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했습니다~!!!!! 퇴고는 천천히 할 예정
**공포 3만자 공미포 2만자.....
**나유타의 아버지 날조가 좀 많습니다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병든 소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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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호시 렌 side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밴드 공연을 보러갔을 때의 기억. 가슴이 두근거리고 찌릿한 그 폭발적인 고동이 아직도 심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 고동을 찾고 싶어서 노래를 시작했다. 혼자서 노래하는건 아무래도 좋았지만 여전히 내 심장의 안쪽에는 헛헛한 느낌이 맴돌고 있었다. 그때 유우토와 와타루가 찾아왔고 아르고나비스를 만들어서 밴드를 하기 시작했다. 아르고나비스에서 노래를 부르는건 정말 좋았다. 내가 느꼈던 그 고동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했다. 무언가에 굶주리고 있었다. 아무리 노래를 해도 그것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나유타군이었다. 자이로악시아의 노래를 들었을때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유타군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아니 나유타군을 넘을 정도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나유타군을 따라잡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나유타군과 합동공연을 했다. 아르고나의 신곡을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나유타군과 즐겁게 노래하는 것이, 그것과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 데뷔가 코앞이어서 도쿄로 이사를 갔다. 멤버 전원과 생활하기 위해서는 쉐어하우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도쿄는 하코다테와 많이 달라서 처음에는 길도 잃어버리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정이 된 상태다. 강아지도 기르게 되었다. 이름은 퐁짱.
아무튼-- 아르고나비스는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을 뿐이다.
-
그것은 어느날 반리가 들고 온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반리를 평소보다 훨씬 허둥대며 집으로 들어왔는데 꽉 쥔 노란 스마트폰이 눈에 띄었다.
"다들...이걸 봐!"
반리는 허둥대며 거실로 들어오며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화제의 뉴스 1면. 메이저 데뷔 코앞의 GYROAXIA 돌연 해체. 보컬 아사히 나유타 솔로 데뷔. 그걸 보는 순간 멤버 전원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달랐다. 나유타군에게 크게 실망해버렸다. 네가 가버리면 나는? 드디어 그것에 가까운걸 찾았는데 이제서야 찾았는데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돼? 그 나유타군을 향한 분노만이 계속 쌓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분노로 차오른 그 뜨거운 감정이 왈칵 쏟아졌다.
"렌, 괜찮아?"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은 와타루였다. 나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등을 쓸어주었다. 왈칵 쏟아진 그 감정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눈물로 나왔다. 와타루의 손길이 더해지자 더 흘러내렸다.
"나나호시는 아사히의 노래를 특히나 좋아했으니까."
"이런건 믿을 수 없어. 분명 루머일거야."
"응,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도 그럴게 이제 곧 자이로와 비슷해졌는데 이제와서 해체라니. 믿겨져?"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이대로는 가만히 두고볼 수가 없어서 나유타군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며 쉐어하우스를 나와 곧장 달려갔다. 자이로의 쉐어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달렸다. 분명 나유타군도 헤매고 있을거야. 이렇게 달리다보면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칠지도 몰라.
"헉...헉...."
도쿄는 하코다테와 다르다. 집을 나와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뾰족하게 솟은 도쿄 타워. 8차선 도로에서 별모양으로 자리잡은 8개의 횡단보도. 달은 커녕 별도 빛을 내기 힘든 수많은 조명들. 그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도쿄의 밤거리. 이 모든게 어지럽게 뒤엉켰다. 눈도 귀도 코도 모두 막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모든게 그대로 보여야 할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이 암전되었다.
다리가 무거워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주저앉으면 밟힐 것 같았다. 한발짝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쁜 생활 속에서 조명 아래로 스르르 사라졌다.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건물 벽을 잡았다. 뭔가 화려하게 입은 남자 두세명이 내 앞을 가로막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키는 나보다 훨씬 컸고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시야가 안보여. 코가 마비됐어.
"이봐. 꽤 귀여운데? 잠깐 우리 가게 들어와보는거 어때?"
"잘만 꾸미면 금방 팔릴 얼굴인걸~ 이름은 뭐니?"
화려한 셔츠에 자킷을 입은 남자들이 앞을 가로막고 뭐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솔직히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가 팔린다는거고 뭐가 귀엽다는거지? 적어도 여기가 어딘지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저기... 여긴 어딘가요?"
"오, 흥미 생겼어? 시부야 최고 호스트클럽 토유인데~"
"시부야....?"
"자자, 이렇게 바깥에서 이야기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안으로 들어와서 제대로 얘기하자고."
남자가 나의 어깨를 덥썩 잡더니 자기 품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시부야라면 집에서 얼마나 먼거지? 제대로 설명 안하고 집에서 나왔는데 모두가 걱정하겠다.
".....어이."
눈이 멀 것 같은 도쿄의 조명 아래에서, 진한 향수냄새로 코가 마비된 도쿄의 길 한복판에서, 시끄러운 음악들이 뒤엉켜서 귀가 안들리는 도쿄의 골목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분명히 들렸다. 낮고 거친 그 음색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그 수많은 도쿄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은색의 빳빳한 머리가 정전기가 오른 것마냥 곧게 솟아있는 그를. 그 어느 때보다 한층 더 날카로운 눈매를 한 그를. 굳게 다문 그 입이 달싹 움직였다.
"뭐햐냐 이런 곳에서."
"아....."
나유타군이다. 나유타군이 있었어. 역시 무작정 달려온게 정답이었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그도 생각할게 많아서 무작정 달리고 있을거라고. 그러면 어딘가에서 우리 둘은 만나게 될 거라고. 나유타군의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 복잡한 도쿄의 길거리에서 나유타군의 목소리와 발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헤에~ 저 애도 까칠한 매력이 있는데. 뭣하면 너도 들어올래?"
"아?"
"이크. 너무 까칠한데."
"칫. 쓸데없어. 이런곳에서 알랑방귀나 뀌면서 엉덩이 흔들어대는 네들하고는 할 얘기 없어. 간다."
"뭐,뭐야?!"
나유타군은 보기 힘든 욕설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면 늘 욕을 달고 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크게 화낸적은 없었다. 시원하게 한마디를 뱉고 나니 내 손을 잡아 끌어 빠른 걸음으로 그 거리를 벗어났다.
도쿄의 밤거리를 벗어나고 조금 조용한 공원으로 들어왔다. 조용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조금 무서워졌다. 나유타군이 드디어 손을 빼고 앞장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저,저기..."
"말하지마. 전화 하니까."
"으,응."
나유타군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익숙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사토즈카냐. 네 동생한테 전화해서 나나호시 찾았다고 전해. 신시부야역에서 기다린다.' 나유타군은 나를 찾기 위해 달려온걸까. 그렇다면 내 예상은 틀렸다. 그도 나처럼 고민할것이라 생각해서 뛰쳐나온건데. 그나저나 나, 핸드폰도 안가지고 나왔구나.
"나유타군 고마워."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응. 미안합니다."
"봤겠지."
"응? 아아 도쿄의 거리는 무섭다는거? 응. 잘 알겠더라.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다시 한 번 고마워."
".....그걸 말하는게 아니잖아. 넌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못알아듣는거냐."
"에?"
나유타군은 뒤돌아 서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슬픔이 섞여있었다.
"자이로악시아는 해체된다."
"아."
"어차피 처음부터 해체될 운명이었어. 나를 메이저에 데뷔시키기 위해 데려온 밴드다. 이제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해체 되어야 하지."
"그런...."
"음악의 세계란 이런거다. 이제 알았냐? 애송이."
"그래도 좋아?"
"뭐?"
애송이라고 말하는 나유타군은 전혀 애송이처럼 보고 있지 않은걸. 나유타군의 눈에는 내가 비쳐보이지 않았다. 공허한 그 눈동자만이 외롭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좋아? 나유타군은 이렇게 끝내도 좋은거야? 아니잖아. 더 하고 싶잖아."
".....그만."
"난 나유타군의 노래를 듣고 정말로 설렜어. 흥분했어. 드디어 그것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깝잖아!"
"그만해!"
"....읏."
나유타군이 거칠게 숨을 쉬었다. 그러고보니 켄타씨한테 들은 적이 있다. 나유타군은 천식이 있다고.
"난 이대로 안끝내. 아니 못끝내. 이제 드디어 출발점이 같아졌어."
"출발점이 같다? 하, 뭔가 대단히 착각하나본데 네놈들과 우리는 차원이 다르다. 출발점은 커녕 너네는 아직 출발도 못한거야."
"메이저 데뷔가 출발점이라면 출발 못한건 그쪽도 마찬가지야."
"하아?"
"나, 나유타군의 노래 정말 좋아해. 아니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해. 그러니까 나유타군 이대로 끝내지 마."
"하, 이기적인 새끼."
"이기적?"
