니까."
"아, 에르키님 마침 찾고 있었습니다. 리아님이 산책을 즐기고 싶다고 하셔서 어떻게 할까 걱정이거든요."
이사람이 에르키구나! 윤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고 제복을 입고 있으며 푸른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에르키라 부르는 이 사람은 아마 군인인듯 싶다. 목끝까지 다 와서 얼굴을 바라보자 윤성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진해?"
"네?"
차분한 진녹색의 머리칼,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이목구비가 진해랑 너무나 닮아있었다. 에르키라 불리는 이사람이 진해의 전생인가 싶었다. 윤성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에르키를 덥썩 안았다. 이 사람이 진해의 전생이라니 이게 무슨 영화같은 일인가. 현재 연인이 전생에서도 같이 있던 사람이라니.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완전히 말이 안되는 말은 아니였다. 천생을 같이할 인연이 있으니까.
"진해야 역시 너구나! 너도 전생체험으로 온...거..."
"감히 공주의 신분과 얼굴을 빌려 무슨짓을 저지르려는 속셈이냐."
윤성이, 아니 정확히는 리아가 에르키를 껴안으려는 순간 에르키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들어 그녀의 목에 올렸다. 현생의 진해가 이럴거라는 상상도 못할만큼 차가운 인상이었다.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냉혈한 눈빛이 느껴졌다. 목소리가 올라가지도 않고 침착한 상태에서 칼만 리아의 목에 올려져있었을 뿐이다.
"시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공주에게 한눈을 파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나온것 아니더냐. 네놈에게도 어느정도의 죄가 있다는걸 알고 있겠지."
에르키가 시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머리를 싸매며 주저앉았다. 차가운 진해의 눈빛을 바라보니 윤성이까지 얼어버릴것만 같았다. 하지만 죄가 있다면 현생에서 전생으로 온 자신에게만 있을뿐 시녀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그런데도 이 냉혹한 인간은 나이많은 시녀에게까지 칼을 겨누려고 하는것이다. 눈 뜨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이 상황에 윤성이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만둬! 죄가 있다면 나에게 있거늘, 저사람하고는 관계 없어."
"그럼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그렇다면 시녀를 살려주지."
에르키가 다시 칼을 윤성의 턱밑에 두고는 칼끝이 목젖을 향해 있었다. 자칫하다간 찔려 여기서 생을 마감할수도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윤성이 역시 여기서 물러설수는 없었다. 최대한 그럴싸한 꾀를 만들어서 저사람을 속여야만 했다.
"....에르."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에르키가 아주 작게 움찔했다. 한순간이었지만 당황하는게 눈에 보였다. 약점은 이건가? 반신반의했지만 윤성은 여기에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전생이 공주라면 지금 내가 공주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윤성은 속으로 할말을 정리했다. 시간을 끌려고 하는거라 생각했는지 에르키가 다시 칼로 턱을 들어올렸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을텐데."
"그야 내가 이 왕국의 공주니까 알고 있는게 당연한거 아니겠어? 시녀에게는 아무 잘못 없으니 나를 죽이던지 마음대로 해. 뒷감당을 담당할 수 있으면."
에르키가 눈썹을 찡그리며 칼을 거뒀다. 공권력이란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윤성은 한번의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다. 윤성이 시녀에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에르키 역시 시녀에게 허리 숙여 사과했으나 그 목소리가 굉장히 담담했다. 전혀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현생의 진해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감정변화가 두드러지는 진해하고는 전혀 달랐다. 전생에서 만났으면 오래가지 못했을거라 속으로만 생각했다.
"...리아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모셔드리겠습니다."
"폐하라면... 오빠?"
"네."
순간 멈칫한것 같아보였지만 알겠다며 에르키의 뒤를 쫓아 따라갔다. 에르키는 처음에 폐하를 만나러 가는거니 옷단장을 하는게 어떠냐고 말했지만 가족을 보는거니 괜찮다며 머리만 조금 만졌다. 방금 일어난 사람치고는 굉장히 옷이 화려했다. 귀족은 잠옷도 화려한걸 쓰는구나 싶었다. 에르키는 한번 그 말을 말한 이후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르라고 말한건..."
"응, 별명이지?"
"네? 아...네...그렇습니다."
