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나이레/시리즈

[이나고,아레오각] 츠루기, 후부키 <형제>-03

츠루기 후부키 형제 소설 시리즈
 
============================================================================================

03



 이나이레side


 홋카이도의 가을은 겨울처럼 추웠다. 조금만 입김을 불면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 입김의 형태가 구불거리는 것이 누군가를 연상시킬정도였다. 유이치는 아직까지 이 홋카이도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고장나버린 휠체어를 산속에 두고 온채로. 목발이 없으면 혼자 일어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다리가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곧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 다리를 만든 장본인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생각에 동생한테 못할짓을 하는 것 같았다. 죄책감이 들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덕분에 따뜻해졌어."
 "다행이네요. 이거 구운 떡인데 코코아랑 같이 드세요."

 후부키 시로는 유이치에게 축구공 모양으로 부풀어오른 떡을 건네주었다. 저쪽 부실에서 석쇠로 구운 떡이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군데군데 붙어있는 김이 축구공의 디테일을 더해줬다. 유이치는 떡이 담긴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기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태평하게 앉아서 떡이나 먹고 있어도 되는걸까.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동생들은 자기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쓸텐데. 

 "음, 그러니까 뭐라고 부르면...."
 "전 후부키 시로에요. 저랑 닮은 아이는 아츠야고. 제 동생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핑크색 까까머리는 소메오카 류고라고 해서 원래는 라이몬 일레븐 중 한명인데 지금은 하쿠렌에서 강화위원을 맡고 있어요."
 
 모두 들어본 이름이다. 유이치는 라이몬 일레븐 오타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라이몬을 매우 좋아했다. 이나즈마 재팬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후부키 시로와 소메오카 류고를 알고 있었다. 딱 한명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저 후부키 아츠야였다. 유이치는 접시를 내려놓고 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츠루기 유이치라고 해. 지금은 내가 당신들보다 나이가 많지만 내가 살던 시대에서는 당신들은 이미 어른이 되고도 남았어."
 "무슨 말인가요?"
 "사람을 모아줘. 해야할 말이 있어."

 시로는 유이치의 담담한 표정을 보고는 아츠야와 소메오카를 불렀다. 두 사람은 궁시렁거리며 모여들었다. 특훈을 한참해도 모자를 판에 왜 신변도 알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아츠야가 심기불편한 티를 냈다. 시로도 그걸 바로 캐치하고는 헛기침을 하며 아츠야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시 한번 소개할게. 나는 츠루기 유이치야. 나이는 18살이고. 보다시피 지금은 걸을 수 없는 상태야."
 "그건 보면 알고. 용건만 말해."
 "지금 당신들의 나이로 계산하면 나는 10년후의 미래에서 왔어. 그래서 여기있는 후부키 시로, 소메오카 류고를 잘 알고 있어. 그들은 일본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에 들어갔거든."
 "국가대표?!"
 
 소메오카는 깜짝놀라며 정말로 우리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거냐고 물었다. 유이치는 만약 이 과거가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과거가 맞다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고 어물쩡거리며 손을 들어 아츠야를 가리켰다. 유이치가 살던 시대에는 아츠야가 없다. 아츠야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 들어본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생김새는 후부키 시로와 똑같았다. 형제인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을만큼 닮았다. 만약 후부키 시로에게 동생이 실존한다면 동생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내가 살던 시대에는 후부키 아츠야라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이 과거가 내가 살던 시대의 과거가 맞는지 의심돼."

 유이치는 맨 처음 후부키 시로와 만났던 날을 기억해보았다. 그때 시로는 유이치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었다. 동생이 있었고 동생은 매우 축구를 잘했지만 눈사태에 휘말려 일찍 죽었다고. 그리고 그 동생의 의지를 이어받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는거라고 했다. 동생이 죽은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정도로 슬프지만 그 슬픔을 이겨내야 동생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했다. 유이치는 시로에게 들었던 내용 그대로 모두에게 말했다. 아츠야라는 인물은 어릴때 산사태에 휘말려 죽었고 시로만 살아남았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믿어야만 했다.

 "잠깐, 당신이 미래에서 온 사람인걸 증명할 수 있나요?"
 "후부키 시로. 등번호 9번, 공격과 수비가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이나즈마 재팬에서 큰 활약을 하였지만 아시아 대표 결승전에서 부상을 입고 잠시 퇴장했다가 다시 복귀."

