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퇴고를 못함. 고증 못 살림. 일단 싸지르고 나중에 고치려고....
*모브캐 비중이 많음.
*1,2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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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미키
[불화살]
오토나시산(音無)은 말 그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 산이다. 동물들의 울음소리조차 희미하고 조용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산을 넘을 때마다 어느 때보다 더 신중을 기울여서 앞으로 나아갔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은 어떤 것보다 무섭기 때문이다. 맹수들 역시 이 산에 있으면 늘 조용하고 음습하게 먹이를 물어 채갔다.
"저쪽이다! 저쪽으로 몰아!"
"오른쪽으로 갔다!"
이렇게 고요한 산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흔치 않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고요한 산의 적막을 깨는 산적들이 무서워서 기피했다. 호랑이 가죽을 비싸게 팔아서 그 돈으로 조직력을 구사하는 녀석들이다. 가끔은 호랑이 가죽이 아니라 산짐승 고기를 팔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상인들이 흘리고 간 물품들을 팔 때도 있다.
오토나시산 중턱에는 산적들의 근거지가 있다. 산 중턱을 넘으면 잔뜩 우거진 험한 가시풀 숲길이 있는데, 그곳을 지나면 이 산에서 가장 큰 산신령을 모시는 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산신령'이라 부르며 나무에 산신령이 깃들어있다고 믿었다. 그 나무를 거치면 계곡이 나오는데, 그 계곡의 하천에 산적들이 모여 살고 있다. 평상시에는 하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고 있으며 필요할 때에는 사냥을 했다.
"두목님! 두목님!"
"웬 소란이냐."
"우레산의 녀석들이 여기까지 들어왔습니다. 지금 당장 채비를 하지 않으면 들킵니다."
우레산의 산적들은 오토나시산의 산적들과 영역을 대립하는 녀석들이다. 이 험준한 산과 달리 우레산의 산적들은 비교적 평탄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이 왜 우레산을 버리면서 까지 오토나시산으로 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영역을 넓히고 싶었겠지. 때마침 상천에서 물고기 떼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다. 얼마나 많은지 물에 고기가 다 들어가지 못해 밖으로 튀어나온 녀석들이 팔딱팔딱 뛰다가 말라비틀어져 비린내를 풍기며 뻗어있었다.
"우레산 녀석들이다!"
"피해라! 피해!"
괴성을 지르며 뛰어오는 우레산의 산적들은 길이가 3척이나 되는 무거운 칼을 들고 무섭게 쫓아왔다. 달려오는 산적들도 있었지만 멧돼지나 산양을 타고 쫓아가는 무리들도 있었다. 다 같이 머리에는 여우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새들의 노랫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오토나시산의 첫 울림이었다.
오토나시산의 산적들이 아무런 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겁먹은 어린아이들은 울면서 도망가다가 멧돼지 발에 밟혀 죽어갔고, 산적들은 맞서 싸우다가 산양의 뿔에 받혀 큰 상처를 입고 비틀대다가 하천으로 빠져들어갔다.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 칼을 뽑아 들고 싸우다 그대로 절벽으로 떨어져 한마디의 외성만 남기고 떠났다.
그때였다. 오토나시산의 두 번째 울림이 시작되었다. 산적들의 영역다툼으로 치열해지고 잔혹해져 만가는 싸움 가운데에 한마디 지르지 않고 조용하게 엄습해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무리의 대장은 누군지 잘 모르지만 무리의 모든 사람들은 머리를 아래로 내려 묶고 있었다. 산신령 나무 위에서 차례로 내려온 무리들은 모두 자신들을 '닌자'라고 소개하며 그것이 오토나시산의 녀석이든, 우레산의 녀석이든 관계없이 싸움을 걸었다. 닌자라는 것에 놀란 도적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도망가는 녀석들이 태반이었고 몇몇의 용기 있는 녀석들은 싸움을 걸다가, 목숨이 아까워 도망치기 바빴다. 닌자 무리는 피 한 방울 만들지 않고 칼 하나 뽑지 않고 이 산을 점령했다.
"대장. 이 산 꽤 괜찮은데? 하천도 있고."
"듣자하니까 호랑이가 많이 출몰한다더군."
"호랑이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데~"
그 진중하고 무서운 닌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다쟁이에 활기찬 닌자 무리였다. 머리가 길든 짧든 누구도 머리를 위로 올려 묶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것이 이 무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였다. 산신령 나무의 저 맨 꼭대기 위에서 산의 지형을 살펴보던 '대장' 이 수색을 마쳤는지 한 번 뛰어올라 붕 뜨더니, 단숨에 밑으로 내려가 가뿐하게 땅에 착지했다. 각진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매, 잔뜩 삐져나온 앞머리도 그의 표식이 될 정도로 인상적이다. 새까만 흑진주 같은 머리를 두건 속에 감추고 있었으며 다른 닌자들과 똑같이 머리를 아래로 묶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무를까?"
대장의 목소리는 꽤나 경쾌하고 통통 튀는 청년의 목소리다. 그러나 경박해 보이지는 않고 진중함이 섞여있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대장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웃으며 술을 준비해야겠다며 축제 준비로 한창을 떠들어댔다. 대장은 부하들의 기쁨에 괜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수줍어 보이는 얼굴과 그에 어울리는 덥수룩한 머리는 한창때의 소년 같았다. 하마 슈이치로. 이 닌자 무리를 이끄는 대장으로 인덕이 넓고 상냥한 마음씨를 가진 닌자 같지 않은 닌자대의 대장이다.