사실은 아까의 당황타는거 보고 반신반의한거지만 이렇게 잘맞아버릴줄은 몰랐다. 진해랑 완전 다른 성격이지만 그렇게 나쁜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자신의 일에는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냉혈해보이지만 리아공주를 방까지 옮겨주고, 공주가 아님을 바로 알아내고, 공주가 어디론가 가버렸을꺼라 생각하고 생각까지 할정도로 리아공주를 지켜주는 기사다. 얼굴은 같지만 성격은 같지 않을 뿐이지 어찌되었든 이 사람은 진해의 전생이다. 윤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키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윤성의 발걸음에 맞춰주는건지 앞서가긴하지만 거리차이가 크지 않았다.
"리아공주님. 어서오십쇼."
"폐하는?"
"안에 계십니다. 에르키 단장님께도 보여드릴게 있다며 같이 들어오시라 합니다."
오라버니 얼굴 한번 보는게 너무 힘들다. 한번도 와본적 없는 폐하의 방이라니. 에르키랑 같이 들어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혼자 왔다면 더 의심만 살게 뻔하니까. 윤성이 이리저리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자 에르키가 주의를 주었다. 공주답게 행동해야 걸리지 않는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럼 역시..."
"쉿."
에르키가 폐하 앞에 서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딱딱한 겉치레 말만 내뱉으며 리아공주를 소개했다. 윤성도 에르키처럼 무릎을 꿇고 앉으려고 하자 에르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꼿꼿하게 서서 폐하의 말만 들으면 된다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에르키는 지금 리아공주가 가짜라는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지금와서 폐하에게 알려주고 공주를 찾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윤성이가 에르키를 반신반의하며 시험했던것처럼 에르키도 윤성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이건 스케일이 커도 너무 컸다. 여기서 자신이 가짜라는게 알려진다면 폐하는 바로 자신을 죽이려 할것임을 윤성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거라고는 공주처럼 연기하는것이다.
"폐하. 리아 공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오 그래. 리아 어서오렴. 황제가 된 오빠의 모습 이걸로 두번째 보는건가? 취임식때 이후로 처음이구나. 하긴 그때는 너가 취임식 이후로 안보겠다고 포고를 해버렸으니."
"폐하. 공주님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에르도 어서와. 리아를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 실은 두명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서 불렀어."
황제라고 치기에는 경박한 말투였다. 위엄도 없어보이고 흐트러진 옷무새며, 어질러진 방안이며 뭐하나 제대로 된 황제의 모습이 없었다. 윤성이 만화나 영화에서 봤던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황제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건 에르키가 황제에게 말이 지나치다며 핀잔을 주고 있는것이었다.
"맡기고 싶은일?"
"그래, 리아공주는 동쪽 마을에 백성들의 세금을 한 가족당 밀 다섯가마에서 열가마로 올리고 에르키는 서쪽 마을 백성들에게 앞으로는 한 가족당 물고기 30마리씩 바치도록 전해줘. 물고기는 상하면 큰일나니까 얼음에 싸서 가져오는게 좋다고 말해주고."
"잠시만요! 동쪽마을과 서쪽마을 말씀이십니까?"
에르키가 서있는 윤성의 옆에 서서 목에 핏대를 올리며 흥분하듯 말했다. 하지만 폐하인 레오는 심드렁한채로 턱을 괴고 왕좌에 앉아있었다.
"지금 이 국가는 가뭄이 심각합니다. 다섯가마도 내기 힘들어하는데 두배를 올리라니 백성들에게 가혹합니다! 먹고살 밀도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매일 발생합니다. 그리고 서쪽마을 역시 가뭄으로 인해 강물이 말라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거 아시지않습니까. 물고기를 바치려면 북쪽마을로 가야할터 어째서 서쪽마을에서 물고기를...."
아까 시녀가 한말을 떠올려본다. 황제로 등극한 레오는 백성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요구하는 폭군이라 하였다. 윤성이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한나라의 국왕이라고? 하지만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레오의 말이 상상을 초월했다.
"서쪽마을 물고기가 맛있으니까."
"무슨 그런...."
에르키는 황제의 어이없는 답변에 말문이 막혀서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윤성은 한발자국 더 다가가 큰 소리로 폐하를 꾸짖기 시작했다.
