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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이레/시리즈

[이나오각] 후부키 시로 -무제2-

*1편에서 이어집니다.
 
 
 
 
 
 
 
 
 
 아츠야가 죽었다고 그렇게 말했던 나는 그 꿈속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눈사태가 나를 덮쳐, 그 안에 빠지는 꼴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동조를 하지 않았다. 아츠야가 죽은 세계에 있는 나같은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중요했고, 남동생이 있는 이 세계에 더 있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꿈속에서 내가 죽은걸 보고 깨어났을때, 식은땀 때문에 침대가 축축하게 젖어있어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일어난김에 아츠야에게 전화 한통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힘겹게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도 역시 통화음까지 가고 나서야 다시 전화를 끊었다. 아직 자고 있겠지. 응. 그럴거야.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결국 다시 몸을 뉘었다.
 
 -형.
 "아츠야?"
 -일어나. 어서 일어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왜 내 팔을 잡고 늘어지는거야. 응?"
 -형은 이대로 끝내도 좋아?
 "무슨 말이야?"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나를 지켜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형은 이제 형의 인생을 사는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늘 함께였잖아. 내 인생은 너의 인생이기도 하다고."
 -아니. 틀려. 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이제 그만 일어나.
 "아츠야.... 어딜 가는거니? 응? 멋대로 가지 마! 그 앞은...!"
 
 틀렸다. 눈을 감아도 다시 평상시의 수면으로 돌아갈 수 없다. 눈을 감으면 그 앞에는 아츠야의 형태가 있었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한심한 형이라 미안해. 왜 그때 내가 눈사태에서 너를 빨리 구하지 않았을까. 내 머릿속은 온통 너의 생각으로 가득한데 왜 너는 나를 밀어내려고만 하니. 형이 남동생을 걱정하는건 당연한거잖아. 
 
 히로토군이 나랑 같은 꿈을 꿨다고 했을 때 나랑 히로토군 사이에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심지어 다른 세계는 우리와 다르게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려 있었다.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그것에 얽매여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로 힘겹게 살아가는 그 세계 사람들. 나는 그것을 보고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 남동생이 죽었을거란 생각은 아예 하질 못했다. 히로토군도 자신이 죽었을거란 생각도 안했겠지. 그런게 진실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게 진실이더라도 내 눈앞에 버젓이 살아있는 남동생을 지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히로토군과 만나고 거울을 봤을 때 히로토군의 얼굴에서 타츠야군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곧이어 나의 얼굴을 보았더니 자신만만한 특유의 용감함이 드러난 아츠야의 얼굴이 내 얼굴과 겹쳐보였다. 거울에 손을 대어보았을 때 아츠야는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고만 있었다. 아츠야와 함께가 아니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동생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오직 그 뿐....
 
 "후부키?"
 "카제마루 군... 오늘은 새벽에 여러사람을 만나네.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야?"
 "아니.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불편해서. 그러는 너는?"
 "음... 향수병인가봐. 갑자기 하쿠렌이 그리워져서."
 "뭐야, 동생이 보고 싶어진건 아니고?"
 "아하하, 설마. 아츠야도 어린애가 아니니까. 알아서 잘 지내고 있겠지."
 
 관찰력이 너무 좋지 않다면 이정도는 무사히 넘길 수 있다. 포커페이스는 자신 있다. 그랬을 터인데 나는 또 멍청하게 되물었다. 
 
 "카제마루군은 꿈 안 꿔?"
 "꿈?"
 "응. 아까 히로토군이 악몽을 꿨다고 하길래."
 "그래? 음... 그렇게 말하니 나도 요근래 기분 나쁜 꿈을 꾼 적 있어. 엔도와 축구를 했는데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괴로운 축구를 하고 있었다고 할까. 왜 그런 꿈을 꾼거지? 엔도랑 축구해서 한 번도 즐겁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그렇구나...."
 
 카제마루군은 그 세계에서 죽지 않았구나. 나의 논리는 거기에서 멈췄다. 너무 단순하고 바보같은 논리지만 만약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정말로 카제마루군은 그 세계에서 죽지 않았겠지. 엔도군이랑 축구를 하면서 힘들었다는건 다른 사건에 휘말렸을테고.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 가만히 지나갔으면 좋았을터인데 그러지 못해서 나는 또 힘겹게 속에서 휘감겨 오는 응어리를 뱉지 못하고 간신히 막아내며 방으로 돌아갔다. 
 