"대장도 술 좀 마시지 그래?"
"애들이나 많이 마시라고 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
"어련하시겠어."
대장의 어깨를 잡고 옆에 앉은 사내의 이름은 키치(吉). 나이는 슈이치로보다 한 살 많지만 그의 통솔력과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를 대장으로 인정했다. 스스로 부대장이 된 키치는 슈이치로의 옆에 앉아 술잔을 권했다. 쭉 올라간 사나운 눈매에 머리는 잔뜩 삐쭉거리며 위로 올라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의 산짐승의 털 같았다. 그러나 행동은 늘 진중했고 부하들에게 모범이 되는 부대장이었으며 늘 동료들을 위하는 마음씨를 가졌다.
키치의 술잔을 받은 슈이치로는 한두 잔 걸쳤다. 투명한 청주가 술잔에 채워질 때마다 슈이치로는 술잔을 높게 들어 그 청주 안에 밤하늘을 담았다. 키치도 그에 대응하듯 술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대장은 닌술학원에 다녔다고 했지?"
키치가 입을 열었다.
"응."
슈이치로가 말했다. 뒤이어 키치가 마지막 술을 입에 털어 넣고 꿀꺽 삼킨 후 말을 이어갔다.
"지금도 그 동료들과 만나?"
"아니. 소식을 도통 알 수가 없어."
"졸업한 지 벌써 3년이나 됐으니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군."
키치는 슈이치로와 어깨동무를 했다. 친근하게 달라붙는 키치가 적응이 안되었지만 곧바로 그가 취한 걸 알고 어깨동무를 받아줬다. 슈이치로는 달밤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이 어딘가에 나의 동창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거라고.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오토나시산의 밤은 길고도 고요했다. 마치 모든 생물이 죽은 것처럼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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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슈이치로의 닌자대는 사냥을 하기 위해 산적으로 변장했다. 산나물을 캐고 멧돼지를 잡으면서 오늘 저녁에 먹을 식량을 비축해두었다. 키치도 슈이치로를 도와 부하들을 통솔했고 출중한 실력을 뽐내며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진에(仁ヱ)는 이 닌자대의 두 번째로 잘 나가는 닌자다. 나이는 슈이치로와 키치보다는 두세 살 정도 어리지만 실력만큼은 두 사람과 견줄 정도로 훌륭하다. 이름에 '인'자가 들어가는 만큼 굉장히 자비로우며 늘 신중을 기울이는 나이 때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그 큰 눈은 올곧았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닌자로 있을 때보다 싸움꾼으로 있을 때가 더 많았다.
"키치 형님. 이곳에 두면 될까요?"
"그래. 수고 많았다."
진에는 키치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키치의 의형제이기도 하면서 서로 동거 동락한 세월이 길었기 때문도 있을 터다. 진에는 늘 키치의 등을 보며 자랐고 키치처럼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물론 대장인 슈이치로도 존경했다. 자신의 의형인 키치가 인정하는 닌자였고 무엇보다 자신들을 거둔 대장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진에는 잡아온 물고기와 사슴을 창고에 넣고 문을 잠갔다.
"진에, 오늘도 한 잔 할 거지?"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삼금(三禁)도 모르는 거냐."
"오늘처럼 좋은 날에는 마셔도 괜찮잖아."
진에의 동기들은 차례로 소우지(宗二), 쥬지로(十次郎), 쿠이나(くいな)다. 나잇대는 모두 비슷했으며 진에보다는 실력은 떨어져도 할 때는 하는 녀석들이다. 진에는 자기 또래의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서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다. 소우지는 뒤의 친구들보다는 좀 더 진중한 편이지만 결정적으로 술을 너무 좋아하여 임무를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쥬지로는 동기들 중 가장 몸집이 크고 험악하게 생겼지만 유머를 즐기고 경박하여 진에와 임무를 맡을 때면 항상 고생만 하다 끝난다. 쿠이나는 더할 나위 없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의 사람이라 그렇다 할 특징은 없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을 맡지 못한다.
"너무 들떠 있지 마라. 이런 닌자대도 어쨌든 닌자야."
대장인 슈이치로가 세 명을 향해 면전을 주며 진에를 데려갔다. 방금 잡아 온 고기들을 손질하고 불을 피워 축제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천 마지노선의 돌길에 천막을 치고 임시 거주지를 만들어 동료들끼리 어깨동무를 하면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키치 역시 오늘만큼은 고민 없이 신나게 놀 생각으로 부하들의 준비를 도왔다. 방금 잡아 온 산양 고기, 물고기들, 산나물, 죽순... 먹을게 산더미라 어디서부터 먹어야 좋을지 모를 정도다.
저녁이 다가오고 고소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축제가 한창 무르익을 때 즈음에 슈이치로는 부하들과 술을 마시면서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부하들도 대장의 성원에 보답하듯 술을 마신 자들끼리 무예 대결을 벌인답시고 칼을 뽑아 들다 휘청거리며 넘어지기도 하였고,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슈이치로는 자신의 부하들이 기특했고 고마웠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따라와 준 부하들이 고마워서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대장님 일어나세요! 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저희는 죽을 때까지 대장님을 따를 것입니다."
"대장님이 저희를 구해주신 거 않습니까."
