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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타마/소설

[타케쿠쿠] 아아, 훌륭한 고양이의 삶

**보카로 원곡 <아아, 훌륭한 고양이의 삶>의 패러디 (사실상 소재만 따옴)

**5학년 위주, 46학년도 조금 나옴.

**수인입니다. 주의해주세요. 

**생각 이상으로 길어져서 시리즈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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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케쿠쿠 

 


 [아아, 훌륭한 고양의 삶]




 고양의 삶은 자유롭다.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할 필요도 없고 돈에 얽매여 살 필요도 없고 그때마다 먹을 수 있는 약간의 생선을 먹으면서 양지 바른 곳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지내는 한가로운 삶이다. 이 동네 고양이들은 워낙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수산물 가게 사장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고양이라는 생명체 자체가 워낙 사랑스럽다보니 사람들은 그것에 매료되어 또 생선을 던져준다. 

 이 거리의 시장은 꽤나 큰 규모이기 때문에 덩달아 고양이들도 소문을 익히 듣고 시장에서 서식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이 덩치 큰 회색고양이는 이 거리의 명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고양이다. 

 인간의 보살핌을 받지 않는 길고양이다보니 회색빛의 털은 빳빳하게 굳어져있었다. 가끔 몸이 가려워 뒷발로 긁긴하지만 사는데 무리는 없다. 얼마나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었는지 길고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덩치가 컸다. 양 볼에 나있는 수염 중 몇가닥은 구부러져있었다. 이름은 하치자에몽이지만 사람들은 물론 고양이들도 모두 하치라고 불렀다. 

 하치자에몽의 하루 일과는 이러하다. 아침에는 분리수거장에 버려져있는 매트리스에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다가 이슬이 툭툭 떨어지는 이른 아침이 되면 일어나 상쾌한 산책을 한다. 산책코스는 늘 정해져있는데 시장 입구에 들어서있는 타코야끼가게에서 죽치고 앉아서 구슬프게 울면 타코야끼 가게 부부가 나와서 사진을 찍으면서 가다랑어포따위를 준다. 특히 아내는 고양이를 많이 좋아하는지 핸드폰 앨범에는 하치자에몽의 폴더가 따로 있을 정도다. 
 
 가볍게 배를 채우면 이번에는 다른 고양이들을 보러간다. 이 시장에는 고양이가 많이 산다고 해서 그런지 하치자에몽은 친구들도 많다. 발이 닿는 곳이 전부 고양이들이었고 모두가 친구다. 특히 어릴때부터 같이 지낸 치즈색 고양이 두마리가 그의 절친이다. 

 "사부로~ 라이조~"
 "좋은 아침 하치자에몽."
 "좋은 아침."

 라이조와 사부로는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구분이 잘 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꽤 간단하다. 사부로는 왼발에 하얀색 양말을 신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주변 고양이들은 둘을 잘 구분하는 편이다. 오히려 구분을 못하는건 인간들 뿐. 라이조와 사부로는 하치자에몽과 함께 이 거리에서 오랫동안 떠돌아다닌 길고양이로 한 번도 인간에게 길러진 적이 없다. 이런 점이 맞아서 였을까 셋은 굉장히 친했다. 

 "오늘 아침에 누가 이사오는 모양이야."
 
 고양이들의 연락망은 인간보다 훨씬 체계화가 잘 되어 있어서 누가 이사오는지 언제 이사오는지 다 알고 있다. 사부로는 그 연락망을 자주 이용한다. 마치 인간들이 신문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듯이 고양이들도 연락망과 고양이들의 소문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누가 오는지 알아?"
 "듣기로는 검은 고양이가 온다고 하더라. 젊은 부부고 딸아이가 한 명 있대."
 "사부로 너 그런 것도 알아?"
 "당연하지. 내가 누구냐? 연락망의 귀재 사부로라고."

 시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주택가가 줄지어 있는데 그곳에 딱 한군데 빈 집이 있다. 이전에는 이 시장의 큰 손이라고 자부하던 부자가 살았는데 그 부자가 다른 큰 집을 구했다며 거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아무도 살지 않았는데 드디어 그 집의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라이조는 새로운 친구가 늘어서 기쁘다며 빨리 보고싶다고 들뜬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부로는 인간의 손에 길러진 고양이는 우리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사부로는 다시 몸을 돌려 꼬리를 살랑거리며 도도하게 다른 길로 돌아섰다. 사부로의 뒤를 따라 라이조가 골목길로 사라졌다. 자유로운 영혼의 고양이들은 매번 이런식이다. 어떤 삶이 뒤에 오는지 모르고 그저 느긋하게 현재를 사는 것에 의의를 둘 뿐이다. 

 "검은 고양이라 어떤 녀석일까? 궁금하다~"

 하치자에몽은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집고양이랑 길고양이가 다르다곤 하지만 본질은 똑같은 고양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


 "도착했어 헤이스케. 어서 나와."

 이 거리에서 가장 비싼 집이자 고풍스러운 성. 그 집을 산 젊은 부부는 어린 딸아이와 고양이 한마리를 데리고 살기로 결정했다. 잘 손질된 마당과 1층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넓은 2층과 아늑한 다락방. 오랫동안 이 집을 비웠던 탓에 청소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었지만 이정도는 청소하면 금방 해결되는 문제다. 마당의 꽃들은 비와 눈을 맞아가며 살아온 탓에 튼튼했다. 2층에서 보이는 북적북적한 시장거리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2층에 먼저 짐을 푼 딸은 고양이 한마리를 품에 안고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예쁘다. 그치 헤이스케."
 "야옹~"
 "새로운 친구 잔뜩 사겼으면 좋겠다."

 헤헤. 아이는 다음주부터 다닐 새로운 학교 생각에 들떠서 고양이를 품에 꼭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얼룩 하나 묻지 않은 책가방, 다음주에 입고 갈 초등학교 교복이 가지러히 다려져있었다. 2층은 아이의 방이었다. 그전에는 자기 방이 없어서 방을 꾸미지 못해 늘 방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는데 지금은 자기 방이 생겨서 그런지 이사를 온 기분보다 자기 방이 생겼다는 사실에 더 기뻐했다. 

 윤기나는 검은 털이 매력적인 고양이는 이름이 헤이스케다. 부부의 아는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출산했는데 그 수가 상당해서 분양을 받고 있다고 한 것을 딸에게 말했더니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라며 보채는걸 두고볼 수 없어서 어렵게 결정했다고 한다. 헤이스케는 새끼때부터 이 젊은 부부의 가족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얼굴이 어미와 형제의 얼굴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인간의 자식처럼 길러지고 있었다. 사실 헤이스케는 새끼때의 기억이 그다지 없다. 자길 낳아 준 어미가 지금 누구에게 길러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형제들 중에서 기억나는 형제도 그다지 없다. 단 한명 헤이스케 옆에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던 눈이 동그랗고 체형도 통통한 녀석만 빼면. 헤이스케도 잠결에 들었지만 그 형제는 헤이스케보다 먼저 분양되었다고 한다. 이름은 칸에몽이라나 뭐라나. 

 "메이~ 내려와서 청소해야지~"
 "네. 헤이스케 얌전히 기다려야 해. 알았지? 금방 청소 끝내고 올라와서 놀아줄게."

