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썼는지 모를 디지몬 소설
*다이켄에 미쳐있었을때 쓴 것 같은데 ts에 첫만남 날조가 많아서 재미없을 수도 있음
*컴터 뒤적이다가 나와서 백업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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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켄ts
열
어릴때 열감기 때문에 상당히 고생한 적이 많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어지러워지는 열. 온 몸이 뜨겁고 정신이 몽롱해져서는 아픈 열. 그걸 안 겪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 열의 종류가 다르다면?
"야, 다이스케. 너 그거 들었냐? 오늘 우리반에 전학생 온대."
"남자면 얼마나 실망하려고 그렇게 호들갑이냐?"
"여자래. 진짜로. 아까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말하는거 다 들었다니까?"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날 어느 학교를 가도 당연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그리고 여기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모토미야 다이스케는 친구들의 전학생 이야기에도 별로 흥미가 없다는 듯이'흥-'하고 턱을 괴며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삐죽하게 가시처럼 돋친 성게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이 오다이바 중학교에 다녔던 야가미 타이치 선배한테 받은 고글을 목에 걸고 더워서 흐르는 땀을 손목밴드로 닦았다. 빨리 시간이 가서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인지 눈을 내리깔고 손을 내려놓았다. 친구들은 예상하던 반응이 안나오자 하나 둘씩 자리로 돌아갔다. 여름이라 그런지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댔다.
"거참, 시끄럽게 구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종이 쳤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그 뒤에 여학생이 따라왔다. 살짝 떨군 고개와 잔뜩 움츠려든 어깨가 선생님의 지시에 때라 움직였다. 보랏빛 단발머리가 보이고 단정하게 입은 교복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했던 남학생들은 자기가 맞혔다며 수군댔고, 여학생도 예쁘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다이스케는 눈길하나 보내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 학생을 소개했고 칠판에 이름을 쓰라며 분필을 가리켰다. 분필을 집어든 여학생이 머리카락을 귀밑으로 살짝 넘긴 후 분필로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름 만족한 모양인지 분필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향해 서서 입을 열었다.
"'이치죠우지 켄'이라고 합니다. 타마치에서 왔고, 오다이바는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한 소녀가 마지막에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말하기 대회에서 상이라도 받았는지 청아한 목소리와 깔끔한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이스케도 켄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돌려 얼굴이나 보자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내 똑같은 전학생이라 생각하고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켄의 말이 끝나자 선생님은 켄의 자리를 정해주려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다이스케의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는 다이스케는 뒷자리를 자처했기 때문에 옆에는 아무도 없던 것이다. 선생님은 다이스케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처음이라 떨리는 전학생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라도 하듯 평소에는 고함만 치던 목소리가 다정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저 끝 쪽에 가서 앉으렴 이치죠우지."
"네. 선생님."
켄이 다시 한번 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후, 다이스케 옆자리에 가서 가방을 걸고 의자에 앉았다. 다이스케는 별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대놓고 증명하기 위해 켄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켄은 다이스케를 슬쩍 보고는 입꼬리를 약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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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서로서로 만담을 가진다. 하지만 전학생에게는 제일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은 낯선이들을 경계한다. 자기들도 새학기에는 낯선사람들이었으면서 전학생이 오면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듯 관심을 가지다가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그 관심이 금방 꺼져버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켄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방금 배운 수업의 내용을 복습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옆자리를 흘끔 쳐다본다. 보랏빛 단발머리가 찰랑거리고, 남색 눈동자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 켄은 두어번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공책에 시선을 돌렸다. 다이스케는 역시 별볼일 없는 애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손에 깍지를 끼고 머리 뒤로 넘겼다. 그렇다고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귓구멍이 막혀있는 것도 아닌데 모든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친구들의 목소리를 차단해버렸다고 깨닫고 나서야 친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지?"
"뭐야, 너 우리 얘기 하나도 안들었냐? 이미 끝난지 오래거든."
"야야, 됐어. 다이스케 나중에 축구나 한 판 부탁해."
"알았어."
