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메모 단편모음
**계속 추가됩니다
**공미포 1000자~5000자 정도의 단편들 모음집
**맨 처음에 쓴 <들판>, <상사병>은 남겨둡니다. (기념적인 소설이라 지우기 아까움)
============================================================================================
01
아루챠코 [눈부처]
*눈부처: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눈에 새겨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그대여.
나의 눈동자 속에는 그대만이 자리 잡고 있어,
언젠가는 헤어진다고 해도 눈동자에 새겨진 모습만큼은
사라지지 않아.
"그 노래는 뭐야?"
"이건 포챠코 왕국에서 전해지는 전래동요야."
"오오! 나도 불러볼래!"
선명한 연노란색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의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포챠코님과 함께 불렀던 노래는 어느 순간 너와 함께 브록 있었다. '눈에 새겨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그대여~' 라며 이상한 음정을 넣어가며 따라 불렀다. 음정이 하나도 안 맞잖아. 이렇게 부르는 거야. 상냥하게 다그치며 틀린 점을 고치면 너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 되게 좋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전래동요라 아무도 몰라. 전설에 따르면 아내와 사별한 남편이 만들었대."
그 노래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글쎄? 내가 듣기에는 그저 평범한 옛날 노래잖아. 그 외에 특별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너를 만나고 나의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그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겠다. 너의 목소리는 약간의 쇳소리가 섞여있지만 그것 또한 매력적이었다. 열혈이 넘치는 성격을 단번에 표현하고 있었다.
"챠코도 어서 불러봐!"
"내가?"
"응! 이 노래 챠코랑 잘어울려."
"으음...."
-눈에 새겨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그대여-
그런 말을 하고 있으면 나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옆에 앉은 덩치 큰 오리의 귀에 들어갈 것 같다. 입을 작게 벌리고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돌려 그 신이 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레몬색 눈동자 속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아 그만 얼굴을 숨기고 말았다. 후드를 뒤집어쓴 채 그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애써 고개를 돌렸다.
"왜애~ 같이 부르자~"
그렇게 응석을 부리며 나의 어깨를 잡고 자길 봐달라고 물어보는 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몸을 동글게 말아서 등을 굽으면 너는 '그 큰 키로 아무리 작아지려고 해도 소용없어'라며 키득키득 웃으며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거 봐. 역시 이 노래는 너와 닮아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으히히."
웃으며 말하는 너의 얼굴이 한층 더 반짝였다. 정말로 넌 눈부신 사람이야. 또렷하게 뜬 눈이 나의 얼굴로 다가와서 코와 코가 톡 하고 맞닿았다. 그러고 보니 포챠코님이 그러셨지. 강아지는 코와 코를 마주대며 인사를 한다고. 따뜻한 향기가 코에 들어왔다. 햇살처럼 따뜻한 그 향기가 어느 순간 나의 폐 안으로 들어와 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레몬색 눈동자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이거 봐! 챠코의 눈동자에는 내가 들어가있잖아. 이 노래의 가사와 똑같아."
"그렇게 말하는 아루도 마찬가지야."
"헤헤."
나의 검은색 눈동자에 새겨져있는 것도 너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헤어진다고 해도 눈동자에 새겨진 모습만큼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 * * *
02
아루챠코 [놀이공원]
시즈와의 대결이 끝난 후 모든 기사들은 각자 왕국으로 돌아갔다. 알펙과 챠코와의 여행도 여기서 끝. 솔직히 두 사람은 많이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와중에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알펙이 아닌 챠코였다.
"그러고보니 포챠코님의 부탁으로 우리 왕국에 놀이공원이 생겼어."
"오오! 재밌겠다~"
"그럼 놀러 올래?"
"에?"
챠코는 윙크를 하며 상큼한 미소를 알펙에게 내보였다. 알펙은 챠코의 그 얼굴이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알펙이 찬성할 거라고 생각했던 챠코는 바로 두 눈꼬리를 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럼 다음 주에 어때? 시간 안 맞으면 다음에 봐도 되고. 챠코 나름의 밀고 당기기 수법이었다. 알펙은 이대로 챠코를 놓치긴 싫어서 바로 찬성했고 그날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여행은 끝나도 챠코를 계속 만날 수 있어! 알펙은 그런 생각만으로도 좋았다. 챠코와 놀이공원에 간다는 생각보다는 챠코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그렇게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어기면 바늘 천 개를 먹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약속까지 받아내며 두 사람은 헤어졌다.
