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용
윤성진해
<밤잠>
진해는 새까만 밤하늘이 싫었다. 모든 걸 다 집어 삼킬듯한 새까만 밤하늘에 자기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느 새부터 밤에 잠을 자기도 두려워졌다. 눈을 감으면 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어두운 기운이 자기를 집어 삼킬듯하여 밤잠을 설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진해는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 허리를 베어 내어
봄바람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임 오신 날 밤이 되면 굽이굽이 펴리라.'
길고 긴 밤을 단숨에 싹둑 자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해에게 밤은 짧을수록 좋았고 길수록 괴로웠다. 노래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그 밤을 펴서 길게 쓴다고 하는데 진해에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윤성이와 만나고 윤성과 동거를 시작했을때 진해는 자기가 밤잠을 설친다는 것을 말하기 두려웠다. 이 나이 먹고도 혼자 자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쪽팔렸고 무엇보다 그 사실을 알고 실망할까봐 알리지 못했다. 잠을 자고 싶어도 윤성에게는 불면증이 있어서 늦게 자니까 먼저 자도 된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기도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래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같이 누워서 수다 떨면 스르륵 잠들지 않을까?"
"진짜 괜찮아. 너 보는 거 보고 잘게."
"그래도..."
윤성이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진해는 오히려 관계가 후퇴하고 있음을 느꼈다. 윤성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비밀을 만들어 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진해는 두려운 마음을 어떻게든 떨쳐내며 윤성 옆에 누웠다.
"그럼 한번 해볼까? 으으 춥다."
"거봐. 이불안은 따뜻해. 자, 푹 덮어. 푹."
차가운 밤과 다르게 윤성의 손길은 매우 따뜻하고 상냥했다. 윤성이 먼저 누워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고 진해도 그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이전까지와는 다른 밤을 맞이했다.
"그랬는데... 거기서... 어 어디까지 얘기했지?"
"오리가 뻥튀기 뺏어 먹었다는 것까지."
"아 맞다. 그랬지... 음...그랬는데..."
"졸리면 얼른 자. 귀엽게 잠꼬대 하지 말고~"
"너 보는거 보고 잘려..고...했는데에..."
눈을 반짝거리며 얘기하던 윤성은 잠에 못이기고 스르륵 잠에 들었다. 진해는 쿡쿡 웃으며 이불을 푹 덮어주었다. 보드라운 솜이불에 말려있는 모습이 귀엽고 폭신해 보였다. 나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잠들었으면. 진해는 따뜻해 보이는 윤성의 자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지금의 밤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아무도 안남은 밤이다. 진해 옆에는 지금 깨워도 대답하지 않을 방금 잠든 윤성이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름 끼치게 째깍대는 시계만 있을 뿐이었다.
"아냐 억지로 눈을 감으면 잠이 들 거야."
진해는 한숨 크게 내쉬고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억지로 눈을 감았다. 새까만 어둠이 자기 눈 앞에 나타나도 굴복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램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잠이 들었긴 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잠이 아니었다. 결국 진해는 잠 든지 한시간 만에 다시 일어나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손발이 다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 끝없는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손바닥뿐만 아니라 손톱까지도 있는지 확인했다. 자기 몸이 완전히 있는지 더듬어가며 확인했다. 온전히 느껴지는 감촉에 진해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어. 모두 원상태야. 진해는 다시 눈을 감기 전에 윤성의 얼굴을 한 번 더 봐두기 위해 눈을 돌렸다.
"잘 자고 있...."
없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고 있었던 윤성이 없다. 어둠이 자기 대신 윤성을 데려간 걸까. 그 새근새근 포근하게 자고 있던 빛과 같은 소중한 사람이 없어졌다. 진해는 등골에 식은땀이 줄줄 나서 잠옷이 흠뻑 젖었다. 진해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커튼을 친 방에는 암흑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찰칵하고 방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슬리퍼를 끌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진해는 본능적으로 사신이라 생각했다. 어둠으로 끌고 가려는 사신. 진해는 어린아이처럼 커튼 뒤에 웅크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결국 어둠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성장이 덜된 아이나 다름없었다.
"진해야? 여기서 뭐 해?"
누군가가 커튼 바닥을 살짝 들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윤성이다. 어둠으로 데려간 줄만 알았던 그녀를 사신이 놓아준 걸까 진해는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고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ㄴ,난.. 너가 끌려간줄...알고..."
"끌려가? 누구한테? 화장실 갔다온건데?"
"아...그러니까..."
"괜찮아...?"
윤성은 그 말 한마디만 하고는 조심스럽게 진해를 안아주었다. 등이 땀으로 젖은 걸로 봐서 지금 진해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작은 체구의 애인이 자기를 안아주고 있다는 게 진해는 한심해 보였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밤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는 이유로 이런 해프닝이나 찍고 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을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도 있었지만 윤성이에게 아무것도 못 해주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던 거다.
