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캐 있음 주의
**졸업 이후 시점
**원래 케마이사 주기로 한 내용인데 좀 바꿔서 타케쿠쿠 주기로 한 연성.
**센몬 좀 나옴. 근데 몬지로가 많이 다침.
**퇴고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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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 다가오자 타케야 하치자에몽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우리 졸업하면 같이 두부가게 차릴래?"
두부를 좋아하는 쿠쿠치 헤이스케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제안이었다. 다만 닌자를 하지 않고 바로 두부가게를 차린다는 것은 닌자의 긍지를 버리는 것인데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헤이스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길만 보고 달려온 6년을 이토록 허무하게 없앨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싶었던 헤이스케라면 더더욱. 헤이스케는 마지못해 하치자에몽의 제안을 거절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년 봄 보름날에 다시 여기로 모여서 같이 두부가게를 차리자. 그때까지는 닌자로서 본분을 다하고 싶어."
둘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추운 겨울날 약속을 했다. 내년 봄 만월이 되는 날에 다시 인술학원에서 만나자고. 헤이스케는 두부도 물론 좋지만 모처럼 쌓은 탑을 무너뜨릴 용기가 없었다. 거절을 받은 하치자에몽은 움찔했지만 금방 표정을 싹 고치고 웃으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괜히 아쉬운 표정을 남겼다가는 헤이스케가 슬퍼할 거야. 오히려 더 미안해하겠지. 저 녀석 쓸데없이 성실하고 생각이 깊으니까. 하치자에몽의 머릿속에는 어서 이 인고의 시간이 끝나, 평화롭게 두부가게를 차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
하치자에몽이 필요 이상으로 닌자 일에 회의감을 느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6학년 선배들이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바쁜 시기에 집무인인 코마츠다 슈사쿠로부터 긴급 편지가 전해졌다. 누구에게 보내는지는 모르지만 인술학원에게 전하는 편지임은 분명했다. 첫머리에 '타치바나 센조'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편지의 내용은 참으로 암담하고 충격적이었다. 센조가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을지 감이 잘 안 올 정도로 충격이었다. 같은 반이었던 시오에 몬지로는 잘 나가는 성의 닌자대에 뽑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노리는 암살자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시오에 몬지로는 강인한 기세로 암살자를 처단했다. 그러나 몸을 너무 함부로 굴린 탓에 상처가 아무는 날이 거의 없었고, 결국에는 그토록 강인한 등이 쓰러졌다. 그것도 가까이 있는 암살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당했다. 그런 내용의 편지었다
편지의 내용을 본 신 6학년들은(지금의 5학년) 지금 당장 몬지로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허둥지둥 짐을 꾸렸다. 한꺼번에 신 6학년들이 학원을 비우는 것은 위험하다. 이 학원을 노리는 닌자들이 많은데 몰려다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당한다면 그건 여기에도 저쪽에도 큰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했다. 결국 두 명씩 짝을 지어 나가기로 했고 선발대로 뽑힌 사람은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였다.
"믿을 수 없어. 그 시오에 선배가 지다니."
"아직 죽은 건 아니라니까 괜찮을 거야. 이사쿠 선배도 치료하러 주기적으로 방문하신댔잖아."
편지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분명 그것은 센조의 눈물이라. 몬지로의 상태는 위독하다고 한들, 졸업한 선배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이사쿠의 치료로 빠르게 회복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언제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상처임에 틀림없다. 하치자에몽은 그때부터 닌자에 회의감을 느꼈다.
"실례합니다. 길을 좀 물으려고 하는데요."
"어떤 길을 물으시려고 하십니까."
"나라(奈良)에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 들어와라."
닌자임을 들켜서는 오히려 몬지로가 위험 해진다는 걸 안 센조는 급하게 편지에 암호를 같이 적어 보냈다.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는 길가의 아주 작은 초가집에 들어섰다.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곰팡이가 점령하여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센조의 주기적인 청소로 몬지로가 있는 곳만은 깨끗했다. 믿기 힘들 정도로 피폐해진 선배들의 모습에 두 사람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몬지로가 있는 방에는 이미 이사쿠가 들어가서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헤이스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오에 선배는 괜찮은가요?"