친구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그제서야 다이스케는 드디어 끝났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쉬는시간은 항상 똑같이 지루하게 보내고 만다. 아니 이번에 조금 다르다는 것이 있다면 옆자리에 전학생이 왔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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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석양이 찾아온다. 주황빛으로 물든 석양이 다이스케를 찾아와준다. 다이스케는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는 교실을 나선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더나간 후에야 다이스케는 반을 나간다. 예전부터 학교에서 잠을 많이 자서 친구들이 깨워서 일어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느니 차라리 다이스케에게 열쇠를 주고 뒷정리를 해달라는 것이 이 반 학생들의 최선의 방법이었다.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려고 하는 찰나 청아한 목소리가 다이스케의 귀에 꽂혔다.
"잠깐만!"
아직 반에 학생이 더 있던 것이다. 그건 다름아닌 오늘 전학온 자신의 옆자리 켄이다. 늦게 나와서 미안하다며 머리를 수그려 인사를 하자 다이스케는 켄의 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마치 무슨 절대영역이라도 되듯이 새하얀 피부였다. 다이스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뺨을 긁적였다. 굳이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사과를 하는 이유를 다이스케는 몰랐다. 켄이 고개를 들어 다이스케 옆쪽으로 살짝 비켜주었다. 손짓으로 자물쇠를 잠그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그제서야 다이스케가 '아'하며 자물쇠를 잠갔다.
"미안. 너가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 내가 잠을 오래자서 대부분 나 혼자 남거든."
"아니야. 오히려 내가 늦게 나와서 미안한걸. 빨리 자물쇠 잠그고 집에 가고 싶을텐데."
"어짜피 축구도 뛰어야 해서 집에는 밤에 들어가."
"축구...하는구나."
다이스케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게 무슨소린가 했다. 왜 오늘 처음보는 애한테 내가 주저리 주저리 말을 늘어뜨려놓고 축구얘기까지 하는거지? 축구얘기를 꺼냈을때 다이스케는 아차 하며 괜한 말을 꺼낸것 같았다. 반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여자들은 축구라면 질색팔색을 했다. 전에 친구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자한테 운동얘기를 먼저 꺼내면 안 돼. 그건 진짜 차이는 행동이야.'
믿음직스러운 친구는 아니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새겨놓았던 말이다. 그제서야 다이스케는 변명이라도 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아, 여자애들은 축구 별로 안좋아하지? 그치만 나는 축구가 좋아."
"응, 알고 있어. 아까 점심시간에도 축구하고 있었잖아. 나도 축구 좋아해. 보는것도 좋아하지만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서. 지금은 공부가 우선이라서 할 시간은 거의 없지만. 하하."
"너 축구 좋아하는구나?"
찾았다. 드디어 여자애랑 맞는 코드를 찾은것이다. 그것도 다른 여자들은 질색을 하는 '축구'를. 다이스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아까보다 훨씬 텐션이 올라간 목소리로 켄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꺼번에 꺼냈다. 좋아하는 축구선수, 축구팀. 어떤 축구선수가 가장 잘하는지, 월드컵 얘기까지... 하지만 거의 다이스케 혼자 떠드는 것과 마찬가이였다. 켄은 고개만 끄덕이며 다이스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켄이 약간 곤란해 하는 얼굴을 내비치며 손을 올려 입에 가져다대며 웃자 다이스케가 말을 멈추었다. 자기 혼자 너무 떠든건 아닌지 켄의 말할 기회를 져버린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잠잠해진 다이스케가 이상했는지 켄이 오히려 먼저 말을 걸었다.
"축구 시합 안늦었어? 계속 얘기하고 있어서 내가 방해가 되는건 아닐까..."
"아, 맞다!"
"역시 내가 너무 말을 많이 걸었나봐. 그러면 축구시합 잘해. 난 먼저 가볼게."
"아 저기."
"응?"
"시간 되면 지금 축구 시합 보러오지 않을래? 그냥 동네 축구긴 하지만 관중이 있으면 더 힘이 될 것 같아서."
"....그래!"
