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cp] 귀신을 보는 소년
*정말 오래간만에 써보는 논씨피소설
*안좋은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 귀신을 볼 수 있는 이사쿠와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퇴마 할 수 있는 슈이치로의 이야기.
*1인칭 시점. 이사쿠편, 슈이치로편
*모든 내용은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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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포우지 이사쿠 편]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게 태어난 탓인지 내 주변에는 귀신들이 많았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무서운 귀신의 형태가 아니라 검은 천과 같은 형태가 거리를 횡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것이 귀신이라고 알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릴 때는 나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다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여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어른들에게 뻥 뚫린 하늘을 보여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머리라도 다친 게 아닌지 걱정을 하셨다. 단지 나는 나비를 쫓고 있는 동자귀신을 같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가리켰던 것인데...
닌술학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남들에게는 검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누구도 이빨이 다 빠진 할아버지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걸 눈치채지 못했으며, 그 누구도 강물에서 빨래 더미도 없는데 강물에서 빨래하는 시늉을 하는 아낙네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들은 오로직 나에게만 보인다. 귀신은 자신을 보는 사람에게 집착을 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귀신이 들러붙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불운하니까 귀신들도 불운이 옮는 건 싫으니 피하는 걸 지도.
이 학교에는 귀신이 많다. 애초에 닌자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귀신을 무서워해서도 안되고 오히려 귀신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귀신이 매우 많았다. 예를 들면 요즘 들어 몬지로가 어깨가 뻐근하여 낮잠을 자고 있는데 어깨가 뻐근한 이유는 단순히 몬지로가 철야를 오래 해서가 아니다. 몬지로가 자고 있는 동안 몬지로의 어깨에 못을 박는 처녀귀신의 탓이다.
"이사쿠. 미안하지만 침 좀 놔주겠어?"
"또? 효과가 없었나 보네."
"그러게 말이다. 요즘 들어 어깨뿐만 아니라 눈도 뻑뻑해진 느낌이야."
"..... 너무 무리하니까 그렇지. 이러다가 졸업하기도 전에 죽겠어."
"아아. 앞으로는 조심할게."
거짓말이다. 몬지로는 최근 무리하지 않았다. 그의 훈련량을 생각한다면 몬지로는 오히려 훈련을 쉬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몬지로가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아마 몬지로의 등 뒤에서 딱 달라붙어서 그를 어떻게든 강물로 데려가려는 처녀귀신의 탓이겠다. 하지만 의료닌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해봤자 신뢰도만 떨어질 뿐이다. 그리고 몬지로도 안 믿을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보건실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저 약을 처방하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쉬라는 입바른 소리만 할 뿐이다. 비겁하다고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내가 올바른 소리를 해도 환자는 화를 내고 내가 거짓말을 해도 환자가 화낸다면 차라리 '하얀 거짓말'이라도 해서 환자의 마음이라도 편하게 하는 게 좋다. 하지만 몬지로는 정신력이 강하니까 아마 저 귀신도 오래 있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겠지. 그렇다면 다시 몬지로는 건강해질 것이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인가. 아쉽지만 몬지로는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만두시는 게 좋겠어요, 아가씨.
'몬지로는 처녀, 코헤이타는 사무라이, 센조는 아기동자, 쵸지는 귀족, 토메사부로는 할아버지인가.'
귀신들은 저마다를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에게 붙어서 자기를 구원해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 기대에 못 미치면 생자를 무척이나 괴롭힌다.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 사람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이사쿠. 내가 예전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던가?"
"응? 그런 건 갑자기 왜 묻는 거야?"
"으음... 오늘 용구위원회 일이 있었는데 슈이치로가 말이야. 갑자기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라고 하더라고. 내 기운에 할아버지가 있다나 뭐라나."
"슈이치로가?"
"어. 이상하네. 애초에 내가 우리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긴 했지만. 그나저나 요즘 들어 몸상태가 엄청 좋아. 내일 당장 몬지로랑 결판을 지어도 이길 수 있겠어. 요즘 들어 몸상태가 안 좋아서 승부를 미뤘거든."
"할아버지...."