"확답을 해줄 수 없다.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땐 시체나 다름없었어."
센조는 이빨 깨진 잔 세 개를 들고 와서 자신의 잔에는 술을 따르고 두 명의 잔에는 차를 따랐다. 센조의 모습은 꽤나 수척해져 있었다. 학교에서 가장 멋지고 찰랑거리는 머리를 가진 완벽한 선배는 어디 가고 푸석해진 머리카락과 낮밤을 꼬박 새워서 퀭한 눈만이 둘을 반기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괜찮다. 이 정도는."
헤이스케는 센조의 손을 잡아주고는 손에 담긴 술잔을 찻잔으로 바꿔주었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다만 그 괜찮음의 비교 상대가 몬지로일 뿐이다. 센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도 센조의 침묵에 따르듯 조용히 찻잔을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한동안 입을 열지 않던 센조가 잔뜩 마른 입을 힘겹게 열었다.
"이 초가집을 발견한 건 큰 복이었어. 몬지로는 이 앞의 숲 속에 기절해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고 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모르지만 몬지로 곁의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 한 사람은 나더군. 난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몰골을 누군가가 봤더라면 지금쯤 충격으로 죽었을 거야."
헤이스케와 하치자에몽은 자세를 고쳐 앉고 경청했다. 몬지로의 상태와 그간의 행적들. 그리고 닌자에 대한 센조의 바뀐 생각들을.
"몬지로가 그 성의 닌자대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성은 적이 많은 편이라서 걱정이 되긴 했지. 그래도 녀석이니까 충분히 잘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던 닌자 세계는 너무나 작은 세계였던 거야."
센조는 몬지로가 닌자대의 첩자에게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추측이긴 하지만 몬지로를 덮친 사람이 그 성의 닌자복이랑 같았었다고 진술했다는 걸 보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센조 역시 이전에는 닌자대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몬지로가 저렇게 된 걸 확인한 이상 닌자로는 도저히 돌아가지 못하겠다며 초가집에서 몬지로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센조는 몬지로가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충격을 먹었다. 그 강인한 녀석이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진료가 끝났는지 서쪽의 작은 방문이 열리면서 깨끗한 천을 온몸에 휘감은 이사쿠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히 닫힌 문틈 사이로 하치자에몽은 힘없이 누워있는 몬지로의 모습을 보았다. 꼭 시체 같았다. 센조는 이사쿠에게 이 빠진 찻잔을 들이밀었다. 찻잔 바닥으로 물이 다 빠진 구멍이 난 잔이었다. 그럼에도 이사쿠는 구멍을 막으며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몬지로는 걱정 안 해도 돼...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진실만 말할게. 선생님들께 전해줘."
이사쿠는 냉담한 목소리로 몬지로의 상태를 읊어주었다. 왼쪽 눈은 회복 불가능, 쿠나이에 찔린 상처는 소독했지만 독이 올라 상당히 위급한 상태, 배에 꽂힌 검은 당장 빼냈지만 상처가 깊음,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 걸 보면 폐에도 이상이 생김. 이사쿠는 무서운 말을 끊김 없이 잘도 내뱉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사쿠는 니이노 선생님을 포함한 실력 좋은 의사들을 찾아보겠다며 후배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짐을 꾸려 나갔다.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 것이다. 센조는 이사쿠를 배웅했고 곧이어 두 명의 신 6학년들이 집을 나서려고 하였다. 그러자 센조가 하치자에몽을 따로 불렀다.
"하치자에몽."
"네?"
"내가 하는 말을 새겨듣도록 해. 너는 닌자에 어울리지 않아."
하치자에몽은 센조에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적도 그냥저냥이고 생물을 위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닌자 일은 제격이 아닐지도 모르니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그러자 센조는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몬지로와 만나기 전의 닌자의 길을 걷는 것과 몬지로와 만난 후의 닌자의 길을 걷는 것은 상당히 괴롭다며 닌자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치자에몽은 졸업한 선배가, 그것도 우수한 선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왜 저에게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몬지로는 회복해도 닌자 일을 계속하려고 하겠지. 물론 나는 말릴 생각이다. 잘 들어라 타케야 하치자에몽. 닌자는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어. 나도 그 어중간한 사람이고 몬지로도 마찬가지다. 네가 몬지로를 살짝 본거 다 알고 있었다. 너도 봤겠지 그 끔찍한 모습을..."