 딸의 이름은 메이. 메이는 아직 어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동물들과 말하는걸 즐겼다. 헤이스케의 답이 뭔지도 모르고 혼자서 꺄르륵대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헤이스케는 저 어린 집사가 혹여나 나중에 커서 다른 고양이에게 홀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다. 메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 2층에는 썰렁한 공기만이 맴돌았다. 이곳의 생명체는 오로직 헤이스케 뿐이다. 메이의 장난감들은 메이가 말을 걸때만 살아나지 메이가 없을 때는 그냥 단순한 나무조각에 불과하다. 헤이스케는 메이가 없는 시간동안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문으로 내리쬐는 태양볕을 이불삼아 또아리를 틀며 창틀에 누워 잠을 잤다.
 그 순간 어디서 들어온건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헤이스케를 불렀다.

 "오호~!"
 "으아악! 캬아아악!"
 
 헤이스케는 깜짝 놀라 몸을 위로 한껏 올리며 하악질을 했다. 모처럼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놈이 나를 깨운거야? 쭈뼛쭈뼛 곤두선 검은 털들이 가시처럼 일어나 정체모를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지 마. 나도 똑같은 고양이야."

 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창틀을 뛰어넘어 2층 방안으로 가볍게 들어왔다. 헤이스케는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집에 도둑고양이가 들었다! 당장 소리치고 싶지만 1층에는 청소기를 돌리고 있어서 헤이스케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난 하치자에몽이야. 넌?"
 "내가 왜 그걸 너한테 알려줘야 하지?"
 "까칠하긴. 같이 친해지면 좋잖아."
 
 하치자에몽은 생글생글 웃으며 앞발로 세수했다. 나름의 몸단장을 하고 온건지 평상시에 부스스했던 털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헤이스케는 찬찬히 하치자에몽을 뜯어보았다. 덩치도 크고 나잇대도 자신과 비슷해보였다. 다만 저 손질 안된 털이 너무 신경쓰였다. 성격도 그렇게 나빠보이지는 않았지만 집에 멋대로 들어온걸로 봐서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알려주기 싫어."
 "난 알려줬잖아!"
 "그래도 싫어."

 어? 이게 아닌가? 하치자에몽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길고양이들은 이렇게 하면 다 자기 이름을 말하고 같이 친해지던데 집고양이는 다른가? 하치자에몽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최후의 필살기를 썼다.

 "커흠흠. 이거 정말 근사한 검은 털이네요. 밤하늘은 이제 까맣지 않을겁니다. 왜냐면 당신이 전부 그 색을 가져갔으니까요. 자, 다시 하늘에게 색을 돌려주러 가지 않겠습니까? 제가 달까지 안내하죠."
 "지금은 낮인데."
 "아앗!"

 하치자에몽은 착각했다며 흐물거리며 바닥에 늘어졌다. 이름도 못알아내고 창피한 꼴까지 당했으니 이제 놀림받는건 시간문제다. 그러자 헤이스케가 웃으며 창틀 위로 가볍게 올라갔다. 밑에 늘어져있는 하치자에몽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염하게 뜬 길쭉한 눈이 간드러졌다. 

 "난 헤이스케야. 이 집에 사는 고양이지."

 검은 고양이는 은은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등지고 있어서 인지 한층 더 성스럽게 보였다. 과거에는 고양이를 신으로 모셨다고 하던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갈정도로 고결해보였다. 하치자에몽은 그 맑고 촉촉한 황금색 눈을 치켜뜨며 검은 고양이 신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고귀하고 아름다워서 한순간 시력을 빼앗길 뻔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헤이스케 나왔어~ 꺄악! 도둑고양이야!"

 메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하치자에몸을 보고 고주파의 비명을 질러댔다. 하치자에몽은 노라서 창틀에서 떨어져 허우적대며 나무와 덤불들을 뚫고 도망쳤다. 헤이스케는 눈으로 도망가는 하치자에몽을 좇았다. 분명 또 오겠지. 

 "휴우 하마터면 큰일뻔했네. 그치 헤이스케?"
 "야옹~"
 "그러게. 정말 아슬아슬했어. 배고프지? 우리 간식먹을까?"
 "야옹~"
 "알았어 너가 제일 좋아하는걸로 줄게!"

 메이는 창문을 닫고 1층으로 내려가서 고양이 간식을 가져왔다. 헤이스케는 배는 안고프다고 말했는데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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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치자에몽은 헉헉거리면서 시장골목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고소한 생선튀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튀김은 싫지만 그 안의 생선은 먹고 싶었던 모양인지 수염에 침방울이 달린줄도 모르고 줄줄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시장 사람들은 귀엽다며 생선따위를 던져주었다. 인간들은 정말 단순해서 고양이들이 어떤 모습이든 좋아한다. 하치자에몽은 그걸 잘 알고 있어서 혜택을 많이 보고 있었다. 

 "야. 혼자 먹지 말고 우리도 좀 나눠줘."
 "오. 사부로. 라이조."
 
 하치자에몽은 우물거리는 입으로 사부로와 라이조에게 인사하고는 앞발로 그릇을 옮겨 생선을 나눠주었다. 챱챱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고 그모습을 본 사람들은 귀엽다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미 이 거리에서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유명묘다. 

 "그래서 진전은 있었어?"
 "이름은 알아냈어. 헤이스케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사부로는 골똘히 생각하며 정어리를 씹어먹었다. 라이조가 사부로 옆에 와서 남은 정어리를 먹어치웠다. 하치자에몽도 질세라 더 많이 먹었다. 순식간에 정어리가 다 사라졌다. 

 "오늘 저녁에는 축제가 있으니까 와서 더 먹고 싶으면 먹으렴."
 
 흥.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사부로는 왱알거리며 인간을 향해 말했지만 전해지지 않았는지 여자는 호호 거리며 웃을 뿐이다. 사부로는 인간들이 전부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고양이들이 인간을 지배해서 그들을 노예로 만들거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늘어놓는다. 하치자에몽은 구름 흘러가는대로 살자고 하는 느긋한 성격이라 사부로와 잘 안맞는 부분도 있지만 티격태격해도 친구는 친구다.

 "헤이스케는 집고양이래? 길고양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대?"
 "거기까진 못물어봤어."
 "우리처럼 길고양이라면 더 좋았을텐데."
 
 라이조는 새로운 친구가 늘었다는거에 설레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헤이스케가 좋아하는 생선은 뭐래? 혹시 생선을 안좋아하나? 어떻게 생겼어? 암컷이야 수컷이야? 라이조의 질문공세에 하치자에몽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 달랑 이름만 알아내고 왔다. 라이조는 하치자에몽이 아무것도 모른다는걸 알고 흥미가 떨어졌는지 축 내려간 꼬리를 살랑거리며 사부로 옆으로 갔다. 둘은 저녁때 축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다른 거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둘이 금세 사라져 하치자에몽은 혼자 남았다. 

 하치자에몽은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유유자적한 삶. 이것이 길고양의 특권이다. 물론 언제죽을지 모르는 무서운 삶이지만 그 스릴마저도 여유로 바꿔서 살았다. 하치자에몽은 어미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눈을 떴을 땐 이미 먼저 큰 길고양이 형들이 어린 하치자에몽과 다른 새끼 고양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차가운 콘크리트가 그의 침대였고 신문지 조각이 이불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는 아니지만 애교를 좀만 부리면 인간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답답한 케이지도 없고 괴롭히는 인간도 없다.