켄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음을 지었다. 보랏빛 머리가 다시 찰랑거리며 내려왔다. 다이스케는 자신이 말하고도 부끄러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말 없이 내뱉은 말인데 그걸 받아준 켄이 고맙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괜히 집에갈 시간에 자신이 붙잡아두고 있는건 아닌지 보기 싫은데 어쩔 수 없는 부탁 때문에 들어주고 있는것은 아닌지 쪽팔리기도 했고 괜히 말을 꺼낸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그냥 집에 돌아가라고 하기에는 더 미안했다. 그리고 분명 친구들은 다이스케와 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놀려댈게 분명했다. 다이스케야 이러니 저러니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겠지만 문제는 켄이었다. 짖궃은 장난으로 부끄러움이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다이스케는 왜 자신이 켄의 입장까지 고려하고 있는건지 아이러니 했다.
"야! 다이스케 왜이리 늦게 와! 또 자고 있었냐?"
"옆에는 누구야? 여친?"
"아냐 오늘 우리반에 전학온 앤데, 뭐냐 다이스케? 벌써 사귀는거야? 온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그런거 아니니까 닥쳐."
그런류의 장난을 좋아하는지 켄은 '푸흡'하면 웃음을 터뜨렸다. 켄의 웃는 소리에 다이스케를 놀리던 친구들이 일시정지했다. 다들 똑같은 표정으로 켄을 바라보았다. 켄이 분위기가 잠잠해 진것을 느끼고 나서야 웃음이 점차 작아졌다. 켄과 친구들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자 다이스케가 참다 못해 말을 꺼냈다.
"축구 하다 말고 이게 뭐하는거야- 빨리 축구장으로 돌아가! 누가 이기고 있었냐?"
"우리반이..."
"그래? 그럼 빨리 준비해. 오늘은 관중도 있으니까 빨리빨리 끝내야지!"
다이스케가 친구들의 등을 떠밀며 축구장으로 들어갔다. 켄은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이마 위에 얹고 축구장을 까치발을 들며 바라보았다. 축구장이 잘 보이는 곳을 찾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적당한 곳을 찾았는지 손을 내리고 축구장 왼쪽 잔디밭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았다. 옆에는 갈색 가방을 눕혀놓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직 축구를 시작하기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데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눈칫껏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자가 찍어주는 거라며 서로 부끄러워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다이스케가 뭔가 찜찜한 기분을 느꼈는지 시선을 돌려서 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다이스케가 자신을 노려보는것에 당황했는지 어깨를 흠칫 올리며 핸드폰을 잔디밭으로 떨어뜨렸다. 핸드폰을 찾으러 바닥에서 일어나서 치마를 털자 켄은 뭔가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발끝에서 전해오는 오싹함에 켄은 잔뜩 웅크려 소리를 짧고 굵게 질렀다.
"꺅!"
켄의 소리를 들었는지 다이스케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잔디밭쪽을 바라보았다. 켄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앉지도 못하고 서서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두 손 모두 가슴으로 모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다이스케 눈에는 무슨 벌레라도 본것 같은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애들은 벌레를 싫어하니까. 다이스케가 아무말도 없이 잔디밭쪽으로 달려가자 아까 놀려대던 친구가 소리쳤다.
"야! 다이스케 어디가!"
"잠깐 쟤 좀 확인하고 올게."
"무슨 말도 안되는..."
다이스케가 다가가서 켄을 가까이서 확인하자 생각보다 훨씬 더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켄을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아무리 찾아봐도 이상한 부분이 없는지 다이스케가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왜그래? 어디 아파?"
"저,저,저기...밑에..."
켄이 가리키는 손가락에 시선을 향하자 잡초처럼 위장하고 있는 방아깨비가 보였다. 한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생각보다 큰 녀석이라 다이스케도 '윽'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켄이 고개를 홱 돌려 몸을 웅크렸다. 다이스케가 머리를 긁적이며 밑에 있는 방아깨비의 몸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켄을 한 번 보고 한숨을 쉬더니 방아깨비를 뒤로 홱 하고 던져버렸다. 방아깨비는 날개를 활짝피고는 저 멀리 날아갔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다이스케라도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다이스케라도 일단 켄의 겁을 진정시키게 우선인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켄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아깨비 때문에 그런거지? 그녀석 내가 잡아서 쫓아냈으니까 이젠 괜찮아."
