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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타마/소설

[리도이] <벚꽃이 피는 계절>

*도최군 내용 스포 다량 있음
*극장판 보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2편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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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는 계절>



 *** 

벚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오면 무릎이 쑤셔온다
벚꽃비가 흩날릴때 눈앞에서 흐려져가는 그대의 얼굴에 번지는 희미한 미소를
잔망스러운 벚꽃잎들이 가리고 있어서 볼 수 없었다
다급하게 뻗어보는 팔은 허망하기 짝이 없기에
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것이겠지

***



 신학기가 다가오면 도이는 늘 수업준비로 바빴다. 도이뿐만이 아니라 닌술학원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돌보랴, 수업준비를 하랴, 개학식 준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날도 야마다 덴조의 아들인 리키치가 방문할 예정이었다. 목적은 아버지인 야마다 덴조에게 잔소리를 하러 가는 것. 겸사겸사 본인이 좋아하는 도이 한스케를 보고 오는 것도 좋겠다. 평상시보다 빠르게 마친 임무에 들뜬 리키치의 모습은 영락없는 꽃다운 나이 열여덟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전쟁과 가난의 시대라고 하지만 열여덟의 나이는 결코 많은 게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는 청년 특유의 총기가 서려있었고 뜨겁게 들끓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아버지를 만나고...................... 누구냐."

 닌술학원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리키치는 학원의 관계자이기 때문에 대문으로 들락날락했다. 숨어서 들어갈 필요도 없고 닌자처럼 기척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긴장하지 않고 민간인처럼 돌아다닌 덕에 닌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리키치가 걷고 있는 땅바닥에 흩뿌려진 나뭇가지가와 나뭇잎들이 바스러졌다. 건조한 바람은 닌자의 시간을 알려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열여덟의 청년 같은 모습은 어디 가고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내비치는 살기는 그가 과연 실력 있는 프리닌자라는 걸 잘 알려주고 있었다. 

 ".....!"
 
 리키치는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쥐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여전히 저릿한 그때의 기억. 내장을 비틀어버릴 것 같았던 그때의 묵직한 주먹이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살기를 내비친 탓인지 숨어있던 닌자는 천천히 나타나 그 얼굴을 내비쳤다. 갈색의 닌자복을 입고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아서 뚜렷한 얼굴을 볼 수 없는 실력 있는 닌자, 그의 이름은,

 "잣토 콘나몽....."
 "리키치군, 그때 이후로 처음 아닌가?"
 "........"

 처음으로 맛본 패배의 씁쓸한 기억. 리키치는 프리 닌자가 된 이후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만큼 실력이 출중했고 실력 좋은 닌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리키치 앞에서는 애벌레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베테랑인 아버지와 싸워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늘 아쉬움만 남아있었을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잣토 콘나몽'이었다. 아버지인 덴조로부터 '네가 잣토의 발목을 잡아라. 시간을 끌어줬으면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리키치는 닌술학원에 있는 다른 6학년들처럼 약간 성미가 급한 티를 냈다. 그 유명한 타소가레 성의 닌자대 대장 잣토 콘나몽이랑 겨뤄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심지어 그의 발목을 잡으라는 임무는 그야말로 리키치가 원하던 일이었다. 강한 상대와 싸워보고 싶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 와 같은 무모한 청소년들이 뭣도 모르고 들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그런 이벤트가 자신에게 일어났을 땐 무척 설렜다. 

 "오랜... 만입니다."
 "배가 아픈가? 아까전부터 계속 배를 움켜잡고 있던데."
 "별일 아닙니다. 잣토씨는 왜 여기에....?"
 "별건 아니네. 사과해야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빚도 있고."