 "이렇게 행복한 삶인데 걔는 왜 집에만 있지?"

 문득 집고양이 헤이스케가 떠올랐다. 집에만 있으면 갑갑하지 않을까? 오늘 저녁에 축제가 있다고 했으니까 거기에 데려갈까?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가며 완벽한 데이트 코스를 생각했다. 라이조가 질문한 것들의 답변을 얻어내야지. 하치자에몽은 이미 그 검은 고양이에게 푹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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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호~ 헤이스케!"
 "캬아아악!"
 "나야 나. 하치자에몽.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라니까."
 
 헤이스케는 또 들어온 도둑고양이 때문에 하악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하루에 두번이나 하악질을 하다니 피곤하다. 헤이스케는 다시 털을 가다듬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하치자에몽을 바라봤다. 또 무슨 터무니없는 말로 자기를 꼬드길지 대충 상상이 간다. 오늘 저녁에는 마을 축제가 있다고 메이가 말했다. 규모가 큰 시장이다보니 축제도 성대하게 치뤄졌다. 메이한테도 헤이스케한테도 처음 겪어보는 축제다. 그러나 헤이스케는 집고양이라 축제를 보러 갈 수가 없다. 

 "오늘은 달밤이 아름답네요. 어떤가요 저와 함께~..."
 "달이 없는데."
 "칫. 안넘어오네."

 하치자에몽은 풀이 죽어서 꼬리를 바닥에 붙이고 빙글빙글 원을 그렸다. 헤이스케도 축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나갈 수 없어서 2층에서 혹은 다락방에서 지평선까지 이어져있는 불빛들의 향연을 보면서 마을 축제를 가늠할 뿐이다. 그러자 하치자에몽이 헤이스케의 앞발 위에 자기 발을 올려놓았다. 

 "나가자! 인간들이 오기 전까지 들어오면 되잖아."
 "그랬다가 차에 치이거나 질나쁜 인간들에게 얻어맞으면 어떡할건데?"
 "거기까진 생각 안해봤는데 아마 괜찮을거야. 내가 장담할게."

 헤이스케는 길거리에 줄지어 늘어선 화려한 네온사인과 형형색색의 꼬마전구가 보고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줄지어 파는 길거리 음식이나 인간들이 사고파는 물건들의 정체도 궁금했다. 헤이스케는 딱 눈감고 이 회색 고양이를 따라가보자고 결심했다. 큰 도박이었지만 이런 스릴도 고양의 삶에서 필요한 요소다. 무엇보다 지금은 이 집에 생물체라고는 여기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 뿐이다. 가족들은 모두 저마다의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축제를 보러 간지 오래다. 분명 꼬마 집사가 헤이스케에게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만 그걸 감사힐 노릇도 아니니 언제 나가도 들키지 않는다. 하치자에몽이 헤실헤실 웃으면서 고양이 웃음을 내비쳤다. 마치 고양이 요괴같다. 

 "어디로 가게?"
 "따라와 줄거야?"
 "하지만 빨리 돌아와야해. 아까도 봤지만 이 집안 사람들은 나를 꽤나 아껴주거든. 내가 어디로 납치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런거라면 걱정 안해도 돼. 고작 해봐야 시장골목일 뿐인걸."

 하치자에몽은 앞장서서 창틀을 훌쩍 뛰어넘었다. 경사진 지붕에 안착하여 고민하는 헤이스케를 불렀다. 처음 나가보는 바깥 세상. 살아생전 본 풍경이라고는 어미의 큰 몸과 어린시절의 형제들, 그리고 집사네 가족들 뿐이다. 쥐 하나 잡아 본적 없는 헤이스케에게 바깥세상은 너무 무서웠다. 창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발톱부터 꼬리까지 소름이 쫙 돋았다. 생각보다 너무 높아. 

 "으으..."
 "고양이라면 아래를 보지 말아야지! 여기야 여기!"

 하치자에몽은 오른쪽 지붕에서 헤이스케를 불렀다. 꽤나 안정적인 자세였다. 전혀 무서워보이지 않았다. 저쪽은 태어났을 때부터 길고양이었으니까 이런 일은 숨쉬듯 자연스러운 것이겠지. 헤이스케는 눈을 꼭 감고 뒷발에 힘을 주고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밑으로 완전히 떨어질 줄만 알았는데 고양이의 본능은 남아있었던 탓인지 가뿐하게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탄탄하게 빠진 뒷발, 꼿꼿하게 선 목과 상체, 털은 긴장한 탓인지 빳빳하게 서있었지만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처음 밟아본 바깥 세상의 땅은 2층 지붕이었다. 

 "거봐 하면 되잖아. 의외로 재능있는거 아니야?"
 
 하치자에몽은 상쾌하게 웃으며 헤이스케를 부르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2층 지붕을 떠나 이 집을 떠나 시장으로 들어가야한다. 밖은 벌써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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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스케와 하치자에몽은 나란히 걸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라이조가 물어본 질문들의 답을 듣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한것들도 몇개 있었다. 어떤 물고기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참치라고 대답했을 땐 역시 도련님이구나- 싶었다. 쥐를 몇마리 잡아봤냐는 질문에는 집에 쥐가 없어서 잡아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여러모로 하치자에몽이랑 많이 다른게 느껴졌다. 그래도 본질은 고양이. 친해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이 가게 정어리는 맛있어. 그리고 이쪽에는 고양이용 우유를 받을 수 있어. 주인이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울 수는 없거든."
 "넌 이런걸 잘도 아네?"
 "난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이 거리 전체가 내 집이나 다름없지."
 
 하치자에몽은 분위기를 타서 잘도 떠들어댔다. 어떤 인간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고양이들이 있는지 바깥 세상의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 다 알려주었다. 헤이스케는 하치자에몽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생겼다. 새로운 땅, 새로운 친구, 새로운 음식, 새로운 거리 모든게 새롭고 특이했다. 

 "근데 그 목에 달린 방울은 뭐야? 인간이 달아준거야?"
 "아 이거? 응. 집사가 달아줬어. 잃어버리면 찾을 수 있게."
 "헤에~ 불편해보이는데. 이왕 나온거 벗고 다녀."
 "싫어. 한번도 벗어본 적 없어."

 투툭. 방울 소리가 딸랑하고 청량한 소리를 내며 헤이스케 목에 달린 방울이 떨어졌다. 멍때리던 헤이스케는 응? 하고 목에 앞발을 댔지만 허전한 느낌과 푹신한 털의 감촉밖에 없다. 헤이스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까마귀 한마리가 두 발로 방울을 꼭 쥐고 낮게 날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꼬마 집사의 그림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까마귀는 반짝이는걸 좋아한다고.

 "아앗! 거기 서! 까마귀 녀석 그거 돌려줘!"

