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타마 졸업 후 시리어스 시리즈 장편소설
*시리즈물 소개
센몬-정도, 닌자의 길
타케쿠쿠-만월의 약속, 그믐의 약속
하마미키-불화살, 흉터
*이 시리즈물을 보고 오시면 더 이해가 잘됩니다.
*미완입니다. 장편 소설인 관계로 천천히 추가합니다.
*21년도에 썼던 글인데 더 늦추면 알될 것 같아서 이제야 올림.
*해당 소설은 논픽션이며 허구의 인물입니다. 실제와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시대고증을 위해 잠깐 가져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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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団の 編
무로마치 막부 말기. 쿄토에서 오닌의 난이 일어나면서 동양의 섬나라는 큰 혼란기를 맞이하였다. 이 혼란을 잠재우러 여러지방에서 영웅들이 할거하였고 농민들은 썩어빠진 시대를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전쟁에 끌려가 화살받이가 되었고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던 부모는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끔찍한 시대였다. 작은 섬나라에서 나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남을 서스럼없이 죽였다. 자신의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남의 밥그릇을 뺏어야했다.
쿄토가 아닌 지방에서는 쿄토를 차지하고 새시대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군웅들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전진할 계획을 꾸리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오토모 요리시게 등이 그들이다. 농민들은 물론이고 그 밑의 사무라이들은 누가 다음 시대의 열쇠를 쥐는지는 관심 없었다. 다만 예전의 나라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에도에 위치해있는 아사쿠사는 이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그다지 닿지 않는 곳이다. 다이묘도 그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아사쿠사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새로운 집단을 설립했다. 그것이 '아사쿠사단(浅草団)'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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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쿠라 상점가에는 요즘 안좋은 소문이 떠돌고 있다. 대낮에 여자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몇몇의 사람들은 여자가 끌려가는 것을 봤다고 하고 몇몇의 사람들은 여자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은 그들을 제지하려고 하다가 살해당했다. 여자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푸른색 두건이 있었다. 상점가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게 '푸른 두건의 사람을 조심하라' 고 당부했다. 공표를 작성해서 상점가 초입문에 붙여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푸른두건의 소행은 막을 수 없었다.
납치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와중에 상점가의 잘 나가는 두부가게에 기웃거리는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두부가게 안의 사람이 남자에게 가게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뭐하십니까? 들어와서 두부 맛 좀 보세요."
"아뇨...그..."
두부가게의 청년은 탄탄한 근육을 가진 상점가 최고의 인기인이다. 특유의 상냥한 마음씨와 가게 문을 훌쩍 뛰어넘는 큰 키, 단단하게 물오른 근육, 회색 머리는 한동안 손질하지 않은건지 윤기는 전혀 없고 오히려 짐승의 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부스스거렸다. 부라리는 눈썹과 눈매는 호랑이도 도망갈정도로 용감해보였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는 살짝 익살스럽기는 하지만 진중한 멋이 있었다. 남자는 우물거리다가 두부가게의 청년에게 귓속말을 했다.
"의뢰입니다. 받아주십쇼."
청년은 남자의 그 말을 듣고 익살스럽던 그 얼굴을 싹 빼고 진중한 얼굴로 턱을 들어 뒷쪽으로 오라고 권했다. 남자는 청년의 얼굴을 보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고 청년을 따라 주방 깊숙히 들어갔다.
주방에는 또 한명의 청년이 있었다. 두부가게의 또 한명의 인기인이다. 회색머리의 청년과는 다르게 새까만 흑발이었다. 회색머리의 청년과는 다르게 머리에 조금 신경을 썼는지 약간의 윤기가 흐르는 고풍스러운 곱슬머리였다. 다부진 근육체형은 아니지만 군더더기 없는 잘 빠진 몸이었다. 새하얀 피부와 어우러지는 긴 속눈썹을 한 미인이었다. 흑발청년은 주방에서 솔로 그릇을 닦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회색머리의 청년은 설거지를 하는 청년을 불렀다.
"헤이스케. 의뢰 손님이다."
흑발청년은 손을 멈추고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고 앞치마를 벗어 놓았다. 남자는 청년 둘에게 품에 안고 있던 종이를 건넸다. 의뢰 내용이 들어있다는 눈치었다.
"저희 딸이 사라졌습니다. 부탁입니다. 보수는 얼마든지 드릴테니 딸을 찾아주십쇼."