"정말...?"
"그렇다니까. 왜 잔디밭에 앉고 그래. 저기 의자도 많은데."
"미안..."
"아니 그러니까 왜 미안해 하는건데. 그건 미안할 필요가 없는거잖아."
아, 또 실수 했다. 다이스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상냥하게 말하다가 점점 퉁명스럽게 변해가더니 이젠 거의 화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켄도 수치심을 느꼈는지 얼굴이 엄청 상기되었다. 켄이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렸다. 그 손으로 조금씩 비쳐보이는 얼굴에는 잔뜩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눈에 고여있는 수정구슬이 또르르 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방아깨비 하나 때문에 그렇게 까지 놀라나? 다이스케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쪽 눈을 감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켄이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이스케가 잠깐 기다리라며 축구장으로 돌아갔다. 친구들과 무슨 회의라도 하듯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친구들이 각자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스케가 다시 찾아와서 자신이 입고 있던 체육복 상의를 켄에게 건냈다. 켄이 얼굴을 살짝 들어 다이스케를 바라보자 다이스케가 아무말 하지 않고 손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그제서야 켄도 알아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상의를 받아들었다. 켄이 개미만한 목소리로 고맙다며 말하자 다이스케가 입을 열었다.
"또 이러지 말고 저기 의자에 가서 앉아있어. 그건 니 무릎에 덮고. 하루 빌려줄테니까."
"응... 정말 미안해. 나때문에..."
"미안하면 앞으로 그런일 없도록 하면 돼. 적어도 의자에는 벌레는 안올테니까."
"고마워..."
"너 오늘 나한테 말한게 '고마워'랑 '미안해' 밖에 없다는거 알아?"
"정말이네. 이럴줄은 몰랐는데 어쩌다보니까... 내가 벌레를 무서워해서..."
"그런 것 같더라."
켄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시선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의자로 돌아간 켄은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 무릎에 다이스케의 상의를 살포시 올려놓았다.켄이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자 다이스케가 그제서야 축구장으로 돌아갔다. 켄이 져지에 손을 올려놓고 축구를 관람했다. 한껏 차분해진 표정으로 다이스케의 축구 플레이를 바라보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다이스케는 골을 세번 정도 넣었다. 다이스케가 골을 넣을 때마다 켄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박수를 보냈다. 시합이 끝났다는 호루라기가 울려퍼지자 다이스케는 주먹을 쥐고 '앗싸!' 하며 주먹을 허공으로 내찔렀다. 축구시합은 다이스케 반의 승리로 돌아갔다. 친구들과 수돗가로 간 다이스케는 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물로 흘려보냈다. 다른 친구들도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었는데 사방에 물이 튀겼다. 다이스케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수건을 달라고 외치자 친구들이 앗차 하며 서로의 눈치만 봤다. 다이스케가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살짝 떴다. 친구들이 실실 웃으며 손으로 엑스를 만들었다.
"미안 너 수건 의자에 있다. 하하."
"너네들...진짜..."
다이스케는 한창을 궁시렁 거리더니 의자로 돌아가서 수건을 찾기 위해 부스럭거렸다. 햇빛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도 없는데다 흐르는 물 때문에 더 질척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수건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수건을 가져왔을텐데 가방을 이리저리 뒤적여보아도 없다. 옆자리에 있는 켄에게 수건의 행방을 물어보려 고개를 들자 눈앞에 새하얀 천조각이 보였다.
"이거 찾는거지?"
"어, 고마워."
"천만해."
