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연성/코마세이

[마기하라 세이지 독백] 순리

닌란(NINRAN) 2021. 3. 2. 13:39

**닌타마 기반 자캐 독백.

 

 

 

 

[마기하라 세이지 독백]


 순리 (順理)



 마기하라 세이지는 금욕적인 인간이다. 욕구를 억눌러서 이치에 따르고 법도를 지키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닌도(忍道)에 올바르게 가는 자만이 닌자가 될 수 있다. 그만큼 금욕적인 삶을 명심하고 닌자에 어울리는 새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자시(오전 12시)가 시작되는 새벽부터는 생명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져서 닌자의 활동 시간이 넓어지게 된다. 고통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매서운 바람이 마치 칼날 같아서 세이지의 뺨에 스며들 때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낮에 맛봤던 평화의 햇빛을 씻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두 눈을 번뜩인다. 날카로운 눈동자는 먹이를 놓치지 않는 한 마리의 들개와도 같았다. 조용하게 불어오는 바람마저 거추장스럽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적의 동태를 살핀다. 바스락 부서지는 나뭇잎의 소리가 동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세이지는 눈알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렸다. 찢어질 듯 가느다란 눈매의 올곧은 눈동자가 커진다. 동공이 수축했다 확장됐다를 반복한다. 숨소리조차 걸리적거려 조용히 숨을 참는다. 쳐 죽일 닌. 저 적을 쓰러뜨려야만 닌자의 세상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다. 

 '쥐새끼인가.'

 세이지는 몸을 아주 조금 비틀어 쿠나이를 품에서 꺼내 오른쪽 지면을 향해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칼날의 묵직함이 땅바닥은 물론이요, 육체의 살갗을 뚫었다. 허억. 앓는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상대도 닌자. 세이지는 복면을 고쳐 매고 떨어진 쿠나이를 줍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소리조차 낼 수 없어서 복면을 둘둘 말아 입에 물고는 땀범벅이 된 상태로 뻗어있는 닌자가 세이지를 올려다본다. 억울하게 쳐다보는 닌자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있다. 세이지는 닌자의 발에 꽂힌 쿠나이를 단숨에 뽑았다. 끄억 하는 소리가 들려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선홍빛의 액체가 쿠나이는 물론 세이지의 손에도 묻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을 처단한 것에 대한 희열감만이 남아있었다.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 들었다. 닌자의 숨이 점점 불규칙적으로 변해가고 땀과 피는 서로 뒤섞여 보랏빛으로 물들어간다. 닌자는 마지막 발버둥을 쳐보기 위해 두 손을 들고 칼을 막는 시늉을 해보았지만 역부족이다. 구름에 드리워진 달이 흰 빛을 뿜어내며 지면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마기하라 세이지는 그 중심에 서있었다. 

 흰자만 보인 닌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축 늘어졌다.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았다. 보랏빛 액체는 땅에 스며들어 그 부분만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세이지는 칼을 한 번 내리쳐서 피를 튀겨냈다. 칼에 묻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꽃을 빨갛게 물들여갔다. 다시 칼을 칼집에 넣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조용하게 뒤돌아 섰다. 죽은 닌자에게는 정을 베풀어주지 않는다. 잔인한 말이지만 이것이 닌자의 본분이다. 서로의 죽음을 모른 척하는 것이 예의다.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발끝에서 전율이 올라온다. 참았던 숨을 다시 규칙적으로 바꾼다. 새하얀 입김이 눈앞에 드리워져 흐릿한 시야를 만들면 그 순간만큼은 약간의 몽롱함도 같이 동반한다. 날카롭던 눈매가 사르르 풀리더니 눈동자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도 잠시, 앞으로의 임무를 하나씩 되짚어본다. 곧 있으면 졸업을 해야 하고 그때까지 실력을 다져놓으려면 잠을 아무리 줄여나가도 시간이 모자라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닌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세이지 선배."
 "코마..."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첩자들은 제가 처리했어요."
 "......"

 귀가 살짝 찢어져있는 후배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해 보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닌도를 걷는 게 얼마나 힘든데 왜 자신을 따라오려고 하는 걸까. 세이지는 복면을 또다시 고쳐맸다. 새하얀 입김이 뿌옇게 드리워지고 정신이 또다시 몽롱해진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닌자의 본모습이기에 딱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후배가 지친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딱히 지치도 않았다. 단지 흐릿한 시야 속에 보이는 적들의 시체와 동료들의 얼굴이 뇌를 망치로 두들길 뿐이다. 

 짙은 녹색의 닌복은 더럽혀지지 않았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육체를 휘감은 면포는 더러워지기 매한가지다. 극기복례 (克己復禮). 세이지는 이 말을 몸속 깊이 새겨 넣었다. 욕구 같은 건 참으면 그만이지만 순리는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마기하라 세이지는 그런 남자다. 짧고 굵게 숨을 몰아쉬어본다. 여전히 후배가 옆에 있어주었다. 첫 공동 임무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이대로 돌아가 지친 몸을 눕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마 돌아가도 쉬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6학년들이 하고 있는 일이 많듯이 세이지도 정리해야 할 일이 많다. 

 발아래 놓인 어두운 풀들이 점점 밝은 풀들로 모습을 바꿔가며 모습을 드리우는 것이 곧 동이 틀 것이다. 아침이 찾아오면 열다섯 살의 소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