 하치자에몽은 캬악 거리며 뒤쫓았다. 낮게 날아다니던 까마귀는 하치자에몽을 비웃기라도 하듯 휙하고 고도를 높혀 수평을 맞추고 날았다. 하치자에몽은 북적이는 인파 속을 헤집으면서 까마귀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날개가 달린 새를 따라잡기란 너무 힘들다. 심지어 그 머리 좋은 까마귀니 얼마나 하치자에몽이 분해할까. 까마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즈음에 하치자에몽은 발을 멈추고 헥헥거리며 다시 인파의 거리로 돌아왔다. 혼자 남겨진 헤이스케가 멍때리며 얼굴을 푹 수그리고 콘크리트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 못 잡았어..."
 "....."

 하치자에몽은 방울 뺏긴 헤이스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다. 그깟 방울 목만 죄여서 불편하기만 할텐데 왜 좋아하는거지? 그래도 헤이스케는 집에서만 자라온 고양이니까 자신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자 헤이스케가 털을 곤두서면서 하치자에몽의 얼굴을 할퀴기 시작했다. 

 "방울 돌려내! 이래서 나오기 싫다고 한거야! 괜히 나오자고 해서 방울만 잃어버렸잖아!"
 "나도 찾으려고 애썼어!"
 "인간들은 멍청해서 어떤 고양이도 다 똑같게 본다고... 방울이 없으면 나도 못알아볼게 뻔해..."

 헤이스케는 씩씩대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발톱을 다시 숨겼다. 검은 꼬리가 다시 축 늘어졌다. 땅바닥에 그대로 붙어있는 꼬리가 애처롭게 보인다. 하치자에몽은 앞발을 턱에 올려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까마귀가 어디로 갔을까? 이 동네에 사는 까마귀임에는 틀림없을텐데 어디에 살고 있는거지?

 "그, 그렇게 울필요는 없어. 내가 찾아줄게!"
 "당연하지. 너때문에 잃어버린거잖아."
 
 끄응. 그건 그렇지만... 하치자에몽은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 생각해봤다. 까마귀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어딘가에는 있을게 분명하다. 하물며 깃털이라도 있다면 후각을 이용해서 찾을텐데. 떨어진 깃털을 찾아야한다. 푸드덕 날아올랐으니까 어딘가에 깃털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좀만 기다려. 내가 깃털을 찾아볼게."
 "깃털은 갑자기 왜."
 "까마귀 깃털의 특유 냄새가 있거든. 그걸로 유추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하치자에몽은 다시 인파 속을 헤집으며 떨어진 까마귀의 깃털을 찾아다녔다. 헤이스케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인간들의 발은 고양이에게 매우 무서운 존재다. 큰 발이 무심코 고양이를 차기라도 한다면 그 뒤는 어떨지 정말 끔찍하다. 특히 이렇게 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어떻게 발에 안채이고 갈 수 있지? 헤이스케는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떼었다. 10cm도 안되는 거리에 인간의 발이 콘크리트에 닿고 떨어질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벌써 하치자에몽은 저만치 가버렸다. 괜히 밖으로 나왔어. 헤이스케는 앞발로 머리를 감싸며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둥글게 말았다. 

 "오호~ 헤이스케! 찾았어!"
 
 하치자에몽이 입에 까만 깃털을 물고 힘차게 뛰어왔다. 인간의 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몸짓이었다. 인간이 찰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살짝 몸을 피해 날렵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헤이스케 앞에 선 하치자에몽은 얼굴을 느릿느릿 내려서 입에 문 깃털을 내려놓았다. 새까만 깃털이다. 

 "이거야?"
 "응. 틀림없어. 깃털이 까만색이잖아."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할건데?"
 "나한테 다 생각이 있지."

 일단 나만 믿고 따라와! 하치자에몽은 기세등등한 표정과 몸짓으로 당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축제는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하여 아무도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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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치자에몽의 뒤를 따라 헤이스케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시장 골목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인간도 많고 거리의 전구들도 밝아서 괜찮았는데 점점 안으로 들어갈 수록 어두컴컴하고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간의 발자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길고양이의 삶이 이런거라고? 헤이스케는 점점 더 기겁했다. 

 "캬악!"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부릅 뜬 날카로운 보석 두 개가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보석이 네 개. 꼬마전구보다도 훨씬 밝은 맹수의 눈빛이었다. 크르릉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모든 고양이들이 둘을 경계하자 헤이스케가 하치자에몽 뒤로 바짝 붙었다. 

 "너희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와. 엄청 복잡한 일이 생겼어."

 하치자에몽은 두 맹수를 잘 알고 있는듯 보였다. 

 "사부로. 라이조. 너희가 그렇게 궁금하던 녀석이야."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네 개의 보석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암흑 속에서 천천히 나왔다. 치즈색을 띈 두 마리의 고양이었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누군지 못알아보겠다. 헤이스케는 하치자에몽의 뒤로 숨어서 더 가까이 붙었다. 경계심을 늦출 순 없다. 그러자 하치자에몽이 괜찮다며 안심시키며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새로 이사왔다는 헤이스케야. 헤이스케 이쪽은 내 친구들. 사부로랑 라이조야."
 "그 집고양이?"
 "너가 헤이스케구나. 소식 들었어. 나는 라이조야 앞으로 잘부탁해."

 사부로와 달리 라이조는 경계심을 풀었다. 그리고 하치자에몽 주위를 빙빙 돌며 헤이스케를 탐색했다. 살랑거리는 꼬리는 덤이다.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고양이라 생각했는지 헤이스케도 경계심을 늦추고 라이조에게 고개를 까닥거리며 인사했다. 

 "그보다 심각한 일이 생겼어. 헤이스케 방울을 까마귀한테 뺏겼어."
 "어쩌라고. 어차피 길고양이도 아니잖아."
 "그러지말고 도와줘."
 "정어리 3마리."
 "친구한테도 돈을 받냐!"
 "저 도련님한테 받을거니까 넌 빠져."

 사부로는 여전히 경계심을 놓치 않았다. 그러자 헤이스케가 비장한 목소리로 대가를 지불하겠다며 큰 거로 한마리 어떠냐며 말을 덧붙였다. 하치자에몽은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생선 이름에 화들짝 놀라 이건 도박이라며 헤이스케를 말렸지만 사부로는 그에 응했다. 길고양이의 삶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식량을 비축해서 배불리 먹는게 최고로 좋은 삶이다. 

 "너가 말한 방법이 얘네들이야? 믿을만 한 애들인거지?"
 "적어도 집고양이인 너보다는 우리가 이 거리에 대해 잘아니까 틀리진 않을거다. 그보다 하치자에몽 우리를 판거냐?"
 "팔았다는 단어는 좀 이상하지 않냐. 아무튼 도와주는거지?"
 "값을 받을테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사부로는 앞발로 세수를 하며 털을 정리했다. 라이조는 헤이스케의 좋아하는 것들을 메모했다. 그러면서 어떤걸 선물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하치자에몽은 사부로와 라이조에게 깃털을 보여줬다. 어떤 까마귀의 깃털인지 안다면 이제 잡는건 시간문제다. 사부로는 깃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달빛에 깃털을 비춰보았다. 반짝이는걸 좋아하는 까마귀들 답게 스파클링이 붙어있었다. 어두워서 잘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달빛에 비춰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치자에몽과 라이조가 역시 천재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사부로가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깃털을 다시 하치자에몽에게 건네주었다. 