남자는 잔뜩 몸을 땅에 붙여 두 청년에게 절을 올렸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딸을 꼭 찾고 싶다는 염원이 느껴졌다. 두 청년은 의뢰의 종이를 받아들고 찬찬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둘은 이 사건이 최근의 '푸른두건'의 소행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딸의 생사를 알 수는 없지만 의뢰를 받은 이상 죽더라도 시체를 가져와야만 한다. 회색머리의 청년은 다 읽은 종이를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엎드려있는 남자에게 손을 내밀어 고개를 들라며 익살스러운 얼굴을 하며 그를 안심시켜주었다.
남자는 그제서야 얼굴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울음을 먹은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두부가게를 벗어났다. 두 청년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두부가게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어 회색머리의 청년은 밖의 간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식탁을 정리하는 흑발의 청년은 내일 가게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하지 않겠냐며 먼저 말을 걸었다. 회색머리의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들의 집인 윗층으로 올라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회색머리 청년의 이름은 타케야 하치자에몽. 인술학원의 졸업생이며 지금은 의뢰를 받으면 보수를 받고 활동하는 닌자로 일하고 있다. 흑발 청년의 이름은 쿠쿠치 헤이스케. 같은 인술학원 졸업생이며 하치자에몽과 마찬가지로 의뢰를 받으면 보수를 받고 활동하는 닌자이다. 평상시에는 좋아하는 두부가게에서 일을 하며 보통의 상인처럼 보이도록 하고있다.
하치자에몽은 촛불에 불을 켰다. 방에는 두 개의 작은 책상이 있었고 두 개의 이불이 한쪽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작지만 아늑한 방이었다. 불을 키자 어슴푸레한 빛에 두사람의 얼굴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하치자에몽은 품 안에서 다시 낮에 받은 종이를 꺼내보았다. 하치자에몽이 글씨를 읽을 때마다 그의 진하고 부리부리한 눈썹은 심하게 흔들렸다.
"푸른두건의 짓이군. 어린 아이인듯 모양인데 잘도 이런짓을 하다니."
"진정해. 적이 누구인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잖아."
헤이스케는 흥분한 하치자에몽을 진정시켰다. 범인이 푸른두건의 소행이라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게 없다. 푸른두건을 잡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미끼가 되어서 범인을 끄집어 내는 수 밖에 없다. 헤이스케는 묶고 있던 머리끈을 끊었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길고 곱슬거리는 머리는 뒤에서 본다면 여인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헤이스케는 입술을 세게 깨물어 새빨간 피가 입술에 은은하게 퍼져 붉게 물들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여자로 보이겠지."
은은하게 퍼진 피는 송글송글 맺혀 핏방울을 만들어 나무바닥에 떨어져 스며들었다. 하치자에몽은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까지는 좋았지만 피로 연지를 대신할 수는 없다며 손으로 헤이스케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헤이스케는 입술을 다시 지우고 거울을 보았다. 내일 파란두건을 잡기 위해서는 더 여자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내일 잡화점에서 연지를 사올게. 옷도 있는지 봐두고."
하치자에몽은 헤이스케의 머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헤이스케를 향해 하치자에몽은 아침 일찍 잡화점에 들러서 화장품을 사야겠다고 익살스럽게 말했다. 다시 머리를 묶은 헤이스케는 놀랍게도 아까의 처녀귀신은 없고 두부가게의 미남으로 보였다. 하치자에몽은 지금은 필요한 물품이 하나도 없으니 내일 다시 시작하자며 헤이스케의 이불을 대신 펴 주었다. 그리고 어슴푸레한 그 촛불을 입으로 후- 불어 끄고 암흑만이 남은 늦은 밤의 이불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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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도토쿠라 상점가의 꽃집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언제나 싱싱한 꽃들을 가져오고 상점의 청년들도 활기차고 애교가 많아 인기만점이다. 머리를 아래로 낮게 묶은 청년은 꽃집의 주인이면서 다른 주인에게 구박을 많이 당하는 순박한 청년이다. 기분이 좋으면 꽃을 두 세개씩 더 주기도 하고, 애교가 많아 손님들 앞에서 재롱을 부릴 때도 있다. 또 잘 웃기 때문에 상점가의 사람들에게 떡이나 국수등을 받을 때가 많다.
"슈이치로! 너 또 꽃 하나 더 줬지? 제값을 받으라고 몇번을 말해!"