센조는 말을 흐렸다. 더 이상 말하기 힘들었겠지. 하치자에몽은 센조의 약해진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는 그 타치바나 센조가 이토록 무너진 이유는 단지 6년 지기 친구인 시오에 몬지로의 부상뿐만 아니다. 그로 인해 몰려드는 회의감과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허무감. 닌자의 길을 여기서 더 걸을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 다친 동료의 복수를 다짐하는 용기. 센조에게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헤이스케는 몬지로와 닮았어. 분명 저 애도 닌자의 길을 걸으려고 할 거다. 그때는 네가 말려줬으면 한다."
"그게 시오에 선배를 통해 깨우친 생각이군요."
"그래. 다음에 오는 녀석들에게 약을 잔뜩 챙겨 오라고 전해줘. 이사쿠는 한 달 뒤에 온다고 하니까."
하치자에몽은 센조에게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하고 헤이스케에게 달려갔다. 헤이스케가 몬지로와 닮았다는 말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자기 옆에 있는 곱슬머리의 소년이 승부욕이 많다는 것만은 몬지로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
졸업 후, 하치자에몽은 닌자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었다. 센조의 말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었지만 센조를 보러 갈 명분도 없었고 용기도 더더욱 없었다. 결국 다시 닌자의 세계에 발을 담갔다. 작은 의뢰를 맡아 받은 보수로 간신히 생활을 하곤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가게를 차릴 엄두가 안 났다. 그때 마침 고액의 보수로 의뢰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대가 오오카와 헤이지 우스마사의 제자요?"
"그렇습니다만 어인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검은색 말을 탄 콧수염이 요란하게 자란 중년의 남성이었다. 이름은 요시카와로 서구 물품을 전달하는 무역관이다. 딱 봐도 돈이 많이 있을 것처럼 생긴 남성에게 고수액의 의뢰를 받으면 가게는 금방 차릴 수 있다. 무엇보다 졸업하기 전 먼저 졸업한 케마 토메사부로가 상점가에 목공점을 차려서 상점가 가게 자리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약속한 후였다.
"카와무라를 조사해주게. 이 상점가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과일상점 주인일세. 녀석의 뒷거래를 발견하면 즉시 알려주게. 보수는 원하는 만큼 주겠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치자에몽은 무역관의 의뢰를 받았다. 닌자 일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이 결국 닌자 일을 하다니. 그것도 꽤나 큰 의뢰가 들어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고액의 보수를 챙겨서 당장 헤이스케와 살 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카와무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양 과일을 파는 유명한 상인이었으며 후덕한 인상과 넉살 좋은 성격 탓에 모두가 좋아했다. 하치자에몽은 카와무라의 뒤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상한 낌새가 나타나면 바로 메모했고, 요시카와에게 전달할 준비를 마쳤다. 하루 동안 미행한 결과, 많은 양의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순탄하게 지나가는 하루 일과에 만족하고 있었다.
"....!"
너무 순탄했던 탓일까. 하치자에몽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점가를 걸어가는 등에서 느껴지는 따끔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독침인가.'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자 재빨리 손에 쥐고 있던 자료들을 품 속 깊숙이 찔러 넣었다. 중요한 밀서를 적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닌자로서 큰 오점이다. 하치자에몽도 닌자 일을 싫어했지만 기본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닌자의 긍지를 잃을 수는 없었다. 눈앞이 점차 흐릿해지고 손발도 굳어서 움직이지 않게 돼 간다. 고른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조금씩 나눠서 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역부족. 땅이 하늘에 붙어있고 하늘이 땅에 붙어 있는 듯한 어지러움에 정신이 못 차리고 있었다. 그만 땅에 주저앉은 하치자에몽은 주위에 있는 나무를 붙잡고 축 늘어졌다. 방금까지 온몸이 경직된 느낌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그래도 아무렇게나 자는 척을 한다면 밀서를 도둑맞을지 모른다. 왼쪽 다리를 굽혀 올렸다. 그리고 힘이 없는 왼쪽 팔을 그 위에 올렸다. 고개를 푹 수그렸다. 누구도 이 사람이 죽었는지 자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절묘한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시체라고 생각해서 산속 어딘가에 버릴 때까지 잠시 눈을 감기로 하였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치자에몽이 눈을 뜬 곳은 천장이 매우 낮은 초가집이었다. 누군가가 쓰러졌다고 생각해서 데려온 것일까. 그렇다면 밀서는 빼앗아갔을까. 어찌 되었든 이미 독침을 맞은 시점에서 임무는 실패했다.