 더이상 다른 세계의 내가 찾아오는 꿈은 꾸지 않았다. 그때 눈사태에 휘말려서 그랬을까. 나를 괴롭히는 존재는 이제 없어졌다. 목이 졸리는 꿈도 없고 아츠야의 머플러를 두르며 아츠야 행세를 하는 나도 없었다. 모든게 잘풀리기만을 기도했다. 
 
 
-
 
 
 아츠야한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뭐라고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을까 하다가 아츠야 성격상 내가 받지 않으면 통화를 계속 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핸드폰을 타고 들려오는 아츠야의 목소리가 너무나 담담했다. 무슨일이 있었다고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남동생의 목소리 변화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위에서는 우리 둘의 목소리가 너무 똑같아서 쌍둥이 같다고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츠야의 밝은 목소리, 어두운 목소리, 슬픈 목소리, 화난 목소리가 내 귀에 저장되어 있었다. 
 
 -형.
 "아츠야...?"
 -미안. 갑자기 전화해서.
 "으응. 아니야.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네가 전화를 할정도면 꽤나 큰일이 벌어졌나보구나. 하쿠렌에 무슨일 있어?"
 -.....실은.
 
 나와 같은 악몽을 꾸지 않았기를. 자신이 죽는 꿈이라니 너무 비극적이잖아.
 
 -실은 나에 저녀석이 형 없다고 자꾸 주장자리를 노리잖아! 어떻게든 해줘!
 "에?"
 -주장의 자격으로 뭐 퇴부시킨다거나 그렇게 안돼? 아오 진짜. 소메오카씨도 아무 제지도 안해서 더 답답하단 말이야! 뭐가 플래티넘 프린세스야! 완전 지 맘대로 다니는데!
 "....아츠야."
 -왜 형.
 "이런 시시한 일로 전화걸면 형아가 시합에 집중을 못하잖니. 그리고 공주님 일은 내가 관여할 문제도 아니니까 너가 참아. 애초에 아츠야 너도 처음에는 네 멋대로 굴었잖아? 그때 내가 선배들한테 머리 조아리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자업자득이라 생각해. 그럼 형아는 끊는다."
 -자,잠깐잠깐!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형아... 아니 형님!
 "형아라. 좋네. 오랜만에 듣는다. 그럼 하쿠렌은 믿고 맡길게. 소메오카군 힘들게 하지 말고. 열심히 하렴."
 
 아츠야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인다. 평상시의 아츠야였다. 공주님 일은 뭐, 알아서 해결하면 되는 문제이고. 아츠야도 그것때문에 전화한건 아닐테다. 그저 나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었을 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츠야가 귀여워보였다. 형아라니.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부터는 허세 부린다고 쌀쌀 맞아졌더만 내가 없으니 허전한 모양인지 이렇게 어리광이라도 피우는게 마음에 들었다. 전화 받기는 잘한 선택이었다. 
 
"히로토 괜찮아?"
 "괜찮다고 하잖아."
 "하지만 너 얼굴이..."
 
 히로토군은 상태가 많이 안좋아 보인다. 다른 세계에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내 꿈에서 그런게 나온 걸까. 내가 죽은게 아니라면 아츠야의 꿈에 나와줬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나는...."
 
 이기적인 형이다. 내가 견디기 힘들다고 동생에게 떠넘기는 꼴이 이기적이고 뻔뻔해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이정도로는 동생을 지키지 못해.'
 
 아츠야의 머플러를 두른 내가 저쪽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이정도로는 동생을 지키지 못한다고 비웃으며 나를 천천히 옭아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단지 평화롭게 가족들과 살아왔을 뿐인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내가 안쓰러워졌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고 힘겹게 살아왔을 네가 조금은 불쌍했다. 
 
 '내가 불쌍하니?'
 
 눈을 질끈 감았다. 자기자신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을까. 아츠야를 잃을 뻔한 일은 꽤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츠야를 지켜냈다. 내가 설령 죽더라도 아츠야만을 살리기 위해 살아왔다. 아츠야를 미워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츠야가 전부였다. 그런데 나에게서 하나뿐인 동생을 데려가려고 하다니. 그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설령 그 사람이 나라고 할지라도.
 
