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나] 애정
**츠기야 산노스케, 우라카제 토나이
**사쿠카즈는 사귑니다.
**코헤타키 언급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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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카제 토나이는 츠기야 산노스케에게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동료로서의 감정만 있을 뿐 애정은 없었다. 같은 반도 아니고 같은 위원회도 아닌 그에게 애정을 쏟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토나이에게 산노스케는 키는 가장 크면서 생각하는 것이 아직도 아이 같아 보였다. 무자각으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 등의 엉뚱함을 가지고서는 닌자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토나이는 창문 밖의 눈이 소복하게 쌓여가는 것을 보는 걸 즐겼다. 저 하얀 세상에서는 닌자든 예습이든 뭐든 걸 내려놓고 잔뜩 눈에 파묻혀서 놀 수 있을 테니까. 카즈마는 추위를 잘 타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토나이는 추위에 강한 것보다 추위를 잊을 정도로 저 눈에 매료되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실기라도 있다면 눈을 밟기라도 할 텐데. 오늘은 아쉽게도 하루 종일 필기 수업이고 오후에는 위원회 일이 있다. 오늘 같은 날은 같은 반인 카즈마와 함께 눈 놀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왔다.
"카즈마."
"아, 사쿠베! 무슨 일이야?"
"별건 아니고 오늘 위원회 일에 같이 가자고. 어차피 너도 이사쿠 선배 방으로 가는 거잖아."
"알겠어. 좀 이따 봐."
"그래."
요즘 들어 카즈마와 사쿠베는 같이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질투라고 하기에는 토나이의 마음이 카즈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찜찜함은 남아있었다. 토나이는 그것을 '애정'이라고 정의내렸다. 카즈마를 보면 단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친구가 카즈마를 데리고 가면 딱히 질투는 나지 않았지만 카즈마가 없으면 누구랑 놀아야 할지는 조금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모양 빠지게 사쿠베에게 카즈마를 빼앗을 생각은 아니었다. 쪽팔림에도 정도가 있지 사쿠베에게 그런짓을 해서 뭐할건데? 토나이는 섬뜩할정도로 자기 객관화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분명 자신의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위원회 선배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토나이는 약간의 한숨을 쉬고는 카즈마를 밀고는 방해 된다며 반을 나갔다.
"으앗!"
"어, 어. 야! 위험하잖아!"
"뭐가. 나 덕분에 둘이 껴안을 수도 있고 좋잖아."
카즈마가 휘청거리며 사쿠베에게 안겨도 토나이는 전혀 뒤돌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도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토나이의 작은 악동짓이 둘의 거리를 끌어당기기에는 충분했다는 것이다. 사쿠베의 어정쩡한 화냄에도 토나이는 새침하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흥'하고 돌아서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될대로 되란 식이었다. 저 둘이 묘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게 토나이는 참을 수 없이 신물이 났다. 같은 동년배가 꽁냥대는걸 굳이 봐야할까? 카즈마에게 애정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희생할정도로 큰 사랑으로 번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토나이는 카즈마를 위해서 목숨을 바 칠 정도는 아니지만 사쿠베라면 카즈마를 위해 죽을 각오가 있을 것이다.
"짜증 나."
하하호호 둘의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뭐가 좋다고 저리 신나게 떠드는지. 누구는 얼마나 힘들게 위원회 일을 하는지 저 둘이 알 턱이 없다. 아니지 카즈마는 알지도 모르겠다.
"아얏."
"오? 토나이 안녕. 여긴 어디지? 나 분명 로반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저기 토나이, 로반이 어딘지 알아? 이상하네~ 잘 맞게 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로반은 외쪽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오른쪽은 하반! 왼쪽이 로반!"
눈이 내리는 겨울날 차가운 겨울 내음이 느껴지는 그 복도에서 토나이는 산노스케와 부딪혔다. 키는 가장 크면서 하는 짓은 마치 아기 같다. 츠기야 산노스케는 멀쩡한 육체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마저도 체육위원회에서 굴려지면서 상처가 가득했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옷이 흙투성이 었다. 토나이는 산노스케의 가슴팍에 이마가 닿았을때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은 애정이 아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코를 문지르며 토나이는 역으로 화를 내며 아까 느꼈던 께름칙한 나쁜 감정을 쏟아내었다. 씩씩거리며 말하는 어조에서 약간의 떨림은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 헛."