 "서쪽 까마귀 집단인 것 같아."
 "서쪽?"
 "응. 그 왜 있잖아. 시장 서쪽에 있는 산. 거기에 모여사는 것 같던데."
 "너 정말 이것저것 잘 아는구나..."

 하치자에몽은 한 번 더 감탄했다. 사부로의 연락망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이런 정보는 대체 어디서 얻는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사부로의 영역이니까 건들지 않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로는 개인 영역을 중시하는 성격이라 누구든 그 영역에 들어오는걸 싫어한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하치자에몽도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사부로와 친해졌다. 

 "그럼 그 산으로 가야해?"
 
 헤이스케가 입을 열었다. 방울을 찾기 위해서라면 모든지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걔네는 여기에 더 많이 오니까. 또 어디서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있겠지."
 
 사부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웩.하며 헛구역질 하는 시늉을 했다. 까마귀를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헤이스케는 그럼 어디로 가야하냐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사부로가 입을 열었다. 

 "까마귀에 대해 잘 아는 고양이가 있긴 해."
 "누군데?"
 "너도 잘 아는 고양이들이야."
 "설마... 난 싫어. 그 선배들은 맨날 싸우기만 해."
 "너가 안가면 방울은 누가 가져오냐? 저 도련님 혼자 산중턱에 버리고 올래?"

 하치자에몽은 사부로의 말에 말문이 막혀서 다시 끄응 앓는 소리를 하며 다시 헤이스케를 불러서 귀에 속닥였다. 축제는 이제 막 클라이막스인 불꽃놀이로 치닫고 있었다. 

 "시장 입구쪽으로 가자. 거기에 나를 키워준 선배들이 있어."
 "서쪽으로 안가고?"
 "아마 그 고양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알고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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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는 두 고양이와 이별하고 시장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끼면서 불꽃놀이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 소리가 큰지 헤이스케는 깜짝 놀라서 털을 곤두세웠다. 그 모양새를 본 하치자에몽이 별거 아니니까 긴장 풀라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거리가 커서 그런지 시장 입구로 가려면 한참이 걸렸다. 아까 나왔던 길을 또 걸어들어가는 기분이다. 밤중에 고양이들은 정모를 한다고들 하지만 그 선배 고양이들은 매일마다 정모하면서 싸우는 모양이다. 입구에 다다르자 캬르릉 거리는 고양이 소리가 낮게 울려퍼졌다. 두려움을 가득 품은 고양이의 하악질이 아니였다. 자신감이 넘치는 배에서 우러나오는 용맹스러운 짐승의 소리였다. 

 "오늘이야 말로 승부다!"
 "바라던 바다! 긴긴!"

 한쪽은 푸른색 털을 가진 덩치가 큰 고양이었고 한쪽은 녹색 털을 가진 같은 덩치의 고양이었다. 둘 다 눈매는 날카로웠고 털은 물론이고 꼬리도 정전기를 일으키듯 잔뜩 성나있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지만 단순한 고양이들의 장난이 아니었다. 하치자에몽은 그 모습에 쫄아 뒷발이 떨려 주춤했지만 그 사이 헤이스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헤이스케도 바깥 세상으로 나와서 많이 무서울텐데 자기마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헤이스케가 걱정할 것 같았다. 하치자에몽은 다시 뒷발을 꼿꼿하게 세우고 배에 힘을 주며 고양이들을 불렀다.

 "토메선배! 몬지선배!"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
 
 우레가 치는듯한 우렁찬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정말로 번개가 쳤다. 둘의 생각이 맞으면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린다며 둘이 생각을 달리하라며 하치자에몽이 급하게 사족을 붙였다. 그러자 둘은 그제서야 싸움을 멈추고 흥! 콧바람을 넣으며 돌아서서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고 용맹한 고양이의 모습을 내비치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뭐야 하치잖아. 무슨일이야?"
 "옆에 애는 누구냐? 신입?"
 "비슷해요. 근처 주택에 이사 온 고양이에요."
 "뭐야 집고양이야?"
 
 헤이스케는 '집고양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거슬렸는지 속으로 화를 삭히고 있었다. 하치자에몽이 헤이스케의 눈치를 보더니 근처에 까마귀 못봤냐며 본론을 말했다. 그러자 푸른털의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했고 녹색털의 고양이는 바로 입을 열었다.

 "까마귀? 센조를 말하는거냐?"
 "아마 비슷할거에요."
 "서쪽에 있는?"
 "네."
 "그녀석이라면 아까 봤어. 왼쪽으로 갔다."

 녹색털의 고양이가 앞발로 왼쪽을 가리키자 푸른색털의 고양이가 반박했다. 아까 본 까마귀라면 자기도 봤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까 봤던 까마귀라면 오른쪽으로 갔어. 이녀석은 왼발 오른발도 구별 못 해."
 "뭐야?! 아까 왼쪽으로 가는거 못봤냐!"
 "그럼 내기할래?!"
 "바라던 바다!"

 순식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둘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대치하고 있었다. "이래서 선배들의 얼굴을 보기 싫었던건데." 하치자에몽이 고개를 떨궜다. 이미 캬르릉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져서 더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하치자에몽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다시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헤이스케를 데리고 입구에서 멀어졌다. 싸우고 있는 두 고양이에게 할말은 없지만 예의상 말은 해야할 것 같아 대충 흘리는 말로 고맙다는 인사도 까먹지 않았다. 맨처음에 말한 녹색털의 고양이의 말을 믿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왼쪽이 안맞으면 오른쪽으로 다시 가면 되니까. 

 "그 고양이들이 너의 선배들이야?"
 "응. 어릴때부터 같이 지냈어. 사부로랑 라이조도 마찬가지고. 맨날 저렇게 서로 싸워. 별거 아니니까 걱정 마."
 "둘 다 너랑 똑같은 길고양이들?"
 "그건 잘 모르겠어. 이 거리에서 태어난건 아니라고 하던데."
 
 헤이스케는 길고양이들의 삶이 신기했다. 비록 어미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따뜻한 어미의 품이 기억나는 헤이스케와 달리 하치자에몽은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은 어미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눈을 뜨고 인지가 가능한 나이가 되었을 때즈음, 저 선배 고양이들이 얻어 온 생선 찌꺼기 따위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배울 점이 많은 선배들이야. 사냥하는 법도 배웠고 이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어. 너도 친해졌으면 좋겠다. 첫만남이 이상하긴 했지만. 사부로랑 달리 저 선배들은 길고양이든 집고양이든 상관없이 다 좋아해."
 
 헤이스케는 사부로가 왜 자기를 싫어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사부로는 왜 집고양이를 싫어해?"
 "음... 말하자면 긴데. 옛날에 사부로가 좋아하던 집고양이가 있었어. 근데 그 고양이가 이사갔나봐. 한마디도 없이 이사가서 엄청 슬퍼했어. 그래서 집고양이들은 모두 인간의 말만 따르는 바보라고 생각해. 거짓말쟁이라고도 생각하고. 아마 지금도 걘 너가 준다는 그 고급 생선을 받을거라고는 생각 안할거야. 그것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테니까."
 "내가 한 말은 거짓말 아니야."
 "나야 당연히 널 믿지! 걔도 성격은 좀 까탈스럽지만 속은 좋은 녀석이니까 친해지면 좋을거야. 까마귀의 은신처도 알려줬잖아."
 "그렇긴 해. 라이조랑도 친해보이던데."
 "걔네는 서로 같은 날짜에 발견됐거든. 원래 사부로는 저 색이 아니였어.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어느순간 라이조랑 똑같아 지더라."
 "그렇구나. 참 재밌는 녀석들이네."
 "그렇지? 너도 길고양이가 되면 이렇게 재밌는 일을 잔뜩 들을 수 있어."
 "그래도 난 집이 편해."
 "아...그래..."

