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진해
**앤오님 생일 기념 소설~~!!
**조만간 다 모아서 썰북을 내든가 해야지.... 근데 기약이 없음 30 되기 전에 하는 게 목표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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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인어
뱀 수인인 진해는 가끔 꿈을 꾼다.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바다 속 깊숙이 들어가 다시는 못 나오는 꿈을 꾼다. 진해가 다섯 살이 막 되었을 때, 본인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꾼 꿈이다. 진해가 어릴 때 그의 어머니는 식은땀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던 아들의 등을 쓸어주며 그건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다독여주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종족은 사막에서 살잖니. 그래서 바다를 너무 가고 싶어서 그런 꿈을 꾸는거란다. 생각해 보렴. 네가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그 장소에서 죽는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 일이니.'
조금은 섬짓한 말로 진해를 안심시켰다.
어릴때 진해는 그렇게 믿었지만 머리가 크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단순히 자기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허억....!"
그날도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자신의 여자친구인 윤성과 교제를 시작하고 동거를 시작한 지 조금 지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단계까지 온 날이었다. 그날이 완전히 사랑을 확인하는 '첫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하루였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었다.
원래 악몽은 본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자주 꾼다고들 하지만 진해는 그런거 상관 않고 평범한 날에도 자주 꿨다. 꿈 내용은 항상 같았다. 심해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담담하게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몸에 정신을 맡겼다. 숨을 쉬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몽롱해지는 정신에서 온종일 바다 생각만 났다.
"진해야? 왜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더워서 그래."
진해의 옆에는 본인의 애인인 윤성이 자고 있었다. 진해의 뒤척임에 잠에서 깬 윤성이 귀를 쫑긋 세우고 부스스 일어나 자신의 남자를 걱정했다. 거짓말이 서투른 남자지만 본인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눈감아주기로 하고는 작게 하품을 하고 다시 누웠다.
윤성은 얇은 캐미솔을 하나 걸치고 포근한 베개에 몸을 맡겼다. '으음. 조금만 더 자자. 너무 일찍 일어났어' 웅얼거리는 잠투정을 하며 이불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윤성이는 정말 귀여운 한 마리의 곰 같았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이성이 지배할 수 없는 '잠'같은 욕구가 있을 때는 본능에 이끌리듯 곰의 형태를 취했다. 예를 들면 '성욕'같은...
"이리와서 누워."
"으응?"
"얼른."
이불 속에 폭 파묻힌 윤성이 옆자리를 팡팡 치면서 다시 누우라고 손짓했다. 아까 악몽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와 한 공간에 있는 이 상황만이 존재했다. 그래, 악몽은 악몽으로 남겨두자. 잊어야 해.
진해는 등에 쭈뼛쭈뼛 선 얇은 비늘들을 무시한채 윤성의 옆자리로 부드럽게 누웠다. 윤성의 체온 덕분일까. 이불 안은 무척이나 따스한 공기로 가득 찼다.
"덥진 않아?"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진해의 귀로 속삭이듯 스쳐지나갔다. 캐미솔의 끈이 중력에 의해 천천히 내려갔다.
"응. 괜찮아."
그도 낮게 읊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얇은 캐미솔 안쪽으로 윤성의 부드러운 살갗이 비쳐 보였다. 윤기 나는 하얀 살결 위로 연한 분홍색이 군데군데 꽃을 피웠다. 어젯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본능에 몸을 맡긴 흔적들이었다.
진해는 손을 쭈욱 뻗어 윤성의 목 주변을 더듬었다. 그러자 눈을 가늘게 뜬 그녀가 진해의 팔을 잡아 끌었다. 역시 이 악몽을 얘기해 주는 게 좋겠지. 진해는 이불속에서 슬그머니 나와 바닥에 있는 하얀 반팔티를 주워 입었다. 바닥에는 마치 뱀의 허물처럼 그들의 옷 허물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진해의 등에도 아주 옅은 상처가 있었다. 누군가가 할퀸듯한 흔적이었다. 뱀의 비늘과 가시가 어우러져서 진해의 등은 마치 용처럼 척추에 가시들이 작게 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시는 아니고 비늘의 형태를 띤 뼈였다. 뼈가 툭 튀어나온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진해는 그 등으로 윤성이를 업기도 해서 평소에는 그 비늘을 숨기고 있었지만 본능이 더 커지면 자기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 버린다. 그래서 윤성은 진해의 등에 타면 마치 용에 올라탄 기분이라며 좋아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러워했지만 계속되는 그녀의 칭찬에 점점 감화되더니 이제는 그게 자신의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기... 그게...."
