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서
**하치칸 기획중
**수인썰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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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쿠쿠
[아아, 훌륭한 고양이의 삶] - 2편
그 시각 라이조는 두 개의 물건 중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건을 두 개 중에서 더 잘어울리는걸 골라야하기 때문이다. 파란색의 유리보석은 크기도 크고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잘 다듬어져있었지만 흠집이 있었고, 핑크색의 진주모양 알갱이는 크기는 작지만 완성도가 높아서 가치가 높다. 라이조는 두 개의 보석을 땅바닥에 놓고 앞발로 계속 굴리며 고민했다. 그러자 마고헤이가 먼저 파란색 유리보석을 잡아서 끈이 달린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안 정했는데!"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걸로도 충분할거에요."
마고헤이는 끈을 입으로 쭉 잡아당겨 주머니 입구를 봉쇄했다. 안에는 파란색 유리보석이 하나 들어있다. 라이조는 여전히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파란색을 선택한게 정말 좋은 선택일까- 라며 심각한 고민을 했다. 마고헤이는 라이조의 고민을 본채만채 주머니를 입에 물고 폴짝 뛰어올랐다. 라이조가 "제대로 전해 줘." 뒤늦게 말을 붙였지만 마고헤이는 잠깐 뒤돌아서 까딱 인사를 하고 갈 뿐이었다. 라이조의 고민을 하루종일 들어주다가는 시간이 다 가버릴 것이다.
마고헤이는 시장을 벗어났다. 시장 입구에서 싸우던 선배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게 시장을 벗어날 수 있어서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짤랑대는 주머니를 입에 물고 재빠르게 거리를 지나갔다. 시장을 지나자 바로 산이 보였고 마고헤이는 질풍처럼 뒷발을 사용해서 용수철처럼 힘차게 내달렸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치자에몽은 마고헤이와 헤어진 그 자리를 멤돌면서 안절부절했다. 고양이는 커녕 까마귀들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잠깐씩 불어오는 새벽바람이 나무가지를 괴롭혀서 그 소리에 깜짝놀랄 뿐이다. 반대로 헤이스케는 조용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하치자에몽이 맡긴 그 어린 고양이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새벽의 잠은 참을 수가 없었다. 꾸벅꾸벅 조는 모양새가 아직 덜 자란 아기 고양이같았다. 앞발을 상체 안으로 숨기고 잔뜩 웅크린 자세가 귀엽다. 이 상태로 수그리면 곧 머리가 숨겨진 앞발에 닿아서 곯아떨어질 것이다. 말이 없는 헤이스케의 곁으로 하치자에몽이 다가왔다. 원래 집고양이는 잠이 많나? 하기야 집고양이는 편한 집에서 잘 수 있으니까 쪽잠을 잘 필요가 없는거겠지. 하치자에몽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검은 고양이의 옆으로 가서 기댈 수 있는 벽이 되어주었다. 아래로 내리찍을뻔한 머리는 곧바로 제자리를 찾아가더니 왼쪽으로 기우뚱 넘어가 하치자에몽의 좁은 어깨에 닿았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두 고양이의 꼬리가 살랑거리며 지면을 훑는다.
'까마귀가 정말 방울을 돌려줄까?'
하치자에몽은 시장 입구에서 매일마다 싸우는 선배 고양이들의 충고를 곰곰히 떠올렸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고 얍삽해서 함부로 약속을 해서는 안된다고 그랬다. 너무 덥썩 약속을 잡아버린거 아닐까-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방울이 헤이스케에 얼마나 중요한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탓도 있으니까 까마귀가 이제와서 약속을 파기해도 하치자에몽은 반박할 수 없다. 까마귀를 놓친건 헤이스케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니까.
"선배~"
"마고헤이!"
옆에서 달콤한 새벽잠을 자던 헤이스케가 쩌렁쩌렁 울려대는 두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 세워 천천히 눈을 떴다. 푹신한 하치자에몽의 어깨에서 떨어져 몸을 털었다. 마고헤이는 하치자에몽 앞까지 와서 입에 물고 있던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라이조 선배가 고민하길래 그냥 아무거나 가져왔어요."