 결과는 참혹했다. 발목을 잡기는 커녕 시간 벌기도 하지 못했다. 리키치만 온 게 아니라 닌술학원의 다른 졸업생 두 명과 함께 덤볐지만 그 누구도 잣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리키치는 졸업생 두 명에 비해서 잣토가 봐줬다는 느낌도 들었다. 묵직한 한방에 나가떨어진 자신이 꼴불견이었지만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전에 6학년의 케마 토메사부로와 시오에 몬지로가 잣토를 쓰러뜨리겠다고 무모하게 덤빈 적이 있었다. 그때도 잣토는 어린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처럼 진심을 다해서 싸우지 않고 봐주면서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 아직 열다섯 살에 닌자로서의 모습이 아직 덜 잡힌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봐준 걸 지도 모른다. 잣토가 봐주면서 싸웠다는 걸 알았을 땐 그들은 분노했다. '닌자로 봐주지 않았어' 한 사람의 닌자로 봐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났다. 하지만 잣토가 본심을 내비쳐서 싸우면 그들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들보다 몇살 더 많은 리키치는 잣토가 자신을 봐줬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자신의 한계를 바로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수행을 더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역시 열여덟과 열다섯의 차이는 극명했다. 새파랗게 어린 무모한 닌자의 병아리들과 다르게 조금은 어른답게 생각할 줄 알았다. 그래도 화는 났다. 잣토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면 그 사람에게도.....

 "안 들어갈건가?"
 "잣토씨 먼저 들어가시죠. 전 나중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그러지. 아참, 리키치군 혹시-




 도이 한스케가 있는 곳을 아는가?"





 -


 한때 도쿠타케의 참모로 있으면서 전쟁의 핵심 인물이었던 텐키의 정체가 도이 한스케라는 걸 알았을 땐 리키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필 왜 그 사람이지? 다른 사람도 많은데. 그러면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잖아. 차라리 내가 도쿠타케에 들어가 있더라면.... 닌자의 치부를 드러내는 창피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리키치는 진심이었다. 그만큼 도이를 좋아했고 또 존경했다. 더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그래봤자 자신은 프리 닌자, 도이는 닌술학원의 선생님이었다. 도이도 같은 닌자지만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위치다. 한때 닌자로서 실력을 갈고닦았던 이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선생님으로서 할 일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한스케'라고 불릴 사람이 아니다. 

 "도이.... 선생님은 왜....."
 "그건 자네가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저를 봐주신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았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지금 여기서 저와 담판을 지어보지 않겠습니까?"
 "리키치군. 자네는 가만 보면 6학년 학생들보다 더 무모한 면이 있어."
 "제가 묻는 질문에만 답해주십시오."
 "으음~.... 오늘은 별로 기분이 안 내키는데. 도이 선생님을 만나고 난 후에 하면 안 될까?"
 
 잣토는 골똘히 생각하면서 리키치를 달랬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녀석이 자기를 쓰러뜨리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데 무작정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건 리키치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도이 한스케를 만나서 뭐 하려고! 지금 여기서 나와 싸워! 나를 쓰러뜨리기 전까진 도이 한스케에게 털끝하나 못 건들 이게 할 거야!"

 품에서 꺼내든 쿠나이 두개를 막대기 양끝에 매달아 달았다. 순식간에 양날의 검이 되었다. 뾰족하게 갈아낸 쿠나이의 끝이 잣토를 향해 있었다. 잣토는 한쪽 눈을 꿈뻑이며 물끄러미 리키치를 바라보았다. 리키치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군더더기가 너무 많았다. 실력 있는 닌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었다. 6학년이랑 비슷한 자세였다. 잣토는 한숨을 내리 쉬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의 자네로서는 백번 도전해도 무리야."

 그런 것 따위 알고 있어. 리키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든 간에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잣토에게 당해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저번보다 조금이라도 성장해서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시끄러워! 지금 당장 덤비지 않으면 내가 먼저 공격하겠어!"