 하치자에몽은 썰렁함에 다시 앞장서서 걸었다. 헤이스케와 이렇게 많이 대화한건 처음이다. 헤이스케는 점점 더 길고양이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집고양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자기를 기다리는 집사들도 그렇고 울타리안에서 키워지는게 안전했다. 밖은 너무 무섭다. 

 "그 선배들은 너를 하치라고 부르던데 왜그런거야?"

 헤이스케는 이왕 이렇게 된거 잔뜩 이야기하고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길고양이는 될 수 없지만 주변에 같은 고양이 친구가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을 것 같았다. 

 "별명 같은거야. 사부로랑 라이조는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 거리에서는 다들 날 하치라고 불러. 이름이 길잖아? 너도 나를 그렇게 불러도 돼."
 "....알았어."

 헤이스케는 하치라. 너무 강아지 이름 같지 않나? 중얼거리며 곱씹어 말했다. 하치.하치.하치. 역시 고양이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그래도 제법 귀여운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었다. 불꽃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헤이스케는 발걸음을 재촉해봤지만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에 지쳐 하품을 하며 주변을 걸었다. 

 "졸려? 너 고양이 맞냐?"
 "놀리지 마."

 하치자에몽은 희희덕 웃으며 헤이스케를 약올렸다. 고양이가 달이 떠있는 이 밤에 졸다니. 인간의 손을 탄 고양이들은 다 이런가? 하치자에몽은 집고양이에 대해 많은걸 알아가서 새로웠다. 특히 헤이스케는 집고양이들 중에서도 특별했다. 윤기나는 털도 그렇고 촉촉한 코, 총명한 머리, 티끌없이 맑은 수정체를 가진 눈도 너무 신기했다. 꼬질꼬질한 길고양이인 자신에 비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하치자에몽은 헤이스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결국 먼저 질문했다. 

 "너는 어디서 왔어?"
 "여기에 살기 전에는 도쿄 한복판에서 살았어."
 "그전에는?"
 "기억은 잘 안나지만 시골농장에서 어머니의 젖을 먹었던 기억은 있어. 형제가 다섯은 됐던 것 같아."
 "정말? 형제들은 어땠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나. 한 마리만 기억나. 나처럼 검은색은 아니였고 얼룩이었어. 아마 형제들 중 몇몇은 검은색, 몇몇은 얼룩이로 태어났나봐. 내 옆에서 해맑게 웃으면서 자고 있었거든."
 "걔랑은 연락해?"
 "아니. 다만 이름만 대충 기억해. 뭐라고 시작했더라... 카..."
 
 헤이스케는 곰곰히 생각하며 여러 이름을 나열했다. 그런데 입에 딱 달라붙는 이름이 없었다. 하치자에몽은 잘 생각해보라며 말을 했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서 헤이스케는 포기했다. 

 "그건 그렇고 까마귀 소굴은 아직이야?"
 "그러게. 그 선배들 제대로 알려준거 맞아?!"
 
 하치자에몽은 앞발로 귀를 감싸며 큰일났다며 끙끙거렸다. 그러자 나무사이로 시꺼먼 형체가 날아올랐다. 한마리도 아니고 여러마리였다. 헤이스케 콧잔등 위로 검은 깃털이 내려앉았다. 달빛에 비춰보니 반짝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녀석이다."
 "응?"
 "쟤네들이야 하치!"

 하치자에몽은 화들짝 놀라 어디어디? 만 연발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헤이스케가 위를 보라며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서야 하치자에몽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새까만 형체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까악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다른 까마귀들이 순식간에 같은 각도로 내려앉아 하나둘씩 땅에 착지했다. 새까만 밤이라 그런지 까마귀들이 몇마리 있는지 감이 안온다. 

 "고양이다!"

 한 까마귀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 까악거리며 위협했다. 하치자에몽은 잽싸게 헤이스케를 숨겼다. 방울을 가로챘을 때 까마귀가 분명 고양이의 얼굴을 봤을 것이다. 까마귀들이 푸드덕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로 고양이들을 위협하자, 한 까마귀가 내려앉더니 조용히 하라는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제서야 까마귀들이 입을 다물고 모두 반발자국 뒤로 물러서 대장 까마귀의 행차를 기다렸다. 

 "밤 10시 이후에는 까마귀의 세상이라고 산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저기 저희는 그런게 아니고요 방울만 돌려받으려고 왔어요."

 하치자에몽은 헤이스케를 뒤로 숨기며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방울만 받으면 갈거라고 말했지만 까마귀는 한 번 가진건 절대 뺏기지 않는다. 뒤로 숨은 헤이스케가 까마귀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왔다. 

 "어엇. 야!"
 "내 방울 돌려받으러 왔어요. 방울만 돌려주면 다신 안올게요."
 "방울?"
 "오늘 저녁에 까마귀가 가져간 방울이요. 이 목에 달려있던거에요."

 까마귀 센조는 날개로 부리를 가리며 눈을 피했다. 방울이라. 그러고보니 키하치로가 반짝이는걸 주웠다고 땅에 묻은 것 같은데. 

 "까마귀의 삶에 반짝이는건 당연히 필요해. 방울을 대체할만한 반짝이는 물건을 가져와. 그러면 돌려주지."
 "의외로 말이 잘 통하네요."
 "그쪽이야말로 멍청한 고양이들이랑 다른 모양이구나."
 
 헤이스케는 다시 하치자에몽에게 돌아와서 반짝이는걸 주워오자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찾지? 이 산속에서 반짝이는건 어디에도 없어. 하치자에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려면 시장까지 다시 돌아가야한다. 헤이스케는 기꺼이 그럴 수 있다고 굳은 다짐을 내비쳤다. 투명한 수정체가 정말 맑아보인다. 하치자에몽은 알겠다며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연락망을 돌리고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연락망은 시장에 있는거 아니였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있거든. 아직 어리지만."
 
 하치자에몽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고양이의 구슬픈 소리가 산 중턱에서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들렸는지 까마귀들은 내용도 모르면서 훌쩍였다. 세번째 내질렀을때즈음에 하치자에몽의 반만한 덩치를 가진 어린 고양이가 나타났다.

 "무슨일이세요 선배?"
 "오늘은 너밖에 없어?"
 "네. 모두 뿔뿔히 흩어졌어요."
 "음 그러면 곤란한걸. 적어도 세마리는 필요한데."
 "그럼 제가 두마리 더 데려올까요?"
 "그럴 수 있어?"
 "아직 엄청 어리지만요."
 