부하들은 땅바닥에 드리 누운 대장을 들어 올리며 그를 말렸다.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억지로 일어난 슈이치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따라와 줄 부하들에게 보답하듯, 부하들을 절대 죽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술잔을 높이 들어 달을 술잔에 담았다. 수놓은 별들이 하나하나 술에 들어가서 별사탕이 되었다. 대장을 따라 부하들이 하나둘씩 술잔을 높게 들어 술잔에 별사탕을 담았다.
슈이치로는 아주 큰소리로. 오토나시산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부하들을 위한 다짐이기도 하고 아직 보지 못한 동창들을 향한 다짐이기 하다.
"나. 하마 슈이치로는 여기서 선언한다. 마츠호도 성의 닌자였던 나의 증조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너희를 절대 죽게 하지 않겠다. 절대 망하게 하지 않겠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언제든 날 죽여도 된다."
대장의 큰 결심에 대응하듯 부하들은 모두 성원을 보냈고 서로 술을 머리에 부으며 더 왁자지껄 떠들었다. 절대 죽게 하지 않는다. 대장의 명예를 걸고 이 닌자대가 망하게 하지 않는다. 어떤 대장이 이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은 닌자대를 망하게 할 텐가. 매일 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어두운 생각에 사무쳐 자살을 결심하지만 부하들이 있기 때문에 죽을 수 없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닌자와 닌자와의 만남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우정'을 져버릴 수 없었다. 그것이 하마 슈이치로의 긍지이며 절대 지지 않으려는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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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이치로는 축제를 즐기는 부하들을 사이에서 빠져나와 산신령의 나무 위로 올라가 드넓게 펼쳐진 평화로운 산의 절경을 바라보았다. 이 산의 이름이 오토나시산이라고 불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엉이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한 밤에 묻혀있었다. 그 절경을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슈이치로는 나무 꼭대기에서 한동안 멍 때리며 평화를 맛봤다.
닌자가 된 이상 사람을 해치는 일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다른 가신으로서 살아가든, 개인 닌자로 살아가든 상관없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칼로 벨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슈이치로는 부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덩달아 닌술학원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는 분명 살아있을 거다. 그래야만 한다. 깊숙한 품 안에서 꺼낸 끝이 녹슨 쿠나이를 꺼내 들었다. 친구들과 우정을 약속했고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한 증표의 쿠나이. 슈이치로는 쿠나이의 끝을 만졌다. 조금 녹슬었지만 그럭저럭 쓸만했다. 보관만 잘한다면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하천의 끝자락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잠을 자던 새들은 깜짝 놀라 푸드덕 날아갔고 단잠에 빠져있던 산짐승들도 정신없게 도망치기 바빴다. 이 고요한 산에서 누가 '포탄'을 쐈단 말인가.
"대장! 대장!"
"키치 무슨 일이야?"
"동쪽의 그 성에서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야. 어서 지시를 내려."
슈이치로는 단숨에 나무에서 내려와서 키치의 어깨를 잡고 지금 상황을 물어봤다. 키치는 대장인 슈이치로가 어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모두 전멸할 것이라며 그의 팔을 강하게 잡았다. 슈이치로의 팔을 잡은 키치의 손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키치가 떨 정도로 큰 사건이 터진 것일까. 슈이치로는 심장이 빨리 뛰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술잔을 세워 모두의 앞에서 선언했던 그 긍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부하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슈이치로는 키치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부하들을 대피시켜. 적수가 어느 정도인지 여기서는 가늠이 안된다. 모두를 대피시키고 다시 작전을 짠다. 알겠나?"
"명을 따릅니다."
키치는 고개를 끄덕이고 슈이치로보다 한발 먼저 하천의 끝자락을 향해 달렸다. 부디 모두가 살아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키치가 떠난 후 슈이치로도 무기를 챙기고 뒤따랐다. 저 멀리서 봉화의 연기가 나고 있었다. 아니, 저건 봉화가 아니다. 화약 연기다.
"저 녀석들 벌써 눈치챈 건가?"
슈이치로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한들, 키치를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축지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슈이치로는 숨도 쉬지 않고 날카로운 바람을 맞으며 달려갔다.
하천의 끝자락에는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 심지어 나무가 불타고 있어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리 강가에 있다고 한들 그 불의 세기는 가늠을 할 수가 없어 강을 찾다가 누군가의 발에 걸려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어 떨어졌다. 슈이치로는 키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처참하게 그을린 부하들의 근거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화약들, 그리고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타버린 부하들의 시체들이 어지러 히 뒤섞여 있었다.
"키치! 키치! 어디 있냐!"
키치를 부르는 슈이치로의 울부짖음에도 목소리는커녕 산짐승의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조용히 화살이 날아왔다. 슈욱 하고 날아온 화살은 슈이치로의 발 앞에 박혔다. 화살촉에는 기름을 묻힌 천이 감싸져 있었고 그 천을 감싸면서 화살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선명한 빨간색으로 불타오르는 화살 한 개를 만지려고 다가가는 슈이치로를 향해 누군가가 잽싸게 뛰어들었다. 진에였다.
"대장님!"
"진에!"
대장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진에는 슈이치로 앞에 섰다. 그의 등에 여러 개의 불화살이 꽂혔다. 어디에서 날아오는 건지 모르는 이 암흑의 장소에서 사방이 막혀 도저히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진에는 등에 맞은 불화살에 뜨거움을 맞보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면서 버텼다. 닌자란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진에의 등에 다섯 번째 불화살이 꽂혔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진에는 눈이 풀린 채로 슈이치로의 앞에 쓰러졌다. 슈이치로가 물을 가져와 진에의 등에 뿌려보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뒤이어서 불화살이 슈이치로에게 날아왔다. 닌자대 대장인 슈이치로는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 정도야 손쉽게 자를 수 있었다. 칼과 쿠나이로 불화살들을 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부하들의 시체를 묻어주는 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키치! 키치!"