"왜?"
"미, 미안... 갑자기 화내서."
"뭐야~ 자기가 먼저 화내 놓고 먼저 사과하는 거야? 나 딱히 기분 안 상했어. 제대로 안 듣고 있기도 했고."
토나이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산노스케에게 분풀이를 너무 한 것 같아 사과를 했다. 산노스케는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지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단지 로반이 어딘지 알아서 빨리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산노스케는 반으로 돌아가면 일단 한 숨 자고 나나마츠 선배가 데리러 올 때, 일어나서 위원회 일을 할 생각이었다.
"이케이케 돈돈!"
"힉! 나나마츠 선배!"
"오, 산노스케! 오늘 위원회는 없다. 그러니까 운동장으로 나올 필요 없어."
"정말요? 정말이죠?"
쿵쿵 발소리를 내며 복도로 뛰어들어온 코헤이타는 산노스케에게 간단한 전언을 남기고 또다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등산을 할 수 없어서 그런 걸까. 코헤이타가 실습이 있어서 그런 걸까. 산노스케는 궁금했지만 괜히 물어봤다가는 다시 위원회 일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산노스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나이는 코헤이타에게 왜 위원회 일을 하지 않냐고 물었다. 토나이는 몸은 코헤이타에게 향하면서 힐끔힐끔 산노스케를 노려봤다. '그걸 물어보면 어떻게 해!' 라는 표정이었다. 눈 속에서 잔뜩 굴러보라는 심정으로 토나이는 더 악동짓을 즐겼다. 그러나 코헤이타는 토나이의 질문에 예상을 깨는 답을 말했다.
"오늘 타키야샤마루랑 외출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오늘은 패스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외출 다녀오세요."
"산노스케 그럼 내일 보자!"
토나이는 웃는 얼굴로 코헤이타를 배웅했고 산노스케는 살짝 황당한 표정으로 목석같이 서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토나이었다.
"위원회 안 해서 좋겠다?"
"뭐... 그렇지. 그럼 먼저 간다."
"야야! 왼쪽이라고 몇 번을 말해!"
"응?"
"왜 사쿠베가 그렇게 고생하는지 알겠다. 따라와. 기분전환 겸 눈놀이만 하고 들어가자."
토나이는 턱을 들어 밖으로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 산노스케는 아까까지 그렇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퍼붓던 토나이가 맞는지 의심이 갔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산노스케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코헤이타의 말이 신경쓰여서 결국 토나이를 따라가기로 했다. 토나이는 더 이상 산노스케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그의 손을 잡았다. 새하얀 눈을 보기 위해. 누구의 발자국도 남겨지지 않은 깨끗한 눈을 찾기 위해. 토나이가 끈 산노스케의 손은 꽤나 차가웠다. 대체 어디서 얼마나 헤맨 걸까.
".... 잠깐."
"왜?"
"내가 왜 너랑 같이 눈을 보러 간다고 한 거지?"
"몰라? 난 그냥 너를 따라가는 건데."
토나이는 산노스케에게 애정이 없다. 애초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말을 걸어본 적이 있었나? 사쿠베와 카즈마처럼 많이 얘기해 본 적이 있었나? 위원회가 같거나 위원회 선배들이 친했나? 아무런 접점도 없는 '타인'이다. 토나이는 홱 돌아서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산노스케는 뿌리친 손을 스르르 떨어뜨리고는 눈을 끔뻑거리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토나이의 얼굴이 살짝 발그레져있었다.
"뭐야. 가는 거 아니었어?"
"마, 맞아... 그런데 그게 좀..."
"그럼 다시 잡아줘."
산노스케는 굽은 허리를 유지한 채로 끔뻑거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시 손을 들어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토나이는 저 아무 생각 없는 바보 같은 얼굴을 한 길쭉한 녀석을 당장이라도 때려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먼저 손을 뿌리친 건 이쪽이었다. 조용히 곱씹으며 생각했다. '애정'이란 대체 무엇이지? 애초에 나에게 애정이라는 감정이 3학년들에게 있었을까? 토나이는 다시 산노스케와 오늘 처음 만났던 그때를 생각했다. 키만 멀대같이 큰 녀석 때문에 코가 부딪혔다.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었지? 애정을 느낄 만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안 잡아주면 난 로반으로 돌아갈게. 애초에 눈은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고."