 리키치는 즉석에서 만든 무기를 움켜쥐고 잣토를 향해 달려들었다. 잣토는 높이 뛰어올라 그 공격을 막고 다시 내려앉으며 리키치를 향해 표창을 던졌다. 리키치 역시 잣토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이성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전문성 있는 닌자임은 틀림없다. 리치키의 공격은 더 대담해졌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리키치의 팔과 허벅지에 잣토의 무기가 스쳐 지나가 생채기를 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잣토는 그런 리키치의 무모함에서 닌자의 열의를 보았다. 승리를 향한 집념, 같은 적에게 두 번은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 설령 그 적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하더라도 리키치의 대담함은 인정할만했다. 잣토는 멈춰 서서는 박수찬사를 내어주었다. 

 "자네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사내일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닌자라고 하더라도 아직 나이는 어리다 이건가?"

 처음 싸웠던 그날보다 훨씬 더 어설프고 전술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열의'만큼은 굉장했다. 이기겠다는 그 승부욕만큼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잣토는 리키치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리키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잣토의 허벅지에 쿠나이를 꽂았다. 잣토는 외마디를 한번 지르더니 쿠나이를 쥐고 있는 리키치의 손등을 목에 대고 있던 칼로 가볍게 찔렀다. 

 "큭...!"

 손에 힘이 빠지면서 쿠나이가 떨어지자 잣토는 리키치에게서 멀어졌다. 다행히 붕대를 두껍게 두르고 있어서 깊은 상처는 나지 않았다. 리키치의 손등 역시 잣토의 배려 덕분에 작은 생채기로 그쳤다. 리키치는 손등을 감싸 쥐며 눈을 찌푸렸다. 잣토는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한 채 꼿꼿하게 서있었다. 빈틈이 없었다. 이 이상 싸워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저번보단 성과가 있었다. 잣토의 허벅지에 상처를 냈다. 전에는 공격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의 공격이 성공한 것이다. 

 "리키치군. 더 싸울 건가?"

 잣토는 이만하면 되지 않았냐는 얼굴로 리키치를 달랬다. 리키치도 점차 이성을 되찾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잣토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도쿠타케의 참모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네. 작별인사를.'

 "......!!!!!!"

 리키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열여덟살의 몸에 흐르는 뜨거운 피는 점점 더 심하게 들끓었다.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내렸던 무기를 다시 쥐고 잣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잣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들고 있는 단검으로 리키치의 무기를 떨어뜨리고 날카롭게 간 표도를 가볍게 던졌다. 매섭게 날아오는 표도를 본 리키치는 바로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떨어뜨린 무기를 다시 주울 시간이 없었다. 모든 게 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아마도 날아오르는 표도는 리키치의 얼굴 정중앙을 맞을 거고 운이 좋으면 중상에 그칠 것이고 운이 나쁘면 즉사할 것이다. 잣토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먼저 싸움을 건 리키치의 책임도 있기에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 들었다. 

 팅-

 자신의 운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리키치의 앞에 선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일거라 생각했다. 만약 잣토에게 죽임을 당하면 아버지가 가장 먼저 격노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형.....아....."
 
 표도가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며 내려앉았다. 무기로 막은 것도 아니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타나 출석부를 얼굴 앞에 대고 가볍게 표도를 막아내었다. 리키치가 형처럼 따르는 사람이다. 신학기로 바쁜 와중에도 대문 앞이 시끄러워서 잠깐 들른 1학년 하반 교과 담당 선생님 도이 한스케. 그가 있었다.

 "리키치군 괜찮니?"
 "아....네....."
 "잣토씨. 오랜만입니다. 리키치군이랑 한판 겨루신 것 같은데 너무 힘을 내신 것 같네요."
 "상대가 상대인만큼 이정도 힘은 써야죠. 같은 닌자로서 닌자 세계의 냉혹함에 대해 알려줬을 뿐입니다. 그보다 잘 됐군요. 마침 당신에게 가려던 참이었는데."
 "저요?"
 "네. 여기서 할말은 좀 아니니까 장소를 바꿉시다. 단둘이."