슈이치로는 키치를 애타게 찾았다. 부디 살아주기를. 키치가 살아있어 준다면 둘이 힘을 합해서 이 암흑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화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죽은 부하들이 얼마나 될까. 부하들의 머리털이 모두 타버려서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어서 숫자만 셀 수 있었다.
"소우지! 쥬지로! 쿠이나!"
진에의 친구들 이름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키치! 들리면 대답해! 키치!"
대답이 없다. 답답해진 슈이치로는 산짐승과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높게 뛰어올라 불화살을 쏘는 닌자들을 차례로 처치했다. 선홍빛 불화살에 어울리는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어떨 때는 피가 화살촉에 튀어 불이 꺼지기도 했다. 슈이치로는 남만구(남반카기)를 던져 적의 목을 옭아맸다. 허억 하고 적이 뒷걸음질을 쳤지만 다시 끌어당겨 그의 목이 슈이치로 앞까지 오게 되었다.
"말해라. 누구의 사주로 온 거냐."
"한낱 부랑자가 닌자대를 만든다고 하더기에 와 보았다. 꼴에 화약도 여러 개 가지고 있던 모양이군."
"누구의 명으로 왔냐고 물었다."
"네놈에게 그런 말을 해줄 이유는 없다."
슈이치로는 남만구를 비틀어 적의 목을 비틀었다. 닌자의 최후는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적은 아주 조용하게 죽었다. 뺨에 묻은 피를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그의 손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이미 검게 굳어버린 피의 덩어리가 손에서 도저히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손을 씻을 시간 따위는 없다. 다시 키치를 찾으러 다른 지역으로 향했다. 적의 숫자는 이것보다 훨씬 많을터. 그렇다면 키치와 슈이치로가 힘을 합해도 적을 밝히지 못할 수 있다.
"대장!"
키치다. 키치가 슈이치로의 부름을 듣고 새빨간 숲을 뚫고 나타났다. 숲에서 떠나고 싶어도 부하들의 마지막을 빌어주고 떠나야 한다. 키치의 얼굴은 깨끗했다. 팔 쪽은 상처가 가득했지만 어쨌든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슈이치로는 재빨리 이곳을 나가자며 키치의 양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키치는 고개를 저으며 대장인 슈이치로의 손을 놓았다.
"저 녀석이 막내를 공격했어. 그걸로 이 사달이 난 거야. 너야말로 남은 부하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
"막내가 당했단 말이냐?"
슈이치로 닌자대의 막내는 나이는 열세 살로 아직 어리지만 기운은 넘쳐서 닌자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슈이치로는 막내의 얼굴과 나잇대를 보면 닌술학원에 있었던 시절이 떠올라, 그를 극진히 챙겼다. 그런 막내가 첫 희생양이 되었다. 슈이치로는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저 녀석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몰라도 이쪽의 닌자대를 좋게 보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어린 막내까지도 무참히 살해할 수 있을까.
"이미 늦었어. 소우지, 쥬지로, 쿠이나도 당했다. 진에도..."
"뭐야? 진에도 당했어?"
"그래. 나를 지키려다 내 앞에서 쓰러졌다."
슈이치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얘기했다. 키치가 자신을 때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키치는 오히려 너만이라도 도망가라며 슈이치로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새빨갛게 불타는 숲 속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그러지 말고 같이 도망치자. 도망치고 남은 부하들을 모아서 다시 작전을 짜면 돼."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어. 진에도 당했다면 더더욱 참을 수 없군!"
"바보 같은 생각이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 아니잖냐!"
슈이치로는 언성을 높였다. 키치의 실력으로 적의 머릿수를 다 처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그 불화살로 키치 역시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다. 슈이치로는 여전히 설득했다. 죽은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슈이치로. 내가 너를 대장을 인정한 이유는 너의 그 상냥한 마음 때문이다. 부하들을 돌보는 그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지. 그러나 지금은 뭐지? 너는 이번에도 부하들을 지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닌자대를 없앨 생각인가?"
이번에도 부하들을 지키지 못했다. 슈이치로는 키치를 만나기 전에 닌자대를 꾸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키치가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또 다른 닌자대의 공격을 받고 해산되었다. 부푼 꿈을 가지고 닌자대를 꾸렸지만 그건 그저 허무맹랑한 꿈일 뿐이었다. 희생은 컸고 거의 모든 동료들이 죽었다. 그래도 죽은 동료들을 가슴에 묻으며 새로운 닌자대를 만들었고 나름 체계적인 조직을 구성하여 이번에는 누구든 죽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죽는다면 부하를 따라 자결하리라.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살아남은 부하들을 모아 이 산에서 나가는 거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떠나. 나도 곧 뒤따라가겠다."
"들어봐 키치. 부하들이 지금 살아있을지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너랑 나만 살아남았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오히려 이야기가 쉽군. 슈이치로 네가 살아남아라. 또 다른 닌자대를 만들어. 거기서 새로운 닌자의 시대를 만드는 거다."