"라이조가 골랐구나. 한참 걸릴 뻔했네. 사부로는?"
"사부로 선배는 쓰레기통 트리오를 데리고 저택으로 가서 위장술을 진행한다고 했어요."
쓰레기통 트리오. 두 마리는 쓰레기통 근처에서 다투고 있는걸 발견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최근 그 근방에서 발견되어서 별명이 그렇게 지어졌다.
"근데 빨리 돌아와야 할 것 같아요. 슈이치로 선배가 안들키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하긴 이 근방에 검은 고양이는 걔밖에 없었지."
"그래서 이걸.... 앗!"
마고헤이가 주머니 속을 열자 검은 물체가 마고헤이의 앞발을 툭 건들이고 떨어진 주머니를 잡아채 나무 위로 올라갔다. 까마귀다. 까마귀가 부리로 작게 열린 주머니를 활짝 열어 안에 들어있는 푸른색 유리보석을 꺼내들었다. 반짝이는게 마음에 든 모양이다.
"흠집이 좀 있는데?"
"그건..."
까마귀의 대장인 센조가 날카로운 눈으로 보석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흠집도 있고 진짜 다이아몬드도 아닌것이 괜히 보석인척 하는 평범한 유리 장식이다. 센조는 보석을 발가락 사이에 끼워넣더니 한쪽 날개를 펼치고 다른 까마귀들에게 지시하듯 말했다.
"뭐 이정도 크기면 충분하겠지. 키하치로! 방울을 가져와라."
"네에~"
크기가 좀 작은 까마귀가 총총 걸어오더니 두 발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큰 구멍이 생겼다. 마고헤이는 저렇게 큰 구멍에는 매미 애벌레가 살게 분명하다며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하치자에몽은 "우리가 찾는건 애벌레가 아니야."라며 그를 진정시켰다. 까마귀가 구멍에서 나오더니 깃털에 묻은 흙들을 털어내기 위해 몸을 털었다.
"센조 선배~ 없는데요?"
"무슨 소리냐. 너가 오늘 저녁에 방울을 찾았다며 땅에 묻어서 보관해야겠다고 했잖아."
"저도 그런줄 알았는데 없어요. 분명 이 근처에 묻었는데..."
헤이스케는 까마귀를 따라 앞발로 열심히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하치자에몽도 서둘러 땅을 팠다. 설마 없다고? 정말로?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하치자에몽은 물론 센조와 마고헤이도 같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
키하치로는 뭔가 떠올랐는지 땅 파는걸 멈추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가볍게 날아오른 까마귀의 날개짓이 우아하다. 센조는 뭐하냐며 같이 날개짓했다.
"아까 고양이가 왔다갔다 하는걸 봤어요. 저기에 있어요."
키하치로는 날개로 저 멀리 투닥거리며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가리켰다. 어딘가 익숙한 형체와 투닥거림이다.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센조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제트기처럼 빠른 스피드로 공기를 가르며 수직하강했다. 매섭게 날아오는 까마귀의 비행실력에 깜짝 놀란 고양이들이 꼬리부터 귀까지 털을 곤두세우면서 소름을 느꼈다.
센조는 매서운 눈빛을 보내며 고양이들로부터 방울을 빼앗았다. 고양이들이 돌려달라며 발톱을 세우며 허공에 주먹을 날렸지만 날개 달린 새를 이길 수는 없었다. 센조는 다시 매섭게 날아올라서 딸랑거리는 방울과 목걸이를 가지고 키하치로가 날고 있는 공중에 도착했다.
"오야마~"
"앞으로는 땅에 묻지 마. 잃어버리면 귀찮아지니까."