"아직 많이 있으니까 괜찮잖아."
꽃집의 다른 주인은 갈색 머리에 잔뜩 위로 올려묶은 머리가 인상적이다. 째지는듯한 고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까칠하게 굴어 상점가의 사람들은 능청맞은 다른 주인을 좋아할때가 많다. 융통성이 없게 느껴질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엄격하다. 그러나 다른사람에게 엄격한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하기 때문에 둘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진 않다. 목소리에는 애교가 묻어나고 융통성은 조금 없지만 기분이 좋거나 주위사람들이 치켜세워주면 금방 느슨해지는 성격이라 상점가의 사람들은 이쪽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꽃집의 청년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을에 잔치라도 있는건지 꽃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낮을 뉘엿뉘엿 지나는 시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이른아침부터 힘들게 꺾어 온 꽃들이 다 팔린걸 본 청년들은 내심 뿌듯해 했다. 장사는 힘든걸 잘 알기에 청년들은 후들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벌써 점심 때를 놓쳐서 배가 고팠지만 움직일 힘도 거의 없다.
머리를 낮게 묶은 청년의 이름은 하마 슈이치로. 인술학원 졸업생으로 예전에는 마츠호도 성에서 농성을 하며 간신히 생애를 지켜왔지만 마츠호도 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인술학원으로 편입하였다. 졸업 후에는 마츠호도 성을 비롯한 다른 성의 닌자들을 모집하여 사적인 닌자대를 꾸렸다.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인간미가 넘치는 닌자대였으며 우정과 인연을 중시하는 닌자답지 않은 인품을 지닌 닌자대였기 때문에 동료를 모두 잃고 새시작을 위해 꽃집을 차렸다.
머리를 높게 묶은 청년의 이름은 타무라 미키에몬. 같은 인술학원 졸업생으로 닌자대에 들어갔으나 큰 화를 입고 더이상 닌자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의 문을 닫고 꽃집을 차려 간간히 들어오는 의뢰를 받는 닌자 일을 하고있다. 꽃집을 차리게 된 계기는 우연히 길을 걷고 있었을 때 마주친 동창 슈이치로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도토쿠라 상점가에 머물게 되었다.
슈이치로는 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꼈다. 아저씨같은 모양새지만 그것도 슈이치로의 매력의 일부다. 미키에몬은 슈이치로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며 저리비키라고 구박을 했다. 예의없는걸 절대 못참는 미키에몬은 슈이치로의 이런 아저씨같은 모습이 꼴보기 싫었다. 그래도 새시작을 위해 꽃집을 차린만큼 너무 구박하진 말자고 다짐했다.
"가끔 꿈에 옛 동료들이 나와. 어리숙하고 힘은 없었던 닌자대지만 유쾌하고 재밌는 녀석들이었어."
슈이치로는 뜬금없이 그말을 하고 대자로 누운 몸을 다시 웅크려 왼쪽으로 돌아 누웠다. 미키에몬은 추억에 잠길 시간이 있다면 꽃이나 더 사오라며 발바닥을 잡고 잔뜩 간지럽혔다. 슈이치로는 웃음을 못참고 웃음을 터뜨리며 발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돌려주겠다며 미키에몬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간지럽혔다. 둘은 피곤하다는 생각도 못한채 마룻바닥을 뒹굴며 웃었다. 옛 추억에 잠길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며 미래를 생각하며 웃었다.
"슈이치로. 있나?"
위화감이 느껴지는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마룻바닥에서 놀던 두 사람은 웃음을 멈추고 일어나 잔뜩 흐트러진 옷무새를 정돈하고 가게 문을 열었다. 위로 째진 눈매, 꾹 다문 입, 슈이치로보다 훨씬 큰 몸집의 장군같은 모습의 사내가 가게 문앞에 서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슈이치로는 아는 사람인지 기쁜 목소리로 그사람에게 안겼다. 온몸으로 내뿜는 기운은 제 아무리 용감한 영웅이라도 도망칠정도로 섬뜩할정도로 무서웠다.
"케마 선배. 오랜만입니다."
"그래. 가게는 잘 되가니?"
"네. 덕분에."