"그래. 너는 너만을 생각하고 있어. 네가 말하는 '그것'이 뭔지 난 알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네가 찾는 '그것'에 나를 끼워맞추는 것 뿐이잖아. 너에게 있어서 난 '그것'의 대체제인거냐?"
"뭐....."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지만 나유타군의 노래가 '그것'과 많이 닮아있었기에 완전히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을 찾기 전까진 나유타군을 쫓아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그건..."
"..... 조금은 다를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지. 빨리 걸어. 역에서 사토즈카와 만나기로 했다. 너네팀도 곧 오겠지."
"나유타군."
"....."
"무시하지마!"
"시끄러운 녀석."
걸어가던 나유타군의 발걸음이 멈췄다. 뒤돌아보는 나유타군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자이로 해체 안되길 빌게."
"하아?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말했을텐데."
"응. 하지만 거짓말이잖아. 나유타군도 인정 안하고 있잖아."
"너...."
"다시 합동공연 할 수 있을거야. 난 포기 안해. 드디어 찾아냈어. 그것을."
"네가 말하는 소리는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
"응. 그럴거야. 하지만 난 진심이야. 포기하지 않아. 나유타군도 그것도..."
나유타군은 질린다는 표정을 했지만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둘이서 도쿄의 밤거리를 적당히 걸었다. 도쿄의 밤은 화려했고 조용했으며 나유타군과 걷는 이 길가만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앞길을 열어준 나유타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도쿄의 밤거리를 열어주는 것도 음악의 세계를 먼저 열어주는 것도.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신시부야역에 도착하자 켄타씨와 와타루가 눈에 보였다. 분명 켄타씨는 나유타군을, 와타루는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두 사람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손을 번쩍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나유타군은 시끄럽다며 혀를 찼지만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은근 상냥한 면이 있다니까.
"나유타. 나나호시."
"렌! 갑자기 뛰어나가서 놀랐잖아! 어디있었어?"
"응. 미안. 다행히도 근처에 나유타군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랬구나. 앞으로는 핸드폰이라도 가져가. 모두가 걱정했어."
"응. 그럴게. 미안해 와타루."
"괜찮아. 아사히도 오늘은 고마워."
와타루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나도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인사치레는 필요 없어. 라며 나유타군은 금방 고개를 돌렸지만 켄타씨는 그걸 제대로 받아주었다. 다음에 이런일 없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교육시켰다.
"이런, 친구들을 찾았나보네요."
그 순간 우리 뒤에서 키가 큰 남자가 나타났다. 백금발과도 같은 오묘한 머리색과 자기 주장이 센 머리모양.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큰 키에 어울리게 무릎까지 오는 긴 가죽 자켓을 입고 있었다. 뱀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모두가 매료되었다. 켄타씨는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옆에서 와타루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이사람은 누구야? 내가 그런 표정으로 와타루를 보자 와타루가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입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 이 사람은 우리가 신시부야역에 도착했을 때 만났는데 아사히랑 렌을 찾게끔 도와주었어. 그러고보니 이름이..."
이름을 듣는 순간. 아니 이름을 말할려고 입을 여는 그 사람이 손으로 선글라스를 벗는 순간 나는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나유타군을 봤을 때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크게 요동쳤다. 마치 그때처럼. 그 노래를 듣고 벅차올랐던 그때처럼.
"이류 코우가."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나유타군이었다. 한층 더 날카로운 눈매로 그 이류 코우가라는 사람을 노려봤다. 켄타씨와 와타루는 그 이름을 듣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제서야 그 이류 코우가란 사람은 긴 자켓의 앞섬을 열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본인 설명을 제대로 했다.
"맞습니다. 저는 이류 코우가. 알려지면 조금 곤란해서 변장하고 있었어요."
뱀처럼 지반을 기어다니는 낮은 음색이 깔렸다. 그때의 고동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점점 위로 올라왔다. 심장이 요동친다. 나유타군을 만났을때하고는 확실히 다른 그 떨림과 설렘. 그리고 도저히 다다갈 수 없다는 압도감.
또 한편으로는 꼭 넘어보이고 말겠다는 정복감이.
"나유타 용케도 알았구나. 이 사람이 이류 코우가라는거 말이야."
"....."
나유타군은 평소보다 훨씬 더 눈매를 찌그려뜨렸다. 그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나만이 느낄 수 있었다.
"아는게 당연하겠죠. 그야 저기있는 나유타는. 제-
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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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유타군을 처음 봤을 때 그 고동이 느껴졌는지 알았다. 그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유타군과 그 사람은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을 봤을 때 나유타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렬함이 느껴졌다.
"그,그렇구나. 나유타 왜 말을 안해줬어? 아버지쪽은 가명인가?"
"아뇨. 전 본명입니다."
"그럼...?"
"이혼했거든요. 나유타는 어머니의 성을 따랐나보군요."
나유타군의 표정에서 모든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향한 불쾌함이. 왜 이런곳에서 만나게 되느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렌은 이류씨 알고 있어?"
".....응."
"정말? 의외네. 잘 모를 것 같았는데. 나는 형의 영향으로 일찍 음악을 시작했으니까 알고 있었지만. 렌은 모를 것 같았어."
".....찾았어."
"응?"
드디어 찾았다. 내가 찾던 그 무언가. 그것을 찾았다. 이 사람이었다. 이류 코우가.
"설마 나나호시 네가 찾던 그것이."
"응. 어릴때 느꼈던 그 감정. 그 고동. 그 반짝이는 무언가를 드디어 찾았어. 이 사람이야."
"......하."
나유타군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아들인 자신이 아버지의 대체품이라고 생각했던걸까.
"그래서. 네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그것이 저 아버지라는거냐?"
"응. 맞아. 확실해. 나유타군한테도 같은걸 느꼈는걸."
"닥쳐. 결국 내가 저 썩을 아버지의 대체품이라는거잖아."
"나유타군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때 나유타군의 노래를 듣고 격동된건 확실해."
"나나호시 렌! 제대로 말해! 네가 느낀게 이류 코우가의 노래라면 내 노래가 그 사람과 닮았다는거야?"
"응."
"으극."
나유타군이 나를 때리더라도 상관없었다. 폭발적인 그 노래소리가 함성이 나유타군과 저 사람과 닮은건 확실했으니까.
"저기 이류씨. 보컬 트레이닝 시켜주세요. 부탁합니다!"
"잠깐, 렌."
"부탁이야 와타루. 모처럼 찾았는걸. 드디어 찾았어. 그러니까 절대로 놓치지 않을거야. 부탁드립니다."
나는 와타루의 손을 무시한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남자는 손에 든 선글라스를 가슴팍에 만들어진 자켓 주머니에 꽂아넣더니 나에게 얼굴을 들라며 가느다란 손으로 내 턱을 위로 올렸다. 더 가까이서 보니 나유타군이랑 붕어빵이다. 내 턱을 들어올려 쓸어내리더니 곧장 자신의 품에서 명함 하나를 내주었다.
"내일 오전 10시. 여기 적혀있는 주소로 오십쇼. 보컬 테스트를 해보도록 하죠. 당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하겠습니다."
나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선은 나를 넘어 저 멀리 있는 은색의 머리를 가진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럼. 이만. 나유타도 오고싶으면 오세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나유타군은 잡아먹을 것처럼 잔뜩 매서운 눈으로 나와 이류 코우가를 바라봤지만 이류 코우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 그 말만 하던 이류 코우가는 명함을 내어주고는 뒤돌아서 고고하게 걸어나갔다. 명함은 꽤나 빳빳한 고급 종이었다. 소속사가 따로 있었구나. 열심히 배워서 아르고나비스를 더 성장시키고 싶다.
"나 내일 다녀올게."
"에, 정말로? 렌이 그러고 싶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나유타군도 갈거야?"
"......."
나유타군은 이류 코우가가 지나가자 조금 풀린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정확하게는 나를 노려본 것이다. '가지 않아'라고 말할 것 같았지만 뜻밖의 말이 들려와서 놀랐다.
"그 사람 밑에서 배우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대신 그 앞은 엄청난 지옥일거다. 네가 노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런 사람이니까."
나유타군 나름대로의 충고였다. 만약에 정말로 그 사람에게 배워서 내가 노래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그 고동과 가까워질 수 있다면 버틸 수 있다. 태양에게 다가갈려면 이정도는 각오해야하니까.
"응. 괜찮아. 해볼래."
"....좋을대로 해."
나유타군에 다시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나와 와타루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을 고대하며 설레는 이 감정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오지 않는 잠을 재워가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빠르게 아침을 먹고 일찍 집밖으로 나섰다. 그 앞이 어떤 길이라고 해도 이겨내보일거라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이류 코우가가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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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나유타 side
나나호시 렌.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해도 영문모를 답답함이 몰려왔다. 노래를 잘하는건 아니다. 나와 상성도 안맞고 내가 추구하는 음악성과도 달라. 무엇보다 프로를 목표로 하는 나와 달리 저녀석은 좋아서 하는 밴드다. 남들과 어울리고 남들에게 맞추는 그런 음악을 하는거다.