켄의 미소가 부드럽게 다이스케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켄에게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뭐한데 지금 자신이 켄에게 해줄 수 있는건 이런 작은 고마움의 표시를 남기는 것 뿐이다. '천만해'이런 말을 들었을때 다이스케는 여태까지 자신이 알던 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처음 본 전학생에 불과했지만 켄의 미소와 말 하나하나가 다이스케의 마음을 찔렀고 그것이 점차 켄에 대한 애정으로 변해갔다. 다이스케가 시선을 피해서 땅바닥만 보고 있자 켄이 그런 다이스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따가운 시선에 못참겠는지 얼굴을 들자 켄과 눈이 마주쳤다. 켄은 얼굴이 석양처럼 붉게 물들었고 다이스케는 창피해서 죽을것 같다는 듯이 시선을 다시 돌렸다.
"추,축구 끝난 것 같은데, 난 그만 갈게."
"아? 어,어..."
"그럼 내일 보자."
다이스케의 마지막말은 듣지도 않고 창피함에 자신의 가방을 들고 후다닥 뛰어갔다. 다이스케가 어버버 하며 무안한 손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축구를 하던 친구들이 켄이 간 자리에 다시섰다. 친구들은 그전의 일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다이스케에게 어깨동무를 시전했다. 발갛게 달아올른 얼굴은 친구들의 장난에 바로 안정을 되찾았고 친구들은 켄의 행방을 물었다. 다이스케가 '알거 없잖아?'하며 어깨동무를 빼고 켄이 앉았던 자리에 다가갔다. 그 자리에는 고이접어둔 다이스케의 져지만이 남아있었다.
"하루 빌려준다니까..."
입꼬리를 살짝 올려 실소를 하더니 다이스케는 져지를 집어 들어 어깨에 걸쳐맸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을 챙겨 먼저 간다고 작별인사를 건냈다. 친구들은 아쉬움이 한가득이었지만 축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기도 했고 괜히 말 잘못했다가는 얻어터질 것 같아 친구들은 잘가라는 손인사만 간단히 남겼다.
-
집으로 돌아간 켄은 저녁을 먹지 않고 방안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푹신한 베개를 턱 밑에 괴고 있으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그때 다이스케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괜스레 당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다이스케와 같이 거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었는데..."
"신경쓰여?"
"응..."
켄이 있는 침대에서 꼬물꼬물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초록색 몸뚱아리에 애벌레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특히 목소리가 갈라진것이 특징이었다. 아주 큰 벌레와도 같은 그것은 켄은 '웜몬'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를 맡아달라고 찾아온 이상한 벌레였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켄짱?"
"안 돼. 애들이 널 보면 어떻게 하겠어."
"그래도 그 다이스케라는 애 보고 싶은데..."
웜몬에게서 사내의 이름이 나오자 켄은 움찔하며 웜몬을 집어 들었다. 웜몬과 함께 거울 앞에 서서 켄은 갑자기 한손으로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지작 거리는 앞머리에서 살짝 빛이 났다. 웜몬이 그런 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쪽 발을 들어 켄의 얼굴에 갔다댔다. 켄이 깜짝 놀라 머리와 온몸의 털이 삐쭉삐쭉 섰다. 덩달아 웜몬도 깜짝놀라 발을 뗐다. 켄이 웜몬을 바라보다 발을 잡고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웜몬."
"미안해..."
웜몬과 켄이 서로서로 다정한 시간을 보내다가 어디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나는 소리인듯 해서 켄은 웜몬을 내려주고 창문을 열었다. 분홍색 머리핀을 하고 있는 여학생과 모자를 쓴 이국적인 외모의 남학생이 걸어가고 있었다. 둘은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며 길을 가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 마주보며 웃기까지 했다. 그런 커플을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청춘이구나-'하는 소리를 마음으로만 생각했으나 남자쪽에서 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어 켄이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남학생이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켄은 커튼을 치고 창문을 닫았다.
"뭐해 타케루? 거기 뭐가 있어?"
"음? 아니야. 구름이 너무 예뻐서."
켄이 침대로 다가가 웜몬을 다시 껴안아 들었다. 아까 본 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켄은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남학생이 자기를 봤으면 어떻하지? 교복을 보니 오다이바 중학교 교복인데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떻하지? 켄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웜몬이 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켄의 이마에 발을 올려놓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켄을 바라보며 눈에 눈물이 고인채 말했다.
