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제작년에 쓴거 이어서 3편을 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내용.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놀랍게도 그곳은 하쿠렌이었다. 필드에서 쓰러진 나를 카제마루와 다른 친구들이 구해준 모양이다. 한명만 그런게 아니고 두명이나 쓰러지다보니 이나즈마 재팬에도 비상이 걸렸다. 묘하게 방금 쓰려졌는데도 이상한 꿈같은건 꾸지 않았다. 나 자신을 죽이던 그 꿈에서 나는 더이상 괴롭지 않았던걸까. 내가 하쿠렌에 갑자기 온게 마음에 걸렸는지 소메오카를 비롯한 하쿠렌의 부원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끙끙대며 머리를 감싸고 일어났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건 아츠야였다.
"아츠야....."
"모처럼 국가대표로 뽑혔는데 벌써 쓰러지면 어쩌자는거야. 어서 일어나."
"아...."
'어서 일어나. 형은 여기서 멈춰도 좋아?'
꿈에서 본 아츠야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몇번 눈을 깜빡인 후에 보면 내가 아는 그 아츠야가 맞다. 아츠야의 얼굴에는 '꼴사납다'라는 표정도 있었지만 '걱정했잖아'하는 표정도 들어있었다. 동생이니까 형을 걱정하는건 당연한거야. 라고 아츠야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아츠야가 나를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가 아츠야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너는 알고 있을까.
"어찌됐든 몸상태가 안좋은 것 같으니 일단 쉬고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때 돌아가."
"응. 고마워 소메오카군."
"흥. 고마우면 나중에 한턱 내."
소메오카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강화위원으로서 전력을 다해 하쿠렌을 지탱해주고 있다. 내가 국가대표로 뽑혔을 때도 안심하고 하쿠렌에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소메오카 덕분이었다.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던 국가대표였다. 뽑혀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동생이 걱정되어서. 아직 어린 내 동생이 걱정이 되어서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때 마침 소메오카가 자신이 아츠야와 나에를 돌볼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어주었다. 쉽지 않은 기회였다. 국가대표로 뽑혀서 세계 선수들과 시합한다는 것이 쉽게 오는 게 아니다. 그걸 잘 알고 있었던 소메오카는 쿨하게 나를 밀어주었다.
얼마전 하쿠렌 앞에서 큰 눈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내가 그 눈사태에 빠진 것과 같은 차가움이 닥쳐왔다. 마치 꿈에서 본 '나'가 그 눈사태 안으로 밀어넣으려고 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응? 시로?"
"으....."
"어이! 정신차려! 누가 따뜻한 물이랑 수건 좀 가져와!"
감기? 추위? 그런건 홋카이도에 있을때부터 달고 살았다. 이젠 웬만한 추위로는 감기 따위는 걸리지 않는데 그런 추위가 아니었다. 감기가 아니었다. 좀 더 근본적으로 내 뇌로 파고드는 추위가 고드름같이 뾰족하게 갈려 박혔다. 눈을 이대로 감을 수가 없다. 이대로 감으면 영원히 감겨버릴 것만 같다. 그러면 아츠야를 이 눈에 담을 수 없는데. 아츠야를 살려야하는데. 아츠야를....
-
"왜 또 나를 부른거야."
-내가 아니라 네가 부른거겠지.
"이제 그만 나가줘. 아츠야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아."
-아츠야가 괴로워 보여?
"....."
-괴로운건 네쪽이겠지. 틀려?
"아무튼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 난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그러면 하나만 물을게.
"그래."
-넌 지금도 아츠야가 밉니?
아츠야가 미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츠야에게 질투심 같은건 느낀 적이 없었다. 그가 머플러를 두른 이유는 단순히 나보다 감기에 더 잘걸렸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 나의 어머니는 아츠야를 위해 목도리르 떠줬다. 그 시절 아츠야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본인만의 것이 생겼다는 그 기쁨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항상 동생이라는 이유로 형인 나와 물건을 나눠써야했고 연년생이다보니 서로 원하는 것도 비슷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축구로는 아츠야와 함께 포워드를 맡고 있지만 원래 나의 포지션은 디펜더였다. 물론 지금은 그 디펜더의 경험을 발휘하여 국가대표에서 디펜더가 되었지만 아츠야와 함께 공을 차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게 정말로 행복이었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츠야를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어."
-과연 그럴까. 난 가끔 미워.
"그래 보이네. 그러니까 죽은 동생의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거잖아."
-아 이거? 이건 내 의지로 맨게 아니야. 내 안에 있는 아츠야가 이 머플러를 원했거든.
"네 안에...?'
-응. 보여줄까? 진짜 후부키 아츠야를.
그말을 들은 내가 크게 동요했다. 눈앞에 있는 머플러를 두른 내가 머플러를 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죽은 아츠야를 본다고? 내 눈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동생 아츠야가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죽은 그 아츠야를 보게 된다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목이 말라온다. 손이 떨린다. 발이 안떨어진다. 눈이 초점을 제대로 맞추기 힘들어한다. 머리가 울려온다. 목소리가 안나온다.
-.........하아.
아츠야다. 나의 동생. 나의 반쪽. 아츠야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유약한 내가 아닌 진짜 아츠야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죽은 아츠야가 서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몸이라 조금 적응이 필요했는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곰을 때려잡던 그 매서운 눈으로 나를 계속 응시했다. 본인은 여기에 있으면서 형이 다른 곳에 있는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할 말 있어?"