"네에~"
센조와 키하치로는 천천히 내려와서 고양이들 사이에 안착했다. 발로 방울을 꽉 잡고 있었다. 딸랑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딱 헤이스케의 것이 틀림없다. 센조가 발에서 방울을 내려놓았고 헤이스케가 허겁지겁 그 방울을 챙겼다. 우리 쪽 후배가 잘못한건 맞지만 땅에 묻어 둔걸 가져간 고양이들 탓도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치자에몽은 그래도 방울을 가져간 쪽이 잘못이지 않냐며 따지러 들었지만 헤이스케는 방울을 찾았으니 아무럼 상관없다며 어서 목에 둘렀다.
"보석은 잘 받았다. 역시 방울보단 보석이 더 좋지."
"진짜 보석은 아니지만요."
"바보집단들이 고른거니 별 수 있나."
센조와 키하치로는 날개로 부리를 가리며 쿡쿡 웃어댔다. 고양이로써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화를 내는 하치자에몽을 마고헤이가 말렸다. 센조는 볼일이 끝났으면 어서 산에서 나가라고 그들을 밀어냈다. 마고헤이는 까마귀들의 잔소리가 더 심해지기 전에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며 더 깊숙한 산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달에 비춰보니 큰 다이아몬드가 쪽빛으로 빛났다. 역시 교환하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센조였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빨리 내려가.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오지 마."
"방울만 안 뺏어가면 들어 올 일 없을거에요."
"그건 또 모르지. 까마귀들은 모두 반짝이는걸 좋아하거든."
센조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헤이스케를 자극했다. 울컥한 헤이스케가 당장 달려들려고 하자 하치자에몽이 말리며 예의상 미소를 지으면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센조는 보석을 키하치로에게 넘겨주며 잘 간수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키하치로는 그럼 이 것도 땅에 묻어도 되냐고 되묻자 센조가 이번에는 마음대로 하라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투로 말했다. 키하치로는 잘 됐다며 중얼거리며 우아하게 날개짓 하며 하늘로 올라가 좋은 땅을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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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케 돈돈!"
산 아래로 힘차게 내려오는 개 한마리. 월월 짖으며 멧돼지와도 같은 힘과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위에는 회색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타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뭐라도 잡지 않으면 떨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두 고양이는 빳빳한 개의 털을 꽉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힘이 너무 넘친 나머지 개는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잊어버렸는지 산 아래에서 점프하여 시장 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코헤선배 이제 충분해요! 멈춰요!"
"앞까지 데려다 줄게 돈돈!"
시장 거리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이미 닫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대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고작해야 술에 취하고 축제에 취한 아저씨들 정도였다. 아저씨들은 개가 고양이를 태우고 다닌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개의 속도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길쭉하게 뻗은 뒷발과 잘 빠진 몸매가 건강미를 내비친다.
"하치자에몽! 헤이스케!"
라이조가 엄청난 속도로 정신줄을 놓고 달리는 개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서야 급정거했다. 너무 갑자기 멈춰서서 헤이스케와 하치자에몽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라이조는 괜찮냐며 와서 두 고양이의 상태를 살펴주었다. 그러면서 개의 은혜는 잊지 않았는지 고개를 까딱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개는 그닥 지쳐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친건 고양이 쪽이다.
"코헤선배가 데려다 주었구나."
"응. 선배 고마워요!"
"이정도야 가뿐하지! 또 필요한거 있으면 말해."
하치자에몽은 산 중턱을 내려오는 와중에 코헤이타와 만났다고 전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코헤이타가 자기 등에 타라고 했고 고양이 몇십마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더니 순식간에 산을 지나 사장거리까지 도착했다고 말했다. 라이조는 "참 긴 여정이었네."따위의 말을 하며 둘을 다독여주었다.
"그건 그렇고 사부로는 어딨어?"
하치자에몽이 두리번거리며 사부로와 다른 고양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라이조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어서 헤이스케네 집으로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듣자하니 슈이치로가 헤이스케 대역을 서고 있다면서?"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한마리의 개는 시장거리를 지나서 궁전같은 집으로 향했다.
"응. 방울도 직접 만들었어. 인간이 눈치채지 않으면 좋을텐데."
