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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이레/시리즈

[이나오각] 히로타츠히로 -03

***2편에 이어서***

(중요한건 나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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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츠야의 시야는 계속해서 흐릿해져갔다. 아무리 손등으로 눈을 비벼봐도 다시끔 눈물이 흘러나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굳이 살아갈 필요가 없다니? 무슨 말이야? 히로토에게 따지고 싶은 말은 이미 목구멍 끝까지 나와있었다. 입을 열어서 소리를 내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타츠야의 입에 풀이라도 칠해놓은 마냥 꾹 닫힌 아래와 윗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냐?"

 

 흐릿해져가는 시야 속에서 찾은것은 히로토의 얼굴이었다. 그전까지는 시선을 피했으면서 타츠야가 우는 모습을 보였을때 시선을 마주보며 가시가 돋힌 말을 했다. 인상 찡그린 히로토의 눈은 영혼이 나간 상태의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그 눈이 타츠야를 향해 있었을때 타츠야는 꿈속에서 봤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어쩌면 히로토도 알고 있었던거 아닐까? 그 꿈이 히로토에게 공유되었다면 지금 히로토도 자신과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타츠야의 심장이 급속도로 빨리 뛰었다. 히로토도 알고 있다면 왜 일찍 말해주지 않은거지? 

 

 "히로..."

 "꿈에서."

 

 히로토가 타츠야의 말을 가로챘다. 아니야. 더이상 말하지마. 꿈 속에서의 일은 말하지 말아줘. 타츠야는 귀를 닫으려 애를 썼다. 흐릿하고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눈동자 속에 비친 히로토의 얼굴을 지우려고 눈을 꽉 감아버렸다. 꿈에서 본 키라 히로토는 죽었다. 

 

 '꿈 같은게 아니라고 했잖아.'

 

 그게 꿈이 아니라면 히로토가 정말 죽은거라면 지금 자신의 앞에서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꿈에서 너가 나왔어."

 

 나도 마찬가지야. 타츠야는 그렇게 생각만 했다. 말로는 전하지 못했다. 이럴때 텔레파시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속마음이 들키는 능력따윈 가지고 싶지 않다. 히로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듣고 싶지도 않고 들을 때마다 끔찍한 기억들이 생각날것 같아서 고개를 수그린채 가만히 있었다. 

 

 "분명 너도 같은걸 봤을거야. 너 지금 나한테 숨기는게 있다면 다 말해."

 "숨기는거 없어. 그냥 몸이 안좋아졌을 뿐이야."

 "거짓말 치지마!"

 

 히로토는 강렬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타츠야를 다그쳤다. 이렇게 가까이서 들으니 고막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거짓말 아니라고 말하려고 웅얼거리는 소리도 히로토는 다 묵살하고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었던 후부키는 더이상 못참겠다는 식으로 히로토를 진정시키며 언성을 높혔다. 히로토는 그 껍데기만 남은 눈동자로 타츠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에메랄드로 반짝이게 빛났던 타츠야의 눈동자는 탁해져서 쓸모가 없어진 보석의 눈이 되어있었다.

 

 "지금 당장 말을 안하면 친구고 뭐고 여기서 너를 때려 눕혀버리겠어!"

 "정말....없어..."

 

 타츠야는 힘없는 목소리로 히로토의 시선을 피했다. 타츠야도 알고 있었다. 히로토가 자신과 같은 사건을 봤고, 같은 사념덩어리를 봤다는 것을. 하지만 히로토는 지금 살아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그 사념 덩어리가 틀렸다는게 증명된다. 다만 히로토보다 더 고통스러웠던건 그 '히로토' 이름을 부여받은 '타츠야'였다. 

 

 "히로토군! 그만해!"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 타츠야도 나에 대한것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 가만히 내버려뒀단 말이야? 일이 이지경이 될때까지?"

 "후부키씨는 아무것도 몰라. 멋대로 사람 끌어들이는 짓 그만해."

 "시간 들여서 하는 말이 기껏 그거냐?"

 

 타츠야는 울음을 꿀꺽 삼키며 히로토의 팔을 잡았다. 꽤나 묵직한 힘에 히로토는 멱살을 스르륵 풀었다. 타츠야가 옷무새를 정리하며 후부키 역시 비슷한 꿈을 꿨을 뿐이라며 이성적으로 말했으며 히로토는 그건 잘못했다며 후부키에게 심심한 사과를 했다.