위화감이 느껴지는 큰 몸집의 청년의 이름은 케마 토메사부로. 같은 인술학원 졸업생으로 슈이치로의 선배인 사람이다. 슈이치로의 안김에도 토메사부로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의 어깨를 잡아 떼어놓았다. 한 손의 악력만으로도 슈이치로는 어깨를 문지르며 토메사부로의 앞에서 신나게 떠들어댔다. 토메사부로는 슈이치로의 힘 있는 목소리에 전언을 전해주었다.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어. 목재를 받으러 유우치 항구에 가야해. 이사쿠도 내일 멀리 나가봐야한다더군. 내가 시간이 있다면 그녀석을 먼저 데려다주고 항구로 향할 텐데 아쉽게도 내가 먼저 떠나게 되었어."
토메사부로는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단단해보이는 몸에 근육이 균형있게 잡힌 팔뚝으로 호랑이나 멧돼지 정도는 단숨에 쓰러뜨릴정도로 보였다.
"슈이치로. 미안하지만 아침에 이사쿠를 바래다주지 않겠나? 은혜는 평생 잊지 않으마."
토메사부로는 고개를 숙여 슈이치로에게 부탁을 했다. 선배의 부탁을 마다할리가 없다며 고개를 어서 들라며 슈이치로는 발 빠르게 대처했다. 내일 아침에는 꽃을 사러 가봐야하니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다. 토메사부로는 슈이치로의 손을 마주잡고 힘껏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슈이치로는 어깨를 문지르며 괜찮으니 그만해달라고 부탁하며 떠나가는 선배를 배웅했다.
꽃집의 문을 닫기 위해 간판을 안으로 들어넣고 슈이치로는 미키에몬에게 선배의 전언을 전해주었다. 아침 일찍 먼저 나가봐야하니 간판을 먼저 달아달라는 말을 얹었다. 미키에몬은 자기가 왜 그 일을 해야하냐며 약간 불평이 섞인 대답을 했지만 아침에 먼저 간판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에는 어제 팔다 남은 꽃의 꽃잎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슈이치로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꽃병에 물을 갈아 어제의 시든 꽃을 다시 주었다. 슈이치로는 현관 앞에서 짚신을 신고 기지개를 폈다. 아직 이른 아침에는 입기에 살짝 추운 반팔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한 눈 팔지말고. 이사쿠 선배 데려다주고 꽃 사고 바로 와라."
"그럼. 당연하지."
미키에몬은 이른아침에 떠나는 슈이치로를 배웅하였다.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부스스한 머리에 잠옷 유카타를 입은 모습은 감히 다 자란 청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왜소한 덩치이며 뒷모습은 소녀로 보였다. 그러나 말투와 겉으로 보이는 기운은 엄격하고 까칠한 소년의 모습이다.
"다녀와."
미키에몬은 떠나는 슈이치로에게 손인사를 보냈다. 유카타가의 소매를 다른 손으로 잡고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슈이치로의 모습이 자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슈이치로가 시야에서 사라져 더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즈음 미키에몬의 뒤를 덮친 사람이 있었다. 미키에몬의 입을 막은 그 사람은 푸른 두건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미키에몬도 어쨌든 닌자이기 때문에 재빠르게 몸을 돌려 푸른두건의 사람의 팔을 꺾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목에 들어오는 서늘함의 감촉을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는 두 명. 미키에몬은 자신의 덩치보다 몇 배는 큰 전문가들이지만 미키에몬은 이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야했다. 몸집은 작지만 그만큼 가벼운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미키에몬은 가볍게 두 남자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민첩성 하나만큼은 인술학원에서는 물론, 진짜 닌자들에게도 뒤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키에몬은 잘못 생각했다. 더이상 닌자대에 속한 타무라 미키에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었다.
푸른 두건의 남자는 자기 머리 위에 있는 미키에몬의 발목을 잡고 끌어 내렸다. 배와 가슴이 땅에 닿아 큰 충격을 받은듯 보였다. 닌자대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키에몬이 전문가들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서늘한 감촉이 다시 목에 느껴졌고 살고 싶다면 저항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전해졌다. 미키에몬은 항복의 손을 올렸고 푸른두건의 남자들은 항복한 그의 목덜미를 잡고 끌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채 두 명 중에 덩치가 좀 더 큰 남자의 어깨에 들쳐매져 끝이 보이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젠포우지 이사쿠는 토메사부로와 함께 사는 동료이자 같은 인술학원 동기이다. 졸업이 늦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 토메사부로가 먼저 상점가에 가게를 차리자고 제안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사쿠는 인술학원에 있을 때부터 의사의 소질이 충분히 있는 총명한 아이였다. 닌자답지 않은 상냥한 마음씨 때문에 졸업이 늦어져 동기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졸업하게 되었지만 무사히 졸업을 끝마친 것 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소속없는 떠돌이 의사로 지내면서 끊임없는 전쟁의 참사를 겪었다. 적이든 아군이든 다친 사람을 보면 치료해 주는게 그의 일이자 목적이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미움을 샀다. 이사쿠의 신변이 위험해지자 토메사부로는 이사쿠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상점가에 거점을 마련하자고 생각했고 닷새만에 이사쿠를 전쟁에서 구해내기를 성공했다.