나는 토메사부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토메사부로를 휘감던 검은 형태가 사라졌다. 외로움에 사무쳐 토메사부로의 목을 옭아매고 있던 할아버지의 가느다란 팔이 안 보인다. 음산한 기운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한 거지? 설마 나의 불운 때문에 귀신이 달아난 건가? 그건 아니겠지.
"토메사부로가 몸상태가 안 좋았던 건 그 할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아! 알겠다. 우리 할아버지가 나를 지켜주고 계셨던 거야. 몬지로한테 절대로 이기라고 말이지."
"그거랑 다른 것 같지만.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그 할아버지가 왜 갑자기 토메사부로에서 떨어졌느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툭하고 토메사부로가 품 안에 넣어두었던 복주머니가 떨어졌다. 예전에 내가 자기 보호 겸 가지고 다니라고 챙겨줬던 부적이다. 비록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부적 덕분인지 토메사부로에게는 힘없는 할아버지 귀신이 한 명만 붙어있었다. 토메사부로는 떨어진 복주머니를 다시 주우며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안을 열어보았다. 분명 내가 줬던 것은 안에 작은 부적 종이이다.
"이거야 이거. 이사쿠. 저번에 네가 나보고 이거 가지고 다니라고 했었잖아."
"응. 그랬지."
"오늘 슈이치로가 이걸 보여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보여줬더니 안에 있던 종이를 불태우고 흰쌀이랑 동전 몇 닙을 넣어서 다시 나한테 줬어."
"에? 슈이치로가?"
"그렇다니까. 신기하지? 그러더니 몸상태가 좋아졌어."
토메사부로는 복주머니 안을 열어서 쌀과 동전을 보여주었다. 쌀은 고운 흰쌀이었고 동전은 녹이 잔뜩 슬어있는 낡은 화폐였다. 저승으로 갈 비용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준 종이는 필요가 없었겠구나. 토메사부로는 이전처럼 다시 기운을 차려 승부를 외쳐댔다. 평상시로 돌아와서 기쁘지만 여전히 슈이치로가 한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슈이치로도 귀신을 볼 수 있는 건가? 아마 나의 능력보다 훨씬 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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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메사부로의 증언 이후로 슈이치로를 염탐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의 슈이치로는 정말 평범한 4학년이었다. 오전에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고 위원회를 하고...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슈이치로에게 귀신이 붙어있지 않다는 사실만 빼면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게 없었다. 오늘은 사복을 입은걸 보니 외출하려는 모양이군.
"앗!"
"왜 그래?"
"운이 안 좋네... 밖에 나가기도 전에 신발끈이 끊어져버렸어."
"아, 다시 묶지 마. 잠깐만..."
응? 뭐 하는 거지? 로반 실습을 하기 전에 신발끈이 끊어져버린 미키에몬에게 슈이치로는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내더니 그 종이를 손에 쥐어 구기더니 다시 가늘게 꼬아 그걸로 신발끈을 대신했다. 그리고 부적 끈으로 신발을 다시 고쳐 매는 미키에몬의 머리 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도 슈이치로의 눈을 따라 허공을 확인해보니 희미하지만 검은 형태가 몽실몽실 나타나더니 곧네 사라졌다.
"다 됐다. 응? 너 뭐해?"
"아냐! 다 됐으면 어서 가자. 오늘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끝내야겠는걸."
"시간은 충분하다고 그랬는데. 밤에 와도 상관없을 거야."
"아니. 해가 떨어지기 전에 끝내야 해. 빨리 진행해도 되지?"
"어려운 임무는 아니니까 상관없는데... 어, 야야! 같이 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여기서 더 이상 염탐하는 건 불가능해서 결국 나는 로반의 실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보건실에서 위원회 일을 하고 있었다. 석양이 지고 있는데도 로반의 실습은 끝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오늘 실습은 상급생 합동 실습이라 했지. 슈이치로가 빨리 끝내고 싶어도 빨리 끝낼 수 없는 임무를 맡았구나. 석양이 지고 난 후에 문을 열어보니 벌써 달밤이 동그랗게 떠있었다.
