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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타마/소설

[사쿠카즈] 통나무 집(完)

**케마이사 조금 들어있음

**사쿠베와 카즈마가 서로 짝사랑 하는데 모르고 삽질함

**1,2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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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안 그치네."

"..... 그러게."

 

 선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라일락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에게 겉옷을 벗어서 덮어주었다. 새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작은 통나무집을 발견하고는 둘은 그 비좁은 안에서 서로의 온기에 의존한 채, 발그레진 볼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침묵만이 흘렀다. 

 

 사건의 발달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했다. 용구위원회의 케마 토메사부로는 보건위원회의 젠포우지 이사쿠와 동실이자 친한 친구사이다. 예전에 토메사부로가 이사쿠를 도와준답시고 보건위원회의 임시위원장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은혜를 하급생들은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산탄다 카즈마는 이사쿠의 바로 밑 직속 후배였기 때문에 그의 등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사쿠와 토메사부로의 사이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카즈마는 순수하게 궁금하면서도 사춘기 소년의 풋사랑처럼 볼이 발그레져서는 금세 망상에 빠져버렸다. 

 

 "카즈마! 멍하니 뭐해?"

 "히익!"

 "오... 오우. 깜짝 놀라게 했다면 미안."

 "사,사쿠베구나! 아냐 나야말로 길 방해해서 미안."

 

 때마침 나타난 것은 토메사부로의 직속 후배 토마츠 사쿠베였다. 물론 4학년의 편입생 하마 슈이치로가 있지만 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그에게 위원장 자리를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토메사부로는 만약 슈이치로가 부장이 된다 하더라도 사쿠베가 많이 도와주기를 바랐다. 사쿠베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나 씩씩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아이다. 

 

 "근데 뭐 보고 있었어?"

 "으응. 이사쿠 선배랑 케마 선배. 둘이 뭔가... 사이가 좋아 보여서."

 "그렇지. 동실이잖아."

 "너도 사몬이랑 산노스케랑 그래?"

 "설마~ 걔네 생각만 해도 벌써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거릴 정도야."

 

 사쿠베는 손가락으로 근질거림을 표현했다. 카즈마는 웃음으로 마무하며 복도에서 벗어났다. 하반의 실습도 있고 위원회 일로 바빠서 카즈마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럼 나 먼저 갈게. 사몬이랑 산노스케 보호자분."

 "그런 호칭 그만둬."

 

 사쿠베는 도끼눈을 하고는 짧은 손인사를 건넨 카즈마가 혹여나 넘어지진 않을까 끝까지 지켜봤다. 다행히 아무일도 없었지만 사쿠베는 이미 토메사부로의 등을 보고 자라서인지 보건위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카즈마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야 사쿠베도 짧은 한숨을 쉬고 사몬과 산노스케를 찾으러 돌아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이사쿠는 실습을 나갔다. 6학년 하반의 실습이 있는 날이었는지 공교롭게 토메사부로도 부재였다. 카즈마는 익숙하게 위원회 일을 처리했다. 약초의 개수를 확인하고 붕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하급생들을 데리고 일을 하기에는 역시 이사쿠의 부재는 컸던 모양이다. 거기에 작은 불운까지 더해져 약초를 다 세어봐도 재채기로 엉망이 되고 간식으로 가져온 양갱과 차를 가져와도 붕대에 밟혀 넘어지고 보건실은 엉망이 되었다. 카즈마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청소를 했고 하급생들에게 남은 약초와 붕대를 잘 정리하라며 신신당부했다. 

 

 "카즈마 선배..."

 "괜찮아. 다시 정리하면 금방 끝날 거야. 란타로 거기 찻잔 좀 건네줄래?"

 

 란타로가 건넨 찻잔을 카즈마는 받아 들고 바닥에 흘린 차를 훔쳤다.  그런데 1학년의 체구라고 하기에는 꽤 큰 손이었다. 