"백성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내게 하는것은 국왕으로서의 자질이 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가뭄이 들고 있어 굶어죽는 사람이 수둑한데 그들이 가족 먹여살리기 바쁜데 어떻게 세금을 낼 수 있습니까? 당신이 정말 제 오빠라면 더이상의 횡포는 그만두세요."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한 덕분에 왕실전체가 울려퍼졌다. 큰 눈을 부릅뜨며 말한 그 한마디가 폐하에게 전해지길 빌었다. 하지만 너무 큰 소원이었다. 이사람은 그저 '첫째'라는 이유하나로 국왕이 된것이다. 그야말로 우둔했다. 멍청하고 생각이 없는 왕이었다. 그래서 자기 배가 부르길 바빴다. 윤성이 한 말 더 붙이려 하자 에르키가 막아섰다.
"폐하가 정녕 그렇게 하셔야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물고기만큼은 빼주십시오. 강물이 말라 물도 귀한데 물고기는 사치입니다."
"사치가 귀족의 개념이지."
"아니 무슨 그런...!"
윤성이 화내며 언성을 높이자 이번에도 에르키가 말렸다. 더이상 큰 소리를 냈다가는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지 에르키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레오를 향해 말했다.
"리아공주님이 꼭 가야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거기가 고향이니까."
"무슨 소리이십니까. 리아공주님과 폐하는 북쪽마을이 고향 아니십니까."
"그랬나? 아, 그랬었지 참. 그래도 다시 정하긴 귀찮으니 리아가 다녀오도록 해."
무슨 저런 철없는 왕을 봤나. 자신의 고향도 까먹을 정도로 우둔하다. 기가막혀서 원. 윤성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왕이 다스리는 왕국이라면 오래가지 못할것이라고. 이게 전생이라면 자신은 리아공주인 삶을 여기서 끝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에르키는 어떻게 될까? 그도 여기서 죽을까? 리아공주의 원 성격은 어땠을까? 궁금한거 투성이었다. 레오는 내일 출발할테니 짐을 싸라고 하고는 나가라고 명령했다. 에르키는 경례를 하며 나갔고 윤성 역시 에르키를 따라 나갔다. 리아공주가 어째서 취임식 이후로 오빠를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것 같았다. 저런 오빠라면 마주하고 싶지도 않을테니까.
"무슨 저런 사람이 왕이람... 에르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에르키는 담담하게 말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보폭을 맞추려 윤성이 쪼르르 따라갔다. 에르키는 그제서야 자신이 공주의 발걸음에 맞추지 못한걸 죄송해하며 연신사과했다. 윤성은 괜찮다며 말하다가 번뜩 생각이 나 다시 말을 걸었다.
"너 내가 리아공주가 아닌거 알고 있었지?"
"....."
"그런데 왜 날 살려뒀어? 아까처럼 하지 않고."
"리아가 아닌걸 알고 있었지만 리아가 너랑 닮았으니까. 시험해봤을 뿐이야. 방금 폐하에게 한 말도 리아같았어."
어느순간 에르키는 말을 놓았다. 윤성은 먼저 말을 놓은게 조금 껄끄러웠지만 더이상 파고들면 의심받을테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에르, 리아라고 부르는걸 보아 둘은 꽤나 친한사이인듯 보였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둘의 관계가 서먹해졌을지도 모른다.
"왜 날 보고 진해라고 한거지?"
"어,어?"
"내가 못들었을거라 생각했나."
"아...그건...."
에르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윤성이 그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그게 맘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상대는 기시단이니 당연했다. 차가운 황금색 눈동자속으로 빨려들어갈것만 같았다. 여기서 정신을 바짝차려야 살 수 있을것이다. 최면에서 깨어난다면 다시 윤성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윤성은 눈을 질끈 감고 한동안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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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 윤성아 괜찮아? 너무 깊게 최면술을 걸었나..."
진해의 명량한 목소리가 윤성의 귀를 간지럽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윤성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부스스 일어났다. 진해가 이대로 안깨어나는줄 알았다며 울먹이며 안겨오자 윤성이 그를 밀쳐냈다.
"미안해 이렇게 깊을줄은...."
"당신은 누구시죠?"
"....최면술이 뭔가 잘못된걸거야. 정말 미안해! 나중에 나도 당해줄테니까 무서우니까 장난 그만쳐!"
"에...르...?"
작은 귀가 다시 쫑긋하고 솟아오르고 뭉툭한 꼬리가 살랑거렸다. 윤성은 진해를 빤히 쳐다보았다. 윤성이 아니 리아가 이곳에 와 있는게 아닌가.
--ver.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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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렇게 길게 될줄은 몰랐는데.....어..... 암튼 내일 이어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