 

 "너가 본 사람이 내 얼굴을 한 '히로토'라면 나랑 같은걸 꾼게 맞아."

 "이제야 이야기가 통하네."

 

 타츠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둡고 아무것도 없는 눈동자 반대편의 세계에서는 그 망할 '히로토'가 서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한채로 여유로운 미소로 타츠야를 맞이하는 '히로토'가.

 

 "그건 너였어. 맞지?"

 "그래. 하지만 그는 자기가 히로토라고 했어."

 "그럼 걔가 너가 아니라 나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얼굴도 목소리도 너랑 똑같았는데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그럼 그가 나라면, 내가 히로토 행세를 하면서 다녔다는거야?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런짓을 해야하는데. 내가 왜 너 행세를 해가면서까지 너를 갈구해야하냐고!"

 

 그 '히로토'라는 단어가 타츠야의 심금을 자극했다. 처음에는 덤덤하게 이성적으로 말했지만 점차 악에 받쳐 울분을 토하듯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히로토 행세를 하는것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히로토가 싫었던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사념 덩어리는 히로토에게 '증오심'을 부여하고 있었다. 자기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키라 히로토'가 되보이려고 한것이, 그 어린 나이에 사고를 당해 죽어버린 히로토에게 죄가 있는 것인가.

 

 "그녀석은 너를 싫어했어. 너가 죽었기 때문에 자기자신이 말도 안되는 '히로토' 행세를 하는게 마음에 안들었던거야. 근데 그게 뭐. 걔가 나랑 무슨상관이 있다는건데? 나도 너 행세를 해야한다는거야?"

  

 타츠야의 공격적인 말투에 히로토도 놀랐는지 주춤했다. 히로토는 모든것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 큰 저택, 누구나 부러워하는 축구실력 등등. 하지만 타츠야는 저택은 커녕 사랑을 줄, 사랑을 받을 가족 한명도 없었다. 그가 히로토와 같은것을 가진것이라면 기껏해야 축구실력 뿐. 하지만 점수를 내야하는 축구라는 스포츠에서는 당연히 공격수가 더 유리하고, 더 환호를 받는다. 그 공격에 특화 되어 있는 사람 역시 타츠야가 아닌 히로토였다.

 

 "내가 너를 싫다고 하는게 아니야. 하지만 꿈과 현실은 구분해야지. 그 사람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넌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거냐? 너, 나를 증오해?"

 "증오....?"

 

 내가? 너를? 무엇때문에? 고작 이름을 빌린것 가지고 증오를 한다고? 타츠야는 지금당장이라도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 속에서 어린 소년이 죽는 사고를 봐서였을까 지금 타츠야의 탁해져버린 보석같은 눈에서는 히로토의 모습이 정말로 증오하고 싶었던 히로토 행세를 하는 그 사념덩어리로 보였다. 

 

 '너를 증오하는게 아니야. 나는 자신을 잃어버린 그 꿈속의 내가 싫었던거야.'

 

 어떻게든 말하려고 했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 모든걸 가지고 있는 너랑 나는 맞지 않아. 나만 비참해질 뿐이야."

 

 어떻게든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말은 나오고 말았다.

 

 "아 그러냐? 그럼 진작 말하지 그랬냐. 그랬다면 그런 멍청한 친구놀이는 안해줬을텐데."

 

 히로토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조용히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로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히로토도 알고 있었다. 타츠야가 한 말이 진심이 아니였다는것을. 하지만 그녀석이 말한거니까 어떤 형태든 진심은 들어있었을 것이다. 어떤 말이 맞는걸까? '모든걸 가지고 있는 히로토'인게 진심이었을까, '비참해지는 타츠야'가 진심이었을까. 히로토는 더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이성적인건 항상 타츠야가 전문이었는데 이제는 친구도 그 무엇도 아니였다. 

 

 "그래도 나는 너를 믿었어. 물론 지금도 너가 진심이 아니라는거 알아."

 

 히로토는 한 번만 더 깊게 생각하기로 했다. 타츠야가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게. 증오심으로 그를 꾀어내려는 사념 덩어리를 없애게 도와주기 위해. 타츠야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히로토는 자신의 생각을 토씨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했다.

