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cp를 찾아서 연성하기
**바빠서 날린글.
**제목을 못정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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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베 키하치로는 땅을 파는 소년이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키하치로는 땅을 판다. 무로마치 막부 말기는 혼란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어린아이도 전쟁에 참여하는 잔인무도한 피의 세계였다. 애초에 전쟁이 없는 세상은 없겠지만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대에서 맞이하는 전투의 파급력은 컸다. 키하치로가 열 살이 되었던 해에 고향 마을 근처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키하치로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물론 갈 길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서 끔찍한 세상을 순수한 두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키하치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칼이 부딪히는 소리,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어린아이들은 눈과 귀를 막았다. 이 당시 전쟁은 사람들이 많이 죽긴 했어도 모든 마을을 휩쓸어버릴 정도로 파급력이 큰 전쟁이 아닌 '전투' 였기 때문에 이미 전투의 참상을 알고 있는 소년, 소녀들은 어린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의 귀를 막아주고 눈을 가려주고 안아주고 달래줬다.
'땅 속으로 숨자.'
불길에 휩싸여 재로 뒤덮인 하늘과 벌겋게 피어오르는 진홍색 하늘을 바라보며 땅 속으로 숨었다. 사태가 안정되고 나서야 키하치로는 구멍에서 나왔다. 땅에는 떨어진 칼과 화살로 가득했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이런 세상을 더 볼 바에야 차라리 땅 속으로 들어가서 숨자고 생각했던 나머지 키하치로는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말소리도 듣지도 못한 채 땅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위험하잖아! 땅 속으로 들어가면."
"헤?"
고작 한 두 살 더 많은 소년이 어린 키하치로의 팔을 잡았다. 땅 속을 헤집고 들어가 꾀죄죄한 몰골의 키하치로하고는 달리 이곳에서 본 적 없는 형의 모습은 나름 깨끗한 옷에 밝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은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소년은 키하치로의 손을 잡고 냅다 달렸다.
그것이 키하치로와 이사쿠의 첫 만남이었다.
-
매미소리가 귀청 떨어지게 울어대는 한여름, 4학년 실습이 정해졌다. 키하치로는 몸이 안 좋다는 둥 핑계를 대며 실습을 빠지려고 했지만 동실인 타키야샤마루의 설득으로 강제 참여하였다. 실습을 그냥 빠지는 날은 없지만 그날은 무척이나 몸이 무거워서 도저히 실습에 임할 마음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실습은 5학년 진급과도 연관이 되어있는 중요한 실습이다. 타키야샤마루는 '이런 중요한 임무를 내팽개치다니 제정신이야?' 라며 키하치로를 다그쳤지만 땅만 파는 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땅 파는 일뿐인지라 어떤 말이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튼 늦지 마. 점심 먹고 바로 운동장으로 집합하는 거니까. 알았어?"
"그렇게 하고 싶으면 혼자 하면 되잖아."
"다 같이 졸업해야지!"
"네에. 네에."
키하치로는 입학을 했을 때부터 졸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따분한 학교도 3년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어쩌다가 1년 더 머무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유에는 동실인 타키야샤마루의 설득도 있을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같이 졸업하자느니 헤어지지 말라느니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데 어떻게 무시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동실의 설득만 있었다면 키하치로는 3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그만뒀을 것이다.
"실례합니다-"
"키하치로? 무슨 일이야? 땅 파다가 다쳤어?"
"아뇨. 그냥 소화가 안돼서요."
키하치로가 4년이나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이유는 선배인 젠포우지 이사쿠 탓이다. 입학을 하기 전에 아주 어린 나이에 만난 이사쿠의 희망의 눈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 얼떨결에 입학한 이 학교를 4년이나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쿠가 졸업하면 그때 그만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손 줘봐. 여기를 누르면 답답함이 가실 거야."
젠포우지 이사쿠는 6학년 보건위원장이다. 의료는 물론이고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 않고 구해주는 상냥한 마음씨는 언젠가 닌자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모두 입을 모아 이사쿠는 6학년 되기 전에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너무 착한 성격이 냉혹한 닌자의 자질을 망치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사쿠는 그런 눈초리에도 꿋꿋하게 일어나 6학년이 되었다.
이사쿠는 키하치로의 왼손을 잡고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렀다. 자기 눈앞에 생명의 은인이 있다는 사실이 키하치로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자극시켰다. 그러나 이사쿠는 키하치로를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나 어릴 때의 일이고 흙투성이가 된 꼬질꼬질한 모습이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다. 키하치로는 이사쿠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늘 수포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땅 파는 게 재밌었던 모양이다. 땅 속은 축축하지만 온기가 맴돌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 늘 땅을 팠다. 그리고 땅을 파면 언제 어디서든 이사쿠가 함정에 빠졌다. 이사쿠가 함정에 빠지고 함정에 빠진 걸 구해주면 자연스럽게 기억나게 되겠지. 키하치로는 그 순수한 마음으로 땅을 팠다.
"좀 어때? 체는 풀렸어?"
"아뇨. 아직."