 

 "이거 말하는 거지?"

 "사쿠베!"

 

 용구위원회다. 사쿠베와 1학년들이 보건실에 와주었다. 토메사부로와 이사쿠의 전언이었던 모양이다. 사쿠베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카즈마를 비롯한 보건위원에게 도와주겠다며 호기롭게 말했다. 1학년들은 친구들이 늘었다며 좋아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하자 카즈마가 박수를 두어 번 치며 청소부터 얼른 끝내자고 주위를 집중시키자 그제야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을 꼬물거리며 바닥을 쓸고 닦았다. 

 

 "고마워. 용구위도 바쁘지 않아?"

 "바쁘지. 그런데 보건위는 더 바쁠 것 같아서."

 "덕분에 살았어. 일손이 필요했던 참인데..."

 "뭘 새삼스레. 이전부터 쌓아 온 은혜라고 생각해."

 

 사쿠베는 카즈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약초와 붕대가 얼추 정리되어 간다. 눅눅한 날씨여도 보건실 안은 꽤나 따뜻한 양기로 가득차있었다. 카즈마는 눈치채고 와 준 사쿠베가 너무 고마웠다. 어디선가 날아 온 정의의 사도같았다. 카즈마는 하급생들을 다루는 사쿠베를 보며 하급생들을 구해주는 든든한 케마 선배가 떠올랐다. 역시 사쿠베는 대단해. 나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심히잖아. 사쿠베의 등을 보고 있으면 벌써 선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카즈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즈마 선배. 약초 하나가 부족해요."

 "뭐라고? 아까 차를 흘리면서 녹아 없어졌나..."

 "어떤 건데?"

 "이렇게 생긴 거."

 

 카즈마는 사쿠베에게 약초 그림을 보여주었다. 사쿠베가 그림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카즈마는 다시 사춘기의 풋사랑이 도졌는지 살짝 긴장했다.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사쿠베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사쿠베의 낮은 음색만 은은하게 깔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즈마는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카즈마?"

 "어어?"

 "그래서 찾으러 가야 해? 말아야 해?"

 "가, 가야지! 응. 가야지... 이사쿠 선배가 알면 실습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서 찾으러 가야 한다며 나갈 게 틀림없으니까. 우리라도 먼저 가서 약초를 구해오면 이사쿠 선배가 더 힘들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밖에 비가."

 

 밖에? 카즈마는 문 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이것도 하나의 불운일까. 눅눅한 습기는 물론이고 세찬 비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자 카즈마는 그래도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급생들이 하나둘씩 같이 나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즈마는 극구 말렸다. 

 

 "너희들은 남아서 남은 위원회 일을 해야지. 그리고 혹여라도 다친 학생이 보건실에 오면 치료도 해줘야 하잖아. 아무도 없으면 치료도 못 받고 아픔에 고통받을지도 몰라."

 

 카즈마의 강고한 말 한마디에 하급생들은 설득당해 다시 자리에 앉아 약초를 점검했다. 사쿠베는 연약해보이지만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카즈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상냥한 마음씨, 후배를 생각하는 너그러움은 선배인 이사쿠를 많이 닮아 있었다. 아직 3학년 밖에 안된 우리들 중 가운데 가장 먼저 선배의 발자국을 따라가 그 의지를 이어받으려는 카즈마가 멋져보였다. 

 

 "그럼 사쿠베 애들을 부탁할게."

 "아니 그런 거면 나도 같이 가."

 "그럴 순 없어. 이건 보건위의 일..."

 "그러니까 더더욱 같이 가야지! 선배들의 은혜라고 생각하자니까?"

 "으음... 그래도..."

 "너희들! 보건위 애들이랑 사고 안치고 잘 있을 자신 있지?"

 "당연하죠!"