 

 "나에게 모든게 있다고 너는 말했지만 나에겐 너가 없으면 안돼. 그게 나에게 유일하게 없는거고 너에게 유일하게 있는거야. 타츠야, 너의 존재가 나에게는 필요해. 그건 너만이 가지고 있어."

 

 -

 

 -왜 그냥 내버려두었어? 증오할 수 있었잖아. 너도 걔가 싫었잖아.

 "내가 증오하는건 나 자신 뿐이야. 그녀석이 아니야."

 -그럼 넌 자신이 망가져도 좋은거야? 키야마 히로토가 되어도 괜찮은거야?

 "아니."

 -모든걸 얻을 수는 없어. 그렇기에 세상이 불공평하고 무서운거야.

 "나는 답을 구했거든.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히로토와 함께 있을 방법을."

 -그래? 그게 있었다면 나도 이 녀석 행세를 안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 그래서 방법이 뭔데?

 "너가 죽으면 돼."

 

-

 

 꿈 속의 히로토는 해맑은 표정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분노에 차서 계속해서 공을 차대던 지금의 히로토와 다르게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한채로 공을 차고 있었다. 그 무엇이 소년의 생명을 빼앗아간것일까. 신은 마음씨가 고운 사람들을 먼저 데려간다고 한다. 악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간다고 한다. 신은 천계에 사람들을 데려갔고, 악마는 마계에 사람들을 데려갔다. 소년은 어디에 갔을까? 마음씨가 고운 아이라면 천계에, 마음씨가 고운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마계에 있을것이다. 

 

 "안녕, 오랜만이야. 다시 만났네? 그래서 그쪽의 나는 어땠어?"

 "너랑 완전 딴판이더라. 성격도 드러워보이고 뭔가 껄끄러운 녀석이였어."

 "그럼 천계에 갈것 같아 마계에 갈것 같아?"

 "그 세계의 나하고 너무 잘지내는것 같아서 마계로 갈것 같아."

 "그래? 의외네. 천계에 갈것 같았는데. 내가 천계에 있는것처럼."

 "하하 너는 예외잖아."

 "너도 마찬가지잖아? 꽃들도 예쁜것만 꺾는 이유가 있듯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먼저 데려간다고 하지."

 "여기온걸 아직도 후회하니?"

 "아니, 너가 있으니까 후회하진 않아. 다만, 그 세계의 나는 오래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난 욕심쟁이라서 그쪽의 너가 짧게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결국 먼저 죽는건 나겠구나. 너가 먼저 죽은것처럼."

 "글쎄~ 나는 모르겠네~"

 "하하 신이라면 제대로 일을 해줬으면 좋겠어."

 "음... 노력해볼게."

 

 소년은 신이 되었다. 또 다른 세계의 자신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살기를 기도했다. 자신을 증오했던 사념 덩어리는 악마가 되었다. 또 다른 세계의 자신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기를 기도했다. 신은 둘에게 생명과 사랑을 불어 넣어주었고, 악마는 둘에게 증오와 의심을 불어 넣어주었다. 아직 자신들이 죽지 않은 패러렐 세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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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무인편에서 키라 히로토가 죽고 2기 메인 보스로 나온 키야마 히로토가 패러렐 세계인 아레오각 키야마 타츠야에게 사념 덩어리로 나타남--->악마의 계략

-마찬가지로 아레오각의 키라 히로토가 본 키야마 히로토 역시 타츠야가 본 사념 덩어리.

-맨 마지막에 무인 히로토와 이야기 나눈 사람은 어릴적에 죽은 키라 히로토로 가엽게 여긴 신이 그에게 신의 자리를 주어줌.

-무인 히로토 역시 죽고 악마가 되어서 아레오각 히로타츠를 정신적으로 괴롭힘(하지만 히로타츠의 믿음은 무인보다 훨씬 쎄기 때문에 극복가능)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악마와 이야기하는것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히로타츠가  충분히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고 극복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레오각 타츠야는 히로토를 증오하는 마음이 있긴 했으나, 그 보다 자신의 나약함을 더 증오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것. 아레오각 히로토 역시 타츠야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

-좀 비엘스럽지만 나에게는 너가 필요해!! 라는 대사는 진짜로 둘이 서로가 필요했기 때문(아니 공식에서 대놓고 주는데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