시간 조금 더 흘러 약속 당일이 되었다. 알펙은 평상시의 차림에서 조금 더 멋을 부렸다. 머리는 조금 더 올리는 게 나을까? 왁스 정도는 괜찮으려나? 챠코는 어떤 옷을 입고 올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그러나, 알펙은 챠코의 친구이기 이전에 페클님의 프라가리아. 기사였다.
"알펙님, 어디 가시나요?"
"응! 포챠코 왕국에서 챠코를 만나기로 했어. 오늘은 늦게 귀가할 거야. 그동안 페클님을 부탁해."
"오늘이요? 오늘은 페클님 주최의 낚시대회가 있는 날이잖아요."
"에?"
프라가리아의 기사는 자신의 주군을 지키고 사랑해야 해야 하는 법. 알펙의 주군인 아히루노 페클은 느긋하고 상냥한 성격이지만 낚시와 같은 아웃도어 생활을 즐기는 활기찬 오리다. 덕분에 주기적으로 낚시대회를 여는데 이 낚시대회는 페클왕국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인 것이다. 그 행사를 까맣게 잊어버린 알펙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챠코와의 약속은 이미 받아냈고 낚시대회도 참가를 해야 한다. 페클 왕국의 신하 중 한 명이 알펙에게 '낚시대회가 더 중요하니 챠코님과의 약속은 취소하시는 게 낫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알펙은 듣지 않았다. 낚시대회가 있는 걸 까먹고 챠코와 약속한 본인도 잘못했고, 그렇다고 주요 행사인 낚시대회를 못 나가는 것도 말이 안 됐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두 약속 모두 나가는 거야."
"그럴 수 있으시겠어요?"
"좀 바쁘겠지만 어쩔 수 없어!"
알펙은 감싸 쥐던 머리를 놓고 머리에 바른 왁스를 살짝 털어냈다. 낚시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사람은 늘 알펙이었고 이번에도 알펙이 우승을 할게 분명했다. 그러니 낚시대회에서 빨리 대어를 낚아서 대회를 종료시키면 챠코와의 약속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알펙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먼저 낚시대회에 참가한 알펙은 긴장한 채로 낚싯대를 잡았다. 주위의 페클 왕국의 사람들이 '답지 않게 왁스칠을 했다'며 쿡쿡 웃었지만 알펙은 개의치 않았다. 엉성하게 바른 왁스가 알펙의 땀에 의해서 조금씩 흘러내렸다. 머리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이제야 평상시대로의 알펙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탓인지 손에 쥔 낚싯대가 팽팽하게 휘어졌다 늘어졌다를 반복했다. 평소라면 순식간에 물고기를 낚았을 알펙이지만 빨리 대회를 끝내고 챠코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생각 탓에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으으... 빨리 잡아야 하는데..."
알펙의 기도가 통한건지 낚싯대가 크게 휘었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이 팽팽해진 낚싯줄을 본 알펙은 눈을 번뜩이며 단숨에 낚아 올렸다.
"잡았...! 다아?"
아뿔싸. 이건 물고기가 아니었다. 시커먼 미역 줄기가 낚싯줄에 잔뜩 엉켜서 대롱거렸다. 실패해도 단단히 실패를 한 탓에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알펙의 미역을 보고 깔깔 웃었다. '답지 않게 왁스칠을 해서 그런 거다'라며 놀리기도 했다. 알펙은 얼굴이 약간 빨개져서 부끄러운지 재빨리 낚싯줄에서 미역줄기 덩어리를 풀어내어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이번에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재정비한 낚싯대를 있는 힘껏 내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낚싯줄은 그대로 바다에 안착했고 퐁당하는 소리와 함께 찌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 조급해봤자 아무것도 이뤄낼 수가 없다.
