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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장르/아르고나, 프라메모

[프라메모] 아루챠코 - <불면증>

**예전에 쓴 트위터 썰에서 약간 변형한 소설

**좀 날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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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챠코

<불면증>

 

***

눈을 감으면 너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어

그 시간이 아까워 잠을 잘 수 없어

잠에 들면 뇌가 전부 너만을 생각하고 있어서

불면증이 생겨버린다

***

 

 

 


나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 원래도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성향이지만 요 근래 더 심해졌다. 잠이 안 오는 날에는 밤산책을 나가곤 하지만 요즘에는 그 밤산책을 나가도 잠을 도통 잘 수가 없다. 이 병의 원인은 온전히 아루에게 있다. 

 아루와 여행을 떠난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동안 많은 동료들을 얻었다. 턱샘과 피케로. 턱샘도 피케로도 좀 잡을 수 없는 녀석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루는 이 둘을 신뢰한다. 물론 처음에는 낯도 가리고 서로의 가치관이 안 맞아서 삐걱대기도 했지만 누구보다도 마음씨가 따뜻한 아루라면 그들을 잘 이해해 줄 것이다. 그 예상은 맞았고 당연히도 그랬다. 

 "우음.... 챠코~... 잠이 안와?"
 "깨워서 미안해. 잠깐 밤산책 좀 다녀오려고."
 "그런거면 나도 같이 갈까? 나도 바람 쐬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너의 미소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서 피식 웃었다. 아루와 함께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불면증도 생겼지만. 지금 그 말을 하면 아루는 바로 걱정할 테니까 하지 않을 테다. 아루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어주었다. '지금 나가면 추울 테니까 목도리 두르고 있어'라며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샛노란 목도리를 꺼내어 나의 목에 둘러주었다. 새끼 오리의 깃털처럼 부드러웠다. 

밖은 아직 찬공기가 남아있었지만 해가 떠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해를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꽃들이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해가 뜨면 다시 얼굴을 올려서 따뜻한 햇살을 받을 것이다. 아루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떠있는 아침 시간대에는 기지개를 쭉 켜고 햇살을 듬뿍 받았다. 온몸에 스며드는 태양광이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없는 지금의 아루는 평소보다 조금 더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전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 묘하게 조용해서 덩달아 나도 차분해졌다. 

 "어디로 갈거야?"
 "글쎄, 행선지는 정해놓지 않았어. 그냥 주위를 산책할까 하고."
 "그러면 별보면서 걷자. 저 별이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줄 거야."

 아루는 하늘을 향해 손을 쭉 뻗어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가리켰다. 북극성이라고 불리는 밝은 별이다. 아히루노 페클 왕국은 도시가 발달하지 않아서 화려한 조명이나 가로등이 없다 보니 별을 보는 법을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아루도 별을 보는 게 익숙했다. 얼굴을 들어 하늘에 붙어있는 북극성을 바라보았다. 북극성도 밝게 빛났지만 나한테는 옆에 있는 아루의 얼굴이 더 빛나보였다. 눈부실 정도로. 

 "챠코는 산책 자주해?"
 "그런 셈이지. 잠이 안오면 밤 산책을 자주 하는 편이야. 바깥공기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거든."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체력을 한계까지 소모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다른 생각나지 않게. 뇌 안에 있는 불면증의 원인을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일부러 더 무리해서 산책을 하는 것도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질때즘에 산책을 그만둔다.(그걸 산책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조차도 의심스럽다. 산책의 의미라기에는 나는 전력을 다해 체력을 소모시켰다) 그렇게 하면 아루 생각이 나지 않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지쳐서 바로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1초 정도가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실제 시간은 5시간 정도 지나있을 것이다. 말 그래도 기절잠을 자버려서 생각이 안 날 뿐이다. 눈을 뜨면 다시 뇌는 너로 가득 찬다. 햇살처럼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는 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잠을 잘 수 없어.


-


 아루하고 밤산책을 나가는게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오히려 잠을 못 자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젠 같이 밤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겠다. 덕분에 아루는 평소에 자는 시간보다 더 늦게 자게 되었지만 그것마저도 자긴 괜찮다고 나를 배려해 주었다. 하루에 10시간을 자는 아루는 조금이라도 잠이 부족하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서 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나와 같이 지내주는 것이다. 고맙지만 오히려 그게 역효과가 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아루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나의 기분 따위는 모르면서....