"뭔데? 할말 있어?"
"가끔 꿈을 꿔. 바닷속에서 익사하는 꿈."
"응?"
그의 상상치도 못한 말에 윤성도 이불속에서 벌떡 일어나 굳은 표정으로 진해의 뒤를 바라봤다. 진해는 가끔 이상하리만치 생뚱맞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윤성은 진해의 '사차원 끼'가 발동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본인의 성격에 맞지 않게 우울해지기도 했다. 마치 오늘처럼.
"많이 놀랐지? 사실 종종 꿔. 너랑 사귀기 전부터, 아니 아주 어릴때부터 쭉. 어릴 때 이 꿈을 꾸면 너무 무서웠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뱀은 바다를 좋아하니까 바다로 가고 싶어서 그런 꿈을 꾸는 거라며 안심시켜 줬어. 좋아하는 장소에서 죽는 게 낭만적이라면서."
"낭만적.... 인 것 같진 않은데."
"맞아.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그렇지만 어릴 때 난 그걸 진짜 믿었다? 언젠가 바다에 가서 헤엄을 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봐."
"어릴적 진해..."
한 번 보고 싶은데? 라며 쿡쿡 웃어대는 윤성이의 모습에 진해는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어디에 꽂힌 건지 윤성이는 '어릴 적 진해... 어릴 적 진해...' 하면서 중얼거리더니 혼자 상상하다가 풋 웃어버리곤 했다. 윤성도 자긴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진해와 같이 지내면서 또 같이 살면서 '사차원 끼'가 옮은 것 같다고 자주 얘기했다. 확실히 평상시에는 확실히 어른스러워 보이고 철없는 자기보단 훨씬 똑 부러진 여자지만 어떨 땐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엉뚱한 아이의 모습이 나왔다. 그런 여자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워 보였을까. 진해는 방금까지 꿨던 꿈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핫."
"응?"
"미안해. 너는 악몽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나 혼자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
"아,아아~ 괜찮아. 잊어버렸어."
진해는 기지개를 켜더니 창문 쪽으로 걸어가 벌컥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폐 안으로 스며들었다. 방금까지 숨이 가빠지던 기분은 어디 가고 시원한 산소가 공급되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런 기분이 들게 된 이유에는 분명 그녀의 덕도 있을 것이다.
"정말 괜찮은거지?"
"으응?"
갑자기 뒤에서 푹신하게 붙는 기운에 진해는 급작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이불 밖으로 나온 윤성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뒤에서 꼭 끌어안고 있었다. 한참이나 모자란 키지만 윤성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있는 힘껏 진해를 끌어안았다. 눌린 볼이 말랑한 찹쌀떡처럼 진해의 등에 붙었다. 푹신한 기운은 윤성의 살결이었다. 얇은 천 한 장만이 전부여서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이 더 잘 느껴졌다. 너무 잘 느껴진 탓에 진해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다간 위험할 위기에 처했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성은 진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지 추궁하기 시작했다.
"거짓말 하면 혼난다~"
"이젠 다 잊었어! 진짜야!"
"진짜루~?"
"정말로! 그,그러니까 좀 놔주라아...."
진해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속으로 애국가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르겠다. 작은 귀를 쫑긋 올리고 갸웃거리던 여자친구는 속이 타들어가는 남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보고 똑바로 이야기해야지!' 하며 억지로 진해의 몸을 돌렸다. 윤성의 막무가내를 거스를 수 없는 진해는 그대로 윤성을 마주 보고 섰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더 귀여워 보인다. 군데군데 작은 키스마크들이 눈에 띈다. 평상시에도 새하얀 피부로 눈에 띄었지만 오늘은 한층 더 눈에 띄었다. 어제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아닐지도 몰라."