로반의 실습이 끝났다. 코헤이타는 등에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이만하면 다행이다. 쵸지의 보고에 의하면 쉬운 실습이었는데 오늘따라 일이 안 풀려서 고생을 좀 했다고 한다. 코헤이타의 등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있었는데 상당히 힘을 주고 베었던 건지 억지로 등에 칼을 놓으려고 한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어깨에 선명하게 보이는 멍자국. 사무라이가 코헤이타를 기다리지 못하고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여 코헤이타를 해치려고 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코헤이타에게 붕대를 감아주고 앞으로는 조심하라며 타일렀지만 코헤이타는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니까 너희는 심하게 다치지 않았잖아."
"상관없어요. 어서 문을 열어주세요!"
"안에 코헤이타가 치료받고 있으니까 나중에.... 어어? 야 슈이치로!"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슈이치로가 다른 로반 상급생들의 손을 잡고 보건실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토메사부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슈이치로의 손에 이끌려온 미키에몬, 하치자에몽, 사부로, 라이조는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딱 봐도 옷이 조금 헤졌을 뿐 심하게 다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슈이치로는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슈이치로는 어서 이 사람들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했다.
"저기. 미안하지만 지금은 코헤이타가 더 중상이어서. 차례로 줄을 서면 바로 치료해줄 테니까..."
"그러면 늦어요! 이사쿠 선배가 아니면 큰일이 난단 말이에요!"
슈이치로가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거의 처음이다. 슈이치로의 폭주를 막기 위해 5학년들이 슈이치로의 팔을 하나씩 잡고 그를 진정시켰다. 사부로는 능청맞게 슈이치로를 진정시켰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자자. 슈이치로. 일단 진정해. 이사쿠 선배도 당황하고 있잖아."
"나나마츠 선배는 사무라이가 없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패잔병이 잔뜩 붙었단 말이에요! 반창고 하나만이라도 상관없으니까 간단한 치료만이라도 해주세요!"
슈이치로의 말을 듣고 슈이치로의 손에 이끌려 따라온 로반을 슬쩍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그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귀신을 많이 본 나라도 이렇게 한이 맺혀 얼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죽은 자의 망령들이 뒤에 잔뜩 붙어있었다. 한 사람당 한 명의 수준이 아니다. 보건실을 가득 메우는 끔찍한 광경이 내 눈에 훤히 들여다 보였다. 슈이치로가 말한 밤이 되기 전 학교로 돌아오자는 것은 이 패잔병들을 학교까지 데려오지 않기 위한, 동급생과 선배를 지키기 위한 하마 슈이치로의 최후의 작전이다.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패잔병들을 줄줄이 데려오게 되었지만 가망이 있다면 지금 나의 손에 들린 이 깨끗한 붕대를 저 아이들에게 감아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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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슈이치로 편]
나의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늘 나에게 몸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애초에 내가 살던 마을은 워낙 흉흉했고 유괴사건이 자주 일어났던 동네라 할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이해가 갔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나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잦아졌다.
"저 절에는 들어가지 말거라."
"밤중에 너를 부르는 여자가 있다면 절대 따라가지 말거라."
"강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강물로 들어가지 말거라."
뭐 워낙 흉흉한 사건이 많이 있었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말하시는 건 아직까지 이해가 간다. 내가 열두 살 생일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생일을 아직 만끽하고 있을 무렵,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전혀 해를 입힐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아주 다 죽어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여자는 어떤 남자가 보더라도 뒤돌아볼 정도의 미인이라서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갔던 것이다.
"아이야. 이리 오렴. 아이야. 이리 오렴."
여자는 간드러지게 속삭이는 말투로 나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라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자 나도 모르게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미 주체가 되지 않는 몸에 어떻게 할 방도가 없어서 그대로 여자가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여자는 어떻게 걷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아주 유연하게 사람들을 비껴갔고 나는 여자를 잡기 위해 몽롱한 정신을 유지한 채 손을 뻗으며 거리를 횡보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숲 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이미 져버린 해의 흔적을 찾아 으슥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몽롱한 정신도 말짱하게 돌아왔지만 여전히 여자가 눈에서 아른거렸다. 조금 웃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귀신이라도 그런 여자라면 영혼을 내어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고작 열두 살의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내가 찾아 헤맸던 여자의 발자취는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게 아닌, 여자에게 느껴진 모성의 온정이었던 것이다.
"아이야. 이리 오렴. 아이야. 이리 오렴."