-
 
 동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적은 어릴적 눈사태에 휘말렸을 때다. 우리 가족은 큰 눈사태에 휘말렸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몸이 안좋았던 아츠야도 얼마 안가서 금방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아츠야는 그날의 눈사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만 이렇게 고통받는게 억울했다. 아츠야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고 싶은게 저 목 위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내뱉지 못했다. 참으로 이기적인 형이다.
 
 이 생각이 든건 두 번째다. 본선 진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큰 부상을 입어서 팀에서 나가야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것이 내 축구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잘 치료해서 어서 복귀한다면 다시 필드에 설 수 있을거란 생각이 분명 있었다. 단지 내가 우려되는건 나를 대신할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나를 대신할 사람은 후부키 아츠야다.
 
 다리를 다쳤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인간의 본능이 아닌 '형제의 본능'이라는 말도안되는 힘이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팀을 나가게 된다면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야한다. 그 사람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기왕이면 내 동생이길 바랐고 기왕이면 내가 추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섰다. 오리온의 사도가 판을 치는 더러운 세계대회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무법지대에 버려놓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형아 형아. 빨리 시험해보자. 응?"
 
 둘이서 처음 만든 합동 필살기. 
 
 "드디어 완성했구나! 이걸로 세계대회에 늦지 않겠어!"
 
 둘이서 만든 최강의 합동 필살기.
 
 "이 기술은 형아가 없으면 안돼. 나는 강력한 슛을 쏠 수 있지만 형아처럼 단단하게 받쳐주는 디펜더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기술이거든. 형아도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 둘이 함께라면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나는 디펜더를, 너는 포워드를 지망했었지. 둘이서 만든 첫 필살기는 공격과 수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모처럼 완성했는데.... 이래서는 형의 다리가 못버텨. 이 기술은 당분간 봉인하자. 아니 영원히 봉인하자."
 
 나의 다리가 동생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분했다. 필드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츠야를 생각하며 필살기를 완성했는데 기껏 만든 필살기는 쓸 수 없었다. 
 
 "이 기술의 이름은 뭘로 지을까? 형아는 어떻게 생각해? 단단한 디펜더가 뭔가 발톱같지 않아? 맹수의 발톱! 아! 생각났어. 울프 레전드라고 하자. 날아가는 슛이 꼭 질주하는 늑대 같았단 말이야."
 
 조잘대는 어린 시절의 아츠야가 떠올랐다. 해맑게 웃는 아츠야의 얼굴이 그립다. 
 
 "이 기술의 이름은 뭘로 할거야? 생각해 둔 기술명 있어? 얼어붙을 것 같은 날카로운 슛이었지. 아! 생각났어. 빙결의 궁니르라고 하자. 슛이 꼭 날카로운 얼음의 창 같았거든."
 
 쓰지도 못할 필살기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순수한 축구 소년이다. 나하곤 다르게 때묻지 않은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한다. 
 
 "언젠가 풋볼 프론티어에서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 형아하고 나하고! 둘이서 함께라면 분명 이길 수 있을거야."
 
 손가락 걸고 약속할거지? 거짓말 하면 바늘 천개 먹기도 잊지 않고.
 
 "만약 쓰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절대 쓰지 마. 아니 쓴다고 해도 내가 말릴거야. 형과 계속 축구를 하고 싶으니까."
 
 손가락 걸고 약속하지 않을거니? 내가 약속을 깨는 날이 오면 너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츠야와 함께 필드를 달리고 싶었다. 세계에 아츠야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왜이렇게 어리석을까.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아츠야와 교대될 위기에 처해졌고 아츠야를 오리온의 먹잇감이 되게 내버려두게 되었다. 나는 결국 발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주위 사람들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정신차리라며 나를 혼내는 어머니의 말도, 동생을 지켜달라는 아버지의 말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눈사태 속에 파묻혔던 아츠야의 목도리를 두른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나 혼자 행복하게 아츠야를 데리고 사는게 부러워서? 아님 나에게서 아츠야를 빼앗고 싶어서? 결국 끝까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형'이 된 채로 필드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츠야, 너라면 어떻게 할거야? 만약 네가 지금 내 상황이라면 네가 나를 위해 필드에서 내려올 수 있겠니?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