 잣토는 손가락으로 단둘이 시간을 좀 내어달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리키치는 그런 잣토를 보고 이전의 악몽이 떠올라서 도이 앞에 서서 화를 내며 잣토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도이 선생님이랑 할말이 있는 거라면 여기서 해도 되잖아!"
 "도이 선생님과 단둘이 할말이 있는 거라서. 리키치군, 만나서 반가웠네. 다음에 만날 땐 좀 더 냉정한 상태에서 싸웠으면 좋겠어."
 "윽......."

 아픈데를 후벼 파다니. 잣토의 어른스러운 대응에 리키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은 아직 한참이나 어린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았고 그에 비해 잣토 콘나몽은 이미 닌자대의 대장이다. 잣토와 이야기를 한다는 사람 역시 한때 닌술학원은 물론이고 잣토까지 애먹게 만든 도쿠타케의 참모 텐키였던 자, 지금은 도이 한스케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리키치의 입장에서 이 두 사람은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나 마찬가지다. 어른들의 대화에 어린이가 낄 자리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리키치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땅바닥에는 벚꽃 잎이 들러붙어있었다. 

 도이는 리키치를 뒤로 물러세우고 찔린 손등을 슬쩍 바라보았다. 어서 상처를 치료하고 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리키치는 애써 다친 손을 숨기며 모른 척했다. 그러자 도이는 '닌술학원에 있는 애들하고 다를 바가 없네' 따위의 말을 하며 리키치의 손을 낚아채어 가져온 붕대를 친히 감아주었다. 그렇게 긴박한 순간에도 붕대를 챙겨 와 주었다. 분명 리키치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붕대와 반창고를 챙긴 거겠지. 

 "가벼운 치료는 끝났으니까 우선 보건실에 가서 치료를 받아."
 "........"
 "긴말은 하지 않으마. 머리가 좋은 너라면 내가 무슨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잠깐 머리를 식히고 있어. 나는 잣토씨랑 이야기를 하고 올게."
 "..........가지마."
 "응?"
 "가지말라고요. 저 사람은 도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어요. 독이 발린 수리검으로 텐키였던 당신을 죽이려고 했단 말이에요. 이번에도 그럴지 누가 알아요? 무엇보다 저 사람은 타소가레 성의 닌자대 대장.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에요."
 "응.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돼. 선생으로서 모범을 보여하니까."
 
 역시나 당해낼 수가 없다. 도이는 리키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잣토에게 우선 입문표에 싸인하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잣토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지만 여기서 싫다는 내색을 비쳤다가는 닌술학원의 미움을 사게 될게 뻔했다. 잣토는 알겠다며 코마츠다가 준비한 입문표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덩달아 리키치도 같이 적었다. 도이는 잣토랑 나란히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잣토는 계속 마음에 걸려서 사과를 하러 왔다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서 사과를 했다. 

 "완전 괜찮으니까 그만 고개를 들어주세요. 타소가레 성의 닌자대 대장인 당신이 여기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걸 알면 손나몽군이 또 엄청 화를 내고 저한테 결투장을 보내온다고요."
 "그래도 이번 일의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도이 선생님. 그때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도이는 어쩔줄 몰라하는 얼굴로 쭈뼛대며 손사래를 쳤지만 여전히 잣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이는 멀리 떨어져서 뚱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는 리키치를 쳐다보며 입모양으로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도와줘'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리키치는 고개를 홱 돌리고 못 본 척했다. 

 "너도 안도와주는거니~ 잣토씨 그만하고 나가주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그럼 사과는 이쯤에서 하도록 하고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을 말씀드리도록 하죠.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아 사과가 진짜 목적이 아니었군요."

 리키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잣토가 이곳에 온 목적이 단순히 도이에게 독이 묻은 수리검을 던지려고 한걸 사과하러 온 게 아니라면 다른 목적이 무엇일까. 설마 저번처럼 도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하는 건가? 리키치는 긴장한 채로 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02





 도이는 잣토의 안내를 따라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둘 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이야기가 심히 궁금했던 리키치는 어떻게든 들으려고 했지만 본인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노련한 닌자 두 명이 버티고 있으니 엿들을 수도 없었다. 잣토의 복면 때문에 입모양을 읽을 수 없었고 도이는 반대로 돌아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입을 볼 수 없었다. 리키치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도이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더니 잣토는 금방 나무숲으로 사라졌고 도이는 고개를 까딱 내리고 간단한 인사를 올리더니 뒤돌아서 리키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래기다렸지?"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
 "으음~ 별건 아니야.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네.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니?"

