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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타마/소설

[몬미키] 독야(獨夜)

 몬미키

 


 [독야(獨夜)]


 


 이 이야기는 내가 아직 독방을 쓰고 있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실을 부러워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오히려 혼자 일 때가 더 편했고 눈치 볼 것도 없이 마음껏 화기들을 아껴줄 수 있었다. 참을 수 없었던 건 단 한 가지. 위원회 일로 철야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피곤에 찌든 몸을 눕힐 때 스멀스멀 새어 들어오는 찬 공기다. 아무도 없는 방에는 빛 한 줄 기도 없었으며 내가 양초를 켜지 않으면 방안은 화약의 색깔보다 더 어두움으로 가득했다. 그것이 참을 수 없어서 오히려 나서서 철야를 더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위원장인 시오에 몬지로 선배는 몸 상하기 전에 어서 들어가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철야로 후배들이 지쳐 쓰러져 잠들었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늘상 있는 일이지만 그때는 내가 4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후배들이 널브러져서 쿨쿨 자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괜히 신기해서 후배들의 볼을 찔러보았는데 때마침 시오에 선배가 그만 마치자며 종이뭉치들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괜히 찔렸는지 잔뜩 긴장한 몸뚱이를 삐걱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무라, 사몬을 부탁한다."
 "네."

 나는 사몬을 부축하듯 엎었다. 시오에 선배는 지친 기색 하나없이 1학년들 두 명을 양 옆구리에 끼고는 대담하게 걸었다. 듣자 하니 위원장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한다고 들었는데 오늘이 며칠째 철야인지 감도 안 온다. 그럼에도 선배의 얼굴에는 힘들다는 표식이 전혀 없었다. 6학년은 다 저런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6학년들은 다른 상급생들보다도 훨씬 체력이 좋을 거고 두뇌회전도 빠를 것이다. 다른 6학년들도 시오에 선배와 비슷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고 믿었다. 양쪽 옆구리에 끼인 단조랑 사키치가 침을 흘리며 퉁퉁 부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자고 있었다. 

 회계실 문이 열리고, 먼저 앞서간 선배의 등을 졸졸 따라갔다. 옆에는 사몬이 자기 닌복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었는데 칠칠치 못하다며 핀잔을 주려는 걸 애써 참았다. 평소 같았으면 사몬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렸을 텐데 그날은 옆에 있는 사몬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후배들을 하나씩 방에 데려다주고 마지막은 나와 선배가 남았다. 상급생이라면 여기서 물러서고 내일 아침에 뵙겠다고 말을 해야 하지만 선배는 평소처럼 긴긴거리지 않았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서 나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4학년 기숙사 초입에 도달하자 나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앞에서 먼저 가는 선배의 등을 쫓고 싶었는데 아무도 반기지 않는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게 더 컸다. 내가 따라오지 않는 걸 알았는지 선배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뭐해? 어서 안오고."
 "네..."

 상급생이면 어리광은 부리면 안된다. 그것도 6학년 선배에게 어리광이라니. 정신 차려 타무라 미키에몬. 또 바카타레라고 꾸중받을게 뻔하다. 시오에 선배의 부름에 어미닭을 쫓아가는 병아리처럼 쪼르르 달려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에 서서 걷는다. 동실을 부러워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밤중에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는 건 괴롭다. 철야가 많은 회계위라서 그런 거라며 위원회를 바꾸는 게 어떻냐고 묻는 동급생들의 말에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독방을 쓰는 건 외롭지만 그 외로움도 잊을 정도로 회계위가 좋았다. 일은 고돼도, 선배도 은근 잘 챙겨주셨고 후배들도 착실하게 잘 따라오고 있다. 그러니까 독방을 쓰는 게 외롭다고 불평하는 어린아이 같은 짓은 할 수 없다. 

 "도착했다. 그러고보니 너는 독방이었지?"
 "네. 선배는 타치바나 선배와 동실이라고 하셨죠."
 "혼자있는게 편하지. 눈치 안 봐도 되고."
 "저기, 선배..."

 '타무라'라는 문패가 살짝 흔들렸다. 아마 새벽바람 때문일 것이다. 방 안에는 역시 이불조차 깔리지 않은 차가운 나무 바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구석에는 유리코와 사치코들이 있었는데 걔네들이 이불을 깔아주지는 못하니까 나 스스로 깔 수밖에 없다. 문턱을 넘는 순간 선배는 '잘 자라'라는 말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려고 하는 것 같아서 급하게 잡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나는 너무 어리다 못해 아직 마음이 하급생에 머물러 있었다. 