슈이치로는 토메사부로의 총애를 받는 후배였다. 나이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둘은 통하는 점이 많았다. 우정과 인연을 깊게 생각하는 것,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는 것, 닌자에 어울리는 냉철함 등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빨리 커가는 후배의 모습에 토메사부로도 감동을 하고 슈이치로의 꽃가게도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돈도 빌려주었다. 큰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자기를 챙겨주는 선배의 보답에 부응하듯 슈이치로 역시 토메사부로를 극친히 따랐고 더 나아가서는 토메사부로와 친한 이사쿠하고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이사쿠의 불운이 슈이치로에게 간다고 한들 자신이 죽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슈이치로는 늘 해맑고 생기가 넘쳤다. 귀신도 때려잡는 토메사부로의 목석같은 성격과 달리 슈이치로는 애교가 넘치는 살가운 성격이었다. 이사쿠는 동료인 토메사부로보다 애교도 많고 귀염성 있는 후배를 더 아꼈다. 둘의 관계는 어쩌면 동료애보다도 더 끈끈할지도 모른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조심히 가."
슈이치로는 이사쿠를 바래다주고 돌아갔다. 이사쿠에게도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슈이치로는 예의가 몸에 베어있는 인품있는 사람이다. 같이 살고 있는 타무라 미키에몬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미키에몬의 구박에 가까운 설교와 예의범절을 질리도록 들어 몸에 베어버렸다. 그러나 슈이치로는 상관하지 않았다.
"들었어? 오늘도 여자 한명이 사라졌대."
"도대체 어떤 놈들이 잡아가는거지?"
"듣자하니 가게 주인이라던데."
"오늘 밤은 가게 문을 일찍 닫아야겠어."
도토쿠라 상점가로 가는 길에는 무역상인들이 항구에서 들여 온 수입물들을 실어나르는 길이 있다. 상점가로 통하는 수입물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역길'이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다. 슈이치로는 그 무역길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나무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무역길의 상인들은 흉흉해진 세상에서 살기 힘들다며 언변을 토해냈고 그 이야깃거리 안에는 상점가 납치사건 이야기가 오고갔다.
슈이치로는 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거의 중천에 다다르고 있었다. 닌자걸음으로 나뭇가지를 헤쳤다. 상점가의 첫가게인 미용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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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자에몽은 이른아침 가게간판을 들고 가게 앞에 세웠다. 바람에 펄럭이는 두부가게 간판과 깃발은 자기가 봐도 꽤 멋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도라지꽃 색이 바탕이 되고 검은 먹으로 멋드러지게 쓴 '두부(豆腐)' 는 멀리서 봐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간판을 건 다음은 바로 잡화점으로 향했다. 이유는 오늘이야말로 푸른두건을 잡을 날이기 때문이다. 헤이스케의 여장으로 파란두건을 잡아 잡힌 여자들을 모두 풀어주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끝을 마칠 생각이었다.
헤이스케는 두 팔 걷어올려 새로운 물을 퍼나르기를 반복했다. 상점가 뒷쪽의 공동우물에서 물을 퍼다 써, 만든 두부를 저장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물을 퍼날랐을 때 땅바닥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미키에몬의 목걸이 아닌가."
슈이치로와 미키에몬의 꽃집은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의 두부가게와 멀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미키에몬의 목걸이를 발견한 것은 신이 도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헤이스케는 목걸이를 가지고 가게로 돌아와 하치자에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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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쿠는 약재를 사고 돌아가는 길에 다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만났다. 소중한 돈을 모아서 산 비싼 약재를 아이에게 쓰지 않고 돌아설 법도 한데 이사쿠는 그것만큼은 용납을 할 수 없었다. 서스럼없이 아이에게 약재를 썼다. 어린아이에게 몸 상태를 말해보라고 하며 다정한 말씨로 아이를 진정시킨 후, 약재를 갈아 다친 부위에 발라주었다. 진통의 효과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며 계속 아프다면 가까운 병원에 들르라 신신당부하였다.