"아, 일어나셨군요."
명랑하고 통통 튀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치자에몽은 그 사람이 자신을 구했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 고개를 돌려 누워있는 상태에서 어린 여자의 얼굴을 봤다. 나잇대와 맞지 않는 어딘가 촌스러운 옷차림에 잔뜩 말아 올린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짐작하건대 인술학원의 4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 성숙하지만 어딘가 어린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나무에 기대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숨을 안 쉬길래 응급처치부터 했어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하치자에몽은 작게 끄덕였고 여자는 그럼 다행이라며 새로운 물수건으로 하치자에몽의 팔을 닦아주었다.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완전히 다 나으면 돌아가세요. 지금은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드시잖아요."
저 어린 여자가 하치자에몽을 얼마나 간병해주었던 걸까. 이 작은 초가집에서 혼자 사는 것 같은데 힘들지는 않을까. 어린 티가 제법 나는데도 꿋꿋하게 처음 보는 성인 남자를 어찌어찌 끌고 와서 간병을 해주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조금 저렸다.
"제 이름은 오란이에요. 그쪽은...."
"... 타케야."
"타케야 님. 여기에는 저밖에 없으니까 안심하시고 쉬세요. 의사에게 말해서 약은 받아뒀으니 시간 되면 다시 찾아올게요."
여자의 이름은 오란. 의사라는 말에 하치자에몽은 안심했다. 혼자 들었던 게 아니구나. 하긴 저 작은 애가 어떻게 들겠어. 오란이 나간 후 하치자에몽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숨도 불편함 없이 잘 쉬어지고 손발도 조금 저리지만 완전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밀서가 생각 나 옷을 뒤져보니 다행히 밀서도 그대로 있었다. 조사한 자료를 도둑맞지 않았으니 이대로 달려가 의뢰자에게 전달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낫지는 않은 모양인지 일어나려면 쓰러지고 일어나려면 쓰러지고를 반복했다.
"약 드실 시간이에요~... 어머, 타케야 님!"
오란은 물수건에 적실 새로운 물과 약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하치자에몽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이 제법 웃길 만도 한데 착하게도 웃기는커녕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오란의 부축을 받고 다시 이불에 누운 하치자에몽은 누가 준건지도 모르는 약을 먹었다. 독이 있을지 몰라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그럴만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랬다면 밀서도 벌써 훔쳐갔을 거라 생각하니 독약처럼 보이지 않았다.
"잘 드는 약이라고 하니까. 먹고 푹 쉬세요. 독은 거의 다 빠졌지만 마비는 아직 지속된다고 의사가 말씀해주셨어요."
"어떤 의사지?"
"음... 이름은 안 물어봤는데 이 상점가에서 제일가는 의사예요. 명의라서 모두가 그분께 치료를 받고 있죠."
오란은 그럼 나중에 또 올 테니 그때 보자며 문을 닫고 나갔다. 그렇게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수시로 하치자에몽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해가 뜨던 아침 하치자에몽은 마비가 완전히 풀린 것을 직감하고 표창을 시험 삼아 던져보았다. 작은 파리가 표창에 맞아 두 동강 나서 떨어졌다. 하치자에몽은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떨어진 감각을 다시 돌아오게 했다.
"타케야 님 오늘은 어떠세요?"
"응. 괜찮아. 그동안 날 간병해주느라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지금 내가 가진 돈은 이것밖에 없어서 이거라도 먼저 받아두렴."
"아닙니다!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녔는걸요. 무사하시다면 그걸로 다행입니다."
오란은 상냥하게 웃으며 하치자에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두 볼이 발그레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치자에몽은 저 어린 여자가 자기에게 반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티를 내긴 커녕, 오히려 떼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란이 나쁜 여자는 아니지만 더 이상 오란이 닌자인 자신과 연관되면 조만간 위험해진다는 걸 짐작했다.