그러니 나하고는 전혀 안맞는다.
나나호시 렌이 눈에 밟히는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내 감정을 무시했다. 심장이 요동쳐? 기분이 좋아?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게는 그런 감정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나나호시 렌의 노래를 듣고 그런 감정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난 그 감정을 철저히 무시해왔다.
아르고나비스와 합동공연을 했을 때의 그 느낌은 한마디로 '묘했다'. 왜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거지.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니 나나호시 렌을 만난 시점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아 생각하길 그만두었다. 어짜피 나의 노래를 세상에 알릴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니 아르고나비스가 오든말든 나하고는 관계 없는 일이다.
아르고나비스와의 합동공연이 끝난 후에도 자주 모이게 되었다. 자주까진 아니지만 밴드와 일면안식도 없는 자이로악시아에서 유일하게 만나는 밴드가 쟤네니까 말이다. 대학도 전공도 같아서 나나호시 렌과 자주 부딫히는거 말고는 신경쓸 일이 없었다.
자이로악시아가 해체된다는 소리가 녀석의 귀에 들어가기 전까진.
나의 솔로 데뷔가 확정된 이후로 자이로는 설 자리를 잃었다. 나를 지탱해주는 밴드이니 나의 목표를 이루면 그대로 사라질 밴드다. 이전에 있던 밴드처럼 '나 때문에 모든걸 망치는거다'. 여느때처럼 살얼음판같은 분위기 속에서 연습을 재개한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사토즈카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왔다.
"나유타. 나나호시가 없어진 모양이다."
"하아? 그게 나랑 무슨상관인데."
"자이로가 해체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갔다고 하던데. 어딘가 짚이는데 없어?"
"그런거 몰라. 어딘가에서 미아가 되어 헤매고 있겠지."
"그게 걱정이야. 이상한 곳에 가지 않으면 좋으련만."
사토즈카의 걱정하는 눈이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르고나에 있는 동생한테 전화를 건거겠지. 나나호시가 없어졌다고? 하,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다.
"어라. 나유타 어디가? 지금 나가면 행복해지지 않을거야. 밖에는 꽤 쌀쌀하다구?"
".....살게 있어서 다녀올 뿐이야."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얇은 코트를 대충 걸치고 집밖을 나서서 골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나호시 렌. 나나호시 렌. 속으로 그 이름을 몇번이나 불렀는가. 말해도 닿지 않는 그 이름.
"나나호시 렌."
녀석이 이상한 가게의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이상한 일을 당하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는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저런 순진무구한 얼굴로 다니니 이상한 벌레들에게 꼬이는거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녀석의 말들은 그닥 쉬운 말은 아니었다.
자이로가 해체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는 어땠지? 어떤 기분이었지?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찾고 싶었나? 나에게 할말이 있어서 뛰쳐나온게 아닌가? 네 입으로 제대로 말해. 하지만 그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 '자이로가 해체된다니. 정말 안타까워. 그래도 솔로 데뷔 응원할게' 같은 말도 전혀 바라지 않았다. '진실이 아니잖아. 이대로 끝내지 않을거지?' 라는 말도 아니었다. 내가 바란건.... 너만은 나의 마음을 대변할 말을 해줄 줄 알았던 것이다. 너만은 나를 이해해줄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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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류 코우가"
그 자의 이름을 다시 내 입으로 내뱉게 되는 날이 올줄이야. 이름을 떠올린 것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데 그걸 입밖으로 내뱉어서 나의 아버지인걸 설명하고 있자니 참으로 역겹다. 토할 것 같다.
"응. 어릴때 느꼈던 그 감정. 그 고동. 그 반짝이는 무언가를 드디어 찾았어. 이 사람이야."
나나호시의 눈동자가 이토록 빛났던 적이 있었나. 합동공연을 했을 때 봤던 눈과는 사뭇 달랐다. 찾고 싶어했던 그 감정이 아버지였어?
"그래서. 네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그것이 저 아버지라는거냐?"
"응. 맞아. 확실해. 나유타군한테도 같은걸 느꼈는걸."
"닥쳐. 결국 내가 저 썩을 아버지의 대체품이라는거잖아."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의 노래가 자이로의 노래가 아버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울려. 숨 쉬기가 어려워. 내가 아버지의 대체품이라고 말하지 마.
나나호시의 눈동자가 저토록 파랗게 빛나는건 처음 봤다. 저게 '동경'이라는 감정이겠지. 나에게도 아버지를 동경했던 기억은 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나에게 있어서 동경이라는 감정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나나호시는 아버지의 명함을 받아들었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손을 뻗고 싶었다. 너마저 그 사람에게 잡아먹혀서는 안된다고. 나만으로는 부족해서 그 순진무구한 녀석의 목소리까지 빼앗아 버리려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라며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결국 너는 그쪽으로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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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즈카에게서 전화가 자주 온다. 또 아르고나인가. 동생의 어리광을 너무 받아주는거 아니냐?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사토즈카가 먼저 나에게 보고했다. 자이로의 해체는 일단 보류였다. 아르고나의 보컬이 그 이류 코우가의 제자로 들어간 사연으로 인해 자이로도 비상이 걸렸다.
나나호시 렌보다 아사히 나유타를 먼저 솔로 데뷔 시켜야한다.
사토즈카의 전언은 이랬다. 나나호시가 이류 코우가의 보컬 트레이닝을 받게 된 이후로 연습도 늦고 귀가하는 시간이 늦어진다고. 원래 나나호시는 밤 10시면 자는 습관이 있나보다. 그런 녀석이 새벽에 들어온다고. 아르고나 내부의 문제를 자이로까지 가지러 오는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 원인이 '나의 아버지'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토즈카의 그 말 때문은 아니지만 직접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이류 코우가가 있는 곳으로.
"나도 같이 갈까? 아르고나 멤버도 전원 데리고 가서-"
"나 혼자 간다. 너희는 연습이라도 하고 있어."
"하지만 그 사무소 엄청 크다고? 경비도 상엄해도 쉽게 들어가지 못할텐데."
"그럼 적어도 차라도 타고 가. 켄타, 자동차 열쇠 좀."
"나유타. 우주 에네르기가 너 혼자 가는걸 거부하고 있어. 모두와 함께 가는게 좋아."
"시끄러워. 가는건 나 하나다. 전원이 가나 한명이 가나 그게 그거야."
녀석들 시끄럽게 굴기나 하고. 강가에 내놓은 아이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고 불만이야? 나나호시를 데리러 가는게 아니다. 상태를 확인하러 가는 것 뿐이다. 아버지가 나나호시에게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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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레이블에 발을 들이게 될줄은 몰랐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은 빌딩 건물이 전에 왔을 때보다 몇배는 더 커보인다. 내가 기억하기론 아버지의 연습실은 지상 18층. C동 1804호실. 기억에 의존하면서 간 것치고는 성과가 있었다. 단번에 찾을줄이야... 그렇게 데이고도 이 연습실 문을 다시 열게 되는 날이 올줄은.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 떨린다. 식은땀이 흐른다. 숨이 잘 안쉬어진다. 천식 호흡기를 가져올걸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내가 천식으로 고생하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다. 죽어도 싫다. 그것만큼은 내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아.
끼익-
방 손잡이를 잡지도 못한채 먼저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이제 아버지가 나올-
"나나호시...?"
"....."
나나호시 렌의 얼굴이 무척이나 괴로워보였다. 창백해진 피부, 생기없는 눈동자, 굳게 다문 입, 조금은 야위어보였다. 그래도 아주 힘겹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눈웃음을 보냈다. 먼저 손을 건네서 악수를 청했다. 목소리는 문제 없이 매우 청아했지만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안녕, 아사히군."
"하...?"
아사히군이라니. 웃기지 마. 평상시대로 말해. 평상시대로 '나유타군'이라고 불러. 나나호시 뒤에 온 사람은 당연하게도 아버지. 이류 코우가다. 나나호시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나나호시. 돌아가자. 너네 밴드가 기다린다."
".....안돌아가."
"하아? 너.... 아르고나비스는 너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 아니냐."
"맞아. 그래서 돌아갈 수 없어. 여기서 더 실력을 갈고 닦은 다음에 갈려고."
나나호시의 눈에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새까만 공허함이. 그 푸른 남색의 눈동자에는 나는 커녕 나나호시 자신도 비춰있지 않았다. 늘 초롱초롱 빛내던 그 얼굴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아, 역시 원인은-
"렌. 그만 돌아가죠. 휴식시간은 끝입니다."
"네."
"이봐, 나나호시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하하, 당신과 상관있는 일인가요? 라이벌이라서 챙겨주는 것 이상이하도 아니잖아요. 당신도 들어오고 싶다면 들어와도 됩니다만 그래보이진 않군요."