여자의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대로 울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만 우와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어딜 갔다가 지금 온 건지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와 나를 쓰다듬고 안아주며 꼭 '아기'처럼 다뤘다. 무서웠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흐느끼고 있었고 나를 품에 안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달콤하던 속삭임은 어디로 가고 창백했던 피부와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군데군데 보이는 멍자국이 여자의 생애를 말해주고 있었다.
"네이놈! 손자에게서 떨어지지 못할까!"
"꺄아아악!!"
때마침 나를 애타게 찾아다니시던 증조할아버지가 나타나 여자의 등에 횃불을 가져다 대었다. 여자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바싹 타버린 머리를 꼭 쥐고 매서운 눈으로 증조할아버지와 나를 노려보았다. 어머니 같던 온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귀신같은 몰골만이 남아 원한을 나에게 풀 거라는 둥 저주를 퍼부었다. 할아버지는 숨을 고르시고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 주술처럼 중얼거리시더니 횃불로 부적을 태워 그걸 귀신에게 던졌고 귀신은 그 상태로 재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귀신은 죽을 때까지도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구멍에서 쥐어짜 내 숨소리만이라도 전달되도록 말하였다.
'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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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할아버지는 그 일이 지난 후, 나에게 퇴마에 대해 알려주셨다. 이전부터 이 동네에는 흉흉한 사건들이 많아 한이 맺힌 귀신들이 많았고 그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귀신을 외면하는 사람들만 많아져 옴이 붙어 그대로 천당에 가지 못하고 지상을 맴돌고 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여자도 어떤 원한이 있어서 나를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증조할아버지의 품에서 떠나 닌술학원에 편입했을 땐 원한이 많은 귀신들이 그 한을 풀지 못하고 귀천을 떠돌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내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이 학교는 영영 귀신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방을 배정받고 미키에몬이랑 같은 방을 썼을 땐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귀신은 혼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정말로 이 방에는 귀신이 한가득 있었다. 가엽게도 어린 나이에 귀신이 된 아기도 있었고 상당한 후유증 때문에 하루 종일 괴성을 지르는 병사도 있었다. 미키에몬은 잘도 이런 곳에서 자는군. 가위에 눌린 적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앗!"
"왜 그래?"
"운이 안 좋네... 밖에 나가기도 전에 신발끈이 끊어져버렸어."
"아, 다시 묶지 마. 잠깐만..."
실습 시작하기 전 아기 귀신이 신발끈을 끊는 짓궂은 장난을 쳤다. 귀신이 손을 댔던 자리니까 되도록이면 생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좋겠어.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귀신이 그렇게 많이 붙은 거구나. 애초에 미키에몬과 같은 사람들은 귀신을 보지 못할 테니 이런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겠지만. 거봐 벌써 원한을 풀려고 온 '사람'이 있네. 아저씨 죄송하지만 이 사람은 제가 준 부적 때문에 쉽게 함락당하진 않을 거예요. 다른 곳에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번에 가는 실습은 이전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는 자리이다.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곳은 증조할아버지도 피하는 곳이니까 되도록이면 귀신을 피하는 게 좋다. 그래서 신신당부 했건만... 상급생 단체 실습이다 보니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나마츠 선배의 어깨 위에 걸터앉은 저 무사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실습은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따라 몸이 안 풀리네. 쵸지 미안하지만 나 좀 도와줘."
"....모소."
그건 아마 선배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무사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말을 해봤자 정신 나간 놈 취급을 받을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실습 중. 일단 거리를 두고 귀신을 지켜보는 게 좋다. 나답지 못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배들이 첫 실습이라 졸았냐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시시한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거겠지만 내가 긴장한 건 바로 5학년 선배들 사이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뻗고 있는 망자들의 행보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연달아 운이 안 따라주는 나나마츠 선배와 덩달아 고생하는 타케야 선배. 풍속 때문에 제대로 수리검이 날아가지 않아 낙제점을 받은 하치야 선배. 습한 날씨 때문에 포탄이 날아가지 않아 감점을 받은 미키에몬까지.... 합격점을 받은 사람은 나카자이케 선배와 후와 선배뿐이었다. 그 둘도 조만간 등 뒤에 느껴지는 차가운 망자의 손길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것이다.
"오늘 다들 왜 이래? 모두 다 낙제점이다. 상급생이면 정신들 똑바로 차려라. 다음에는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임하도록."