"무슨일 있었어? 요즘 잠 못 자는것 같던데. 고민 있으면 나한테 말해. 우리는 이제 애인이잖아."
윤성은 커튼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진해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차가운 냉기로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손발과 하얗게 질린 얼굴에 상냥한 윤성의 손길은 그야말로 빛이었다. 그리고 저 표정. 진심으로 걱정하는 저 표정을 보니 더 이상 폐 끼치기도 너무 미안했다.
"나... 실은 밤이 무서워. 불면증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야. 밤이 무서워서 자기가 싫었어. 매일 밤 잠을 설쳐. 눈을 감으면 내자신이 빨려 들어가. 낮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는데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그래서 힘들어. 내가 사라져도 나를 붙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기분이 들어."
사람은 자질 않으면 언젠가는 정말 죽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면 그것은 거의 기절하는 상태다. 기절했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해지지만 결국 기절했다는 것은 내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니까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더더욱 잠을 자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여태까지 같이 안 잔거야?"
"......미안해."
"거짓말 한 건 잘못했지만 용서해줄게. 그래도 걱정했잖아. 왜 여태까지 말 안 했어?"
"내가 너무 한심해 보여서. 그렇잖아. 어린애처럼 밤이 무서워서 혼자 자질 못하겠다는 둥 그런 말 하면 너가 실망할 것 같았어."
"그러네. 실망할만하네."
"그,그치?!"
"응. 방금 네가 한 행동이 실망스럽긴 해. 진작 말해줬으면 같이 도왔을 텐데 혼자 해결 할려고 그런거잖아. 나를 못 믿었던거야?"
"아냐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너가 밤에 자질 못 하는게 실망스럽지 않아. 바보같이 그걸 혼자 끙끙앓고 나만 모르게 했다는게 실망스러운 거지. 누구에게나 약점은 하나둘씩 있는거잖아."
윤성은 진해의 두 뺨을 세게 잡고 세게 짓눌렀다. 붕어입이 된 진해의 얼굴이 웃겼는지 윤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다시 진지하게 다가와 말했다.
"그럼 내가 너 잘때까지 옆에서 지켜볼게. 알았어?"
"우우..."
"알았냐구우!"
"우웅웅!"
흥! 하고 다시 윤성은 다시 손을 떼고 진해의 입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윤성의 말과 짧은 입맞춤으로 진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잔잔한 활기가, 피의 흐름이 드디어 생긴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사신이 와도 아무렇지 않다.
"자, 어서 자자.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있잖아. 아 새벽이니까 오늘이구나."
곰돌이 슬리퍼를 신은 윤성이 슬리퍼를 직직 끌면서 침대로 돌아갔다. 샛노란 잠옷이 은은하게 색을 뿜어내고 있어서였을까 아님 진해가 본 윤성의 모습에서 차가운 어둠을 쫓아낼 태양 빛을 보았던 걸까 진해와 윤성이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온기가 느껴졌다. 윤성이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그 발자국이 남아 진해도 그 길을 따라갔다.
둘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말똥말똥한 윤성의 눈에 진해는 살짝 부담감을 느꼈지만, 전보다는 조금 편하게 잠들 수 있을것 같다.
"고마워 윤성아. 내가 잠들기 전까지 옆에 있어 준다고 해서. 너무 피곤하면 먼저 자도 되니까 너무 무리하진 마."
"이미 약속했으니까 계속 지켜볼 거야. 애인 잠들게 하고 싶으면 얼른 자든지~"
"알았어 알았어."
그런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 윤성은 먼저 잠들어버렸다. 잠든 윤성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거슬리는 앞머리 한가닥을 옆으로 치워주고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진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반쯤 감긴 눈으로 노래를 읊고 있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 허리를 베어 내어
봄바람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임 오신 날 밤이 되면 굽이굽이 펴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오는 밤이 되면 그 밤을 펴서 길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 분명 그런 이야기다. 진해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없고 찾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밤에 자는 건 자기뿐이고 눈을 감으면 온전히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는 자기 자신만 남는다. 그런데도 임을 위해 밤을 늘릴 것인가? 진해는 윤성의 손을 꼭 잡았다. 혈기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윤성의 온기가 전해져서일까 두 손은 너무나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그리고 진해가 손을 잡았을때 윤성이 꿈에서 진해와 재밌는 거라도 하고 있는 건지 배시시 웃었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는 것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걸 진해는 느낄 수 있었다. 반쯤 감긴 눈은 금세 전체가 감겼고 둥실둥실 어둠을 떠다니듯 진해는 폭신한 어둠의 솜이불을 타고 잠을 청했다. 난생 처음으로 어둠에게 삼켜지지 않는 따스한 새벽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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