아버지가 나나호시의 뒤에서 나타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는 밑으로 내려와 그녀석의 귓가에 그 소름끼치는 뱀같은 목소리로 지껄였다. 그럼에도 나나호시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그 변태같은 손길이 좋다는듯이 받아들었다.
"자, 잡담은 거기까집니다. 들어가야죠. 렌."
"네."
"나나호시!"
"그럼, 다음에 봐. 아사히군."
그렇게 말한 나나호시의 눈에는 아주 소량의 눈물이 맺혀있었다. 공허한 눈동자 속에 소용돌이 치는 그 물이 나의 심장에 꽂혔다. 나나호시 렌을 저 뱀의 소굴에서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어서 빨리....
-
"나유타! 무슨일 있었던건 아니야? 괜찮았던거지?"
"일일히 소란피우지마. 상태만 확인하고 왔을 뿐이야."
돌아오자마자 소란을 피우다니. 머리가 울린다. 솔직히 말해서 자이로 멤버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머리가 울리는게 아니다. 아까 봤던 나나호시의 얼굴을 떠올리면 두통이 찾아왔다. 그 사람을 만나게 해서는 안되는거였어. 지금와서 후회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 다른 녀석들이 시끄럽게 나나호시의 상태를 걱정하는 소리를 한귀로 흘려버리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갈 채비를 해야했다.
"나유타..."
"사토즈카."
"응? 뭔가 필요한거라도...?"
"내일 다시 사무소로 간다. 차를 준비해둬."
"그래. 알았어."
나는 잠깐 문을 열고 그말만 하고 다시 문을 닫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직은 괜찮다. 눈에 생기가 없었지만 목소리에도 이상이 없었고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나보다 더 뛰어난..... 씨발! 그딴거 알게 뭐야.
거실은 꽤나 시끄러웠다. 또 사토즈카가 다른 멤버들에게 말한거겠지. 혼자 쳐들어갈것이라는 생각은 안했다.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문제는 그 사무소에 갇혀있는 나나호시를 만나더라도 나나호시가 가기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갈 수 있냐는것이다. 나라면 그 짓은 하지 못할테지만 다른 녀석이라면 할 수 있겠지.
"나유타. 나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
"아아."
사토즈카가 내 방에 들어와서 내일 차를 가져가는 김에 멤버 모두가 함께 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녀석들은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지만 상관없다. 처음부터 혼자 다시 갈거라는 생각은 안했으니까. 단, 조건이 있어. 사토즈카는 내 말이라면 잘 알아들으니까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아르고나비스도 같이 가겠대."
".....마음대로 해."
"내일은 우리 쪽 차와 아르고나가 빌린 차로 갈 예정이야."
사토즈카가 분명 동생에게 말했을 것이다. 녀석들은 나나호시를 과보호 하는 경향이 있다. 이참에 그 경향을 이용해주지. 어짜피 저녀석들은 모두 사무소 안으로 못들어갈거다. 들어가는 나 하나다.
-
설잠을 잤다. 불면증이 원래도 있었지만 그날은 유독 더 잠들기 어려웠다. 잠에 들려고 하면 그 사람이 비웃었다. '나나호시는 지금도 훈련을 하는데 잠이 오나요?' 라면서 뱀같은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게 싫어서 잠에 들 수 없었다. 사토즈카는 내 다크서클이 걱정이 된다며 시끄럽게 굴었지만 나는 상관없이 새벽 커피를 마셨다. 원래 단 걸 안좋아해서 새벽 커피를 마시는거지만 오늘따라 더 무슨맛인지 느끼지 못했다. 향은 좋았지만 맛은 나지 않았다.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우선 아르고나비스와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에 먼저 가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매케한 매연과 함께 덜컹거리는 회색 봉고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소노는 그 차가 누구 것이지 바로 아는 것처럼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여기야~"
미소노의 인사에 눈치를 챈 녀석이 얼굴을 빼꼼 내밀며 우리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린건 아르고나비스였다. 나나호시와 고료를 제외하면 그닥 안면식도 없는 사람들. 그나마 사토즈카의 남동생정도가 말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레온! 켄타씨도 안녕하세요."
"시,실례하겠습니다."
"차를 어제 빌려놔서 다행이야."
"그보다 나나호시는 괜찮은거야?"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게 벌써부터 시끄럽고 짜증이 올라왔다. 고료부터도 시끄러운데 점점 시끄러운 녀석들이 늘어나니 두통이 도 또지는 것 같다. 내가 얼굴을 찡그린걸 사토즈카가 눈치 챈 모양인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어서 계획을 설명해주겠다며 조용히 하고 모이라고 했다.
"어제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하다.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어. 양해를 구하마."
"괜찮아 우린. 그보다 렌이 걱정이야. 어제 아사히가 상황을 보고 왔다고 들었는데 많이 심각해...?"
사토즈카의 동생은 그때 아버지를 봤으니까 더 걱정되는게 이해가 된다. 그 사람은 그야말로 뱀이다. 노래라는 선악과로 사람을 유혹하고는 바로 잡아먹어서 지옥으로 소화시켜 버리는 최악의 악마나 다름없다.
"나나호시는 그 사람에게 완전히 세뇌되었어. 너희들을 기억 못할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들은 아르고나 녀석들의 얼굴이 무너져내렸다. '역시 그때 말렸어야 했어' 사토즈카의 남동생이 손을 벌벌 떨며 중얼거렸고 사토즈카가 그 옆에서 그를 다독여주며 괜찮을거라고 안심시켰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료는 자신이 거기에 없었다는게 너무나 한탄스러워서 얼굴을 심하게 구겼다. 노란 머리를 한 키가 작은 녀석도 눈썹을 누그러뜨린채 울상이었고 초록 머리를 한 녀석이 그녀석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렌이 우릴 잊을리가 없어. 라며.
사토즈카는 헛기침을 하더니 바로 계획을 설명했다. 총 9명이 둥그렇게 모여 사토즈카의 계획에 귀를 기울였다. 아르고나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계획을 들었다. 지금만큼 조용했던 적이 있던가.
"먼저 차는 두 개로 움직인다. 아르고나비스는 유우토가 운전하고 자이로악시아는 미유키가 운전할거야. 목적지는 내가 유우토에게 전달할게. 괜찮지?"
"넷!"
고료는 손을 들어올려 딱딱한 경례자세를 취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사토즈카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듣는다.
"도착한 다음에는 경비에게 안걸리게 조심하면서 들어갈거야. 목적지는.... 음,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지? 나유타."
"칫. 18층. C동 1804호실이다."
"그렇다니까 다들 다른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먼저 들어간 쪽이 시간을 끌어줘.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인수를 불리고 나서 가는게 좋으니까. 나나호시를 구해내는건 모두와 함께다. 알겠지?"
"네."
아르고나비스는 모두 입을 맞추며 합창을 했다. 나도 계획은 얼추 들었으니 바로 자이로악시아의 차에 몸을 싣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미안미안. 나유타. 이 차 3명밖에 못타서. 미안하지만 아르고나비스랑 같이 타야겠는걸?"
"하아?"
"미안하다 나유타. 차를 잘못 선택했어. 유우토랑 같이 타고 가. 그리고 지름길이라던가 그런건 너가 더 잘알잖아? 먼저 도착하면 바로 나나호시를 구해."
"......"
사토즈카는 내 등을 밀면서 아르고나의 차에 나를 밀어넣었다. 적잖이 당황한 고료의 얼굴이 마음에 안들지만 곱씹어보면 맞는말이다. 잔뜩 상처가 난 회색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승차감도 별로고 운전사는 더 별로다. 그래도 참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나의 머릿속은 온통 나나호시를 그 지옥의 소굴에서 구해야한다는 생각뿐이다.
"미유키씨. 자리 있었는데 왜 나유타한테 거짓말 한거에요?"
"미안미안~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이 안나서."
"나유타는 아르고나로 보냈어. 우리도 출발하자."
"켄켄, 저 뒤에 있는 검은색 차들은 어떻게 해?"
"에? 뒤에 차?"
"레온. 뒤에 보지마. 미유키. 출발해."
"앗. 네."
"레온군. 안전벨트 제대로 해라."
"어린아이도 아니고... 알겠어요."
-
익숙한 거리. 어릴때 아버지가 자주 데려가줬던 그 거리다. 나는 어릴때 차가운 공기를 마시는걸 좋아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미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은 그 어린 기억은 진작에 잊어버렸지만 이렇게 차를 타고 그 거리를 달리고 있으니 괜스레 창문을 열고 싶어졌다. 창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아르고나의 키보드가 창문을 내리려는 나의 손을 잡고 저지했다. 자신들의 차라고 괜히 신경질을 부리는건가 싶었지만 키보드의 눈이 꽤나 진지해서 잠자코 맞춰주기로 했다.
"뭐냐."
"뒤에 검은 차가 따라오고 있어."
"우리 팀이잖아."
"아니 그 뒤에. 본적없는 외제차야. 어쩌면 우리를 미행하고 있는걸지도 몰라. 창문은 열지 않는게 좋겠어."