 어린 고양이는 잘도 말했다. 어디 막히는말 없이 술술 내뱉는게 한두번 한 솜씨가 아니였다. 하치자에몽은 어린 고양이들은 의미가 없을테니 괜찮다고 말하고는 지금부터 곧장 사부로에게 가서 이 쪽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쪽지는 언제쓴건가 싶었지만 별거 아니였다. 짓물린 산딸기 즙을 발에 묻혀서 나뭇잎에 여러번 찍은 것이다. 고양이 언어로 '시간이 많이 걸릴듯 하니 위장술을 생각해줘. 그리고 반짝이는 물건 있으면 가져다 줘.'라고 써있다.   

 "그럼 부탁한다 마고헤이."
 "네. 맡겨만 주세요."

  어린 고양이는 입에 나뭇잎 편지를 물고 금세 사라졌다. 믿을만 길고양이인가 싶지만 헤이스케는 이제 그 고양이들을 믿기로 했다. 그런데 위장술이라니 어떤걸 말하는거지? 헤이스케는 다시 하치자에몽 옆에 다가가서 궁금한걸 질문했다. 이 바닥에서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헤이스케는 호기심이 가득한 고양이여서 뭐든지 알고 싶어했다. 

 "사부로한테는 왜 편지를 보내는거야?"
 "시간이 너무 늦으면 너희 집에서 너가 없어진걸 알고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날거 아니야. 그걸 사전에 방지하는거지. 어때? 내 계획 괜찮지."
 
 하치자에몽은 우쭐해져있었다. 칭찬받을 생각에 들떠있는듯 보였다. 그러나 헤이스케는 차게 식은 얼굴로 하치자에몽의 계획을 완전히 부정했다. 애초에 방울이 없어져서 찾으러 온건데 방울 없는 고양이가 집에 들어왔다고 해서 집사가 몰라볼리가 없다. 

 "방울이 없으면 소용없다니까."
 "에."
 "까마귀 말이 맞아. 너네는 바보야."
 "아앗! 잘못 전해줬다!"

 하치자에몽은 다시 귀를 앞발로 감싸며 헤이스케 주변을 빙빙돌았다. 어쩌지 어쩌지. 완전히 망했어. 이제 동네에 소문이 쫙 퍼질테고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내가 헤이스케를 꼬드겨서 나쁜짓 하게 만든 질나쁜 고양이로 찍히겠지. 하치자에몽은 온갖 상상을 하며 배를 보이며 드리누웠다. 콘크리트가 아닌 흙바닥이었다. 

 "그래도 사부로는 머리가 좋으니까 너의 계획도 다 간파하고 다른 계획을 세워주겠지."
 "그,그렇겠지?"
 "안되면 어쩔 수 없는거고."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갈래? 방울이 없어진건 어떻게든 얼버무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어. 지금 돌아가도 집사는 내가 없어진걸 알거야."
 
 하치자에몽은 이제 어쩌면 좋냐며 안절부절했지만 정작 헤이스케는 침착했다. 이대로라면 없어진걸 들키는건 시간문제지만 헤이스케는 오히려 차분하게 대응했다. 만약 집사가 내가 없어진걸 안다면 어떻게 하지? 헤이스케는 차분히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고양이의 작은 뇌로는 모든걸 상상할 수 있다. 뇌리를 스치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 집사는 밤 9시가 되면 저절로 잠든다. 


-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 불꽃놀이가 잦아들고 메이는 부모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메이는 손에서 축제에서 산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메이는 잠꼬대를 부렸다. 헤이스케랑 오면 더 재밌었을텐데. 헤이스케 배고프지 않을까? 꿈에서 고양이랑 놀고 있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져 떠나지 않았다. 

 그 시각 마고헤이는 입에 문 나뭇잎 편지를 건네주려고 시장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중에 만난 고양이는 아무도 없었다. 같은 또래의 고양이들은 커녕 새끼 고양이도 안보였다. 마고헤이는 더 빨리 달렸다. 날렵한 고양이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흘러 시장입구에 도착했다. 마고헤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입구에는 여전히 두 선배 고양이가 싸우고 있었다. 마고헤이는 딱히 친한 사이가 아니여서 그랬는지 둘을 무시하고 입구 안으로 들어가 시장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무시하지 말라는 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또 말을 맞췄기 때문에 하늘이 노하셔서 번개가 쳤다. 

 "마고헤이지? 여기까지는 무슨일이냐?."
 "그게, 저는 하치자에몽 선배의 편지를 사부로 선배에게 전해줘야해요."
 "그래? 그럼 내가 가져다주지."
 "넌 빠져! 하치에게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 준 사람은 나거든?"
 "하치에게 쥐를 잡는 법 가르쳐 준 사람은 나야!"

 마고헤이는 왈가왈부하는 두 고양이 사이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다시 불현듯 생각난 편지 때문에 자리를 피했다. 골목을 두어개 정도 건너자 드디어 사부로와 라이조의 수정체가 암흑속에서 빛났다. 깜빡하고 보석이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빛났다. 마고헤이는 입에 물고 있던 나뭇잎 편지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사부로가 암흑속에서 나와서 마고헤이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하치자에몽이 보낸거냐?"
 "네. 선배가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시간이 많이 걸릴테니까 위장술을 생각해달래."

 라이조가 나뭇잎 편지를 펼쳐서 읽었다. 위장술을 생각해달라니. 나중에 정어리 10마리로 올려야겠어. 사부로는 혀를 차고는 암흑속에서 속닥거리는 고양이 무리들을 불렀다. 

 "너희들 숙덕거리지 말고 어서 나와."

 사부로의 말에 마고헤이보다는 조금 큰 고양이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총 3마리로 서로 얼마나 티격태격했는지 상당히 지저분한 몰골이었다. 적갈색의 털을 가진 고양이는 길고양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옆의 밝은 갈색의 털을 가진 고양이는 시끄럽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맨 마지막의 검은털을 가진 고양이는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사부로와 라이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 진짜 바보아니야? 방울이 없는데 무슨 위장술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사부로는 헤이스케와 똑같은 말을 했다. 사부로가 나뭇잎 편지를 길바닥에 버리고는 다시 세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적갈색의 고양이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려는듯이 기품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부로는 전혀 상관쓰지 않았다. 밝은 갈색의 고양이는 두 눈을 초롱초롱 뜨며 사부로를 쳐다봤다. 사부로는 이번에도 무시했다. 세번째의 검은 고양이의 이마에 앞발을 올렸다. 선택받은 고양이는 선배가 하라는대로 해야한다. 

 "크기는 좀 작지만 색깔이 똑같으니까 괜찮겠지. 슈이치로 너가 집고양이 흉내를 내라."

 검은 길고양이는 검은 집고양이 연기를 해야했다. 방울도 없는데 금방 들키는거 아니야? 라이조는 걱정을 했지만 사부로는 금방 방울 비스무리한 것들을 찾았다. 어차피 인간들은 멍청해서 어떤 고양이든 다 똑같다고 생각을 하니까 이정도의 위장술이면 금방 속아넘어갈거라 말했다. 사부로는 슈이치로의 목에 길고 넓적한 종이테이프로 만든 방울을 걸어주었다. 앞에 작은 종이 달려있었다. 방울처럼 딸랑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사부로는 밤이라 인간들이 둔해질테니 적당히 속을거라고 했다. 