슈이치로의 설득에도 키치는 전혀 듣지 않았다. 여기서 죽을 생각이다. 모두에게 이쁨 받고 살아온 막내의 복수, 의형제 진에의 복수, 진에 친구들과 다른 부하들의 복수를.
"슈이치로. 마음 단단히 먹어! 닌자란 원래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태어나기도 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너의 친구들도 지금쯤 닌자가 아닐 수도 있어. 너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잖아. 닌자의 세대는 또 다르게 변할 거다. 다른 형식의 닌자대를 만들고 또 이어나가면 돼."
"너를 버리고 부하들을 버리고 다른 닌자대를 꾸리라는 말이냐? 난 그런 짓을 너 앞에서 할 수 없어."
"닌술학원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어서 가라."
키치는 슈이치로의 가슴팍을 밀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슈이치로는 그대로 하천에 빠져 물살에 휩쓸렸다. 헤엄쳐보아도 이미 키치에게서 멀리 떨어져 버려 발버둥 쳐도 다가갈 수 없다. 그 순간 절벽에서 불화살이 쏟아져내려 왔다. 물속에 숨은 슈이치로는 다행히 맞지 않았지만 막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키치의 등과 가슴에는 여러 개의 불화살이 꽂혀 전신이 불타고 있었다. 닌자란 조용해야 한다. 키치는 슈이치로 쪽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토록 원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겠구나! 슈이치로!"
키치는 그 말을 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선명하게 불타는 몸뚱이가 슈이치로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키치가 죽어서야 부하들의 죽음이 실감 났다.
살아남은 부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마츠호도 성을 홀로 지키던 그 시절처럼 또 혼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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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슈이치로는 키치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여전히 닌자대를 꾸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닌자들을 모을 것인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닌자를 모으기는커녕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개울가를 걷다가 자리에 앉아 얼마 전 상점가에서 쌀가마니를 옮겨준 대가로 얻은 주먹밥을 먹었다. 마지막 남은 밥이기 때문에 아껴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닌자대는커녕 굶어 죽기 생겼기 때문에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슈이치로?"
익숙한 목소리가 슈이치로의 귀를 간지럽혔다. 귀에 쏙쏙 박히는 그 종소리 같던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타무라.... 미키에몬...."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믿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늘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했던 친구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터이니.
***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
"응. 뭐..."
타무라 미키에몬. 닌술학원에서 슈이치로와 같은 반이었던 닌자다. 졸업한 지 3년. 그리워하던 친구들의 소식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그만 포기하려고 하던 시기에도 슈이치로의 마음 한편에는 어딘가에 분명 살아있을 것이라 믿었다. 미키에몬은 졸업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는 슈이치로가 훨씬 더 컸지만 얼굴도 조목조목 이목구비가 들어있었고 크고 활활 타오르는 그 눈동자는 여전했다. 미키에몬은 한걸음에 슈이치로 앞으로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곳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근처에 우동집이 있어."
저 멀리 상점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슈이치로의 팔을 힘껏 끌어당기며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그를 바라보았다. 닌자의 얼굴이라기에는 근심이 없어 보였다. 분명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었겠지. 슈이치로는 그리운 친구의 미소를 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경계가 사르르 풀렸다. 매미가 힘껏 울어대는 한여름. 정확히는 칠석 전날이었다. 슈이치로는 키치와 진에를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는 새롭다면 새롭고, 그립다면 그리운 친구 미키에몬과 길을 떠났다.
-
상점가의 우동집은 꽤나 잘 나가는 인기 가게였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따스한 육수의 향기는 물론이요, 주방에는 밀가루 범벅이 되어 뿌옇게 가루를 날리는 주인이 면을 마음껏 뽑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이곳은 정감이 넘치는 그 따스함을 가지고 있었다. 미키에몬은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슈이치로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과연 자신이 이래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람을 여럿 죽인 자신이 이 정감 넘치는 우동집에 들어가도 괜찮은가?
"멍때리지 말고 어서 들어가쇼."
인기 있는 가게다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섰고 슈이치로의 뒤에 서있던 사람이 주저하는 슈이치로의 등을 밀었다. 제 딴에는 빨리 맛있는 우동을 먹고 싶어서 떠민거겠지만 슈이치로는 문턱을 지나는 순간 피로 물들어 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밀가루의 안개처럼 뿌옇게 사라져 갔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다. 피비린내가 아닌 구수한 육수의 냄새가 났다.
"너 우동집 처음 와보냐?"
"너무 오랜만이라서."
미키에몬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슈이치로의 상태가 졸업 전과 다르다는 건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청년의 활기찬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기운이 남달라 바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리 길이도 졸업 전보다 더 짧아졌고 눈은 늘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그 큰 몸을 지킬 정도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염없이 허공만 응시하며 주먹밥을 욱여넣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옛 친구의 약해진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것일까.
"우동 두 그릇만 주세요."
미키에몬은 경어를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슈이치로와 같은 말투를 쓰지 않았다. 그것은 즉 닌자의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미키에몬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미키에몬은 나온 우동그릇에 젓가락을 넣었다. 슈이치로와 할 얘기는 많지만 하나하나 이야기하기에는 이곳은 너무 인간냄새가 나는 곳이다. 그렇기에 미키에몬은 슈이치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우동을 먹었다. 보다 못한 슈이치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이 닌자대를 창설하자. 미키에몬."
그 소리를 들은 미키에몬은 먹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미안. 제대로 못들었어. 뭐라고?"
"아니야. 나중에 얘기하자."