 유이치는 버벅거리는거 없이 술술 말했다. 솔직히 좀 무서울 정도였다. FFI를 수십번을 돌려본 유이치에게 있어서 이정도는 식은죽 먹기였다. 물론 그의 1호 연예인은 고엔지 슈야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축구선수를 좋아하고 또 동경해 마지않았다. 

 "나랑 동생은 고엔지 슈야를 동경해서 축구를 시작했어."
 "고엔지를 알아? 그녀석이 축구를 잘하는건 맞지만 그렇게까지 유명인사는 아닌데...."
 "그러니까 믿어줘.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해. 동생이 위험하단 말이야!"

 시로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협력하겠다며 유이치의 말을 받아들었다. 아츠야는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유이치는 그제서야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맨 처음 아츠야를 향해 멱살을 잡은 이유도 설명했다. 휠체어채로 밀어버린 아츠야가 떠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어떻게 하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달라고 부탁했다.

 "......"

 시로는 잠자코 유이치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기개가 느껴졌다. 전혀 연약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가 올곧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동생을 위한 마음도 그렇고. 아츠야를 보고 동생을 떠올렸다는 말을 보아, 그의 동생도 아츠야처럼 좀 거친 성격일 것이다. 거기다 같은 포워드에 등번호도 10번, 나이도 같다.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았다. 그의 동생 얼굴을 보고 싶을 정도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유이치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아츠야라는 것.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죠?"
 "형!"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 나도 그쪽 세계가 궁금하고. 무엇보다 아츠야가 없는 세계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고 싶으니까."
 "간혹 형은 알기 어려운 말을 한다니까."

 시로는 쿨하고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간혹 얼음처럼 냉철해질때가 있었다. 그때면 아츠야도 형을 무서워했다. 겉으로 보이는 무서움이 아니었다. 웃고 있지만 정말로 웃는게 아닌, 그런 음침함이 있었다. 시로는 아츠야는 아직 어려서 모르기 때문에 형인 자신이 대신 하는거라고 말했지만 나이차가 많은 것도 아니고 시로의 성격이 가끔 이해가 안될 때가 있었다. 

 작전은 이랬다. 유이치가 워프를 했던 그 장소로 다시 가서 똑같이 아츠야가 휠체어를 밀어 자신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면 또다시 워프가 열릴 것이고 그때를 노려 워프로 들어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 말로만 들었을때는 그럴싸한 방법이지만 너무 위험했다. 워프가 다시 열릴거라는 보장도 없고 더군다나 절벽에서 사람을 민다는건 보통의 사람이 생각할만한 발상이 아니었다. 대체 미래의 후부키 형제는 무슨 생각으로 그를 절벽에서 밀어버린걸까. 하지만 유이치는 이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죽더라도 동생을 구하고 죽어야한다. 

 "너희들이 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라도 하겠어."
 "그런 다리로는 무리지."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 아..."
 
 답지 않게 처음만난 오렌지색 머리의 소년에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이해는 갔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에게 부정당하는건 싫었을거다. 하지만 동시에 아츠야에게 크게 소리친 것을 후회했다. 

 "......."

 아츠야의 모습에서 동생인 쿄스케의 형체가 겹쳐보였다. 

 "미,미안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인간일텐데도 너무나 동생과 닮아서 크게 화낼 수가 없었다. 화를 내더라도 그것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의 심장을 마구 쪼아댔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 같은게 아니었다. 최소한의 '죄책감'이었다. 못움직이게 된 다리를 만들어준 동생에게 죄책감을 안겨줬다는 '죄책감'이.

 "어쨌든 그런 다리로는 산에 올라갈 수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게 좋겠어."
 "그런 방법을 알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가 다른건 세개야. 내가 없다는 것, 형이 소메오카씨와 함께 국가대표로 발탁된 것, 당신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
 "마지막은 어떻게 알아? 내가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는걸."
 "......몰라, 갑자기 떠올랐어."

 아츠야는 고개를 홱 돌리며 반대방향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추려고 하지 않았다. 우선 이 세가지가 이 세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걸 증명해야했다. 우선 첫번째는 증명되었다. 아츠야는 살아있었다. 그럼 나머지 두 가지를 증명해야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이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유이치는 역시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며 절벽에서 자신을 미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 극단적인 방법이라며 아츠야가 말렸다. 

 "왜 당신이 말리는거야? 당신은 미래에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인데."
 "그건 미래 이야기고! 그리고 그쪽 세계의 미래에는 내가 없다며. 참견하는게 뭐 잘못됐어?"
 