 

 키산타, 신베, 헤이타는 사쿠베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애들이 이렇게 많이 있으면 걱정할 것도 없다. 사쿠베는 카즈마에게 그렇게 일러두었다. 하급생들을 빠르게 통솔하는 모습이 꽤나 멋져보였다. 동실도 아니고 같은 반도 아니고 단지 위원회 선배들이 사이가 좋다는 것만으로 자기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쿠베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괜찮아. 같이 가면 금방 찾을 거야. 우리는 동실... 은 아니고, 그렇다고 같은 반도 아니고... 으음..."

 "선배들의 은혜.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래 그거면 돼."

 

 카즈마와 사쿠베는 세차게 부는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문 밖을 나섰다. 약초가 어디 있는지는 카즈마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이전의 불운들을 생각하면 괜히 사쿠베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카즈마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라우라우라산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산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미아 둘을 찾아다니느라 지리에 도가 튼 사쿠베의 등을 나침반으로 삼아 카즈마는 비바람을 피하며 걸어갈 뿐이었다. 

 

 "어, 엇어!"

 "카즈마!"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것을 사쿠베가 구해주었다. 카즈마는 심장의 벌렁거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단지 빗물에 넘어져서 또다시 불운에 휘말리게 될 뻔 한 그 벌렁거림을 가리키는 것인지, 사쿠베의 다급한 손을 잡아서 나타난 벌렁 거림인지 모를 정도로. 

 

 "큰일 날 뻔했네."

 "그, 그러게... 고마워 사쿠베."

 "역시 따라오길 잘했다니까."

 

 사쿠베는 다시 상쾌한 미소를 보내며 카즈마의 앞에 서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 카즈마에게 뒤에 잘 따라오고 있냐며 물어보면서 어서 약초를 찾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비바람에도 사쿠베는 전혀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단단한 육체단련도 이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겠지. 그에 비해 카즈마는 자신이 사쿠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약간 미웠다. 사쿠베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카즈마. 이리 와 봐."

 "응? 뭔데? 거의 다 왔어?"

 

 카즈마는 사쿠베의 부름에 단걸음에 달려가 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드넓은 평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더 이상 흙과 나뭇가지에 구를 일이 없겠구나 싶어 카즈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야가 보인다는 건 그 약초도 이 근처에 있을 터. 카즈마와 사쿠베는 평야의 돌 틈 사이를 뒤적였다. 그때였다. 카즈마는 커다란 돌 두 개 사이에 끼어 있는 보랏빛 꽃을 발견했다. 분명 저 것이다. 그러나 혼자 들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돌이었다.

 

 "찾았어?"

 "응. 근데 너무 커서 들 수 없을 것 같아. 나나마츠 선배가 있었으면 들 수 있겠지만."

 "내가 한 번 해볼게. 잠깐 비켜봐."

 "으응."

 

 사쿠베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돌을 밀어내듯 들어 올렸다. 끙차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저절로 굴러 나갔다. 카즈마는 사쿠베의 힘에 감탄하듯 박수를 연신 쳤고 다시 일어나 반대쪽 돌도 손쉽게 들어 올려 내다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앙증맞게 피어있는 보랏빛 꽃을 보기 위해 둘은 허리를 숙여 옹기종기 모였다. 세찬 비에도 그 꽃은 스스로 피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작은 생명에서 둘은 희망을 찾았다. 

 

 "찾았다."

 "찾았어."

 "찾았다.... 찾았어 카즈마!!"

 "응! 찾았다아아!! 사쿠베!!"

 

 둘은 서로 눈이 마주쳐 얼싸안았다. 비록 작고 큰 불운이 따르긴 했지만 무사히 그 꽃을 찾은 건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카즈마는 조심스럽게 꽃을 뿌리까지 뽑아 흙을 조심스레 털어내고는 가져온 종이지에 살살 말아 품 안에 넣었다. 카즈마는 이제 돌아갈 수 있다며 환히 웃었다. 사쿠베의 그 부드럽고 환한 미소에 사쿠베는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역시 카즈마는 대단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그런데 이 저림은 뭐지? 