"아, 알았어! 잡을게! 잡으면 될 거 아니야."
토나이는 급하게 산노스케의 팔목을 잡아 다시 끌었다. 아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 악력이었다. 토나이는 자기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세게 쥐었지만 산노스케는 평온 한 그 상태를 유지했다. 학교 밖을 나서자 소복히 눈이 쌓인 운동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벌써 누가 왔다 간건지 몇명의 발자국도 보였다. 그래도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은 있었다. 토나이는 카즈마와 오려고 했던 장소에서 산노스케와 같이 왔다.
"눈 밟는 소리는 언제든지 좋아. 눈은 차갑지만 뭔가 따스한 느낌이 있어. 이 눈 밟는 소리가 내 마음을 정화시키는 느낌이야."
"그런가. 나는 신발에 눈이 붙어서 찝찝하던데."
"좀 더 낭만을 느껴봐."
"그래 봤자 잘 모르겠는걸. 운동장도 눈만 없으면 벌써 수십 번은 돌았을걸."
토나이는 눈 밟는 소리를 즐겼다. 아까의 악동짓이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다. 카즈마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사춘기 소년의 우정에 금이 갈까 봐 약간의 지독한 짓을 하고 말았지만 깨끗한 눈을 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눈을 보면, 아까의 악동짓을 모두 사과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눈에게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비록 저 멀대 같은 녀석과 같이 오긴 했지만 눈 결정에 햇빛이 비쳐 작은 전구처럼 빛나고 있었다. 한 발자국 더 가고 싶어 토나이는 한발 더 내디뎠다.
"토나이! 조심해!"
"응?"
쿵. 토나이는 눈에 정신이 팔려 닌술학원 운동장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아야베 키하치로. 저 망할 이름은 영원히 닌술학원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 트랩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위험한 트랩이다. 토나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감은 눈을 다시 떴다. 그런데 뭔가 붕 떠있는 기분이다. 발이 땅에 안닿는다.
"뭐, 뭐야?"
발을 조금 휘적이자 다시 몸이 훅 하고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몸이 올라가고 있었다. 천천히 올라가자 태양빛에 가려져 새까만 얼굴의 형태에서 보이는 것은 긴 얼굴의 소년이었다. 토나이는 자기 다리 밑에 단단한 무언가가 고정되어 있고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들어 올려지는 걸 느꼈다. 도무지 같은 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력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사, 산노스케 너, 너 이마에서 피나!"
"아 이거? 어제 위원회에서 뛰어다니다가 다친 거. 흉터가 벌어졌나 봐. 별거 아니야."
산노스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뚝뚝 떨어지는 피가 저 깨끗한 눈 바닥에 스며들 때마다 토나이는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것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눈에 거무튀튀한 피가 스며들어서 슬픈 게 아니었다. 애정을 갖지 않았던 토나이는 그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게 애정이라고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
"보건실에 가자. 치료해야지."
"응."
"나를 내려놓고 가면 안될까... 부끄럽기도 하고 확실히 하나를 말하자면 네가 또 딴 길로 셀까 봐 걱정돼."
"호오호오. 알겠습니다. 우라카제공~"
산노스케는 토나이를 더 단단히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체육위로 다져진 근육은 누구보다도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빠른 스피트에 칼날 같은 바람이 볼에 스며들어서 따끔했다. 그래도 빠른 스피드인 만큼 겨울의 상쾌한 공기를 잔뜩 머금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산노스케가 자기를 안고 달린다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것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토나이는 생각했다. 산노스케에게 정말 애정을 갖지 않았을까?
"이사쿠 선배도 없고 카즈마도 없네."
"아직 위원회 시간이 아니니까."
"피만이라도 닦자. 나도 카즈마 옆에서 보면서 배운 게 있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두건을 풀고 찢어진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많이 아플 텐데 산노스케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이미 많이 다쳐본 경험이 있어서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토나이는 무덤덤한 산노스케에게 '연민'을 느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도 속으로 앓는 상처도 모두 나나마츠 선배에게 받은 것들이다.