 "몇시까지 있어야 해요?"
 "녀석들이 돌아올때까지."
 "언제 돌아올까요?"
 "몰라. 적어도 해가 뜨기 전까지는 오겠지. 미안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너밖에 없어. 알지도 못하는 고양이한테 부탁하는 것보단 아는 고양이한테 부탁하는게 낫지."
 "그래도 전 그 고양이 모르는걸요?"
 "괜찮아. 내가 망을 봐줄테니까."
 
 검은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집고양이는 어떻게 생활하지? 다른 지역에서 온 고양이로써는 알길이 없다. 그래도 모처럼 만들어준 방울에 모처럼 뽑아준거니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옆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이 신경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역은 검은 고양이니까 맞는 색깔을 가진 고양이가 꼭 해야만 하다. 

 슈이치로는 사부로의 뒤를 졸졸 따라서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짤랑거리는 간이 방울이 경쾌하게 흔들렸다. 왜 자신들이 뽑히지 않았냐며 질투심을 보내고 있는 또래 고양이 두 마리의 눈빛 때문에 뒷통수가 따갑다. 골목의 쓰레기통을 밟아, 크게 도약하며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그 모습이 얼마나 빠른지 마치 새같아서 도저히 고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정도다. 집고양이와 다르게 길고양이는 지리를 잘 알고 있었고 몸이 날렵해서 이 거리에서 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짤랑거리는 슈이치로의 방울이 꽤나 시끄럽다. 

 "슈이치로말고 나를 선택했으면 좋았을걸."
 "너보다는 내가 더 아쉬워."
 
 적갈색의 고양이와 밝은갈색의 고양이는 사이가 안좋아서 서로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그래도 어떨때는 서로 힘을 합해 위기를 모면할 때도 있으니까 아주 사이가 안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더니 둘은 목소리를 낮추면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하치자에몽 선배도 참 대단하셔. 완전 집고양이 킬러야. 그치 미키에몬?"
 "바보타키야샤마루. 그건 하치자에몽 선배가 아니라 사부로 선배잖아."

 사부로의 뒤를 따르는 슈이치로는 이 거리에 온지 얼마 안된 신입 고양이라서 사부로가 좋아했다는 집고양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뒤에서 속닥거리는 또래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안듣기에는 너무나도 잘들렸다. 여태까지 조용히 입다물고 사부로도 못참겠는지 뒤로 홱 돌아 후배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시답지 않는 소리를 해대서 괜히 집중력 흐트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그제서야 어린 고양이들이 눈을 꾹 감고 몸을 움츠리며 조용해졌다. 사부로는 점점 발걸음을 늦췄다. 앞발이 멈추자 뒤를 따르던 후배 고양이들이 같이 멈춰서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도착한 곳은 길고양이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웅장한 궁전이었다. 입이 떡 벌어진 후배 고양이들은 이런 곳에 산다면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다며 자기끼리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타키야샤마루는 극진한 도련님 대접을 받으며 최고급 생선을 집사들이 먹여주는 상상을 했다.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이고 행복해져서 잔뜩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미키에몬이 달려들어서 그 상상을 전부 접고 아이돌이 된 자신을 상상했다. 인간 팬들이 자기에게 맛있는 생선을 선물로 주고 아이돌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는 상상을 하며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슈이치로도 덩달아 상상의 뭉게구름을 띄웠다. 저 궁전이라면 방도 여러개일테니까 여러개의 방에서 개그공연을 관람하는걸 상상했다. 상상만해도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플지경이다. 

 "거기까지 해. 슈이치로 올라와."
 "아, 네."

 사부로는 벌써 저만치 올라가서 2층 지붕 위에서 슈이치로를 불렀다. 부드럽게 꼬인 꼬리가 정말 아름다웠고 치즈색의 털이 달빛을 받아서 더 주황색으로 빛났다. 슈이치로도 성큼 올라가서 사부로의 옆에 섰다. 아주 작게 열린 틈 사이로 어두운 어이의 방 풍경이 보였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검은 집고양이 연기를 하면 된다는거지? 슈이치로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맡겨만 달라는 열혈 넘치는 작은 고양이의 말에 사부로는 정말 믿을만한건지 걱정이 되었지만 달리 다른 방법을 쓸만한 것도 없었다. 

 "슈이치로 실패하지 마라!"
 "실패해도 이 타키야샤마루님이 대역으로 나서줄테니까 걱정 마."
 "넌 빠지라니까!"

 1층 마당에서는 고양이 두마리가 왱알왱알 싸우고 있었다. 사부로가 제발 조용히 하라며 주의를 주자 둘은 서로를 물어 뜯던 송곳니를 숨기고 아무일도 없던 척 시치미를 뗐다. 슈이치로가 아주 작게 열린 창문 틈사이로 얼굴을 집어 넣었다. 작은 얼굴은 금방 들어갔고 매끈한 허리가 수욱하고 들어갔다. 곧이어 하체가 들어가려고 했으나 아주 어린 고양이는 아니여서 그런건지 문턱에 끼어서 발버둥을 쳤다. 뒷발로 창틀을 박박 긁어가며 안간힘을 쓴 덕분에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안은 생각보다 좁네."

 슈이치로는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가서 탐색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정리 안된 어린아이의 장난감들이 줄지어 서있다. 처음보는 물건들이 많아서 슈이치로는 호기심에 그것들을 건들여보기도 했다. 그러다 덜커덩 하는 소리에 깜짝놀라 펄쩍 뛰어 장난감 박스 뒤로 숨었다. 끼익하고 문이 열리더니 인간들이 작은 인간을 등에 업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남자 등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업혀있었다. 여자가 불을 키려고 하자 남자가 자고 있으니까 깨우지 말고 바로 눕히자고 조근조근 말했다. 

 "헤이스케 잘 있었어?"
 "야,야옹~"
 
 슈이치로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사부로는 좋은 임기응변이었다며 조금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윙크를 보냈다. 부부는 메이를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잘자라며 짧게 키스했다. 메이는 기분 좋게 자고 있었으며 헤이스케를 찾는 잠꼬대도 여전했다. 손을 휘적거리며 헤이스케를 찾아댔으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자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부부는 평상시에 메이가 고양이와 함께 자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도 안켜서 컴컴한 방 안에서 휘적대며 검은 고양이를 찾았다. 그러자 슈이치로가 자기도 모르게 모습을 드러내며 메이의 근처에 와서 메이의 손에 얼굴을 부볐다. 부부는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가 귀여웠는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다가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어 주며 방을 나갔다. 

 "그럼 잘 자렴. 메이, 헤이스케."
 "야옹~"

 조용하게 닫힌 문 때문에 더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메이는 고양이 털의 감촉이 느껴졌는지 다시 얼굴을 풀고 편안한 표정으로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그러나 슈이치로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메이의 손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어서 메이가 완전히 깊게 잠들지 않는 이상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사부로는 창문틈 사이로 계속 가만히만 있으면 안들킬거니 거기서 움직이지 말라며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는건 슈이치로의 성미에 안맞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안되는걸까? 슈이치로는 아주 잠깐 앞발을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으으..."
 "...!"

 메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슈이치로는 다시 앞발을 조심스럽게 올려서 털 안으로 숨겼다. 생각보다 고된 대역을 맡게 되어서 힘들다. 빨리 그 집고양이랑 하치자에몽 선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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