 

 "아까 온 길로 다시 돌아가면 학원에 도착할 거야."

 "응. 다시 한번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지도 몰라."

 "이런 거 가지고 뭘. 왜냐면 우리는..."

 

 카즈마와 사쿠베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같이 대답했다. 흙투성이에 잔뜩 헤진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대수랴. 기분은 최고조였다.

 

 "선배들의 은혜 갚기니까!"

 

 그러나 불운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

 

 

 

 

 그것은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사쿠베와 카즈마는 약초를 찾은 게 너무 기뻐서 그만 이곳이 산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소중하게 품에 넣은 약초는 혹여라도 바스러질까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조마조마한 것이 문제였다. 카즈마는 결국 평야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가는 길에 빗물에 미끄러져 심하게 구르고 말았다. 이 정도의 불운은 일상인지라 카즈마는 별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쿠베 쪽이 걱정이었다.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이정도는 괜찮아! 어쩐지 너무 잘 풀리더라..."

 "그,그런 소리 하지 마... 또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카즈마는 한숨을 쉬며 발목 상태를 보았다. 넘어지면서 삐끗한 것 같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아니 못 걷더라도 걸어야 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지만 사쿠베는 카즈마가 늘 무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주 멍 때리는 것, 아야베의 함정에 잘 빠지는 것, 늘 졸려하는 것 모두 카즈마가 힘쓰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보건위원회가 정말 운이 나쁜 걸까? 그런 거 치고는 카즈마는 존재감이 옅은 거 빼고는 그다지 운이 나쁘지도 않았다. 존재감이 옅은 것은 대충 넘어가도 카즈마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신이 그에게 못된 수련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카즈마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사쿠베는 생각 했다. 

 

 "잠깐 쉬었다가 갈까? 비도 너무 많이 오고."

 "그래도 빨리 가야해. 하급생들이 걱정이야. 이사쿠 선배도 안 계신데 나까지 착실히 하지 않으면 보건위는 아무도 지키지 못해."

 

 사쿠베는 카즈마의 강인한 정신이 내심 부러웠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카즈마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을 후벼 파는 독한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쿠베는 카즈마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지 그 녀석의 성격 탓이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보건위원회가 하는 일이나 이사쿠 선배 혼자 모든 걸 짊어지는 것을 보고 성장한 카즈마에게 있어서 이사쿠가 없는 보건위는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만약 이사쿠가 학교를 그만둔다면? 아니 실습에서 크게 다쳐서 돌아온다면? 그때가 되면 자기는 무엇을 해야 하지? 카즈마의 고민은 온통 이것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넌 뭐든지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더라."

 "헤헤. 사쿠베도 똑같은 걸. 사쿠베도 똑같이 사몬이랑 산노스케를 책임지고 용구위도 책임지고... 그런 거에 비하면 나는 책임이 적을 뿐이야."

 "걔네가 위원회랑 같냐."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더 힘든건 뭔데?"

 "...... 그녀석들이지."

 "아하하 거봐~"

 

 사쿠베는 카즈마를 부축해주며 한 발자국 한발자국 걸었다. 비가 점점 그쳐 간다. 비만 그쳐도 살만 할 텐데. 

 

 "저런 곳에 집이 있어!"

 "정말이네?"

 "일단 들어가자. 비도 오고 상처도 봐야 하잖아.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은 알지만 우리 둘 다 너무 지쳤어."

 

 사쿠베는 통나무 집을 발견했다. 산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통나무집이라니 좀 수상쩍긴 하지만 아무도 없으면 그대로 몸을 잠시 쉴 수 있고 누가 있다면 잠시 쉬었다 가면 안되냐고 물어보면 된다. 사쿠베의 발걸음은 조금 빨라졌다. 이대로 카즈마를 쉬게 해서 체력을 보충하고 비가 그치면 뛰어가면 된다. 

 

 "아무도 안 계세요?"