라이조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잃지 않았다. 헤이스케는 아직까지 아무 일이 없는걸 보면 집사들이 눈치 안챈게 분명하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라이조를 다독였다.
"걔네들이 그 쓰레기통 트리오인가 그거야?"
"응. 두 마리는 같은 날 쓰레기통 주변에서 발견됐는데 상자 안에 있었어. 아마 버려진 모양이야. 아직 어린데 버리다니 참 인간이란 추악해."
"....."
집고양이인 헤이스케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집사가 고양이를 버리다니. 주인도 아닌 것이 감히 고귀한 고양이를 버려?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다.
"한 마리는 최근에 발견 됐는데 얘도 그 주변에서 발견 되었어. 집에서 뛰쳐나왔다고 했었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집을 나온거라고 했지 아마?"
라이조도 기억을 되짚어가며 말했다.
"집은 아직이야?"
지루해졌는지 코헤이타가 해맑게 말했다. 헤이스케는 이제 이 모퉁이만 돌면 금방이라며 앞장서서 걸었다. 딸랑거리는 방울이 참 매력적이다. 밖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여전히 헤이스케는 집고양이가 좋았다. 하치자에몽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매일이 이런 일의 반복이라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퉁이를 돌자 정말로 궁전이 나왔다.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궁전같아서 라이조는 입을 떡 벌리며 넋놓고 보고 있었다. 덜덜 떨며 "헤이스케는 이런 곳에서 사는거야?"라며 말했지만 헤이스케는 평범한 수준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층 마당에서는 고양이 두 마리가 지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속닥거림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부로 선배가 좋아했던 고양이는 누굴까?"
"얼룩이라고는 들었어."
"뭐가 좋다고 집고양이를 좋아하지? 이렇게 아름다운 내가 옆에 있는데 다른 고양이가 눈에 들어올리가 있나?"
"너같은 길고양이가 한 마리 더 는다고 하면 나같아도 집고양이 한다."
귀를 쫑긋 세우며 헤이스케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얼룩이. 집고양이. 사부로가 좋아하는 집고양이는 얼룩이라고 한다. 뒤에서 하치자에몽이 앞발로 두 고양이의 어깨를 휘어잡았다.
"너희 그러다가 사부로한테 맞는다?"
"하치선배!"
타키야샤마루와 미키에몬이 뒤돌아 세 마리의 고양이들을 반겨주었다. 망보는 일도 이제 끝났다! 둘은 서로 얼싸안으며 감격스러운 재회를 맞이했다.
"타키! 오랜만이다!"
"흐힉! 코헤선배!"
코헤이타는 타키야샤마루에게 달려들어서 꼬리로 술래잡기를 하자며 마당을 빙빙 돌았다. 겁에 질려 쫓기는 작은 고양이가 조금 불쌍하지만 하치자에몽, 라이조, 헤이스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미키에몬은 꼴 좋다며 비웃었다.
하치자에몽은 헤이스케를 데리고 2층 지붕으로 올라갔다. 먼저 성큼 올라간 하치자에몽이 헤이스케가 발을 잘못 디뎌서 떨어질 뻔한걸 목덜미를 물어서 구해주었다. 2층에 붙어있는 메이 방의 창문 틈새로 치즈색 고양이의 엉덩이가 보인다. 꼬리가 잔뜩 성이 나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조용히 하라고!"
"네? 뭐라고요? 작아서 잘 안들려요!"
"조용히 해!"
성미에 안맞는 고양이를 데리고 대역을 맡기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 하치자에몽은 한숨을 쉬며 창문 뒤에서 사부로를 불렀다. 사부로가 그제서야 낀 창문에서 몸을 털고 나와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를 맞이했다.
"동 틀때 다되서 나타나다니. 정어리 100마리로 올려버릴까보다."
"미안해. 일이 좀 많았어. 방울은 찾았으니까 이제 슈이치로는 보내도 돼."
"들었냐 슈이치로?"
"네? 너무 작아서 안들려요!"