여유로운 척 웃어보였다. 아츠야의 얼굴이 아주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리고 바람과 같이 순식간에 내 옆을 수욱 지나갔다. 매서운 칼날바람이 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전기라도 끊긴 로봇처럼 쓰러졌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힘없이 정면으로 쓰러진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츠야는 나를 보더니 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아츠야의 목소리가 나와 비슷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느꼈다.
-잘 가져갈게. 형님.
-
"시로! 어이 시로!"
"........시끄럽네."
"어? 이봐 너... 괜찮은거 맞지?"
"아아, 완전 최고의 상태야. 이런 곳에서 잠자고 있을 시간 없단 말이지."
이미 내 몸은 죽은 아츠야의 영혼에게 뺏겨버렸다. 나는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닿을리 없는 곳으로 소리를 외칠 뿐이었다. 다른 세계의 내가 죽은 아츠야의 인격으로 나의 몸을 빼앗은 것이다. 이대로 가면 아츠야가 만나버려서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헤에~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는데. 후부키 아츠야잖아."
"뭐야 넌. 형은 어디있어?"
"네 눈앞에 있잖아? 내가 후부키 시로다."
아츠야는 내가 아닌걸 단숨에 알아차렸다. 말투나 행동이 달라졌으니 누구나 눈치채겠지만은 아츠야는 근본적으로 내가 아닌 눈앞에 있는 '나인척 하는 사람'이 '아츠야'인걸 알아차린 듯 보였다. 만약 저 아츠야의 인격이 진짜 내 동생 아츠야를 죽이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곧바로 철회했다. 그래봤자 저건 나의 인격이다. 나의 인격의 일부. 그러니 아츠야를 쉽게 죽일리는 없을 것이다.
"소메오카씨. 이 사람 형이 아니야."
"그건 나도 보면 알아. 그런데 생긴건 시로잖아. 뭐가 어떻게 된거야?"
"나야 모르지. 하지만 형을 어딘가에 가둬둔건 확실해."
아츠야는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다. 유치해질때도 있지만 할때는 하는 녀석이다. 그런 아츠야가 있기 때문에 나도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는거다. 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 위험하다. 아츠야가 위험하다. 차라리 나의 몸을 빼앗고 어딘가로 가버리면 좋을텐데. 나의 인격이 그런걸 원치 않을 것이다.
"내가 네 형을 어딘가에 숨기기라도 했다는거야? 상상력이 풍부하네."
"그럼 여기서 형을 불러와보던가. 그건 형의 몸이야. 네까짓게 가질 수 있는 몸이 아니라고."
아츠야가 나에게 삿대질을 한 건 처음이다. 단 한번도 나의 말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이유든간에 아츠야는 나에게 있어서 '착한 동생'이었다. 그런 아츠야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의 인격이 조금 동요했는지 내가 있는 이 암흑같은 공간에 틈이 생겼다. 이 틈을 깨고 나가면 분명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다.
"그러는 너야 말로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는거지?"
"보면 몰라? 여긴 하쿠렌이다. 나랑 형이 축구를 하고 있는 곳이라고."
"나랑 형이? 그것도 참으로 어이가 없군. 후부키 시로와 함께 하는 축구가 가장 엉망이다."
"뭐야? 네까짓 되도않는 축구 실력으로 형을 평가하지 마!"
아츠야의 분노가 느껴졌다. 뜨거운 마음을 가진 아츠야는 쉽게 불타올랐다. 심하다고 생각할때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아츠야의 매력이었다. 아츠야의 분노로 틈이 더 생겼다. 조금만 더 하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형을 꺼내주고 넌 꺼져. 지금 이곳에서 가장 쓸모없는건 너다."
"쓸모...없다라......"
"안들려? 네가 가장 엉망이고 쓸모 없단 말이다. 하쿠렌에서 추앙받는건 나의 형이고 바로 나다. 네가 아니고."
"완벽해지는 것도 불가능해....?"
"하아?"
이제 조금만 하면 틈이 벌어질 터였는데 나의 인격은 아츠야에서 시로로 바뀌었다. 쓸모없다는 말을 들어버린 아츠야의 인격이 무서워져서 들어간 것 같았다. 완벽에 집착하는 나의 얼굴에서 후부키의 시로의 인격이 서서히 보였다. 유약하고 나에게 죄책감을 씌우던 그 후부키 시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시로는 본인도 무서워졌는지 목 주변을 계속 긁어댔다. 머플러가 없어서 계속 그 근처를 손톱을 세워가며 긁었다. 그걸 본 소메오카가 그만하라며 시로 인격의 팔을 잡아 끌었다.
"에....? 소메오카군이 왜 여기있어?"
"진짜 너 뭐야? 우리가 아는 시로가 아닌 것 같은데."
"아.....으....."
그래 더이상 네가 있을 곳은 없어. 지금 하쿠렌을 이끄는건 바로 나야.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야. 틈이 완전히 벌어졌다. 내가 뛰어들어도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을정도로 커졌다. 기다려 아츠야. 소메오카군. 내가 그곳으로 가서 모든걸 설명할게. 그리고 유약한 나의 인격과도 찬찬히 이야기 할 수 있을거야.
-4에서 계속
'이나이레 > 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09 (2) | 2024.02.03 |
---|---|
[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8.5 (2) | 2024.02.03 |
[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08 (1) | 2024.02.03 |
[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07 (2) | 2024.02.03 |
[이나아레] 지지마라! 캡틴!! -06 (1) | 2024.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