그렇게 챠코 하고 만나기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나서야 알펙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시간 초과로 알펙은 실격처리를 받았다. 페클 왕국의 사람들은 평소에도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낚시대회에서 시간초과로 실격을 당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알펙이 실격을 당한 건 처음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참가하지 않고 관객으로만 온 사람들도 알펙의 답지 않은 행동에 의아했다. 소문대로는 알펙님이 포챠코 왕국의 프라가리아에게 푹 빠졌다는데. 사람들은 소문만 무성한 그 포챠코 왕국의 프라가리아를 보고 싶어 했다.
대회가 끝나고 왕국의 왕인 아히루노 페클이 모두의 앞에서 이번 대회의 결과와 소감을 말했다. 그중에서는 페클님의 연설이 감동적이라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 연설이 모두 끝나고 침울해진 알펙을 향해 페클이 뒤뚱뒤뚱 걸어왔다.
"알펙군. 무슨 일 있어? 오늘은 전혀 집중을 못하던데."
"아... 티 났어? 미안해 페클씨. 나 사실 오늘 챠코랑 약속이 있었어. 하지만 낚시대회도 중요하니까 어떻게든 두 개 다 나가보려고 했는데... 벌써 이런 시간이 되어버렸네. 챠코가 많이 실망하겠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나고 있을 무렵이라 아무리 포챠코 왕국으로 간다고 한들 챠코는 거기에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챠코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다. 자신의 기사인 알펙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페클은 알펙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쪼그려 앉은 채 잔뜩 몸을 움츠린 덕분에 몸집이 작은 페클도 쉽게 닿을 수 있었다.
"기운 내! 그리고 챠코군이라면 분명 아직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금이라도 가봐!"
"지, 지금? 이미 엄청 늦었고 가도 완전 밤일 텐데..."
"포챠코 왕국은 야경이 엄청 예뻐."
이미 늦은 건 아닐까, 가버려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알펙은 챠코를 만나러 가는 게 두려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챠코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여기서 움츠려 있을 시간 없잖아. 그렇지? 페클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알펙은 벌떡 일어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침울해져 있었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결의에 가득 찬 그 빛나는 얼굴이 페클의 앞에 있었다. 레몬색 눈동자가 빛에 반사되어 더 반짝였다. 석양을 등에 진 소년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그건 아마 석양 탓이랴.
"그럼 갔다 올게."
-
알펙이 달려서 도착한 곳은 포챠코 왕국 안에 있는 신규 놀이공원 앞. 이곳에서 챠코와 만나기로 그렇게 손가락까지 걸면서 약속했는데 말도 없이 약속에 나오지 않았다. 챠코가 많이 화났겠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더 이상 나와 만나지 않겠다고 할지도 몰라. 알펙은 그 생각이 들더니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조금만 더 뛰면 포챠코 왕국의 명물이 될 놀이공원에 도착하는데 더이상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이곳에 온 게 잘한 걸까? 안 오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잔뜩 기다리게 한 거로도 모자라서 염치없이 이곳에 다시 와서 챠코의 화를 더 돋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알펙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역시 돌아갈래...."
알펙은 고개를 떨구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오는 걸 보았다. 답지 않게 후드까지 벗어던지고 땀까지 흘려가며 힘차게 뛰어오는 그를 보았다.
"아루!"
큰소리로 외치는 자신의 이름에 알펙은 다시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뛰어오는 챠코를 보았다. 놀이공원 앞에서부터 뛰어온 건지 잔뜩 흘린 땀과 거칠어진 숨이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쓰고 있던 후드도 벗은 채로 헐레벌떡 뛰어온 게 보였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말하면 안 되겠지. 챠코가 달려오는 걸 보면서 알펙은 자연스럽게 팔을 열어서 달려오는 챠코를 품에 안았다. 본인도 이렇게 안길 줄은 몰랐는지 당황해 보이는 챠코가 곧바로 알펙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못 오면 못 온다! 늦게 오면 늦게 온다! 얘기를 해줘야지!"
"으응? 응... 미안해...."
"어휴 넌 정말.... 무슨 일 난 줄 알고 걱정했잖아."