"너, 타키야샤마루 선배 좋아하지."
"......"
"대답 못하는 거 보니까 맞네. 그 선배 어디가 좋아? 자기 잘난 척하느라 바쁜 사람이잖아. 좋아할 만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 그래도."
토나이는 산노스케의 머리에 붕대를 감았다. 카즈마 어깨너머로 배운 의료기술이 조금은 쓸모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산노스케의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선배는 나를 찾아줄 테니까."
"그게 이유야?"
"응. 지금은 사쿠베에게 의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사쿠베가 내 곁을 떠나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이 필요해. 그게 타키야샤마루 선배야."
"결국 자기 위안이라는 거네."
"이기적이라고 말해도 돼. 어차피 선배는 나한테 관심도 없을걸. 아까도 나나마츠 선배랑 놀러 나간다고 했잖아."
산노스케는 치료를 끝낸 후 드리 누웠다. 사쿠베가 자신을 버릴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자신과 카즈마가 바다에 빠졌을 때 먼저 구해지는 사람은 카즈마라고 생각했다. 산노스케가 사쿠베에게 느끼는 감정은 애정일까. '연민'이 '애정'이 될 수 있을까. 바보 같은 말을 해서 미안하다며 산노스케는 몸을 옆으로 웅크려 자는 척을 했다. 오늘의 눈놀이는 여기까지. 내일 카즈마와 더 많이 놀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우울해진 산노스케를 보고 있으니 토나이는 괜히 그 얘기를 꺼냈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힘내라. 나중에 이사쿠 선배한테 제대로 치료받아."
"갈 거야?"
"여기서 너랑 둘이 남아서 뭐하게. 푸념이라도 들어주리?"
토나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산노스케에게 줄 마음은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산노스케는 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남아있을 생각이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면 이 녀석도 나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 토나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건실 문이 열리는 순간에도 산노스케는 뒤돌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나이는 자기 대신 타키야샤마루 선배가 여기 있다면 지금처럼 눈을 돌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결국 산노스케도 토나이도 그 누구에게도 '애정'은 없었던 거다. 실망을 하진 않았지만 잠깐의 연민이 애정으로 바뀔 거라 생각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있잖아."
산노스케는 뒤 돈 채 말을 걸었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토나이도 뒤를 돌지 않는건 마찬가지 었다. 아주 단순한 한 마디가 토나이의 발걸음을 막았고 산노스케는 여전히 아이처럼 자기가 기댈 곳을 찾고 있었다. 방향치에 무감각해져서 결국 자기가 거쳐 온 길도 모르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까먹을 것 같아서 늘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막아 줄 사람이 필요했을까. 그것을 동년배가 아닌 선배에서 찾은 걸까.
"너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어. 내 생각이지만 조금은 남에게 기대도 돼."
"너처럼 바보같이 선배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대는 건 사양이야. 그럼 뭐, 내가 너한테 기대기를 바라는 거야?"
"응."
토나이는 애정을 함부로 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애정의 양만큼 돌아오는 실망의 양도 크기 때문에. 애정을 갈구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이미 메말라버린 애정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은 모래사막의 오아시스 찾기다. 그래도 산노스케는 오아시스를 찾으려고 한다. 토나이가 뒤돌아 누워있는 산노스케를 바라봤을땐 이미 그가 일어나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가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아까 토나이가 산노스케의 손을 잡아끌었을때처럼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산노스케의 손이 따뜻하고 끈적하게 다가왔다.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마주쳐버린 눈동자를 감을 새도 없이 두툼한 무언가가 입가 주변에 붙었다 떨어졌다. 토나이는 그 무엇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애정이라고? 말도 안 돼. 내가 카즈마도 아니고 산노스케한테 애정을 줬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미, 미안. 그만 무심코..."
"너처럼 막무가내에 남한테 의지만 하는 녀석은 딱 질색이야! 이 멀대 같은 놈아!"
토나이는 산노스케에게 한주먹 날리고 보건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무작정 뛰었다. 깨끗해진 그 눈을 발로 차면서 난리를 피웠다. 그런데도 토나이의 입가에는 따스한 온기와 함께, 아니라고 부정해도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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