"켄짱. 어디 아파? 아까전부터 얼굴도 빨갛고 땀도 흘리는 것 같아."
"괜찮아. 걱정시켜서 미안해 웜몬."
"열있는건 아니지?"
"열...?"
켄이 다시 고개를 돌려 화장대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엄청 빨개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켄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입을 서서히 열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내가 얼굴이 빨간거지? 열이 있나? 웜몬의 말대로 켄은 거울 가까이로 가서 이마에 손을 가볍게 올려놓았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얼굴은 왜 빨개져 있는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나 왜이러지?"
"오늘 처음 학교 가서 긴장하니까 열이 난거 아니야? 진짜 괜찮아 켄짱?"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뭐- 하며 켄은 웃는 얼굴로 웜몬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기도 그런 웜몬 옆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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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학교는 시끄럽다. 모든 세계에 있는 중학교가 그렇듯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학교는 가득 메워져있다. 수업시작하기 3분전에 다이스케가 머리를 벅벅 긁고 하품을 하며 반문을 열었다. 같이 축구를 했던 친구들은 다이스케의 어깨에 힘찬 손을 올려놓으며 게임얘기, 축구얘기, 별의 별 얘기들을 다 꺼낸다. 아침부터 정말이지 산만하고 정신이 없구만- 다시 눈을 감고 하품을 하던 다이스케는 곧바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어김없이 보랏빛 단발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가방을 책상 옆쪽에 걸어놓으며 고개를 들어 올려 인사를 건냈다.
"안녕."
"안녕 모토미야 군."
"너, 내 이름 어떻게 알고 있었어?"
"수건이랑 상의에 이름이 써있더라고. 그것도 꽤 크게. 잃어버릴까봐 엄마가 크게 써주신것 같아서. 무심코 잠깐 봐버렸지 뭐야-"
"하아, 진짜 우리 엄마 오지랖이 넓으시다니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잃어버릴 걱정은 없겠다.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 내가 보기엔 넌 정말 상냥한 아이인 것 같은데..."
"내가? 너 얼마나 친절을 못 받아 봤으면 그런 말이 나오냐?"
에? 켄은 마음이 덜컹하고 심하게 요동쳤다. 자기가 실수 한 건 아닌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괜스레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귀밑으로 내려가, 머리를 베베 꼬았다. 시선은 다이스케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게 좀 처럼 되지 않아, 눈을 내리깔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다이스케가 몸을 아예 켄 쪽으로 돌려 한 손은 자기 허벅지에, 다른 한 손은 턱에 가져다 대고 잔뜩 성난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내뱉었다. 분명 자기는 천천히 상냥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난 그렇게 상냥한 사람 아니야. 너한테만 그렇게 보이겠지. 내가 보기엔 너가 더 상냥한 사람 같다. 자물쇠 한 번 잠그는거 까먹은 사람한테 오히려 사과하는거 보면 딱 봐도 그래. 너야 말로 주위에서 상냥하단 말 못들어 봤냐?"
"난 원래 성격이 그래서... 오히려 소심하단 말 들어..."
"그게 좋은거지 뭐- 차라리 조용하고 말 별로 안하는게 낫잖아? 시끄러운 성격이면 가만히 있어도 괜히 주위에서 야단이나 치고 말이야. 말 한번 잘못하면 크게 혼나고... 좋은점 하나 없구만."
"그래도 찾아보면 있을거야. 아니 분명히 있어. 이세상에서 성격의 장단점은 다 가지고 있는거 아니겠어?"
"너...진짜 상냥하구나."
"에?"
다이스케가 턱에서 손을 떼고 두 손을 모두 허벅지에 가져다대며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켄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영락한 켄은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선 손을 앞으로 내밀어 절레절레 사레를 쳐봐도 얼굴을 가려지지 않았다. '상냥하구나'이런 말 처음 들어보는 건 아니였지만 가족이 아닌 남자한테서 그런 소리 들어보는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어제 처음만난 사람한테.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안들리고 이 반에 다이스케와 자신 둘 밖에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켄이 오갈 곳 없는 손을 치마 위에 올려놓고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떨어뜨린채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켄이 또 아무말 없이 조용해지자 다이스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얼굴이 빨개. 열있어?"