시시한 녀석들 뿐이다. 녀석들의 말에 질린 나머지 밀린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에 팔짱을 끼고 좌석 뒤로 쭉 기댔다. 승차감은 여전히 별로지만 나나호시를 구하고 나면 이 구린 차하고도 안녕이다.
"유우,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돼."
"알았어."
분명 이 거리에서 지름길은...
"어이 오른쪽 말고 쭉 직진해라."
"어,어?"
칫, 역시나 운전사가 구려. 고료는 내 말에 당황했는지 약간 핸들을 휘청이더니 자세를 고쳐잡고 직진했다. 뒷좌석에 있는 드럼과 키보드가 서로 나뒹굴더니 운전을 구데기같이 한 장본인에게 제대로 안할거면 다른 사람이랑 바꾸라며 구박을 했다. 고료 옆에 있는 사토즈카의 동생은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 길 맞는거지...?"
"내가 이 거리를 얼마나 많이 와봤는지 알기나 하겠냐. 잔말말고 내말 들어. 그게 지름길이다. 너희도 나나호시를 구하고 싶은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형이 알려준 길하고는 달라서."
"사토즈카는 네비게이션에 나온 길을 알려준거니까 당연한거다. 내 지름길을 못믿겠다면 내려라. 나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안되지! 나유타는 운전 못하잖아. 아무튼 이젠 나유타 말대로 지름길로 갈테니까 뒤에서 얌전히 앉아있어."
나나호시 렌. 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냐. 눈을 감으면 나나호시가 보인다. 어제까지 옅은 미소로 나를 맞이하던 그 눈이.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어. 목소리는 여전히 청아했지만 어딘가 병들어있던 그 얼굴이. 달싹달싹 움직이는 입술의 안쪽에서 살려달라고 말하는 혀의 움직임이. 평소대로 말했다면 바로 내가 달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뻣뻣해보이던 머리카락, 숨도 시간에 맞춰 쉬는듯한 바른 몸가짐. 퍼석해진 입술. 그대로 그 뱀에게 삼켜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네가 하고 싶었던건 뭐냐. 선악과를 베어물고는 죄악감에 발버둥치는 불안한 인간이라도 되고 싶었던건 아닐테다. 그러니...
'살려줘. 나유타군.'
그런 입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거다. 그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나에게는 전달되기를 바랐던 너의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번엔 내가 너를 구원해주겠어.
-
사토즈카 켄타 side
나유타를 아르고나로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뒤에 수상한 차량 2대가 따라오고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미유키랑 료도 바로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레온에겐 말하지 않았다. 레온은 아직 어리고 이런건 어른이 해결해야하는 문제니까. 미유키에게는 적당히 따돌리라고 말했지만 미유키의 운전실력이 꽤나 거칠었기 때문에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끼익-
"우왓! 미유키씨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요?"
"미유키. 무슨일이지?"
"켄타. 앞엘 봐."
"....!"
이미 따돌렸다고 생각한 검은색 외제차들이 앞에 멈춰있었다. 외제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건장한 체격의 검은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었다. 성큼성큼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니 내가 다 오싹했다. 순간 나유타를 아르고나 쪽으로 보낸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유키는 침착하게 차 문을 잠갔다. 그 남자들이 우리 차를 둘러싸고 창문을 내리라며 노크를 했다.
"료. 레온 잘 잡고 있어."
"응. 맡겨줘."
료와 레온은 뒤에 있어서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료가 운전을 해서 레온과 둘만이라도 여길 빠져나가게 하면 될 것이다. 미유키가 천천히 창문을 내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차에서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불쾌하거든요? 저희는 바빠서 이만."
"좋은말 할 때 내리는게 좋을거다. 네녀석들이 무슨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나는 미유키와 수신을 주고 받고는 다같이 내리기로 결정했다. 미유키와 내가 먼저 천천히 내렸고 뒤에 있는 료와 레온이 같이 내렸다. 부탁이니 별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설마 앞에 먼저 간 아르고나와 나유타에게도 이 사람들이 접근한건 아니겠지. 이런 상황에서 미유키는 답지 않게 긴장하고서는 나에게 속삭였다.
"어이 켄타. 이녀석들 몇명 안되는데 내가 앞장서서 녀석들의 발을 잡을 테니까 네가 운전해서 출발할래?"
"뭐? 정신이 나갔구나. 지금 상황에서 총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료는 레온을 뒤로 숨기듯 레온을 최대한 방어하며 차에서 내렸고 그 남자들을 노려봤다. 레온도 똑같이 노려봤지만 료가 계속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미유키 말대로 저 사람들과 한바탕하고 레온이라도 여기서 탈출시켜야 하는걸까.
"케...켄타씨..."
"레온!"
최악의 상황이다. 남자들 중 한명이 료 뒤에 있는 레온에게 접근해서 레온을 인질로 잡았다. 심지어 권총을 꺼내들어 레온의 옆구리에 가져다댔다.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질 않았다. 저 사람들이 정말로 레온을 죽이려고? 왜? 목적이 뭐지?
"이자식들이...! 레온군을 놔줘!"
"레온은 아직 어린 아이라고!"
미유키와 료가 분노하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했다. 간신히 미유키의 주먹을 내가 감싸고 내려놓았다. 하필이면 레온을 인질로 잡다니. 저 사람들도 아주 머리가 없는건 아니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레온은 중요한 사람이다. 아니 자이로악시아 전원이 중요한 사람이지만 레온은 그중에서도 나유타와 마찬가지로 가장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동생처럼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료에게 레온을 부탁했던건데.... 아니지 료가 나쁜게 아니다. 뒤에서 허를 찌르는 비겁한 녀석들.
"이녀석이 죽길 바라지 않는다면 잠자코 우리를 따라와라."
"뭐라고? 이게 미쳤나! 우리는 지금 바쁘다고!"
"어짜피 이류 코우가가 있는 곳으로 가는거겠지?"
"어,어떻게 그걸..."
"아사히 나유타를 봤다. 네놈들이 하는 생각은 다 알고 있다. 그래봤자 고작 대학생들. 너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닌걸 잘 알고 있을터. 차는 여기에 두고 저 차에 타라."
레온을 제외한 모두는 저 남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버티겠다고 용을 쓰던 미유키도 남자 두세명이 달려들어 제압하더니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해졌고 료와 나는 레온을 계속 바라보며 차에 몸을 실었다.
"차에 탔으니 레온은 풀어줘."
료는 자신이 레온을 못지켰다는 죄책감이 들었던것인지 계속해서 레온을 불렀다. 레온을 자신의 옆에 두어야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이런 상황에 나유타가 없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레온에겐 미안하지만 인질이 나유타가 아닌 레온이라는게 다행이였다. 레온을 인질로 잡고 있는 남자는 그랬다간 너희들이 동시에 다 달려들면 어쩌냐며 진짜로 총을 쏘고 싶진 않으니 조용히 하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레온은 옆구리에 총이 닿는게 무서웠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나저나. 이 남자애 엄청 미소년이잖아? 볼도 말랑할 것 같고. 엄청 귀여운데~"
"어이 멋대로 만지지 마라. 인질이다."
"인질이니까 만지자는거지. 이런 경우 흔치 않다고?"
자기들끼리도 단합이 잘 안되는 모양인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다시한번 레온에게 미안하며 감사하다.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서 성추행을 당하는게 나유타가 아닌 것에 감사하다...
"으으... 그만..."
"거봐! 엄청 부드러워. 분명 나이가 어리다고 했지?"
레온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남자가 레온의 볼을 찌르며 성추행을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보기가 힘들었고 미유키가 지금 어린아이한테 무슨짓이냐며 당장 성추행으로 경찰에게 신고할거라고 버럭 화를 냈다. 료도 맞장구를 치며 차안이 덜커덩거렸다. 앞에서 운전을 하던 다른 남자가 조용히 하라며 큰소리를 치자 그제서야 다들 조용해졌다.
"미성년자니까 그만해라."
레온을 인질로 잡은 남자는 레온이 미성년자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을 한 남자는 모른다. 역시 저 인질로 잡고 있는 남자가 수상해.
"레온군한테 한번만 더 손 댔다간 가만 안둬!"
"인질이라면 여기에도 있으니까 레온을 놔줘."
"그건 안돼. 이녀석이 제일 어리지? 그러니까 이녀석으로 고른거다."
레온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고 옆구리에 총을 더 가까이 붙였다. 결국 미유키와 료도 금방 다시 수그라들었다. 레온을 지키지 못한 내가 한탄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남자가 어째서 레온이 가장 어리다는걸 알고 있는건지 의심스러웠다.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
"분명 너는 사토즈카 켄타 맞지?"
"그렇다. 어째서 우리들을 알고 있지? 레온이 가장 어린 것도 알고 있고 우리가 이류 코우가에게로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이유가 뭐지?"