키하치로는 이사쿠의 손이 마음에 들었다. 항상 땅만 파서 더러워지고 거칠어진 자기 손에 비해 선배의 손은 그 나잇대에 맞게 두텁지만 상처 없는 깨끗한 손이었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보건실에 와, 이사쿠를 독점하는 데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청년이 돼가는 순간의 소년이 품은 작은 욕구가 채워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그만 둘 이유 따위는 없었다.
"오늘 4학년 실습 있다고 하던데. 키하치로는 안 가나 봐?"
"네. 어차피 진급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래도 너 정도 실력이면 5학년에 진급하고도 남을걸? 이왕 도전해보지."
"졸업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흐응- 그렇구나- 이사쿠는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마치 어린 후배의 속셈을 다 알고 있으니 단념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며 구급상자를 정리했다. 키하치로가 졸업할 생각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사쿠가 졸업을 하지 않는다면 키하치로는 계속 학교에 남을 것이다. 이사쿠가 학교의 선생이 된다면 자기도 계속 학교에 머물 것이다. 아야베 키하치로는 그런 사람이다.
"손 마사지는 이 정도면 되지? 그만 가봐. 동급생들이 기다리겠다."
"선배랑 동급생이면 좋겠어요."
"응?"
키하치로는 이사쿠와 처음 만난 그날을 떠올렸다. 땅 밖의 세상은 너무 처참했다. 역겨운 피 냄새가 진동했고 시체 더미로 산을 만들 정도였다. 그때는 죽기 싫어서 땅 속에 들어갔고 그곳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는데, 땅 밖의 인간들 중에도 희망은 있었다. 실수로 나온 땅 밖의 세상에서 충격을 받고 있었을 때 자신의 팔을 끌어준 사람은 우연히 마을을 지나고 있던 이사쿠였다. 땅 속은 위험해. 들어가지 마. 어떤 세균이 살고 있을지 몰라. 차라리 집으로 들어가서 숨어. 지저분한 몰골로 희망을 만나는 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다. 속사포로 뱉어내는 올바른 말에 키하치로도 고개를 끄덕이고 집에 들어갔다. 다행히 집에는 부모님이 무사히 계셨고 전투가 잠잠해지자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재건했고 좀 더 시간이 흐르자 다시 원래대로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키하치로는 희망의 빛줄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릴 때 당신을 만난 적 있어. 그쪽은 기억 못 하는 것 같지만."
이사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그가 인술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키하치로는 부모님을 설득시켜 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니 표면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뿐이지 사실 닌자가 될 생각은 하나도 없을게다. 그저 희망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당신이 졸업하면 나도 학교를 그만둘 거야. 애초에 입학도 그렇게 했으니까."
그래서 실습에 참가를 안 한 거니? 이사쿠는 이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말하지 않았다. 약간 화나 보이는 얼굴을 한 키하치로는 처음 본 탓인지 그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좀 더 저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키하치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괜히 왔어.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었는데.... 방금 한 말은 잊어주세요 선배."
키하치로가 보건실을 나가자 이사쿠는 괴로운 표정을 하는 후배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그때 이사쿠는 단순히 마을을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4학년 진급시험에 임하고 있었으며 여기서 떨어지면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동급생들과 마을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양상을 관찰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담당 선생님은 닌자이기에 누구와도 연관되어서는 안 되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럼에도 이사쿠는 규칙을 어겼다. 상냥한 마음씨가 닌자의 발목을 붙잡는다 한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사쿠는 사람을 구할 것이다. 자신이 구한 꼬질꼬질한 아이의 이름이 아야베 키하치로라는 사실을 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 입학한 신입생들의 얼굴 중에서 가장 빛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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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구한 사람들의 얼굴은 다 기억하는 편이야."
"정말요? 대단해요, 이사쿠 선배."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란타로."
후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 졸업하면 완전한 닌자로 돌아서겠지. 졸업하지 않고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래서는 이 땅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줄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6학년까지 올라왔건만 막상 닌자가 되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졸업을 포기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자신을 보고 입학한 후배의 얼굴을 봐서라도 졸업만은 무사히 끝내고 싶다. 좀 더 시간이 있더라면 나만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와 준 후배의 머리를 더 많이 쓰다듬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졸업하면 키하치로는 정말 학교를 그만둘까? 그렇다면 차라리 같이 생활하면 좋겠다. 아니지 내 불운 때문에 후배가 곤란할 수도 있으니까 그 생각은 접자.
"키하치로. 덕분에 무사히 졸업했어."
"오야마- 저는 선배를 구멍에 빠뜨린 기억밖에 없는데요."
"옛날 기억도 나고 이러저러 너한테는 도움만 받는구나. 나도 졸업했으니까 너도 분명 멋지게 졸업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졸업만은 반드시 끝내. 나를 보러 입학까지 해줬으니까 졸업도 나를 위해 해 줘."
"...네?"
아아, 드디어 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커진 키와 달라진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너의 얼굴에는 그때 어린아이의 모습이 남아있다. 그 얼굴은 해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구나. 너의 답은 열다섯 살이 지나고서야 듣겠다. 그때는 이 따분한 학교 안이 아닌, 더 넓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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