챠코의 화난 눈썹이 알펙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썹 바로 밑에는 울망거리는 검은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 위험해. 너무 귀여운데.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해버리면 안 되기에 용케도 꾹꾹 참아 누르고 알펙도 입을 열었다. 분명 '오늘 낚시대회가 있는 걸 깜빡해서 늦어졌어. 미안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예상외로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나 기다렸어?"
솔직한 마음은 곧이어 말이 되어 챠코의 귀에 들어갔다. 챠코는 알펙의 말을 듣고 되려 화를 냈다. 하지만 그건 늦게 와서 화난 게 아니었다.
"넌 그걸 말이라고 해? 너랑 약속했는데 당연히 기다려야지. 난 네가 오다가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너 바보니? 페클왕국에서 포챠코왕국으로 연락하면 됐잖아. 전화도 안 받고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기쁘다...."
"뭐라고?"
지금이라도 사과해! 챠코는 알펙의 옷을 잡고 흔들었지만 알펙은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헤벌쭉 미소 지은 알펙을 보고 있자니 열이 받은 챠코가 뚱한 표정으로 옷을 잡아당겨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가늘게 뜬 챠코의 눈이 알펙을 쳐다보고 있자 알펙도 그제야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할 말 없어?"
"..... 잘못했습니다."
"그래. 아무 일 없었으면 됐어. 어서 가자, 놀이공원 문 닫겠다."
"지금부터 놀려고?"
"포챠코 왕국은 야경이 진국이거든."
챠코가 한시름 놨다며 알펙의 품에서 떨어져 그의 손을 이끌고 놀이공원으로 안내했다. 페클과 챠코의 말대로 포챠코 왕국은 야경이 정말 예뻤다. 화려한 조명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아기자기한 놀이기구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번에 봤던 당근 모양의 미끄럼틀(각도가 거의 직각이었지만)을 포함해서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알펙과 챠코를 반겨주었다. 알펙은 눈을 반짝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우와! 끝내준다~!"
"그렇지? 포챠코님의 특별 부탁으로 만든 거야. 아루라면 좋아할 줄 알았어."
뭐부터 타지? 아루가 타고 싶은 걸로 먼저 타자. 챠코는 알펙에게 놀이공원 지도를 건네주었다. 제트코스터, 회전목마, 후룸라이더, 바이킹.... 전부 하나씩 타고 싶었던 알펙 덕분에 챠코도 그에게 끌려다니며 모든 놀이기구를 즐겼다. 제트코스트러를 타면서 소리도 지르고 회전목마를 타면서 사진도 찍었고 후룸라이더를 탔을 땐 옷이 조금 젖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관람차에서 야경을 보았다. 알펙은 관람차에 타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조명들의 향연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포챠코 왕국은 야경이 유명하구나."
"마음에 들어? 놀이공원."
"응! 오늘은 고마워. 내가 약속시간에 엄청 늦었는데도 기다려주고. 다음에는 페클 왕국에 놀러 와. 내가 극진히 대접할게."
"후후, 기대할게."
관람차 안에서의 시간은 꽤나 느리게 지났다. 체감상 벌써 1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고작해야 아직 3분 채 지나지 않았다. 단 둘이 있는 공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무렵 알펙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챠코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챠코의 말에도 알펙은 챠코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입맞춤을 했다.
"..... 이건 오늘의 답례!"
"정말.... 그럼 나도 페클 왕국에 놀러 가면 더 큰 답례를 해야겠네."
관람차는 마침 딱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먼저 밖으로 나간 챠코 뒤를 따라 알펙이 폴짝 뛰어내렸다. 더 큰 답례가 뭔데? 순수한 질문에 챠코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고 윙크를 했다. 어쩐지 요염한 분위기가 흘러서 알펙은 저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비밀이야."
그 말을 들은 알펙은 하루빨리 챠코를 페클 왕국으로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nd
*****
아루챠코
<마음>
나의 마음은 텅 비어있어서 네가 채워줬으면 한다. 그야말로 로봇의 마음. 단 한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다. 재미있어? 행복해? 그런 느낌을 받아본적도 없었다. 프라가리아의 요정은 수백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너에게 몇살이냐고 물었을때, '챠코와 비슷한 나이일걸?'라고 말했던걸 기억해낸다. 나는 수백년을 산 요정. 아마 갓태어난 병아리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을거야. 하지만 수백년의 삶은 챠코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으로 살았다. 포챠코님을 만나기 전에는 챠코가 아니었으니까. 이 머리색도 포챠코님을 만나고 나서 바뀌게 된 것이다.