 

 도착한 통나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꽤나 작은 곳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누울 정도의 크기는 된다. 눅눅한 공기의 냄새가 집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약간은 불쾌할 수 있는 냄새를 만들어냈다. 상관없다. 그들에게는 잠깐 등을 기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카즈마는 사쿠베의 부축을 받아 나무바닥에 앉았다. 쓸린 상처, 멍, 부어오른 발목...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래도 카즈마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옷을 벗고 어깨죽지에 감은 붕대를 풀어 주위의 나무판자를 발에 대고 붕대를 감았다. 상처나 멍은 거기가서 치료하면 되니까 상관 없었다. 아프지 않냐는 사쿠베의 말에 카즈마는 미소로 대답했다.

 

 "얼마나 있을 거야?"

 "글쎄. 비만 그치면 뛰어서 갈까 생각 중이야. 아, 너무 아프면 그냥 걸어가고."

 "괜찮아. 뛰어 가도."

 "정말 괜찮은 거지? 네 말은 쉽사리 믿을 수가 없어."

 "이번에는 믿어도 돼~"

 

 사쿠베는 카즈마 옆에 주저앉아 나무 벽에 기댔다.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지친 몸을 기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두터운 벽이다. 사쿠베는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어서 비가 그쳐서 카즈마와 다시 학원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에취!"

 "추워?"

 "잠깐 옷을 벗고 있었거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붕대를 준비해왔어. 젖으면 안 되니까 몸에 감고 왔더니 이렇게 되었네..... 에?"

 "입어."

 

 사쿠베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겉옷을 건넸다. 똑같이 비에 젖은 옷이지만 사쿠베의 온기가 남아있어서 그럭저럭 쓸만 했다. 그리고 사쿠베의 옷이 카즈마보다 덜 젖어있었다. 이것도 하나의 불운일까. 

 

 "불운인가. 내 것이 더 많이 젖어있더라."

 "그럼 행운이지."

 "왜?"

 "그, 그게...."

 

 사춘기 시절의 풋사랑은 달콤하고 시큼하기도 하다. 어떨 때는 망상에 빠져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푼 망상을 가지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목석같은 존재들이다. 딸기처럼 정열의 맛을 보여주다가도 정작 레몬처럼 산뜻하긴 커녕 시시한 고백을 해버린다. 둘은 지금 사춘기의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너에게 옷을 빌려 줄 수 있으니.... 까?"

 

 사춘기의 사랑은 농익으려면 한참은 걸린다. 그렇지만 그 시큼한 고백은 같은 사춘기가 들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매혹의 사랑으로 바뀐다. 

 

 "..... 행운이네."

 "..... 그래."

 

 카즈마는 옷깃을 잡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사쿠베와 눈이 마주치지도 못했다. 아니 마주치면 둘 중 한 명을 죽을 것만 같았다. 잔뜩 빨개진 얼굴은 주체할 수가 없다. 비가 내려서 어두컴컴해진 날씨 덕분에 이 풋사랑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사쿠베의 고백 같지 않은 시큼한 고백에 둘은 말이 없어졌다. 

 

 "카, 카즈마!"

 "왜, 왜?!"

 "이제 그만 나갈까? 시, 시간도 너무 많이 지, 지났고."

 "그, 그러자 그러자...!"

 

 어서 빨리 비가 그치기를 바랐지만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사쿠베는 이대로 가다가는 머리도 마음도 이상해질 것만 같아서 급하게 말을 돌렸다. 사쿠베는 집의 문을 열었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아주 못 갈 정도는 아니였다. 이정도 비는 어떻게든 피해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쿠베는 마음 한 켠에는 아주 자그맣게 아주아주 작게 원하고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기를. 비가 계속 내려서 여기에 더 오래 머물기를.

 

 "카, 카즈마.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나는 진짜 못난 놈인가 봐. 이런 상황에서도 비가 계속 내리기를 원하고 있었어. 계속 비가 그쳐서 빨리 인술 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왜인지 모르겠어. 정말... 미안!"