 리키치는 잣토가 도이한테 무슨 말을 한 건지 궁금했지만 도이조차도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할 정도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키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개운한 표정을 짓더니 손에 들고 있던 당고 상자를 내밀었다. 

 "아버지랑 같이 나눠 드세요. 빈손으로 오기엔 뭐해서."
 "항상 고마워 리키치군."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벌써 가니? 야마다 선생님 안 보고?"
 
 리키치는 대답 대신 흐뭇하게 웃었다. 가더라도 치료라도 받고 가라는 도이의 말에 가벼운 상처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도이의 눈에는 리키치가 아직 어리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로 보였지만 리키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6학년들보다 몇 살은 더 많았고 실력도 출중하여 자길 찾는 의뢰인들이 많은 어엿한 닌자다. 물론 그 닌자가 도이나 아버지에게 당해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곧네 좋아지리.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노련함이 부족할 뿐이랴. 그렇게 생각하며 본인을 다독였다. 

 잣토와 싸우기 전까지.

 리키치에게 있어서 잣토와의 대결은 뼈아픈 실패의 경험이었다. 리키치에게 있어서 넘어야 할 산은 두 개가 있었다. 본인에게 닌도를 알려준 아버지, 그리고 형처럼 따른 도이 한스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없다면 도이도 지킬 수 없고 도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 아버지처럼 노련한 닌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도이처럼 뭐든 잘 배우고 숙달된 닌자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6학년들보다 조금 더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젊은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원망할거면 나를 원망하게.'

 리키치는 잣토를 원망했다. 본인에게 큰 숙제를 안겨준 그 사람이 미웠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에, 도이는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할 수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잣토는 어떤 존재이길래 리키치를 옥죄는 건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이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보다 더 싫었던 건 세 사람 사이의 벽이었다. 어떻게 해도 두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이 억울했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어도, 실력을 키워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 

 "저기 도이 선생님. 한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어떤거니?"
 "선생님에게 있어서 라이벌은 누구인가요?"
 
 리키치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 나서도 바로 후회했다. 무슨 대답이 나오든 실망할게 분명했다. 도이 선생님의 라이벌이 아버지라고 해도 실망할 것이고, 없다고 해도 실망할 것이고, 제3의 인물이어도 실망할 것이다.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거야?"
 "그건....."
 "리키치군은 그런 부분이 정말 아이 같단 말이지. 나에게 라이벌은 없어. 닌술학원의 선생님으로 재직한 이상 라이벌을 만들 순 없지. 다 나보다 훨씬 노련하신 분들이고 탈주닌자 시절의 라이벌은 이미 다 죽고 없으니까."

 도이는 리키치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전처럼 햇살같은 미소로 그를 대해주고 있었다. 

 "키가 많이 컸구나."
 
 도이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리키치에게는 리키치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꽃다운 나이 열여덟. 리키치에게는 분명 더 매력적인 여자들이 줄을 설 것이고 어머니도 아름다운 분이시니 절세미인도 많이 만나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헛된 꿈을 안겨줘서는 안 된다. 그것이 선생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었고 '의형제'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도이의 자상한 한마디에 리키치도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뇌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본인이 아무리 구애를 한다고 한들 그것이 전해질 리 없다는 것쯤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잣토와 싸우다가 불리해지면 도망쳐라. 알았지?'

 아버지의 말에 리키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죽더라도 막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그 결심은 빛을 바랐고, 다행히 도이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탈환에는 리키치의 희생이 있었다. 상처 입은 것보다 더 큰 마음의 희생이 따랐다.