"아 이거 집 앞에서 가져왔어요. 민들레는 이 시기가 되면 이렇게 하얘지는 게 정말 예쁘지 않나요?"
오란이 쑥스러웠는지 화제를 돌렸다. 하치자에몽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얗게 변한 민들레를 가지고 힘차게 숨을 불어 홀씨들을 날렸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떠나가는 홀씨들은 마치 눈과 같았다. 오란도 옆에서 민들레를 후우- 하고 불었다. 하치자에몽은 민들레를 다 불고 나서 또 홀연히 사라졌다. 닌자에게 이런 것은 누워서 떡먹기나 다름없다. 오란은 하치자에몽을 찾기 위해 집 밖의 대문으로 나갔다. 이미 나갈 채비가 끝난 하치자에몽이 뒤돌아 오란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한번 간병해줘서 고마워.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 다음에 올 때는 다른 사람들도 데려와서 시끌벅적하게 놀고 싶구나."
"타케야 님 꼭 지금 가셔야 하나요? 하루만 더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 미안해. 꼭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하치자에몽은 품에 넣은 밀서를 손으로 확인했다. 시간은 좀 지체되었지만 이 정도쯤은 보수에서 깎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배웅 나온 오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만나자. 그때가 되면 닌자가 아닌 다른 평범한 사람으로 만나자. 오란도 함께 손을 흔들었지만 서글픔이 밀려와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울지 말라며 달래줬을 텐데 지금은 닌자의 몸. 독침을 맞은 직후 자신을 죽이지 않은 녀석들이 어딘가에서 노리고 있지 않을까 의심하며 경계를 해봤지만 다행히 주위에는 없었다. 그래도 오란과 더 이상 친해지면 적의 습격을 받은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할 것이 뻔하기에 하치자에몽은 스스로 멀어지기를 선택했다. 오란은 떠나가는 하치자에몽을 막을 힘도 없었지만 하치자에몽도 오란을 달래줄 힘이 없었다. 단 삼일 만에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나중에 헤어지기 괴로운데 몇 년이고 같이 지낸 사이이면 얼마나 힘들까. 하치자에몽은 가슴이 아팠지만 오란을 위해 또 헤이스케를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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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신 의뢰입니다."
"수고했네. 보수는 이 정도로 주겠네. 오오카와는 좋은 제자들을 두었구먼."
보수는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다. 이 정도라면 두부가게를 차리고도 남을 액수다. 그러나 여전히 하치자에몽은 자신을 구해준 오란이 생각났다. 다음에는 닌자가 아닌 두부가게 사장으로 방문해야지. 두 손이 두둑해진 하치자에몽은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 멀리 보이는 상점가를 바라보았다. 저곳에 케마 선배가 있을 것이고 그 안에는 소망하던 꿈의 가게가 기다리고 있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져서 벚꽃이 피는 계절이 되었고 그 달의 보름은 드디어 졸업 전에 했던 만월의 약속이다. 하치자에몽은 센조의 말을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헤이스케는 몬지로와 닮았어. 분명 저 애도 닌자의 길을 걸으려고 할 거다. 그때는 네가 말려줬으면 한다.'
헤이스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닌자로 있을까.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졸업 한 사람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들이니 지금쯤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아니 잘하고 있을 거야. 하치자에몽은 요시카와의 의뢰를 마지막으로 닌자를 그만두었다. 오란을 만나고 나서는 더욱더 생각이 깊어졌다. 닌자란 그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일까. 닌자로서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오란을 만났더라면 더 재밌게 놀아줬을 것이다.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아까웠던 하치자에몽은 민들레를 꺾어 하얗게 변한 그 홀씨들을 날렸다.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 높게 날아오른 홀씨들이 제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려 새로운 민들레가 탄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헤이스케 녀석... 받아줄까?"
만월의 약속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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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를 아직 안 함. 내용이 뒤죽박죽임.
**하치자에몽은 오란을 사랑했냐고요? 아니요. 오란만 하치를 사랑했습니다. 여동생 보는 기분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동생도 지키지 못해서 닌자에 회의감을 느꼈다... 뭐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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