"거봐. 역시 거짓말 했구나."
"아니, 그거 말고. 악몽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무슨소리야?"
진해가 고개를 수그려 윤성의 입에 짧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윤성의 뺨을 어루만졌다. 키가 제법 차이가 나는 둘이었기에 전체적인 덩치도 차이가 많이 났다. 진해의 손이 윤성의 얼굴 절반 이상을 감쌀정도였다. 진해의 황금색 눈동자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반짝였다. 마치 보석 같았다. 세로로 긴 동공과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한 윤성이었다.
"역시 낭만적인 것 같아. 바다란건."
"그건... 바다에서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
"당연하지! 하지만 바다가 보이는 이 집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데."
"아,알았어...! 알았으니까... 떠, 떨어져..."
그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다가오는건 반칙이잖아. 윤성도 꽤나 진해의 얼굴에 약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진해의 얼굴에 약한 게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진해의 얼굴에 약한 편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진해의 가장 멋있는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뭐야~ 본인이 먼저 붙었으면서. 그렇게 반쯤 벗은 몸으로 남자친구한테 다가오면 안되는거 몰라?"
"내,내가 언제...!"
"자자, 공주님은 이제 잘 시간이에요~"
"벌써 아침이거든? 꺄앗!"
윤성을 번쩍 안아들은 진해가 다시 침대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큰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몸을 둥글게 말고는 근처에 있는 이불을 꼭 쥐었다. 진해의 얼굴은 순수로 가득 찼지만 또 어떨 때는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동공이 더 작게 떠졌다. 입안에 숨은 송곳니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윤성은 자신이 정말로 뱀 같은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곤 했다. 가만히 보면 강아지 같은 남자친구지만 가끔 자신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어제처럼, 그리고 오늘처럼.
진해가 내려놓은 침대에서 둘은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둘만의 사랑의 시간도 맘껏 보냈다. 파충류의 차가운 살결과 포유류의 따뜻한 살결이 만나 서로의 온도가 딱 맞아떨어졌다. 덥다고 느끼지도, 춥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진해의 큰 손이 윤성의 살결에 닿아 그 차가움을 전했고 윤성도 따뜻함을 전했다. 손깍지를 끼고 부드러운 키스가 오고가고 나서야 일단락 됐다는 듯이 조용히 그 시간이 지나갔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진해의 꿈에는 또다시 바다가 나왔다. 깜깜하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채로 또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늘 꾸는 꿈과는 조금 달랐다. 어두운 바다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흰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 빛 안으로 누군가가 진해의 팔을 잡아끌어주었다.
'인어...?'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익숙한 형체와 느껴본적 있는 이 기운이 자신만이 아는 그 실루엣이었다. 그 인어는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빛을 감싸고 진해를 수면 위로 올려 보내주었다. 수면 위로 올리고 나서야 인어는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고,고마..."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인어는 작별인사라도 하듯 지느러미를 힘차게 치면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면서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본인이 튜브가 된 것처럼 둥둥 떠다니며 잠깐 휴식을 취했다. 바다에서 바라본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디가 하늘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이 모호했다. 덕분에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양은 그 하늘의 정가운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은 진해를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차디찬 바닷속에서 방금 나와 추웠던 몸을 녹여주었다.
"낭만적이야..."
이제서야 엄마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어. 바다는 정말 낭만적이야. 진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아까 손을 잡아주었던 인어가 힘차게 수면 위로 올라와 마치 춤을 추듯 헤엄쳤다. 진해도 손을 번쩍 들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분명 저 인어가 나에게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거야. 진해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인어의 정체도 누군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악몽이 아닌 기분좋은 꿈을 꾸고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따뜻한 온기가 진해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불인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따뜻한 생명체가 자신의 팔을 꼭 끌어안고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 생명체를 바라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인어공주였던 윤성이 자신의 팔을 베개 삼아 자고 있었다. 조용히 자고 있던 윤성의 콧등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이젠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을 것이랴. 인어가 자신을 구해줬으니까.
별가루를 섞은 모래에서 같이 자고
태양을 집어 삼킨 하늘과 끝없는 낭만을 지닌 바다의 경계선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일생의 마지막을
너와 함께 그릴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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