약재를 다 써버린 이사쿠는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슈이치로와 출발해서 꼬박 걸린 상태로 약재를 샀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는 몸뚱아리였다. 그래도 이사쿠는 원망하지 않았다. 약재를 필요한 사람에게 썼다면 다행이랴. 그것이 젠포우지 이사쿠의 신념이다.
"실례합니다."
이사쿠와 토메사부로의 목공수리점의 문을 두드린건 담담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의 청년이었다. 이사쿠는 문을 열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상점가의 두부청년, 쿠쿠치 헤이스케다. 이사쿠는 반가운 후배의 얼굴에 기쁜듯이 그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헤이스케는 선배의 권유에도 마다하고 땅바닥에서 주운 목걸이를 이사쿠 앞에 내보였다.
"이런 것이 꽃집 앞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헤이스케는 종이에 싸진 목걸이를 이사쿠에게 건네며 이것이 미키에몬의 목걸이임을 알려주었다. 확실히 이 목걸이는 인술학원에 있을 때 미키에몬이 차고다니던 목걸이다. 인술학원의 선배에게 받은 소중한 목걸이라 소중히 간직했고 단 한번도 뺀적이 없었다. 그런 목걸이를 빼고 갈정도로 급한 일이었을까? 애초에 땅바닥에 이것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헤이스케와 이사쿠는 이 사건이 어쩌면 파란두건과 관련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이치로는 아직 안왔나?"
"가게 안에는 없었어요."
"아직 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네."
두 사람은 가게 문을 닫았다. 상점가에서는 항상 여자만 납치했는데 남자가 납치를 당한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미키에몬이 여자로 보여서 납치를 당했을 수도있다. 헤이스케가 여장을 하려고 했던 것처럼 미키에몬도 여장을 해서 파란두건을 잡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러 납치를 당해 푸른두건의 소행을 알릴 정도라면 굳이 목걸이를 떨굴 필요가 있었을까.
"느낌이 안좋아."
이사쿠가 나즈막히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뒤쫓아갈까요?"
헤이스케는 다급해보였다.
"아니. 지금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 슈이치로도 안 왔으니까."
이사쿠는 목걸이를 다시 헤이스케에게 주고 가게로 돌아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물론 미키에몬의 작전으로 일부러 걸린걸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군데가 아니였다. 작전을 세우기 위해 이사쿠는 급하게 봉화를 피웠다. 그렇게 멀리 간 것이 아니니, 봉화를 피우면 토메사부로가 눈치를 채줄 것이다. 때마침 하치자에몽이 늦어지는 헤이스케를 발견하고 이사쿠의 집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길래 봉화까지 올립니까?"
하치자에몽이 아대를 풀면서 마룻바닥으로 올라와 합석했다.
"미키에몬이 사라졌어. 이걸 남기고."
헤이스케가 목걸이를 보여주며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그것은 곧 '푸른두건'의 짓이라 생각한 하치자에몽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헤이스케는 일단 앉아보라며 계획을 세우는게 먼저라고 흥분한 그를 다독였다. 봉화를 올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거친 성인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땅에 끌리는 짚신의 소리는 누가들어도 토메사부로였다.
"비상사태다."
토메사부로는 손에 들린 목재들을 현관앞에 우르르 쌓아두고 급하게 집안을 뒤적거렸다. 이사쿠의 봉화를 보고 달려온 것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듯 보였다. 거실 뒷쪽에 달려있는 붙박이장을 열었다. 먼지가 쌓인 상자들을 모두 꺼내 뒤적이며 무기들을 챙겼다. 그 중에서는 피가 묻어 녹슨 무기들도 있었다. 인술학원에 있을때부터 썼던 쿠나이로 보였다. 토메사부로가 그것을 쓰려고 하자 이사쿠가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녹슨 철붙이를 쓴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이 비상인지 먼저 말해줘."
이사쿠가 자세를 고쳐앉고 토메사부로의 손을 살포시 만지며 손에 달린 쿠나이를 내려놓게했다. 팅- 하고 내려앉은 쿠나이의 소리가 참 청명하게 들렸다.