"그래."
그것이 젓가락을 떨어뜨렸기에 못 들은 건지 듣기 싫어서 젓가락을 떨어뜨린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둘의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결국 우동집에서 한 말은 전혀 없었다. 후루룩 거리는 소리만이 둘의 침묵에 들어가 있었고 서로 눈치만 볼뿐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슈이치로는 닌자대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미키에몬의 얼굴을 눈치챘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미키에몬도 과거의 이야기를 지금 당장 꺼내고 싶지 않아 했다.
우동집에서 나와서야 둘은 다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도란도란 옛날이야기를 했다. 후배들 이야기, 선배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둘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미키에몬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슈이치로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타키야샤마루가 물에 빠져서 머리가 꼬부라졌던 사건을 들었을 때는 박장대소를 했다. 여전히 미키에몬은 타키야샤마루와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지금은 뭐하고 있어?"
"그냥 돌아다녀."
"나도 마찬가지야."
미키에몬도 슈이치로랑 마찬가지로 하염없이 세상을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슈이치로는 동질감을 느꼈다. 미키에몬도 마찬가지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닌자'의 자부심만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닌자대의 대장으로 살면서 말투가 이미 익숙해져 버린 슈이치로와 다르게 미키에몬은 보통의 사람으로 느껴졌다.
"오늘은 여관에서 머무를까? 노숙생활도 질리는군."
"좋지."
미키에몬의 나긋나긋한 말투에 슈이치로도 덩달아 대답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깜깜한 밤길을 걷게 되었다. 슈이치로는 닌자대를 통솔하면서 어둠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차라리 밤길이 편했다. 눈이 아니라 귀에 의존하게 되고 그것이 즉 닌자의 본모습이었다. 마치 '그때'를 생각나게 해주는 밤길이었다.
미키에몬은 달랐다. 밤이 다가올수록 어서 빨리 눈을 감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자면 모든 것이 새까맣게 변해서 자신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번쩍 빛나는 햇빛을 맞이하면서 깨어나는 아침이 올터니. 그게 좋았다. 밤을 특히 무서워해서는 닌자 실격이라고 하지만 미키에몬은 차라리 닌자 실격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여긴 꽤나 싸네. 여기가 좋겠어."
"그래."
미키에몬이 먼저 발견한 여관은 꽤나 예스러운 건물이었으며 오래돼 보이는 허름한 여관이었다. 그래도 몸을 눕힐 수만 있다면 뭐든 좋다. 이번에도 슈이치로는 그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미키에몬이 먼저 문을 열고 문턱을 넘었다. 슈이치로가 뒤따랐다. 아까의 우동집보다 인간냄새가 덜 나는 게 오히려 슈이치로에게 딱이었다. 여관 주인이 총총걸음으로 따라 나와 두 청년을 맞이했다.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노인이었다. 미키에몬은 어디든 좋으니까 두 사람이 묵을만한 방을 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노인은 당연하다며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여관은 겉보기와 마찬가지로 허름하고 좁았다. 저 할머니 혼자서 운영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작은 여관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이라면 그곳이 벌레가 가득한 방이라도 참고 누울 각오가 되어있었다.
"이곳입니다. 부디 편히 머물러주세요."
노인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여관의 예의를 차렸다. 두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가는걸 끝까지 보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 발걸음이 점점 작아지자 슈이치로는 그제야 몸을 풀고 짐을 내려놓았다. 짐이랄 것도 딱히 없지만 몸 안 깊숙이 가지고 있었던 그 다양한 무기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손질했다. 그 속에는 끝이 조금 녹슨 쿠나이가 있었다.
"이거 기억나? 예전에 이걸로..."
"기억 안 나."
미키에몬은 단칼에 슈이치로의 말을 거절했다.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슈이치로는 쿠나이를 가볍게 닦고 다시 품 안에 넣었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서로 어색해지는 건 원치 않는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슈이치로는 괜스레 뺨을 긁적이기도 하고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미키에몬은 눈길을 커녕 뒤돌아 등을 보이며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먼저 씻어. 난 나중에 씻을테니. 원하면 짐도 지켜줄게."
"멍청한 소리하긴. 저분 혼자서 이곳을 감당하는데 물을 두 번씩이나 받게 할 생각이냐? 어차피 훔쳐갈 만한 것들은 모두 도둑맞아서 아무것도 안 남았어."
미키에몬은 그제야 벌떡 일어나 턱을 들어 올리며 밖으로 나가자는 몸짓을 했다. 슈이치로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가 그 의미를 눈치챘는지 덩달아 일어나 미키에몬의 뒤를 따랐다. 자신의 등보다 훨씬 작지만 그 안에는 그 '시오에 몬지로'의 긍지가 서려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시오에 선배는 뭘 하고 있을까? 순수한 호기심이 슈이치로의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입 밖으로 말하기는 힘들었다. 지금은 어떠한 말이든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미키에몬은 언제나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같이 동고동락했던 하마 슈이치로에게마저 가시를 세울 정도의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착했어. 옷 벗어."