"챠코의 머리는 특이하네."
"그런가? 하긴 투톤헤어는 흔치 않으니까."
"투투헤어...?"
"투톤헤어. 두가지 색을 쓰는 머리를 말하는거야."
머리 위에 물음표를 올리는 순수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세어나왔다. 내 미소를 본 네가 '챠코의 만들어지지 않은 웃음이 좋아'라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말 해봤자 뭐가 나오는건 아니지만 말이지. 가끔은 머리가 완전히 검정색이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머리가 총명했고 반대로 '마음'은 더 차가웠다. 이성적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현실성만을 따져들었다.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년을 살았을까, 운명처럼 만난 '그분' 덕분에 내 마음은 조금 더 밝아졌다. 흰머리가 조금씩 자랐다. 언젠가부터 머리의 절반이 흰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포챠코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재밌었다. 고생을 하긴 했어도 재미는 있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널 만나게 된 것이다.
"투톤헤어도 멋있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루 머리색도 예뻐."
"헤헤, 그렇지? 실은 이 머리는 염색한거다?"
"염색한거였어?!"
말을 들어보니 너 역시 나처럼 수백년을 산 프라가리아 요정이었다. 페클님을 만나기 전 너는 훨씬 더 시끄럽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꾸러기였다고 했다. 지금이랑 딱히 달라진건 없지만 옛날에는 나처럼 검은머리였다고 한다. 이 검은색 머리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무서워했다고 말했다. 성격도 훨씬 더 산만했고 옷도 머리도 모두 새까매서 '까마귀'란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염색을 하게 된 계기도 생각보다 단순했다. 페클님을 만나고 프라가리아의 기사로 인정받은 후에 옷무새를 가다듬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블루베리 밭에 굴렀다고 한다. 이탓에 머리색이 물들었고 점차 색이 빠지더니 지금의 머리색이 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너와 나는 닮은 곳이 참 많았다. 그래서 더 잘맞았던 것이겠지.
"아루는 카보스말고 좋아하는건 또 없어?"
"좋아하는거 많지~ 낚시도 좋아하고 큰 물고기랑 라멘도 좋아하고 페클씨도 좋고.... 그리고 챠코도!"
"좋아하는게 많으면 바람둥이라는데~"
"나,난 바람둥이 아니야!"
그러니 장난치면서 남몰래 본심을 전하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머리가 검정색이었을때의 아루를 보고 싶어. 당황하며 팔을 휘적거리는 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나보다 조금 더 키가 큰 너를 마주보고 콧등에 살포시 키스를 하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귀가 새빨개지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우정? 존경? 그런 간단한 의미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조금 더 깊고 가슴에 사무칠정도로 손에 넣고 싶은 그런 형태였다. 아마 그것이 '사랑'이겠지.
"고마워 아루. 앞으로도 잘부탁해."
"당연하지. 나도 잘부탁해."
너에게서 10cm 이상 떨어져서 뒤집어 쓴 후드의 끈을 꼭 잡고 본심을 간신히 숨기며 간단한 말로 몇마디 내뱉으면 그사이 돌아오는 말은 정해져있다. 이 마음을 너에게 부딪히면 언젠가는 전해질까. 그때가 오기를 바라지만 반대로 오지 않기를 바란다. 머리색이 완전히 흰색이 되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때가 되면 그때 다시 고백하고 싶으니까.
-end
'타장르 > 아르고나, 프라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르고나] 나유렌 - <파자마> (0) | 2025.01.28 |
---|---|
[아르고나] 나유렌<My sweet home>외전편-01 (0) | 2025.01.10 |
[아르고나] 단편모음 (2) | 2024.12.21 |
[아르고나] 나유렌 <My sweet home> -총합편 (0) | 2024.12.01 |
[프라메모] 아루챠코 <새의 시> (전연령) (3) | 2024.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