"아,아니... 없는데..!"
켄의 작은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다이스케가 켄의 서늘한 앞머리를 손을 올려 까고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대었다. 토옥하고 이마가 마주치는 작은 소리가 나고 켄은 갑자기 다가온 다이스케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하고 다이스케가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이스케의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었고 '이상한데..'라며 중얼거리며 이마의 열을 재는듯 싶었다. 저런 행동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기색이 전혀없이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놀고 있었다. 켄이 눈을 꼭 감고 다이스케가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종이 치자 다이스케는 '아' 소리를 내며 이마를 떼었다. 까진 이마의 앞머리를 정리할 시간도 없이 켄은 멍하니 있었다. 그런 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가 앞머리를 까고 이마까지 대는 스킨쉽을 했으면서 마치 놀린다는 표정과 말투로 쿡쿡 거리며 웃었다. 켄이 고개를 살짝 돌려 다이스케를 바라보자 다이스케가 눈물이 찔끔나올 정도로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기 앞머리를 가리켰다.
"아... 진짜..."
켄이 그제서야 책상에 엎드려서 앞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잔뜩 뻗친 앞머리를 손질하느라 선생님이 들어오시는지도 모르고 허둥댔다. 다이스케는 켄의 행동을 처음봐서 정말 즐거운지 계속 쿡쿡대며 웃었다. 그러다가 선생님한테 걸려 주의를 받았지만 자기는 나름 한 건 했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
"거봐 난 상냥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래... 그런것 같네..."
하교시간이 되자 둘은 같이 하교를 했다. 어쩌다보니 켄이 제일 늦게 나와서 같이 자물쇠를 잠그고 하교를 한 것이다. 가는 도중 내내 켄은 다이스케를 의식하며 앞머리를 신경썼다. 가끔마다 다이스케를 티 안나게 힐끔 쳐다보려고 하면 어느순간 눈이 마주쳐있다.
"너 그거 아직도 신경 쓰냐?"
"아침에 그래서... 그때는 머리 손질 한지 얼마 안된 상태라 더 뻗친단 말이야..."
"그거 참 미안하구만.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나 모르겠네."
"근데 너 진짜 상냥한게 맞는 것 같아. 열도 재준거잖아."
"아 그거? 그냥 집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라 한건데. 마땅히 학교 안에서 체온계가 될 만 한것도 없으니까."
"그런 점이 상냥하다는 거야. 내말이 틀려?"
켄이 기세등등한 말투로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다이스케를 쳐다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석양에 물든 보랏빛 머리가 스르륵 내려와 켄의 목 뒷덜미를 감쌌다. 다이스케가 눈을 두어번 꿈뻑이다 체념한듯 말했다.
"그러네. 난 상냥한 사람이구나."
"응. 모토미야 다이스케는 상냥한 사람이야."
"푸핫, 그게 뭐야. 너 생각보다 귀여운 면도 있네?"
켄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다이스케는 전혀 그런거 의식하고 말한건 아니였지만 켄의 마음에 자꾸만 박혀 들어갔다. 다이스케는 빨개진 켄의 얼굴은 전혀 알지 못한채 다시 웃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켄은 마치 자기만 그런거라고 의식하고 있는건 아닌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리가 없어'라며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이야."
"뭐,뭐가...?"
"나보고 상냥하다고 말한 사람. 난 원래 말투도 퉁명스럽고 집에서도 좋은 소리 못받아서 '상냥'이라던가 '친절'이라던가 한 번도 못들어 봤거든."
"내가 처음이야...?"
"어, 진짜로. 14년 인생에서 처음들어봤다. 상냥하단 말. 그런말 여자애들한테나 잘어울리는 말이지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낯간지럽다고 안해."
"성격에 여자 남자가 어딨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게 성격인거지."