여름밤은 춥지 않지만 축축함이 이루말할 수 없이 짜증이 나는 시기다. 그래도 둘은 그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천이 스치는 소리만이 둘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웠다. 졸업 전에는 그렇게 떠들고 별 것도 아닌 것에 자지러지게 웃던 사이었는데 지금은 그걸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슈이치로의 등에는 상처가 많았다. 두 번의 닌자대, 그것마저 모두 전멸. 졸업하기 전 선배였던 케마 토메사부로에게 무술대련을 항상 받아왔고 그것으로 인해 생긴 상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상처는 닌자대를 꾸리면서 생긴 상처였다. 대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그 무엇도 지키지 못했고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방패가 되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상처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슈이치로는 차라리 자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키치가 죽었을 땐 자살을 시도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하들의 목소리와 키치의 '살아라'라는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미키에몬의 등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화상 자국이었다. 슈이치로도 모르는 상처다. 아마 동급생인 모두가 모를만한 상처일 것이다. 미키에몬조차 상처를 눈치챘을 땐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 손에는 늘 화상 자국이 있었지만 등에 저렇게 큰 흉터가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그 타무라 미키에몬이 당할만한 큰 사건이 있었단 말인가.
둘은 탕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길고 긴 노숙생활의 끝을 맺는듯한 느낌이었다.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건 물론이고, 닌자의 긍지를 잃어버릴 만큼 따뜻한 물이었다. 그 무서운 선배들이 왜 항상 찬물로 정신수련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따뜻함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슈이치로는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에 몽롱해졌다. 결국 순수한 호기심을 물어보고 말았다.
"아까보니까 뒤에 큰 흉터가 있던데. 언제 생긴 거야?"
까칠하고 예민한 미키에몬이라면 당연히 화내야 정상이지만 그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심신이 모두 누그러졌다. 지금이라면 슈이치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다. 미키에몬의 입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흘러나왔다. 뿌옇게 서린 김에 미키에몬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몽롱한 정신과 함께 사라져 가는 미키에몬의 형체에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귀를 계속 간지럽히는 미키에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을 뿐 뇌로 박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걸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거야. 별로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지."
"그러네. 괜히 말해서 미안해."
"괜찮아. 밖으로 나가자. 너무 탕에 오래 있었다."
둘은 밖으로 나와 바깥바람을 쐬었다. 여름의 밤은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했지만 덥다기보다는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미키에몬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더니 이부자리를 폈다. 미키에몬의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보였다. 졸업 전보다 더 여윈 것 같다.
"먼저 자. 나는 좀이따 잘게."
"그러지 뭐."
미키에몬은 아까 탕에서 이야기한 걸로 모든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슈이치로랑 떠들 힘이 없었다. 졸업 전에는 그토록 수다 떨었으면서 3년 만의 재회가 어색하여 둘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피곤했던 모양인지 미키에몬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색색 잠자는 소리까지 내며 안락한 잠을 자고 있었다.
슈이치로는 미키에몬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창문틀에 기대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있었고 팔짱을 끼고는 편하게 자고 있는 미키에몬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과격한 무기를 잘 다루던 타무라 미키에몬의 기개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
칠석이라 그런지 달은 한층 더 밝고 아름다웠다. 크고 둥근 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백의 노란 빛깔은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슈이치로는 여전히 칼을 품에서 놓지 않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혹여나 적이 기습을 하지 않을까 늘 걱정이었다. 이런 허름하고 다 무너져내리는 여관에 자객을 보낼 리가 없지만 그래도 이 습관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그순간 검은 그림자가 슈이치로의 앞에 다가섰다. 슈이치로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른 몸놀림으로 칼을 꺼내 들고는 범인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범인은 슈이치로의 뺨에 손을 올려놓았다. 미키에몬이다. 자고 있을 미키에몬이 일어나 불편하게 자고 있는 슈이치로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지말고 편하게 자."
"습관이 되어서... 난 신경 쓰지 마."
"나도 닌자야. 적의 기습정도야 눈치챌 수 있어. 너야말로 그렇게 티 나게 지키고 있으면 자객이 보고 코웃음을 칠 거다."
"그래도.... 알겠어."
슈이치로는 칼을 칼집에 넣고는 허리춤에서 빼냈다. 옷맵시를 잠깐 정리하고 미키에몬 옆에 이부자리를 폈다. 얼마 만에 누워보는 이불인지. 슈이치로는 이불의 포근함에 바로 잠에 들어버릴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죽지 않겠지?"
"너가 죽으면 내가 가만히 있겠니."
"그건 그래."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아도 슈이치로는 웃지 않았다. 미키에몬이 다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편하게 잘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죽지 않겠냐니. 무슨 소리야 그게. 슈이치로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의 미키에몬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너를 죽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안심해라. 있다고 하면 나 정도지."
"미키에몬 암살도 해?"
"의뢰가 들어오면."
둘은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본 건지 천장에 붙어있는 먼지의 개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영혼 없는 대화를 얼마나 이어갈 생각인지 슈이치로는 계속해서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
"달에 토끼가 있다고 믿어?"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네. 없다."
"이전에 있던 닌자대에 소우지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녀석은 믿더라고."
"....."
미키에몬은 말이 없어졌다. 닌자대 얘기를 꺼낸 것 때문에 그런 거란 걸 눈치챈 슈이치로는 덩달아 말을 멈추고 다른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전에 학교에 갔어. 안도 선생님의 새로운 개그를 받아왔지. 들을래?"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제대로 된 개그라고."
"안도 선생님 돌아가신 지 1년 됐어. 내가 그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니?"
미키에몬은 졸업하고 매년마다 학교를 찾아가서 문안인사를 드린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일어난 큰 사건으로 인해 학교의 선생님의 대부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슈이치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되다 만 닌자대를 꾸리면서 살아가도 학교는 근근이 찾아갔다. 어떨 때는 우연히 후배를 만나서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도 있었다. 슈이치로는 '아 그랬지 참'하면서 다시 한숨을 짓고 천장을 바라봤다.