".....확실히 네 녀석은 다른 녀석들보다 머리가 비상한 것 같군."
남자는 레온을 스리슬쩍 풀어줬다. 어안이 벙벙해진 레온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듯 눈만 꿈뻑거렸지만 곧바로 료와 미유키가 레온을 낚아채서 자신들의 품에 안았다. 이제는 더이상 놓치지 않을거라는 료의 결의에 찬 얼굴과 미유키의 책임감이 더해져서 둘은 으르렁거리며 남자를 째려봤다. 마치 새끼 사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부모 사자같았다.
"잠깐 기다려. 이야기를 들어보자."
"켄타 너...!"
"지금 여기서 날뛰어봤자 이 사람들의 손 안이야. 또다시 잡힐게 뻔해. 자, 어서 이야기해주시죠."
남자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남자의 말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그도 역시 이류 코우가를 쫓고 있었다. 우리를 갑자기 납치한 이유를 묻자 남자는 금방 입을 닫았다. 이것도 이류 코우가와 연관이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 레온을 다치게 하지 않을거란 약속을 얻어낸 이후로는 더이상 묻진 않았지만 차안에 감도는 냉랭한 분위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우리 모두 같은 입장이라는거잖아. 이봐요. 그러면 우리를 풀어주시죠?"
미유키는 건방진 태도로 남자를 자극하는 말을 했지만 남자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그남자의 말대로 우리는 고작 대학생. 아무리 내가 머리가 좋아도 고작 생각하는건 거기서 거기라는건가.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서더니 운전사가 우리를 불렀다.
"도착했다."
남자는 시간이 됐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 문을 열었다. 운전사의 말대로 도착한 곳은 이류 코우가의 사무실 빌딩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르고나의 차는 없다. 아직 도착을 안한건가.
"아사히 나유타는 먼저 도착했을 것이다."
"....!"
"그래봤자 대학생이 생각하는걸 내가 모를줄 알았나."
"나유타에게는 손대지 마시죠. 다른 사람은 참을 수 있어도 나유타는 안됩니다."
"그가 우리 말에 순순히 따라준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겠어."
미유키, 료, 레온, 그리고 나 순서로 우리는 나란히 줄을 서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 뒤에 따라 들어온 검은 남자들... 상당히 신경쓰이지만 뭔가 저항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저항을 했다가는 총격전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이류 코우가 그리고 나유타의 안전도 무사하지 못하다.
"그러니까.... 몇층이더라... 어이 켄타."
"18층. C동 1804호실이다."
미유키가 꾸물대는 사이에 먼저 이류 코우가의 사무실을 말한건 그 남자였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말했지 않았나. 우리도 이류 코우가를 만나러 왔다고."
18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8층으로 올라가는 그 정적의 시간동안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나유타는 무사할까. 와타루는 괜찮을까. 나나호시는 구해냈을까. 이류 코우가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복잡한 생각이 하나둘씩 뇌리를 스쳐지나가자 남자가 지루하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거죠."
"하, 당돌한 대학생이군. 하긴 넌 지금까지 만나온 다른 꼬맹이하고는 달랐다. 내 아들하고도 상당히 다르더군."
"아들도 있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해서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난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이류 코우가를 만나러 온거다."
"네?"
"도착했다. 내려라."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등 뒤에 있는 검은 남자들의 압박에 밀려서 떠밀려나가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류 코우가의 사무실에 섰다.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역시 우리가 가장 먼저 온걸까. 우리가 문을 열려고 하자 남자는 손짓으로 이 문을 열라고 다른 부하들을 시켰다. 문고리를 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바로 문부터 몸으로 부쉈다. 레온은 깜짝 놀랐지만 금방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
이류 코우가 side
나유타.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 나는 내 아들을 사랑했고 또 질투했다. 내 아들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뛰어난 보컬의 실력이 잠재되어있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아들의 실력을 질투했다. 내 아들이 나보다 더 잘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한편으로는 나를 뒤따라 밴드의 보컬이 되어 세계에서 제일가는 보컬리스트가 될거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아들을 그대로 살려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뛰어넘는건 나 뿐이다. 그 외에 있어서는 안된다.
"retake! retake!"
나유타를 대신해서 나타난 아이가 바로 이 아이. 나나호시 렌이었다.
"허억...허억...."
"그정도인가요. 정말 나유타도 당신도 저를 실망시키기만 하는군요."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나유타를 이을 또 다른 도구가 나타난 것이다.
나나호시 렌을 처음 봤을 때 든 감정은 그야말로 '그 사람'의 아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나의 라이브를 보러 와주는 광팬이 있었다. 이름은 뭐였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내가 언더에서 활동했을때부터 항상 빠지지 않고 온 사람이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 사람의 눈동자가 있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남청색의 눈동자와 푸른빛의 바다를 품은 머리가 인상깊었던 그 팬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류씨....? 저 잠깐 음료수를 사러 나갔다 와도 되나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대로 나나호시 렌의 목소리를 빼앗고 그에게서 노래를 빼앗으면 이제 나에게 걸림돌이 되는건 아무것도 없을것이다. 나나호시 렌의 눈동자는 이미 텅 비어있다. 나에게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싶다며 초롱초롱 반짝이든 눈으로 다가왔지만 금새 그 미소는 잃어버렸다. 눈은 그대로 소용돌이의 숲으로 빠져들어가버렸다. 이제 더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뱀의 소굴에 무작정 찾아온 벌이에요.
나나호시 렌이 음료수를 사러간다고 하고서는 오지 않길래 느낌이 좋지 않아 사무실 밖으로 나온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나호시 렌을 구하러 온 친구들과 나의 아들. 나유타가 나나호시 렌을 설득하고 있었다. 아르고나비스라고 했던가. 그런 어중이 떠중이같은 밴드가 나나호시 렌과 같은 보석을 가지는 것은 분에 넘친다.
"렌! 어서 우리랑 같이 돌아가자!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아르고나비스야!"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나나호시 렌을 먼저 설득했다. 정의감에 찬 저 눈동자. 정말 그 사람과 닮아있다.
"나나호시. 넌 지금 거기서 뭘하고 있는거지?"
"아...."
"말해라."
".....나유타군.... 나는...."
깜찍한 짓을 저질러주는군. 고작 대학생들이.
"나나호시 렌! 연습 시간입니다. 돌아오세요."
"아! 네!"
"잠깐 렌!"
"냅둬. 잡지 마."
"하지만... 이대로 렌을 놓치면..."
나의 아들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올줄은 몰랐는데. 아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어려울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까이서 보니 많이 야위었구나. 불쌍하게도.
"그 연습. 나도 참관하겠다."
"당신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하는게 아니라 보는거다. 보는 것도 재능이 필요한가?"
".... 꽤나 발칙하군요. 좋아요. 다들 들어오시죠. 나나호시 렌. 모두의 앞에서 노래하세요."
나유타와 렌. 이 두사람이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난 그것이 궁금했다. 나를 뛰어넘어서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그 싹을 잘라버릴 것이다. 그러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그들이 더 성장해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상대가 되었을 때 날개를 부러뜨리는 것. 얼마나 짜릿한가. 나유타. 당신은 어떻죠? 나를 이기고 싶을텐데. 그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겠죠.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며...
"어쨌든 안으로 들어와서 녹음을 해보면 알 수 있을..........뭐야?"
사무실에 먼저 손님이 들어와있다니. 이 무슨 버르장머리없는 짓이야.
"형!"
"와타루. 나유타. 다행히다. 먼저 와있었구나.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걱정했어. 그리고 나나호시군은.... 아 다행히 구해냈구나."
"구해내? 네 눈에는 이게 구해낸걸로 보이냐?"
나유타가 얼굴 찡그리며 상대편을 노려봤다. 아, 나유타의 밴드 친구들이군. 자이로악시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뭐지?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들어오면 안된다는걸 모르진 않잖아요? 왜 갑자기 들어온거죠?"
"멋대로 들어온건 실례했습니다. 문이 열려있었어요."
"문이...열려있어?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자이로악시아 옆에 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을 노려봤다. 이 순진한 대학생들을 꼬셔서 무슨짓을 하려고 이러는건가.
"............."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류 코우가씨. 미안하지만 당신이 데리고 있는 제 아들을 돌려줬으면 해서요. 아들이 무서워하잖아요?"
"........................."
생각났다. 나나호시 렌이 왜 그 광팬과 닮았냐는 생각이 들었나 했더니만 당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잠깐만 아들이라니 설마...!"
"뭐야 그럼 렌군 아버지?!"
"그럼 여태까지 우릴 납치하고 총을 든것도 나나호시군의 아버지인거에요?"
"나... 너무 혼란스러운데 지금.... 그럼 나 나나호시의 아버지한테 성추행 당한거야...?"
"성추행은 내가 안했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사과하고 넘어가마."
나나호시 카나메. 나의 팬이자 나의 스토커. 그리고 나를 병들게 한 원인.