 "괘, 괜찮아! 나는... 처음부터 비가 계속 내리기를 원하고 있었어. 사실 사쿠베가 집을 발견했다고 했을 때도 저기서 계속 쉬어서... 아, 아니 그렇다고 하급생이 걱정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고...!"

 

 카즈마는 횡설수설했다. 사쿠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 앞에 섰을때 무엇을 본 것일까. 어두컴컴한 그 바깥 풍경에도 사쿠베의 등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서 카즈마는 지금 이상태로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카즈마는 계속 빌고 또 빌었다. 자기의 불운이 하늘에게 먹힌다면 비가 하루종일 오게 해달라고. 비가 많이 내려서 인술학원에 늦게 도착하게 해달라고. 나쁜 생각임을 알고 있어도 사쿠베가 자신 따위에게 시간을 쓸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의 뒤틀린 욕망이라고 하더라도 묶어두고 싶었다. 같이 있고 싶었다.

 

 "그게 그러니까.... 처음부터 비가 온건 내 탓일 거야. 이사쿠 선배의 불운이 옮은 건지 보건위라서 불운한 건지 모르지만 불운이 먹힌다면 차라리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사쿠베... 너랑...."

 

 사춘기의 뒤틀린 욕망이 무엇일까. 카즈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자기의 욕망에 묶어두기 위해 거짓말한 것? 아니.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순수한 소년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친 질 나쁜 행동이다. 

 

 "카즈마..."

 "미안! 정말 내가 바보고 내가 나빴어. 불운을 이렇게 악이용 하면 안 되는데.... 그것도 너한테 그러면 안되는 건데...."

 "우, 울지 마. 난 괜찮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아니 오히려 나야말로 너랑...."

 

 곰팡이 냄새로 가득한 방안에서는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카즈마의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 들리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사쿠베도 입을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도 카즈마와 같은, 아니 그 이상으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걸 입이 찢어져도 카즈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우리 둘 다 똑같아.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아 안 울어..."

 "아니 그거 붕대잖아."

 

 카즈마는 붕대로 코를 풀었다. 페헹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쿠베는 카즈마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에는 그것마저도 자신의 욕망이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 여겼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카즈마는 사쿠베의 쓰다듬에 기분이 들떴는지 붕대를 움켜쥐고 가만히 있었다. 둘의 사이는 아까 약초 그림을 본 것처럼 가까워졌다.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문 밖에 주룩주룩 내리는 경쾌한 빗소리에 몸을 맡긴 채 둘은 어깨가 맞닿았다. 둘은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고 빗소리에 몸을 맡겨 살짝 붕 뜬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져. 서로의 눈에는 그 무엇도 아닌 서로의 얼굴만이 비치고 있었다. 사쿠베가 카즈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질 때였다. 이대로라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널 것만 같다. 

 

 "사쿠베. 카즈마 여기서 뭐해?"

 "으.. 으아아악!"

 "꺄아아악!"

 

 실습을 간 6학년 하반이다. 실습을 마무리짓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에서 잠깐 쉬었다가 갈 무렵이었는데 마침 그곳에 손님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연인 사이인걸 직감하고 포기하고 다른 쉴 곳을 찾으려고 했지만 익숙한 형체가 보여서 다가가 보니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케, 케, 케마 토메사부로 위원장!"

 "이, 이사쿠 서, 선배!"

 

 둘은 그제야 붕 뜬 그 정신을 다시 똑바로 부여잡고 얼굴이 새빨개져서 서로에게서 멀어졌고 그 상태로 일어나 위원장에게 허둥지둥 인사했다. 토메사부로는 약간 미덥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이사쿠는 싱글벙글했다. 뭣보다 후배들이 사이좋은 게 무엇보다 좋았다. 이사쿠는 카즈마의 상처를 봐주고 카즈마를 업고 밖을 나섰고 사쿠베는 토메사부로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사쿠베는 이 어정쩡한 기분과 창피한 기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을 하필이면 두 사람이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창피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사쿠베는 죽을 것을 각오하고 토메사부로에게 물었다.