새벽이 되면 미키에몬은 더 예민해졌다. 신경도 날카로워져서 슈이치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소음으로 들렸다. 어색한 공기에 더해져 둘의 간극은 더 멀어져만 가는 듯 보였다. 참다못한 슈이치로가 미키에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너가 닌자대를 싫어하는 이유를 잘 알겠어. 그래도 난 닌자대를 꾸릴 생각이야. 너가 들어오지 않아도 좋아. 도와주기만 해 줘. 그것만이라도 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일 거야."
슈이치로는 미키에몬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거칠게 남아있는 흉터가 하나하나 다 느껴졌다. 미키에몬은 덩달아 슈이치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닌자대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도와줄 생각도 없어. 오늘밤이 지나면 헤어질 생각이다."
미키에몬의 주장은 도무지 무너뜨릴 수가 없다. 슈이치로는 알았다며 포기한 채로 미키에몬의 손을 놓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고 정말로 눈을 붙였다. 이미 달은 지고 있는 늦은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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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자 노인이 아침을 차렸는데 드실거냐며 물어보러 왔다. 미키에몬은 먹겠다고 대답했고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노인이 두 밥상을 올렸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슈이치로는 닌자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키에몬의 마음을 바꿔서 자신의 닌자대에 들어오게 만들 생각이다. 그러나 미키에몬은 여전히 닌자대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은 등에 남은 흉터 탓도 있을 것이다. 슈이치로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닌자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두 분은 칠석 축제에 참가하시나요?"
노인이 말했다. 이 근방에서는 칠석 축제를 하고 있으며 오늘 밤에 풍등을 날릴거라고 말했다. 미키에몬은 아침 먹는 대로 나갈 생각이었으나 칠석 축제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대로 슈이치로와 헤어지는 것도 찜찜한 기분이 들어 참가하겠다고 멋대로 대답했다. 슈이치로는 얼떨결에 미키에몬을 따라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하지 않고 실례했다는 말만 남긴 채 방문을 닫고 나갔다.
"축제 갈거야?"
"그럴 생각이다. 넌 먼저 가도 돼."
"나도 남을게."
슈이치로는 밥풀을 입가에 잔뜩 붙이고는 굳은 표정을 이어갔다. 저런 녀석이 닌자대 대장이었다니 미키에몬은 그 닌자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몰라도 부하들이 고생을 꽤나 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사람냄새가 가득한 평화롭고 웃음이 가득한 거리였다. 축제가 한창이라 그런지 음식점도 많았고 공연도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개그공연이 인기였는데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나온 두 사람이 만담을 펼치다가 개그를 친 사람이 흠씬 두들겨 맞는 공연이었다. 개그 내용은 재미없었지만 사람들은 흠신 두들겨 맞는 그 모양새가 꽤나 웃겼던 모양이다.
슈이치로는 오랜만에 본 개그공연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것만큼은 졸업 전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닌자대의 대장으로 있으면서 이런 공연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크게 웃은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미키에몬은 슈이치로를 데리고 다른 가게에도 기웃거렸다. 노래자랑대회도 열렸는데 거기서 아리따운 여자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도 들었다. 그러나 둘 다 딱히 큰 감동은 받지 못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축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춤을 추기 위해 둥글게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간단한 율동을 가미한 전통춤을 췄다. 처음보는 춤이었기에 둘은 몸에 익히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깔깔거리는 아낙네들의 지도하에 비교적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형형색색의 끈을 들고 술래잡기 등을 했다. 어제의 우동집이 생각나는 따스함이었다. 매일매일이 칠석이면 세상은 평화롭기만 할 것이다.
"닌자대는 아직도 만들 생각이냐?"
"그렇지. 부하들과 약속했거든."
"그러다 죽어서 부하들 얼굴보고 흠씬 두들겨 맞아라."
"아하하! 그녀석들을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겠어."
슈이치로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키치가 죽기 전에 내뱉은 말이 신경 쓰였다.
'그토록 원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겠구나! 슈이치로!'
눈 앞에 그토록 찾아다니던 그리운 친구가 있는데 죽은 부하의 얼굴이 떠오르고 말았다.
-
칠석 축제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야만 끝날 수 있다. 세상에 다신 없을 직녀를 일 년에 한 번만 본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슈이치로는 생각을 고쳤다. 직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견우임을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떠돌이로 살기보다는 정착해서 생활하는게 어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건 좋은 거지."
"봄에 우연히 케마 선배를 만났는데 선배랑 이사쿠 선배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기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목공 수리점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
슈이치로는 평화로운 칠석이 계속되기 위해서 직녀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닌자대를 만든다는 소리는 이제 하지 않을게. 증조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해. 그러니 나와 그곳에서 살자. 집세도 둘이서 나누면 비용도 줄어들 거야."
슈이치로는 미키에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미키에몬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금세 평정심을 찾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지. 대신 닌자대는 더이상 꾸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어기면 가차 없이 벨 거다."
"너한테 죽임을 당하는 정도야.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슈이치로는 부하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내일 밤 꿈에서 나온다면 비록 이 못난 대장이 그리운 친구 하나를 위해 부하들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부하들의 전부였던 닌자대를 만들지 못하는걸 부디 용서해주길 바라며.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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