"미키에몬이 납치당했다. 푸른 두건을 두르고 있었고 닌자복을 입고 있었어."
"닌자복을 입었다는건 어느 성의 닌자대라는 뜻인가요?"
헤이스케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그건 아닐거다. 이 근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의 닌자복이였다."
녹이 슨 쿠나이를 다시 상자안에 넣으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이미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토메사부로의 말 덕분에 푸른두건의 소행임에 확실해졌다.
"그럼 왜 미키에몬을 구해주지 않았죠?"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싸우기에는 미키에몬이 위험해 질 수 있었고 녀석들도 무기를 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봉화를 보고 달려오신게 아니군요."
"봉화라니?"
"이사쿠 선배가 봉화를 올렸습니다."
"아아, 집앞에 있는 봉화대를 말하는거군. 그건 요즘 도통 쓰질 않아서 연기가 잘 나지 않는다. 수증기라면 몰라도."
이사쿠는 눈이 동그래져서 눈앞에 있는 봉화대를 다시 점검했다. 연기를 내야하는 구멍이 막혀있어서 전혀 연기가 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안의 고인 물 때문에 수증기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불운하다.
"슈이치로가 늦는군."
"그 아이라면 벌써 여기로 왔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사쿠는 슈이치로가 걱정이 되었다. 자기보다 분명 빨리 이곳에 도착했을 것인데 어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걸까. 혹시 미키에몬이 납치되는걸 보고 흥분해서 같이 찾으러 간 것일까. 토메사부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상점가에서 연속 납치사건이 있던 사실은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여자였습니다. 미키에몬은 남자인데도 납치된건 어찌 된 일인지..."
"나도 그게 마음에 걸리지만 무슨 계획이 있는거겠지. 파란두건이 가는 쪽을 찾아가면 찾을 수 있을거다. 녀석들은 에도쪽으로 갔다."
에도. 전국의 군웅들 중 다케다 신겐의 주요 거점지가 된 도시다. 모든 문화와 교류는 교토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에도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녀석들이 그럼에도 에도로 향하는 것은 다케다의 가신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닌자들에게 승산은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고 어렵게 흘러가자 토메사부로는 봉화대를 손을 봐야겠다며 현관문을 나섰다.
"잠깐만."
이사쿠가 옷자락을 잡았다.
"지금은 너무 중요한 상황이야. 봉화를 올려서 다른 사람들을 부를 시간이 없어."
"그럼 이 숫자로 다케다의 근신처에 들어가자는 거야?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토메사부로는 옷자락을 잡고 끌어 다시 현관문을 나서 봉화대를 고쳤다. 봉화대를 올리면 누가 볼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봐준다면 그것만으로 우리들의 힘이 돼 준다면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믿은 것이다. 봉화대의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르자 이사쿠는 다시 붙박이장 안에 있는 상자를 꺼냈다. 붕대와 약초와 서양에서 들여 온 약통이 있었다.
"봉화대를 본 사람은 센조 뿐일거야. 아마 쵸지는 오지 않을거고 코헤이타는 보지않겠지."
"둘에게 바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후배들이라도 오면 기쁘겠군."
토메사부로는 봉화대를 손 본 후에는 무기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날이 잘드는 무기들 위주로 품안에 넣었고 뒷주머니에는 철쌍절곤을 끼워넣었다. 이사쿠는 이 모든게 다케다의 계획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애초에 에도의 모든 땅이 다케다가 다스리는 것도 아니었으며 전국의 군웅이 실행하는 계획치고는 꽤 작은 규모였다. 헤이스케는 이사쿠에게 다시 물었다.
"미키에몬은 정말 푸른두건에게 잡혀간게 맞겠죠?"
"분명 그럴거야. 토메도 봤다고 했으니까."
토메. 토메사부로의 별명이다. 이사쿠가 붙여준 별명이라서 그런건 아니지만 토메사부로도 꽤나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푸른두건의 소행이 곧 다케다 신겐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작은 닌자들의 소행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푸른두건이 꼭 에도의 사람과 결탁했다는 근거가 있을까요?"
"왜 물어보는거야?"
"전 도저히 이 일이 그렇게까지 정치적으로 크게 관여되어있다고 생각을 안합니다. 악질적인 범죄일 뿐이죠. 정치에 사용하기에는 어딘가 애매하기도 하고요."