 

 "케, 케마 선배. 그.... 아까 있었던 일은..."

 "걱정마라. 네가 카즈마의 옷을 빌려주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네?"

 "아니야? 카즈마가 입고 있는 거 네 옷 아니야?"

 "아, 아뇨! 마, 맞아요!"

 

 토메사부로는 둘의 사이가 가까운 이유가 옷을 빌려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에서 바로 봤을 때 카즈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나 카즈마의 머리카락을 치워주는 것은 발을 다치고 심하게 구른 카즈마에게 자기 옷을 빌려주고 옷맵시를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믿었다. 그리고 사쿠 베는 꽤나 상남자같은 용감무쌍한 성격이니까 유약한 카즈마에게 옷을 빌려주는 일은 꽤나 부끄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쿠베는 다행히 들키지 않은 것 같아 조용히 넘어가기로 하였다. 

 

 "이, 이사쿠 선배 죄송해요. 멋대로 약초를 찾으러 나왔다가 저기에서 잠깐 쉰 건데..."

 "응? 괜찮아. 상처도 금방 나을 거고. 무엇보다 카즈마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쿠베에게 도움받은 게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그런 거잖아."

 "네?"

 "아니야? 네가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약초도 돌 틈 사이같이 꺼내기 힘든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데 카즈마가 그렇게 큰 돌을 치웠을 리가 없잖아."

 "마, 맞아요! 사쿠베가 돌을 치워줘서 약초를 얻고 그 사이에 옷이 젖어서 빌려준 거고..."

 

 카즈마는 이사쿠의 통찰력에 깜짝 놀랐다.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니 설마 여태까지 다 본 건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카즈마는 이사쿠에게 들키더라도 이사쿠가 쉽사리 비밀을 폭로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고 있었다. 이사쿠의 등은 따뜻했다. 비에 젖은 몰골에도 따뜻하고 포근했다. 

 

-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뭐를?"

 "사쿠베랑 카즈마."

 "그냥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자. 원래 저 나이 때에는 예민하고 그렇잖아. 토메사부로도 그랬고."

 "내, 내가 언제!"

 "아하하하!"

 

 풋풋한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 대부분이지만 100% 다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첫사랑이 이루어져서 더욱더 끈끈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한다고 그쪽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카즈마는 그 이후로 비가 오면 그 생각이 나서 기도를 한다. 사쿠베는 비가 오면 살짝씩 멍을 때린다. 정신이 다 그쪽으로 쏠려서 붕 뜬 기분이 된다고 한다. 

 

 "어. 사쿠베 안녕."

 "토나이. 오랜만이야. 야야! 사몬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있으라고. 산노스케! 오른쪽으로 가지 말고."

 "여전히 바빠 보이네. 안 그래 카즈마?"

 

 비가 오는 날에는 원하지도 않는 장소에서 만나기도 한다. 

 

 "아, 아, 안녕! 사, 산탄다군!"

 "으응..! 토, 토마츠군도 잘 지냈지?"

 "어어?! 그, 그럼 당연하지! 나, 날씨가 좋네~..."

 "그, 그러게~... 날씨 참 조, 좋다."

 "무슨 소리야 밖에 비 오잖아."

 

 토나이는 비 오는 날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어색한 성을 써가면서 뻣뻣하게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숙한 어른은 되지 못한 그 어중간한 예민의 시기 사춘기에는 사랑의 형태가 제각각 다르다. 어떨 때는 그 누구보다 로맨틱하고 멋진 말로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어떨때는 어떤 찌질이보다 훨씬 더 밍밍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두 소년도 지금 그 사춘기만의 사랑의 전차길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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