켄은 멈춰서서 다이스케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다이스케도 조금 앞선 상황에서 멈춰섰다. 사실은 맞는 말이다. 켄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맞는얘기라서 다이스케가 뭐라고 변명할 꺼리도 없고 다시 말을 건낼만한 상황도 아니였다. 다이스케가 켄쪽으로 뒤돌아 봐서 '뭐...?' 하고 놀란 눈치를 보이다가 켄의 총명한 눈을 보고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음 알았다.
"그러네. 여자 남자 그런게 어디 있겠어."
"그렇지?"
"그러네. 나참, 나 진짜 오늘 많이 놀랐어."
"뭐,뭐가...?"
켄이 말을 더듬거리며 다이스케를 올려다보았다. 다이스케가 켄의 얼굴을 슥 하고 보더니 빙긋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 괜찮은 아이란거."
"어,어?"
"처음 널 봤을때 그냥 남들이랑 똑같은 전학생인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고. 이상한 곳에서 사과하고 작은 벌레도 무서워하고 어딘가 어색하고 힘들기만 한 여자인줄 알았는데 행동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아, 물론 나보다 더 아기같은 면도 있지만."
다이스케가 쿡쿡 웃으며 켄을 바라보자 켄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다이스케의 팔뚝을 퍽퍽 치며 부끄러워했다. 만난지 2일. 순간순간을 다이스케와 켄은 카메라 찍듯 담았다. 다이스케의 장난과 켄의 부끄러움은 점점 목소리를 올려놨고 켄이 다이스케에게 말을 꺼냈다.
"난 너도 진짜 멋진 아이라고 생각해. 남자 여자를 떠나서 말이야. 너랑 정말 친한 사이가 될 것만 같아."
"어, 뭐야. 그럼 너 나를 친구라고 생각 안하고 있었어?"
"에...?"
"좀 실망인걸- 난 너랑 친구인 줄 알았건만. 알았어. 그럼 지금 이순간부터 친구인걸로 하자고."
"아, 자,잠깜만!"
다이스케가 실망했다는 눈치를 보이며 켄의 반응을 기다렸다. 켄이 몸을 움츠려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어제 처음만나서 이야기도 제대로 못 꺼냈는데 벌써 이렇게 친해질 줄은 켄도 다이스케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침의 행동이 컸던 걸까. 켄은 또다시 귀밑의 머리를 꼬았다.
"아,알았어..."
"뭘 알았다는거야?"
"친구...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
"친구사이에 그런게 뭐가 미안해?"
"음...그게 그러니까..."
"장난. 장난이었어. 그런거 안미안해도 돼. 그럼 친구하는거다? 오케이?"
"으응? 그게 뭐야. 장난이라니?"
"어이쿠, 마음 바뀌지 전에 빨리 약속하고 가버려야겠다. 자 손 줘봐."
켄은 또 곧이곧대로 손을 내밀었고, 다이스케는 켄의 손 위에 작은 태그조각이 끼어있는 목걸이를 올려주었다. 자세히 보니 연보라색을 띄고 있는 그 목걸이는 안에 문장 같은 표시가 박혀있었다. 켄이 목걸이를 위로 들어올려 뭐냐고 묻자 다이스케가 실실 웃으며 말을 꺼냈다.
"언젠가는 필요한 날이 올거야. 그때가 되면 얘기해 줄게. 지금은 나랑 너랑 친구했다는 증표로 가지고 있어줘."
"그럼 이건 어디서 났는데?"
"누가 줬어. 근데 목걸이 주인은 내가 아니더라고. 준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그 문장이 '상냥'이란 뜻을 가지고 있대. 너랑 잘어울리지?"
"그 사람은 누군데?"
"거기까진 안알려주지- 나중에 정말 필요한 날이 다가오면 그때 내가 알려줄게. 지금은 그 날이 아니니까."
'상냥'의 문장. 켄은 그말을 되새기며 목걸이를 목어 걸었다. 다이스케는 켄이 목에 건 목걸이를 재빠르게 스캔한 후,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급하게 뛰어갔다. 켄은 홀연히 사라져가는 다이스케의 이름은 한 번 부른후 엹게 웃었다. 손에 꼭 쥔 '상냥'의 문장이 박힌 목걸이는 조금씩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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