"..........."
나는 얼굴을 심하게 무너뜨렸다. 절대 남 앞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낸적은 없었는데 이 사람 앞에서는 제정신이 유지가 안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다.
"나나호시 렌. 설명하세요. 저사람이 당신 아버지인가요?"
"..."
"나나호...!"
"어이. 나나호시에게 뭐라고 할게 아니잖아."
거칠게 나나호시 렌의 손목을 잡자 그 손목을 다시 잡은건 나의 아들 나유타다. 불타오르는 그 눈동자로 날 삼킬듯이 노려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지.
".......이봐."
"여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요? 네? 코우가씨."
남자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었다. 아아, 기억속의 그 사람이 맞다. 바다를 품은 군청색 머리색과 탁함을 한 방울 섞은듯한 그 지저분한 눈동자색. 얼굴 생김새라던가 그런건 이쪽의 나나호시 렌과 굉장히 닮았지만 전체적으로 색채가 많이 사라진 탁함의 결정체.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걸까.
"신사적이지 못한 방법을 써서 미안합니다. 이쪽도 모두 제 밴드 친구들이에요."
나나호시 카나메 뒤로 다른 양복의 남자들이 저마다 정체를 드러냈다. 저 사이코가 밴드를 결성했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하아아..."
"한숨을 내뱉는 모습도 근사하세요. 코우가씨."
".......닥쳐."
나는 얼굴을 무너뜨리고 고개를 숙였다.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 사이로 그 사이코를 바라봤다. 아니 나나호시 카나메. 카나메. 카나메. 카나메. 내가 왜 이 이름을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을까. 옅게 웃고 있는 저 얼굴이 짜증난다.
"이봐. 설명해라. 당신이 나나호시의 아버지야?"
"코우가씨의 아들인 나유타군 맞지? 렌에게 나유타군에 대한 소식은 간간히 들어서 알고 있단다. 노래를 굉장히 잘한다고 하던데. 코우가씨하고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더라. 응원하고 있어."
상큼하게 웃는 얼굴이 나나호시 렌과 닮았다.
"렌. 이리로 오렴. 이런 사람 밑에서 배워봤자 좋을게 없어. 지금도 노래 부르는게 행복하니?"
"......"
"나유타군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잖아. 나유타군이라면 지금 옆에 있어. 눈치채지 못했을까?"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렌. 아빠 말을 듣지 않아도 돼. 하지만 친구들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들으렴. 너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많아. 이렇게 너를 구하러 온 친구들이 많잖아. 그것만으로도 아빠는 감사하게 생각해."
"으으..."
나나호시 렌이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정도로 혼란스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처럼 세뇌를 시켜놨는데 저 새끼가 다 망칠줄이야. 복병이다. 아니 아예 신경도 못쓴 내 잘못이 크다.
"렌! 괜찮아?"
"아으.... 유..유우토....와타루.... 리오.... 반리...."
"렌 우리가 기억났어?"
"렌군! 우리가 구하러 왔어! 어서 돌아가자. 우리의 집으로."
"나나호시 기억해내라.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아르고나비스잖아."
눈앞에서 나나호시 렌을 놓칠 수는 없어 손을 뻗으려고 하자 아르고나비스 녀석들이 나를 향해 거세게 노려봤다. 더이상 나나호시 렌에게 손대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차갑게 노려보는 그 네개의 얼굴들과 질렸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한심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 이대로 놓치게 된다고? 안돼. 안돼. 안돼!!!
"코우가씨. 우리는 따로 얘기를 하죠."
"........"
쨍그랑-
나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다. 무엇보다 난 언제나 최고를 자처했다. 그런 나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는거다.
"코우가씨! 애들이 다치잖아요!"
"시끄러....."
"코우가씨는 변함이 없네요. 늘 그렇게 고압적으로 나가니까 아무도 안남는겁니다."
"시끄러...시끄러...."
"물론 화내는 코우가씨도 근사하지만요. 아이들 앞에서는 자제해주세요. 교육상 좋지 않으니까요. 렌도 어릴땐 꽤나 말썽쟁이어서 혼났다고요? 나유타군은 어릴때 얌전했는데~ 어릴때 렌이랑 같이 놀게 해줬는데 기억이 안나봐요. 그렇죠?"
"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시끄러!!!!!!!!!!!!!!!!!!!!!!!!"
나나호시 카나메. 난 네놈이 가장 싫다. 역겹다. 악마 새끼.
-
나나호시 카나메 side
이제 모든 것을 말해야하는 때가 찾아왔다. 나는 이류 코우가의 광팬. 이른바 사생팬이다. 그에 관한것이라면 모든지 알고 있다. 그와 처음으로 만난건 8월 12일 오후6시 55분 34초. 아주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여름인걸 잊어버릴 정도로 시원한 노래를 불러줬다. 나는 원래 락밴드를 좋아했어서 여러 라이브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관통하는 밴드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만났다. '샤나'라는 밴드를.
"샤나입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그 찢어질듯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노래가 내 심장을 관통했다. 노래에 잠식당했다.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손발이 저렸다. 오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정도로 웅장한 노래였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바로
샤나의 보컬 이류 코우가다.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당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첫사랑이나 다름없다. 평범한 여자와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심장 한쪽에는 이류 코우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팬미팅에 갔을때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12월 24일 오후 8시 15분 45초.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한 팬미팅. 많은 인파가 몰려서 질식사 할뻔했던 그 날을 잊을쏘냐. 힘겹게 삿포로까지 가서 그를 영접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잘생겼다. 늘씬한 다리, 떡 벌어진 어깨, 샤프한 턱선, 날카로운 눈매, 끈적한 목소리, 묘하게 음란한 말투, 패션센스는 또 얼마나 멋졌던지. 그야말로 그는 신이었다. 완벽했다.
"아... 저...! 데뷔때부터 팬이 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주세요!"
"네. 열심히 활동할테니 노래를 많이 들어주시길 부탁드려요."
처음으로 그와 말을 나눴다. 그때 말했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아 당신을 계속 따라다니게 되었다. 패션, 노래, 이상형,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장소, 집, 가족관계, 팬티색깔, 선호하는 체위, 이상성벽.... 그에 대한거라면 다 알고 있다. 그의 어디 한군데 싫은 곳이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신님을 따르는 신봉자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코우가씨는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아참! 아들은 어떻게 크고 계세요? 지금쯤이면 엄청 귀여울 나이죠~"
".........네?"
"아들이요! 이름이 분명 나유타였죠? 분명 엄청 귀엽겠죠. 코우가씨를 닮아서 아름다울테고~ 저한테도 아들이 있는데 나유타랑 동갑이에요! 분명 어디 놀이터에서 둘이 만난적이 있을거에요. 아드님한테 물어보면...."
"제가 아들이 있다는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알긴요. 말하셨잖아요? 저한테."
"전 아무한테도 결혼한 사실을 알린 적이 없습니다. 매스컴에도 올린 적 없고요. 만약 알렸다고 해도 아들의 이름까지 알리진 않았을겁니다. 상당히 불쾌하군요."
그는 내 앞에서 싸인본을 찢었다. 아들이 있다는걸 나한테 말해줬잖아요 코우가씨. 대저택에서 살면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신나게 자랑하셨잖아요. 저는 그때 몰래 화장실에서 도청을 했을 뿐이지 모두에게 말한건 사실이잖아요.
"코,코우가씨... 이게 무슨..."
"불쾌합니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내,내 코우가씨 싸인이..."
코우가씨의 싸인을 코우가씨가 찢어놓았다. 이렇게 황홀할 수가 있을까. 본인이 본인의 싸인을 찢다니. 너무 섹시해. 아름다워.
-
그 후로 이류 코우가의 팬미팅에 간적은 없다. 대신 몰래 그를 지켜보았다. 나는 코우가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니까. 그가 오지 말라고 한 팬미팅에는 오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건 모두 조사했다. 아들을 매우 혹독하게 다뤄서 아들과 아내를 버렸고 해외로 데뷔에 성공하여 일본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모았다. 그리고 지금 이자리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아들끼리 경쟁하는건 좋지 않아요. 그렇죠? 코우가씨.
"너희들을 거칠게 다룬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거라 이해해주렴. 너희가 아니면 난 이곳에 오지 못했거든."
"그럼 진짜로 렌의 아버지세요?"
"그래, 렌은 지금 충격이 상당히 클테니 조금 쉬게 내버려두렴."
아르고나비스의 리더. 고료 유우토가 렌을 부축하여 쇼파에 눕혔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시작했다. 길고 긴. 그 이야기를. 이 이야기는 너도 알아야 한단다. 나유타군.
"난 나나호시 카나메. 렌의 아버지이자 이류 코우가의 팬이야."