 "저...."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좀 이상한 부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
 
 선배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뒤에 달이 둥글게 떠있는데 달이 선배의 얼굴에 가려져서 반만 보인다. 그 대신 선배는 반달을 집어삼킨 사람처럼 위대하게 보였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어리광을 부리려고 한 것인가. 입안에서 맴돌던 어리광이 입 밖으로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괜히 바쁜 사람을 불러 세운 것 같아 꼬리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처럼 스스로 벌을 받고 있었다. 그러자 선배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더니 '열심히 하고 있어'라는 말만 남긴 채 정말 바람처럼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뜨니 선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정수리에 남은 온기가 천천히 밑으로 내려와 가슴속까지 따뜻해졌다. 차가운 방이었지만 찰나의 쓰다듬은 방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혼자만의 밤은 너무 무섭다. 물론 눈을 감고 잠을 자면 그런 고민도 일절 하지 않지만 잠에 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괴로웠다. 타카마루씨도 독방을 쓰니까 같은 고민을 느낄까, 싶었지만 그 사람은 연상이니까 훨씬 성숙할 것이다. 그렇다고 시오에 선배에게 내가 잠들 때까지 같이 있어주면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

 6학년은 실습이 많아서 위원회 일은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날은 시오에 선배의 장기간 실습이 있어서 그런지 위원회도 바쁘게 돌아갔다. 폭풍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하급생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골아떨어져 기절잠을 자기 바빴다. 하지만 더 바쁜 건 오히려 나였다. 다음날부터 선배가 자리를 비우게 되니 임시 위원장이 필요했다. 선배를 제외한 상급생은 나밖에 없으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난 선배만큼 잘할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선배가 그 실습에 나가지 않았으면 했다. 장기간이라니, 너무 위험하잖아요. 

 "이정도면 내일도 맡길 수 있겠군."
 "그런가요."
 "표정이 왜 그래? 위원장 하기 싫어?"
 "아뇨. 선배보다 못할걸 알아서 좀 침울해져 있었어요."

 나는 가끔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해버려서 문제다. 내가 하고도 당황해서 급하게 입을 막아보고 시선을 돌려보지만 선배는 화내지도 혼내지도 않았다. 역시 선배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회계위원회는 시오에 몬지로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내가 위원장이 된다 해도, 시오에 몬지로의 기개를 따라갈 수 없다. 혼날걸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떨어진 건 호통이 아니라 10kg 주판이었다. 

 "너가 가지고 있어라. 들고 실습에 갈 수는 없으니까."
 "네? 네, 네..."
 "나를 따라하려고 하지 마. 하고 싶은 대로 해.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벌써 두번째. 잘하고 있어. 그 말에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선배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지만 괜스레 불안했다. 암만 노력해도 저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선배는 계속 나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차라리 꾸짖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그대로 나와 버렸다.

 "차라리 혼내주세요."
 "뭐?"
 "전 잘하는거 하나도 없어요. 계산 실수도 많이 하고, 회의시간에도 늦고, 후배들이랑 맨날 싸워요."
 
 내일 실습가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 이득 볼게 뭐가 있다고 내가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 말하면서도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코 먹은 목소리가, 눈물을 한 움큼 집어삼킨 목소리가, 내 귀에 정확히 들리고 있었다. 나도 들리는데 선배가 못 알아차릴 리가 없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정신 차리라고 뺨 한대 쳐줬으면 좋겠다. 

 "타무라. 혼은 하급생때 질리도록 받았잖아. 정말 잘하고 있으니까 그만 가봐라."
 
 선배는 끝까지 혼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간 선배는 실습을 나갔고 나는 임시 위원장이 되어서 위원회들의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몰려오고 그 책임감이 육중해서 밤낮없이 일했고 후배들에게 맡기기엔 어려운 일들도 도맡아서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밤낮없이 위원회 일을 몰아서 했던 건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방까지 가줄 선배도 없는데 뭣하러 그 서늘한 방으로 다시 들어간단 말인가. 누구 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일만 죽어라 하다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죽은 듯이 일만 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세면서 6학년 실습이 언제 끝나는지 계산했다. 

 "타무라 선배, 이쪽 장부 다 정리했습니....선배!"

 이제 기껏해야 4일 지났는데 앞이 어지러웠다. 오른손으로 장부 쓰는 걸 멈추지 못하게 잔뜩 떨리는 왼손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었는데 몸이 기우뚱하며 옆으로 쓰러져 차가운 나무 바닥에 머리가 닿았다. 회계실 안은 따뜻했지만 나무 바닥은 서늘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이 그리워졌다. 작은 온기만으로 가슴속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던 손이 그리워졌다. 하급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웅웅대는 벌레의 날갯짓이 귓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다시 뼈에 찬기가 사무치는 이 차가운 나무 바닥에 몸을 밀착시키고 돌아올 리 없는 선배를 기다려야 했다. 

 눈을 떴을땐 다행히도 독방이 아니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니까 뜨거운 물이 안구에 차서 흘러내렸다. 피로가 쌓였는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원치도 않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내려오는 뜨거운 물이 귀에 살짝 붙어있는 잔머리를 적셨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서 배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자 코피가 쏟아졌다. 투둑, 쏟아진 피를 힘겹게 손으로 막아대고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꼬릿 한 약재 향이 퍼져있는 걸 보면 보건실이었다. 6학년들은 실습 중이다 보니 이사쿠 선배도 나간 모양이다. 보건실까지 옮겨준 사람은 아마 회계위 하급생들일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하려고 했던 생각은 없었다. 위원장의 등을 따라잡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아니 없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쏟아지는 코피들을 정신없이 막아대며 우물쭈물 보건실 문을 열었을 때 선배의 근엄한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으,앗."
 "타무라? 왜 보건실에서 나오냐? 코피 났어?"
 