봐. 보이지?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더 데려와야겠어. 사부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 목소리만 큰 고양이에 질렸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가 창문 틈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메이의 손 위에서 꼬리로 몸을 휘감은 검은 고양이가 보였다. 저 고양이가 슈이치로구나. 헤이스케는 앞발을 조심스레 방 안안으로 넣었고 미끄러지듯 몸 전체가 창문의 작은 틈 사이로 들어가 아득한 2층 아이의 방에 도착했다. 암흑 속에서 작게 야옹하고 우는 고양이의 소리를 들은 슈이치로는 저절로 귀를 세웠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코와 눈을 집중시켰다. 창문에서 내리쬐는 달빛이 바닥까지 도착했고 그 사이에서 윤기나는 검은 털을 천천히 내보였다.
"수고많았어. 내가 헤이스케야."
고양이의 눈이 보석으로 빛나고 윤기나는 털은 암흑의 색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어 슈이치로는 저 고양이가 이 어린 인간의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꼬리를 풀고는 웅크린 몸을 쭉 뻗었다. 천천히 슈이치로가 앞발을 내밀자 헤이스케가 빈 공간을 차지하듯 슈이치로가 몸을 뗀 곳에 자기 몸을 끼워맞췄다. 점점 슈이치로의 공간이 헤이스케의 공간으로 차들어갔다. 마침내 메이의 손에 헤이스케가 가득 찼다.
"고마워. 슈이치로지? 이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
"아, 네! 별거 아니니까 언제든지 필요하면 부르세요."
슈이치로는 엄청 기운이 넘쳤다. 우렁차게 야옹하고 울자 그 근처에 있던 모든 고양이들이 한마음으로 조용히하라며 앞발을 입에 가져다대고 '쉬잇' 거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제서야 뒷발로 목덜미를 긁으며 멋쩍게 웃으며 터벅터벅 창문쪽으로 걸어가더니 가벼운 몸을 움직여 창문 밖으로 나갔다. 사부로가 슈이치로의 이마에 딱콩을 한대 때렸다. 인간에게 들키면 어쩌려고 그렇게 큰소리로 외치냐는 충고였다. 슈이치로가 이마를 앞발로 문지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창문 안으로 고개를 슬쩍 들어넣은 하치자에몽이 헤이스케를 향해 웃었다. 보석 두개가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첫 외출이 순탄하지 않아서 헤이스케가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 하치자에몽은 꼬리를 바로 내릴 생각이었다. 그래도 자주 이곳에 찾아와서 수다를 떨면 재밌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헤이스케가 새하얀 송곳니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다음번에도 데리고 나가줄거야?"
"응? 그말은 길고양이가 되겠다는거야?"
"그건 아니야. 집이 안전한걸. 그래도 밖은 궁금해. 너에 대해서도 알고싶고."
하치자에몽은 그 상태로 굳어서 창문틈새로 낀 얼굴을 뺄 수 없었다. 낮에 봤던 사랑스러운 고양이 신은 어디로 가고 머슴같은 회색 고양이를 유혹하는 요염한 고양이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도 상관하지 않고 헤이스케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하치자에몽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사부로가 뒷통수를 때렸다. 그러자 하치자에몽이 캬옹!하고 튀어올라 머리를 창문에서 빼게 되었다.
"빨리 정리하고 가자. 이러다가 해뜨겠어."
"알았어. 그럼 낮에 다시 올게."
"그래. 잘자."
"응. 너도 잘자."
잘자라니. 꼭 연인들이 하는 것 같잖아? 짧은 대화를 마치고 길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하치자에몽은 혼자 설레서 뒷발을 용수철처럼 튕기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사부로가 정신사나우니 그만하라고 말해도 듣지 않고 더 높게 튀어오르는 것이다. 지붕 밑에서 어린 고양이 두 마리와 라이조가 있었다. 코헤이타는 졸린지 엎드려서 코를 골며 길쭉한 주둥이를 땅바닥에 박고 자고 있다.
"인간한테는 안들켰지?"