 차가운 설풍이 불었다. 얼음처럼 차디찬 바람이었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도 그 바람은 살갗을 찢을정도로 매서웠다. 겨울 바람에 강한 후부키 형제도 놀라서 눈살을 찡그렸다. 바람이 부는 쪽은 유이치가 내려왔던 산속이었다. 추운걸 넘어서 음산한 기운이 주위를 맴돌았다. 가장 덩치가 큰 소메오카가 앞에 서서 바람을 막아냈다. 그때 산에서 눈이 와르르 쏟아졌다. 쿠구궁-하는 소리와 함께 매우 빠른 속도로 눈사태가 일어났다. 두꺼운 눈은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내며 더 강한 스피드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이 있는 이 필드가 눈으로 덮히는건 시간 문제였다. 

 "이러다가 다 눈사태에 깔리겠어! 시로! 아츠야! 어서 부원들보고 대피하라고 해!"
 "..........."
 "어이 시로!"
 

 눈사태가 쏟아지니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둘이서 함께 완벽이 되자'

 왜 혼자만 편해지려고 했을까.

 '내가 포워드, 형이 디팬더. 우린 최고의 콤비가 될거야'

 그곳에는 아직 열 세살을 맞이하지 못한 아직 어린 동생의 영혼이 눈에 파묻혀있었는데. 그 눈사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거라고 믿었다. 

 '꼭 세계 제일이 되는거야'

 왜 그때 같이 죽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아직 남아있었다.



-


 눈 속에 파묻혔다. 몸이 차갑다. 숨도 느리게 쉬게 된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이럴때 아츠야의 머플러가 있었다면 좀 나았을려나. 이런 상황에서도 동생의 머플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걸 보니 좋은 형이 되긴 글렀다. 

 "시로."

 누구지.

 "동생과 함께 하는 축구는 재밌어?"
 
 응. 정말 재밌어. 그런데 너는 누구니?

 "네가 재밌다면 다행이야."

 아, 그렇구나 너는.....


-


 눈사태에 파묻혀 죽어가는 후부키 시로를 꺼내준건 아츠야도 아니고 소메오카도 아닌 후부키 시로 자체였다. 지금보다 훨씬 키가 커진 모습의 자신이 서있었다. 복슬거리는 야상을 입고 있었고 그 뒤에는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아츠야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사람이 아까 츠루기 유이치가 말한 다른 세계의 자신이라는걸. 

 "동생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소중히 여겨줘."

 그말을 하자 뒤에 있던 아츠야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갔다. 발밑에서부터 투명화가 지속되더니 반짝이는 나비로 변해갔다. 아츠야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시로만이 사라지는 아츠야를 보면서 무서웠는지 손을 뻗고 있었다. 가지 마. 가지말아줘.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야. 왜 멋대로 사라지려고 하는거야. 그렇지만 그건 오히려 시간을 더 단축시킬 뿐이었다. 아츠야의 입이 사라지려고 하자 할말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날 잊지 마"


 어른이 된 시로도 사라진 아츠야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속이 후련해진 기분이다. 10년간 가둬두었던 동생의 망령을 드디어 성불시켜줄 수 있었다. 어린 시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건 다른 세계의 일이니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아츠야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가지 않아 어린 시로의 모습도 점점 사라져갔다. 시로는 놀라서 자신의 손바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대로 자신도 죽는거냐고 황급히 물었다. 그러나 어른인 시로는 그런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원래 살던 시대로 돌아갈 뿐이라고. 네가 걱정할 건 전혀 없다고. 

 "그럼 유이치씨는?"
 "그도 곧 원래 세계로 돌아갈거야. 내가 괜한 짓을 해서 그를 끌어들이고 말았어."
 "왜 이런 짓을 벌인거야?"
 "그건 이제부터 설명할거야. 그러기 전에 너는 먼저 돌아가."

 어린 시로의 마지막 손가락마저 사라지자 즈디어 설풍이 그쳤다. 두껍게 쌓인 눈사태도 순식간에 녹았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게 내려앉은 찬공기가 후부키 시로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며 날아온 매서운 축구공. 시로의 머리를 노리듯 달려드는 축구공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뒤돌아 반격을 하듯 다시 차 돌려주었다. 공에 잔얼음이 붙은채로. 맞은편에 서있는건 훈련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숨을 헐떡거리며 서있는 검성의 소년이었다.

 "이봐."
 "슬슬 올거라고 생각했어."
 "이제 형을 돌려줘."
 
 아아, 정말로 너는 내 동생을 닮았구나. 너무 닮아서 너의 형이 질투날 정도로. 

 츠루기 쿄스케.



- 마지막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