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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장르

[앙스타] 쥰히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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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 신청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앙스타를 너무 오랜만에 쓰다보니 캐해가 좀 이상하게 된 것 같아요.....ㅠㅠ

**다음에는 좀 더 다듬어서 가져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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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히요


<새>



 토모에 히요리는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부족하지 않은 부모님, 부족하지 않은 집, 그의 가문인 '토모에' 역시 부족하지 않은 최고의 집안이었다. 하지만 히요리는 늘 그런 집안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돌며 날갯짓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연두색의 날개를 펼치면 새장 끄트머리에 바로 닿았다. 그곳에 닿으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하고 저려와서 제대로 펴지 못했다. 토모에라는 새장에 갇힌 상태로 평생을 지내야 하는 걸까 싶었던 히요리에게 나타난 건 사자나미 쥰이다. 

 "아기씨~ 아직도 살게 남았슴까?"
 "불평하지 않는 거네! 쥰군은 오늘 나를 위해서 모든지 해준다고 했으니까 약속을 지켜야지."
 "예에...."

 쥰은 히요리에게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히요리가 쥰에게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갑갑한 새장에서 자신을 꺼내준 사람이 쥰이었다. 물론 쥰은 히요리에 비해 한참 모자란 사람이지만 그 '모자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쇼핑몰을 실컷 돌아보던 히요리는 저 안경도 예쁘다며 냉큼 안경점에 들어가 도수가 없는 패션안경을 쓰며 쥰에게 보여주었다. 

 "안경 쓴 나도 나쁘지 않지? 좋은 히요리~"
 "네네. 잘 어울리십니다."
 
 쥰은 심드렁하게 이야기했지만 히요리는 쥰의 심드렁한 태도를 상큼한 미소로 무시했다. 잔뜩 멋을 내고 잔뜩 치장하는 히요리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도 빛났기 때문일까 쥰은 무의식적으로 빛을 가리기 위해 몸을 살짝 움츠렸다. 히요리는 밝은 사람이다. 물론 그 웃음은 만들어진 웃음이지만 밝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길쭉하게 잘 빠진 몸매는 그가 아이돌을 하기에 매우 최적화된 몸이다. 천상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과 잘 어울리는 연두색 머리는 그가 밝은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반대로 쥰은 색채도 피부도 성격도 모두 어두웠다. 물론 쥰의 원래 성격이나 순수한 면을 보면 그가 아주 어둡다고는 할 수 없지만 히요리에 비하면 어두운 사람이었다. 

 "쥰군은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갑자기요?"
 "갑자기 궁금해졌어. 쥰군이라면 날 버리지 않을 거지?"
 "하,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데요."
 "거짓말이 너무 서툴다는 거네~"

 하지만 가끔 이렇게 훅 들어오는 히요리의 어둠에도 쥰은 어찌할 수가 없다. 색채로 따지만 밝은 쪽은 히요리, 어두운 쪽은 쥰이지만 반대로 히요리의 어둠이 쥰의 어둠보다 더 깊고 심오했다. 새장 안에 10년이 넘게 갇혔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쥰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오늘도 그렇게 실컷 짐꾼으로 부려먹다가 기숙사로 돌아가면 같은 침대에 누워 그의 몸에 잔뜩 흔적을 새겨 넣을 것이다. 기숙사로 돌아가면 히요리의 어둠은 더 깊어진다. 아까까지는 즐겁게 쇼핑을 했으면서 집에 오면 이런 상태다. 마치 배터리가 나간 인형처럼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한참 동안 멍을 때리고 마는 것이다. 

 "아기씨? 차 드실 거죠?"
 "응. 홍차."
 "네에네에."

 마치 새장으로 다시 들어간 새 같았다. 그토록 나오길 바랐던 새장이었건만 막상 새장을 나서면 미지의 세계가 무서워서 다시 새장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만다. 날개를 크게 펼쳐도 전혀 아프지 않은 그런 새장 정도를 원했을 뿐인데 만들어진 미소와 만들어진 아이돌 생활에 너무 지쳐버린 히요리는 다시 날개를 접고 새장에서 나가게 해준 사람의 품에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아까 사 온 과자랑 먹죠. 전 홍차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지만."
 
 쥰은 씁쓸하게 웃으며 히요리 앞에 홍차와 과자를 내어주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히요리가 찻잔을 입에 대고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면 조금씩 생기를 찾아간다. 히요리의 안색을 살피던 쥰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커흠.... 저기 선배? 저 아이돌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좀 더 알려주세요."
 ".....!"

 쑥스러워하는 쥰의 말에 히요리의 눈이 번쩍 떠졌다. 공허함만이 있었던 눈동자에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반짝이는 보석이 조금씩 박히기 시작했다. 본인이 거둔 귀여운 후배. 그런 아이를 이대로 썩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데려온 후배가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 그를 다시 기운 차리게 만들었다. 

 "쥰군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역시 이렇게 말하는 게 정답이었어. 쥰은 히요리의 앞에 마주 앉아서 턱을 괴고 히요리의 재잘거림을 들었다. 화려한 잉꼬의 수다쇼를 보는 기분이다. 순간 어린아이로 착각할뻔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 밝은 얼굴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이젠 움직이라고 해야만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잉꼬의 조잘거림을 듣고 있던 쥰은 잠자코 그가 하는 말을 계속 들었다. 쥰은 자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히요리에게 거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거칠게 대해도 히요리를 존경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반대로 히요리는 쥰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생각했다. 지루하기만 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토모에 가문에서 꺼내준 소중한 사람이다. 

 "쥰군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
 "...역시 거짓말이 서툴다니까."

 히요리의 이야기를 듣던 쥰이 지쳐 턱을 괸 채로 잠에 들자 그제야 히요리도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걸 깨닫고 재잘거림을 멈췄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쥰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선배니 아이돌이니 하는건 모두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장단에 맞춰준 이유는 뭐였을까. 예상외로 너무 새근새근 잘 자는 쥰의 이마에 괜스레 입맞춤을 해본다. 다 마신 찻잔과 다과 그릇을 치우면서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하는지 불평이 새어나올뻔했지만 잘 자고 있는 쥰의 얼굴을 보니 깨워서 잡일을 시키기에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면 혹독하게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몸일으키기 1000개 하라고 해야지. 쿡쿡 웃어대는 히요리가 주방으로 걸어나가자 그제서야 몸을 일으킨 쥰이 히요리가 떠나간 자리를 눈으로 좇으며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