라이조가 오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사부로는 자기가 있었으니 걱정은 안해도 된다며 우쭐대며 말하자 하치자에몽이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뒤이어 슈이치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고양이들은 코헤이타 택시를 타고 천천히 시장거리를 돌았다. 새벽의 시장은 고요 그자체였다. 참새도 비둘기도 모두 산으로 돌아갔고 고양이들 정도가 쓰레기통을 뒤지며 쥐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코헤이타의 큰 등 위에 고양이가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머리 위에는 타키야샤마루가 지시를 하듯 앞발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헤이스케는 어때? 너무 짧게 만나서 아쉽다."
"라이조하고는 친하게 지낼 수 있겠던데?"
"정말? 헤이스케의 선물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떤걸로 할지 고민이야."
"라이조가 고른거라면 다 좋아할거야."
사부로가 라이조의 어깨에 발을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하치자에몽이 입을 열었다.
"방울을 까마귀가 땅에 묻었다고 했는데 없었어. 그래서 고생을 좀 했지."
"어떻게 찾았어?"
라이조가 궁금한게 많은지 눈을 반짝거리며 질문했다. 사부로는 질문할 필요도 없다며 라이조를 말렸지만 궁금하긴 했는지 귀는 하치자에몽을 향해 있었다.
"까마귀들이 찾아줬어. 어떤 동물한테 뺏어온 것 같던데 잘 모르겠어."
"서쪽 산 말이냐?"
코헤이타가 번뜩 생각났는지 헥헥거리며 입을 열었다.
"코헤선배 누가 그랬는지 알아요?"
"아까 서쪽 산에서 토메랑 몬지가 딸랑거리며 싸우는걸 봤어. 그게 방울인가?"
"......"
역시 범인은 그 선배들이다. 어쩐지 까마귀가 미사일마냥 빠르게 날아다니더라. 하치자에몽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열심히 돌아다니고 방울은 커녕 까마귀들에게 잡아먹힐 뻔했는데 그 선배들이 원흉이었다. 사부로가 하치자에몽에게 방울을 돌려주려고 가져간걸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하치자에몽의 귀가 축 쳐졌다.
"뭐 어때! 사소한건 신경쓰지마!"
"코헤선배 여기서 내려주세요."
"알겠어!"
고양이들이 하나씩 점프하면서 높은 개의 등에서 내렸다.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앉아있던 타키야샤마루도 내렸다. 고양이들은 입을 하나로 모아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고는 코헤이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코헤이타가 눈웃음을 지으며 '사소한건 신경쓰지 마' 라며 웃어넘겼다. 헥헥거리며 흘리는 침은 전혀 숨길 생각이 없어보였다. 밖으로 삐져나와 마른 혀는 왼쪽으로 치우쳐있었다. 또 질주하는 코헤이타는 순식간에 시장을 빠져나가 산속으로 쾌속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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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그만 가보겠습니다."
"몬지로 선배님한테 말씀드려볼게요. 확실히 선배가 잘못한 것 같네요."
미키에몬이 고개를 수그리며 앞발로 땅바닥을 긁었다.
"됐어. 이제와서 뭘. 나중에 내가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지. 너희도 수고많았다 잘자."
"네!"
세 마리의 작은 고양이가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하고는 다시 티격대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치자에몽은 시장 끝자락에 있는 철거장에 놓여있는 구멍난 매트리스에 지친 몸을 눕혔다. 그 옆으로 사부로와 라이조가 다가와서 밀착했다.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그러게. 건조한 대화가 흘러갔다.
"데이트는 재밌었냐?"
"데이트라니?"
"그게 데이트지 뭐야."
"내가 억지로 데리고 나간거지 뭐."
"내일은 나도 데리고 가줘라. 헤이스케랑 친해지고 싶어."
라이조는 천사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하치자에몽이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사부로가 하치자에몽에게 물었다. 정말로 집고양이를 좋아하는거냐고.
"집고양이가 좋은게 아니라 헤이스케가 좋은거지."