 코를 킁 하고 피를 식도 안으로 흘려보냈다. 타이밍이 참 나빴다. 일주일이나 걸릴 거라고 말했던 실습은 의외로 빨리 끝나서 조기귀가 했다고 선배는 말했다. 나는 순간 3일씩이나 잠든 줄 알았다. 이렇게 빨리 돌아왔다면 어떻게든 버텨서 가장 먼저 맞이해줬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러웠던 건 오랜만에 본 선배의 얼굴은 실습을 무사히 끝마치고 만족한 표정이었는데 나는 헝클어진 머리와 잔뜩 구겨진 닌복과 추잡스럽게 흘리는 코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그날도 차라리 혼을 내줬으면 했다. 크게 혼나고 시오에 선배의 등을 다시 처음부터 따라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배는 나의 이 추잡스러운 코피를 보며 코웃음으로 받아쳤다. 

 "하하, 철야하느라 피곤했나보구나?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마. 쉬어."

 찰나의 순간 선배의 손이 헝클어진 머리에 닿았다. 기껏해야 5초도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정수리에서 전해진 온기가 너무나 따스해서 코피를 막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더 이상 눈에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선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시오에 선배의 얼굴은 근엄했고 위엄 있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직 차기 위원장은 무리인가봐요."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피했다. 더 열심히 하겠다,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 그래도 너는 잘하고 있다."

 정말 잘하고 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테죠. 선배가 생각하는 것만큼 저는 그렇게 상냥하고 착한 후배가 아니에요. 아무리 많은 산을 넘고 고난을 겪어도 최후의 산은 넘지 못할 것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런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아도 나는 나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혼자 자는 것조차 무서워서 최고참 선배에게 잠들 때까지 같이 있어달라고 어리광이나 피우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여지를 남겨주지 않아도 그런 산은 넘을 수 있을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 산을 넘으려는 내가 보였다. 

 "시오에 선배."

 나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버릇을 고쳐야만 한다. 

 "제가 잠들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있어주세요."

 이제는 머리를 쓰다듬는 온기마저도 미적지근해서 더 많은걸 요구하게 된다. 1학년들도 창피해서 말하지 않는 어리광을 4학년씩이나 된 사람이 하면 안창 피하다는 말을 들을 법도 하지만, 그것이 죽을 정도로 창피하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큰소리를 치며 혼을 내시겠지. 그걸 원했다. 여지도 남기지 않고 희망도 안겨주지 않고 산을 오르는 걸 포기하게 만들어줬으면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혼자 자는 방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온기를 나눠줬으면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시오에 몬지로가 첫 번째이길 바랐다. 매번 여지를 가지고 산을 오르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나였고 매번 좌절하고 산 오르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나였다. 

 "타무라."
 "네."

 침착하고 매서운 말소리가 귀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꾸중 듣는건 익숙하다.

 "이것도 애교로 봐주길 원하는거야?"
 "아닙니다."
 "네가 그런 성격 아니라는걸 잘 안다. 내가 무슨 말하려는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굳이 말하지 않으마."

 아니요. 하나도 모릅니다. 하나도 모르니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세요. 

 "독야(獨夜)야 말로 닌자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지. 못들은걸로 하겠어. 쉬어라."

 평소처럼 긴긴거리며 화를 내는 말투도 아니었고 차분하고 엄숙한 말투였다. 점점 멀어져 가는 등을 바라볼 때면 손으로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 봤자 얻을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서 금세 그만두고 만다. 바람처럼 사라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아주 천천히 멀어져 갔다. 눈이 익숙해져 버린 건지 시오에 몬지로의 등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작아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려고 코피를 들이마신 식도에서 단어들을 끌어모아 마른 가래를 뱉듯 힘겹게 말을 토해냈다.

 "시오에..."
 "미키에몬. 나는 단 한 번도 너에게 나처럼 되라고 강요한 적 없다. 또한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어. 하고 싶은 대로 해. 괜히 나를 따라잡으려고 하지 말고."

 끝끝내 선배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시오에 선배의 어떤 말보다 미묘하게 상냥한 말투였지만 어떤 말보다 따가운 말이었다. 혼을 나는게 오히려 나을만큼 너무나 아팠고 가슴에 사무쳤다. 저런 상냥함때문에 나는 또 여지를 잡고 매달려버린다. 
 처음부터 매몰차게 굴었다면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다면 처음부터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포기했을텐데. 저 사람은 포기할 틈 조차 만들어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불러준 이름은 그때 이후로 전혀, 지금도 불러주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호칭을 뗀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2년간의 시간은 여전히 타무라와 시오에 위원장으로 불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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