어렵사리 이 말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들에게 내가 샤나의 팬인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그 이유도 역시 코우가씨가 있기 때문이겠지. 사랑하는 코우가씨. 경멸어린 눈빛으로 절 바라봐주시는 모습도 어쩜 아름다우실까....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샤나의 데뷔무대부터? 아니면 해외로 나간 이후의 이야기부터? 나유타군은 어디서부터 듣고 싶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보다 당신이 정말로 나나호시의 아버지가 맞아?"
"나유타군은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아주 어릴때 너희 둘이 만난 적이 있었어. 렌은 어릴때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했거든. 나유타군은 분명 코우가씨가 있는 대저택에서 살았었지? 꽤나 잘사는 어린 도련님이여서 고용인들이 잘 보살펴주었다고 들었어."
나유타 뒤에 있는 렌이 조금 신경쓰였지만 렌을 뒤로 숨기는 나유타를 보니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코우가씨를 동경해서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무대는 모두 보러갔고 팬싸인회도 빠지지 않고 갔다는 이야기나 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나유타도 알아야 할 사건들이었고 렌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이류 코우가의 실체를.
나의 만행에 나유타의 표정은 물론이고 렌의 친구들도 점점 굳어갔다. 나의 성격이 뒤틀리고 이상하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고작 이 어린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총으로 협박하고 납치를 한게 절대 잘한짓은 아니란걸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코우가씨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해해주길 바랐다.
"혹시 렌한테도 비슷한 행동을 하신건 아니시죠...?"
렌의 친구인 아르고나비스의 리더가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많이 당황한 것 같았지만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나의 뒤틀린 행동은 오로직 이류 코우가를 향할 뿐 그외에는 관심이 없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고 평범한 아버지로 아들을 맞이했다. 그밖에는 없다.
"코우가씨. 아들은 데려가겠습니다. 이런식의 방법은 더이상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아요. 내 아들도 당신도 아들도... 정 안되면 저라도 도와드릴게요. 저도 당신을 동경해서 밴드를 결성했으니까."
"............."
"아아, 예민한 코우가씨 멋있어."
"닥쳐라 나나호시 카나메. 구역질이 나오니까."
"코우가씨에게 힘이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닥치라고."
"어떤 일이 있든 전 당신 편이니까요. 한번 팬은 영원한 팬. 당신이 범죄를 저질러도 전 당신을 믿을게요."
"하아아......"
섹시하게 내뱉는 한숨이 어쩜 저리 멋있으실까. 또다시 반하게 되었다. 아마 내가 이류 코우가를 싫어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같은 일도 아들을 위해서 더러운 손을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코우가씨를 원망하진 않는다. 렌도 원했던 일이었고 렌 스스로가 결정했던 일이다. 내가 코우가씨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단 한가지.
왜 내가 아니라 렌을 선택한거지?
아들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다. 렌은 나보다 훨씬 노래를 잘하고 음악을 좋아하니까. 처음 데려갔던 락 페스티벌에서 아들의 눈을 보고 느꼈다. 이 아이라면 분명 이류 코우가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겠지. 하지만 무작정 좋은건 아니었다. 내가 먼저 좋아한 이류 코우가를 아들에게 빼앗기는게 싫었다. 보컬을 괴롭히고 싶다면 아들이 아닌 나라도 기꺼이 어울려줄텐데. 당신을 위해서라면 성대도 바칠 수 있다고요.
-
나나호시 렌 side
"으으...."
"렌? 괜찮니?"
"음.... 어...라? 누구..."
"우리 렌. 많이 놀랐나보구나. 아빠야."
"아빠..."
"그래. 아빠. 너의 아빠 나나호시 카나메."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틀어박혀서 나가질 않는다. 따뜻한 손이 내 이마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나와 닮은 짙은 바닷빛 머리카락이 희미하게 보였다. 성숙한 얼굴에 잔뜩 누그러뜨린 눈매. 나와 닮았지만 나와 조금 다른 사람.
누구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빠가 아니야. 우리 아빠는 나와 다르게 생겼다. 난 선천적으로 엄마를 더 닮았기 때문에 아빠는 나와 전혀 다르게 생겼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락 페스티벌에 가게 되어 거기서 이류 코우가를 만난건 사실이지만 이 사람은 아니야. 우리 아빠가 아니야. 나는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상냥한 목소리 안에서 담겨져 있는 '말하지 마'라는 협박의 메시지를 느꼈다. 이마를 감싸쥔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나의 목을 살포시 누르고 있었다. '말하면 죽일거야'라는 암시였다.
"이런 식은땀을 흘리는구나. 괜찮니?"
"아...네.... 저기 아직 상태가 안좋아서... 죄송해요 아빠. 전 괜찮으니까..."
"응. 그래. 난 우리 아들을 믿어. 친구를 많이 사귀어서 아빠는 기쁘구나. 그럼 친구들이랑 잔뜩 노래하고 음악을 즐기렴. 아빠는 가볼게."
"네에..."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내 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갔다. 유우토가 그 사람이랑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멀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고 나서야 몸에 힘이 풀리면서 긴장이 사그라들었다. 근육통이 찾아오는건 괴로웠지만 곧바로 나유타군이 다가와주었다.
"이제 알겠지."
"응?"
"이류 코우가에게 노래를 배우는건 관둬라."
"응... 그럴려고. 역시 나에겐 무리였던 거겠지."
"그런건 아니... 하, 됐다. 그보다 몸은 어떻냐."
"아직 조금 저려. 근육통인가봐."
"저 사람은 너의 진짜 아버지냐?"
".....아니."
"흥, 그럴 것 같았다."
"나유타군은 알고 있었구나."
"이상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었으니까."
나유타군은 항상 상냥하다. 나에게도 자이로악시아에게도. 그래서 더 나유타군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참에 나유타군에게 노래를 배워볼까? 라이벌인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줄까? 이류 코우가에게 정신을 빼앗겨 최면에 걸린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건 아르고나의 친구들에게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나유타군에게 심한 말을 했다는 것. 그 정도만 기억이 난다. 흐릿하지만 분명 난 그때 나유타군에게 '아사히군'이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유타군 표정은 너무나 슬퍼보였다. 사실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정신을 빼앗겨 심한 말을 해버렸다. 단 한번도 나유타군을 아사히로 부른 적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늘 나에겐 나유타군은 나유타군이었다. 그날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나는 아마 평생 그 말을 후회하며 앞으로를 참회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나유타군은 내가 하는 생각은 전부 시시한 것이라며 정정시켜주듯 나를 타일렀다. 지금도 내 손을 낚아채듯 잡고는 시답지 않은 생각 하지 말라며 경고 하고 있다. 너무 꽉 쥐어서 아픈 손은 덤이다.
"응. 고마워. 나유타군의 진심이 전해져."
"흥."
"그런데 저 사람이 내 아빠가 아닌걸 어떻게 알았어?"
"너랑 내가 어릴 때 만난적이 있다고 말했으니까."
내가 나유타군이랑 어릴때 만나? 그런 적은 없는데... 확실히 만난 적이 없으니까 바로 알아차릴만 하다. 나유타군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너를 어릴때 만났다면 이런 감정을 가졌을리가 없으니까."
"응?"
".... 이정도는 센스로 알아차려라 좀."
"아...아...! 그러네. 어릴때 우리 둘이 만났다면 분명 둘 다 알아차렸을텐데. 운명이라고 느끼지도 않았을거야."
"아니... 하아, 됐다."
나유타군은 섬세한 면이 있다. 지금처럼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센스있게 알아차리고 만다. 그런 섬세한 부분이 그의 음악적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 줄 것이 틀림없다. 나유타군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 안에서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그것이 그만 밖으로 흘러넘쳐서 액체로 변할 때는 옆에 있지도 않은 나유타군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나유타군. 고마워 구하러 와줘서."
"그 사람에게 휘둘리는게 보기 싫어서 그랬을 뿐이다."
"응. 알고 있어. 나유타군의 그런 점이 상냥해서 좋아해."
"하?"
"헤헤."
나는 저린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는 해맑은 미소를 내보였다. 나유타군도 이렇게 웃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응?"
"자이로악시아는 그대로 유지한다."
"....!"
기다렸던 말. 나유타군에게 자이로악시아는 소중하니까 절대 관두지 않을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말을 나유타군의 입에서 나오길 빌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몸의 저림이 풀린 기분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왕자님의 키스를 받고 깨어났다는 동화 속 내용이 완전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벅차오르는 기분을 숨길 수 없어서 표정으로 다 풀어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큰소리로 소리치며 자이로악시아의 기사회생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지만 몸은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잘됐다...흐윽."
"울 시간이 있나?"
"으응. 울 시간 없지."
나는 흐르는 눈물을 급하게 소매로 닦으며 나유타군을 바라봤다. 결의에 찬 그 눈빛. 이류 코우가하고는 다른 날카로운 눈빛이 또렷하게 보인다.
"여기까지 올라와라. 나나호시 렌. 그때 또 보자."
"응! 먼저 기다리고 있어. 반드시 따라잡을게."
아르고나비스는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을 뿐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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