 "더 할말 있니?"
 "아뇨.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 다음에 올 때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같이 나가자."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도이는 평소에는 매우 상냥하지만 이럴땐 가차 없었다. 한번 냉정해지만 차가운 사람으로 변했다. 상냥함 속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했다. 그 모습에 리키치도 금방 꼬리를 내렸다. 아까까지 토를 보면 으르렁거렸던게 오히려 창피해질정도였다. 그래봤자 열여덟. 다른 청소년들보다 조금 더 머리가 컸을 뿐 진짜 어른이 된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리키치는 아직 본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리키치는 마음을 접고 홀가분해진 상태로 닌술학원을 나왔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늘 이런식이다. 고백아닌 고백을 하고 차이고의 반복. 언제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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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웃 제의를 받았단 말이냐?"
 "네에.... 하지만 걱정마세요. 확실히 거절했습니다. 전 누가뭐래도 1학년 하반의 교과 담임 선생님 도이 한스케니까요."
 "흠. 하지만 자네의 실력을 타소가레토키도 탐낸다는건 좋은 일이지. 긍정적으로 고려해보는건 어때?"
 "........조건이 까다로웠어요."
 "무슨 조건이었는데?"
 "타소가레토키의 성에서 살아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키리마루도 데려갈 수 없고 모두와 만나지도 못하잖아요. 무엇보다 타소가레토키성은 닌술학원과 우호적인 관계도 아니고. 전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하하. 자네다운 생각이군. 하긴 텐키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됐는데 또 그랬다간 키리마루가 크게 슬퍼할거야."

 보름달이 밝게 뜬 날에 도이는 덴조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리키치에게는 말해주지 못했던 일이었다. 잣토가 닌술학원에 온 이유는 도이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본 목적은 도이 한스케의 스카웃이었다. 텐키였던 시절 성주인 타소가레 징베가 텐키의 활약상을 듣고 꽤나 마음에 들어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잣토를 시켜서 그를 영입해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지금보다 몇배는 더 급여를 올려줄 수 있으니 자신의 성으로 오라고. 잣토도 도이의 실력을 높게 치고 있어서 타소가레에 오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잣토의 말에도 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 실력을 좋게 봐주신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1학년 하반이 졸업할때까지는 남아있고 싶습니다."
 "지금의 월급의 몇배를 줄 수 있는데도?"
 "돈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 아이들과의 의리를 더 소중히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특히 키리마루에게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걸 알려주고 싶어요. 우정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세상은 전쟁통으로 척박하고 냉정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 세상이 좋아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가족을 잃더라도 또 다른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고 숨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가잖아요. 전 아이들에게 그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니까요."
 
 잣토는 그 말을 듣고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타소가레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리키치군에게도 너무 접근하지 마세요. 물론 실력이 좋고 몇년 후면 크게 장성할 젊은 닌자지만 아직 어립니다. 손나몽군보다도 어리잖아요. 그 아이.... 질투가 많은 타입이라서요."

 마지막으로 경고도 하나 해주고 나서야 잣토는 알았다며 가슴속에 깊게 새겨듣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덴조는 도이에게 그 말을 들으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도이 한스케라는 사람의 천성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잣토는 물러났고 도이도 닌술학원에서 계속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야마다 가족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의동생인 리키치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과 똑닮은 아이에게 희망을 불어주기 위해. 

 "벚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네요."
 "새학기는 늘 바쁘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은 닌자에게도 바쁜 계절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면 그순간 족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족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이 걸어온 길에 놓인 벚꽃잎들을 허리를 숙여 주워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 늘러붙은 벚꽃잎을 줍지 않았다. 뒤를 따라오는 희망으로 가득찬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족적을 남겨야만 했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부푼 희망을 가득 안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벚꽃잎이 자신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늘 뒤를 보며 걸어야 했기 때문에 막상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닌자는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그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고 마는 것이다. 앞장서서 닌도를 걷고 있는 자는 드디어 그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더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벚꽃이 피는 계절은 닌자에게 겨울보다도 차가운 계절인 것이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