헤이스케는 예리하게 접근했다. 이사쿠도 헤이스케의 말에 동의했고 푸른두건이 다케다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라가 조용할리가 없을 터이다. 이사쿠는 에도로 가서 좀 더 정보를 모으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얹었고 토메사부로는 듣지 않았다.
"토메. 내말 좀 들어줘. 그렇게까지 모두에게 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먼저 정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잖아. 그것이 닌자의 본분."
이사쿠의 말에 토메사부로도 뜻을 굽히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에도로 출발해야 해. 조금이라도 빨리."
"그러나 연락망도 정보도 없습니다."
"딱 하나 있긴 하다."
토메사부로는 다다미 바닥을 들춰서 땅속에 묻혀있는 상자를 하나 꺼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의 편지와 잔뜩 부서진 쇳조각이었다. 편지를 꺼내든 토메사부로는 넓게 펼쳐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에도의 자리에 동그라미가 쳐져있었으며 작은 글씨로 神田(칸다) 라고 써있었다. 토메사부로는 이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에도의 사람이라며 그쪽을 통해 정보를 찾으면 푸른두건의 소행도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칸다는 에도의 작은 철물점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목재를 찾아다니다가 만난 사이라고 한다. 칸다 역시 이전에는 닌자를 했었으며 지금은 철물점으로 군웅들에게 무기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상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칸다가 우리를 도와줄거야. 우리 네명이라도 에도로 출발해야 해."
토메사부로는 싸울생각으로 가득했다. 그의 잔뜩 찌그러진 눈썹에는 도깨비의 형상이 깃들어 있는듯 했다.
"난 못 가."
이사쿠가 힘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같이 이사쿠를 동그란 눈을 한채로 처다보았다. 지금의 이사쿠는 의사의 몸. 상점가의 유일한 의사인 자신이 그 본분을 버리고 에도로 향한다는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헤이스케와 하치자에몽은 토메사부로와 이사쿠 사이의 미묘한 공기를 눈치채고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토메사부로는 이사쿠의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지만 가슴 깊게 숨을 몰아쉬며 동시에 손을 바닥에 크게 내리찍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옆에 있던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는 깜짝 놀랐다.
"내가 너를 여기에 잡아둔 이유가 뭔지 알고 있어?"
"그럼. 당연하지. 토메사부로는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거잖아."
"후배의 목숨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숨. 둘 중 뭐가 더 소중하지?"
"둘 다."
토메사부로는 다시 손을 들어서 이사쿠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하치자에몽이 놀라 급하게 손을 막았지만 이사쿠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이미 토메사부로가 때리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놔라. 어차피 때리지도 못하니."
"하지만... 이사쿠 선배도 뭐라고 한마디 해보세요."
이사쿠는 자세를 고쳐잡고 눈을 가볍게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약통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남겠다는 의지는 바뀌지 않을듯 보인다. 토메사부로는 그럼 세 명이서 에도로 출발해야한다는 얘기냐며 윽박질렀지만 이사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사는 순간부터 결정했다. 이 상점가 사람들의 목숨은 모두 나에게 있어. 그러니 내가 빠지면 안돼."
이사쿠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시가 돋혀있다. 토메사부로는 하치자에몽의 손을 뿌리치며 이사쿠의 반대쪽으로 섰다. 농에서 꺼낸 상자 안에는 잘 다려진 닌복이 들어있었다. 토메사부로는 닌복을 꺼내서 팍팍 털었다. 주름하나 없는 빳빳한 옷이다. 이사쿠는 마음대로 하게 놔두고 둘은 준비를 하라며 과거의 후배들을 닥달했다.
"실례합니다-"
때마침 손님이 들어왔다. 의사를 보러온 손님인지 목재를 알아보러 온 손님인지 모르지만 명랑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사쿠는 토메사부로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붉은색의 머리를 가진 날카롭게 생긴 눈매의 사내아이가 서있었다. 옆에는 도라지꽃과 같은 밝은 머리색을 가진 사내아이가 동그란 눈을 뜨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사쿠는 반가운 마음에 둘을 끌어안았다.
"사쿠베! 카즈마!"
토마츠 사쿠베. 닌술학원의 졸업생이며 토메사부로의 직속후배다. 지금은 동기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해서 여섯 명이서 동거를 하고 있다. 카즈마는 그의 동실이다. 산탄다 카즈마. 같은 닌술학원 졸업생이며 이사쿠의 직속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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