"네에...~"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실망을 많이 하셨다. 평소 행실이 다들 좋았으니 운이 나빠 낙제점을 받은 거니 너무 침울해있지 말라며 다독여 주시기도 했지만 일단은 낙제점이니까 기분이 안 좋은 건 당연한 거다. 어느샌가 나나마츠 선배 등에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언제 다친거냐고 물어봐도 딱히 기습을 당할만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도중 나뭇가지에 걸려 상처가 난게 아니냐며 웃어넘겼지만 저건 원한을 품은 무사가 결국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나나마츠 선배와 나카자이케 선배는 먼저 닌술학원을 향했고 남은 상급생들은 각자 자기들의 속도에 맞추어 닌술학원으로 향했다. 나는 선두에 서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봐 다른 상급생들의 상태를 살폈다. 하나, 둘, 셋, 넷..... 열명? 아니 스무 명은 돼 보인다. 이런 인수라면 아무리 나라도 한꺼번에 퇴마하기는 어려운데... 잘 가고 있으니 앞이나 똑바로 보라는 하치야 선배의 말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로 똑바로 걸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사쿠 선배의 치료를 받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사쿠 선배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편입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기운이나 눈동자에 보이는 그 사람의 형체가 그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쿠 선배는 아쉽게도 귀신을 쫓아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면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긴 이런 능력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 정도의 숫자라면 아무리 나라도 무리지만 이사쿠 선배가 조금 도와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상급생들의 손목을 잡고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어리둥절하여 무슨 일이냐며 영문도 모른 채 질질 끌려갔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쿠 선배에게 말하면 알아줄까? 이사쿠 선배도 나를 외면하면 그땐 어떻게 하지?
보건실에 도착해서 이사쿠 선배를 마주했을 때는 그만 하나밖에 없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선배의 눈동자에 서려있는 악의 기운이 이미 맴돌고 있었다. 나카자이케 선배에게 붙은 그 귀신이 들어온 것일까? 아니 그런 거 치고는 너무 기세 등등하게 앉아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기 전부터 이 보건실에 거주하고 있던 녀석임에 틀림없다.
"저기. 미안하지만 지금은 코헤이타가 더 중상이어서. 차례로 줄을 서면 바로 치료해줄 테니까..."
"그러면 늦어요! 이사쿠 선배가 아니면 큰일이 난단 말이에요!"
이사쿠 선배. 무리한 부탁인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선배가 아니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저를 아들처럼 생각했던 그 귀신처럼 아무런 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귀신들과 귀신을 쫓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두고만 볼 수가 없어요.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선배가 힘이 되어주세요. 선배가 외면했던 귀신들을 한꺼번에 마주치는 게 무섭겠지만 이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겠지요. 이사쿠 선배. 제발 도와주세요.
나의 본심이 통했던 걸까. 이사쿠 선배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악한 기운이 사라지고 벌벌 떠는 이사쿠 선배의 뒤에 뿌연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그것은 악한 기운에 이긴 아주 작은 희망의 기운이다. 선배가 들고 있던 그 반창고가 마침내 빛을 바랄 수 있게 될 것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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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을 돕기 위한 간단썰
-이사쿠랑 슈이치로는 똑같이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사쿠는 외면, 슈이치로는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몬지로에게 '그러다간 죽겠어'라고 말한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몬지로에 붙어있는 귀신이 몬지로의 양기를 빨아먹어 조만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당부한 말입니다만 이사쿠는 귀신이 보이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흘려말한 것입니다.
-슈이치로가 처음에 홀린 그 여자는 귀신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과 남편의 폭력으로 결국 타계하고 귀신이 되지만 슈이치로를 만나 자신의 아기는 이제 더이상 여기 없다는걸 알고 승천합니다. 맨 마지막에 미안하다고 말한 이유는 알아서 상상하시는게 좋을듯합니다.
-슈이치로가 상급생들의 손을 잡고 닌술학원으로 뛰어온건 퇴마 의식도 겸하고 있습니다. 슈이치로에게는 양기가 있기 때문에 그의 손을 거치기만 해도 약한 귀신은 퇴마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본작품의 후속작은 없습니다... 이사쿠의 선택은 여러분들이 상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