"그게 그거잖아. 어차피 걘 집고양이야. 인간이 이사가면 따라가겠지. 우리하고는 본질부터 다르다고."
"너 아직도 칸에몽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거야?"
"....."
사부로는 몸을 돌려 반대쪽을 향해 누웠다. 꼬리가 살랑거리며 바닥을 쓸었다. 하치자에몽은 "헤이스케는 똑똑하니까 인간에게 잘 말해주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사부로는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길고양이의 삶과 엉ㄴ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집고양이의 삶은 비슷하지만 많이 달랐다. 당장 내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굶어 죽거나 인간이 설치한 쥐덫에 걸려 다리가 잘려서 죽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집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변덕으로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던져질 수 있고 심한 학대를 받을 수도 있다. 말을 못알아 듣는건 인간이면서 왜 동물들이 상처를 받아야하는걸까. 사부로는 인간따위에게 길러져서 하루아침에 버려질바에야 위험한 길고양이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에는 '칸에몽'이라 불리는 고양이 탓도 있다.
"타키랑 미키의 집사는 아직 안나타났지?"
"나타날리가 있냐. 절대 안나타나. 걔네는 버림받은거라고."
"우리들의 어미도, 아니 어미의 어미도 집고양이었을지 몰라."
"그 부모도 인간에게 버림받은거야."
사부로는 이제 질렸다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하치자에몽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눈을 감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라이조도 옆에 착 달라붙어 새근새근 잠을 잤다. 지금 자봤자 금방 일어나겠지만 지금은 이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싶다.
헤이스케는 메이의 손 위에서 자면서 계속 생각해봤다. 형제의 이름이 뭐였더라? 어미의 이름이 뭐였지? 어미의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형제의 이름이 뭐였는지는 대충 기억이 날 것 같다. 분명 카로 시작했는데. 메이가 움찔거리자 헤이스케는 덩달아 몸을 움직여서 손에서 내려왔다. 그순간 작은 고양이의 뇌를 스치는 세글자가 생각났다.
"칸에몽. 칸에몽이다."
형제의 이름이 기억났다. 그건 분명 칸에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보다 먼저 입양되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낸 기억은 없지만 분명 이름이 칸에몽이었다. 그 형제는 남들보다 어미의 젖을 많이 먹어서 배가 통통했다. 헤이스케는 왜 형제의 이름을 지금에서야 기억한거냐며 자기를 때리고 싶을정도였다. 칸에몽은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자기가 이렇게 멋진 집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형제도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을까? 어쩌면 버려져서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편하게 잘 살고 있는 자기가 무척이나 미워졌다. 지금이라도 하치를 따라서 밖으로 나갈까? 그러기에는 이 작은 집사가 걱정이다. 오늘은 자고 내일 하치자에몽이 오면 그때 다시 생각하자며 헤이스케는 오지도 않는 잠을 자기 위해 억지로 눈을 붙였다.
-
"야 몬지로. 고양이 연락망의 정체가 누군지 알아?"
"아니. 근데 이 근처에 사는 녀석은 아니라고 하던데."
"우리가 살았던 거리에서 살고 있대나봐. 어떤녀석인지 낯짝이 보고싶군."
토메사부로는 앞발을 서로 부딫히며 입맛을 다셨다. 그저 대결하고 싶은 상대가 늘어났다는 생각에 온몸이 저려온다.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냐."
"얼룩이라고는 들었어. 덩치는 하치네랑 비슷하대."
"내가 듣기로는 집고양이라고 하던데."
"난 길고양이라고 들었는데?"
몬지로와 토메사부로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고양이 연락망을 총괄하는 녀석에 대한 소문이 너무 가지각색이다. 얼룩이에 하치자에몽과 비슷한 덩치라면 수사망이 너무 넓다. 이 근처에는 없다는게 확실한데 대체 어디에 살고 있다는거야? 궁금하지만 그 소문이 너무 뜬구름처럼 허무맹랑해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고양이 연락망을 만든 고양이면서 모든 소문과 뉴스를 책임지는 그런 천재고양이가 대체 누구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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