 "아루는 괜찮아?"
 "뭐가?"
 "나랑 같이 산책 나가는거 말이야. 너도 졸리잖아. 나는 잠이 안 와서 산책을 나갈 뿐이지만 너는 아니잖아."
 "으음~ 그렇긴 하지만 챠코와 함께 산책하는게 자는 것보다 더 즐거우니까 괜찮아."

 그러면서 내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꼈다.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아루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나의 손등을 다 덮는 아루의 손이 눈에 보였다. 같은 나이대의 남자아이. 아마도 동갑. 키도 비슷하고 기사가 된 시기도 비슷하다. 마치 쌍둥이처럼. 형제처럼. 만약 우리가 이 세계에 태어나지 않고 다른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우린 쌍둥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너와 나는 닮아있었고 서로가 잘 맞았다. 그 손깍지의 의미는 뭐야?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는 가벼운 미소만을 흘렸다. 어차피 별 의미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있잖아 챠코."
 "응?"
 "난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좋아. 최근 들어서 가장 좋아졌어."
 "아,아하하... 갑자기 뭐야? 고백?"

 나와 함께 하는 산책이 좋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조차 난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와 나는 정말 닮았지만 반대로 정말 안 닮았다. 나는 너보다 훨씬 많은 걸 생각하고 깊게 생각한다. 아루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지식의 차이, 실력의 차이, 생각의 깊이, 그리고 사랑의 깊이까지. 나와 동료로서, 친구로서 관계를 지속해오고 싶어 하는 너와 다르게 나는 너를...

 "많은 동료들이 생겨서 물론 즐겁지만 챠코와 처음 만나서 처음 여행을 떠났던 날이 가장 즐거웠어. 챠코랑 이렇게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줄어들어서 좀 아쉬웠거든. 그래서 이 시간이 제일 좋아. 예전처럼 단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잖아."
 "......"

 그렇게 말하며 손깍지를 한 손을 들어올렸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지 않아?' 배시시 웃으며. 새벽바람은 조금 찼지만 아루의 온기가 느껴져서 그렇게 춥다는 인식은 없었다. 나는 너보다 훨씬 사랑의 무게가 무겁고 질투도 강한데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순수하게 웃는 네가 밉기도 했다. 

 "그럼 낮에도 말 걸지 그랬어."
 "그야 이젠 동료들도 늘어나고 시즈 생각도 해야하니까 다들 바쁘잖아. 챠코도 피케로랑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아하하, 그거 질투하는거야?"
 
 조금 더 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루의 레몬색 눈동자가 더 선명하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뒤돌아선 아루의 뒤에 북극성이 저 멀리 보였다. 아루의 머리 꼭대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위치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의 후광이 아루의 등에 스며들었다. 올곧은 눈동자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정겹게 이야기하던 입이 꾹 닫히더니 다시 열렸다. 

 "질투하면 안돼?"

 쿵. 심장이 저만치까지 떨어졌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처음 본 사람을 엄마로 인식한다고 한다. 너는 지금 알을 막 깨고 나온 병아리에 불과해. 그래서 나를 엄마로 인식하는 거야.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기 병아리의 마음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왜냐면 너와 나는 다른 세계의 인간이니까. 서로 비슷한 점은 많았지만 완전히 같을 수는 없잖아. 원했던 답인데도 나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왜 질투해? 친구를 빼앗길까 봐? 그게 아니면,

 "내가 아루한테 있어서 어떤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길래 질투를 해?"

 좋아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만 말도안되는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아루는 나의 말에 눈을 깜빡이더니 조용히 입을 다물고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사람이지'라며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커서 여기까지 다 들렸다. 그렇게 고민하는 것부터가 나하고는 다르다는 의미다. 피케로랑 낮에 대화한 것 때문에 그런 거라면 기꺼이 피케로와 거리를 둬 주겠다. 그렇게 해서 너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다.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이 깜깜한 밤이고 내가 후드를 쓰고 있어서 나의 이 당황하고 새빨개진 얼굴이 아루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아루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알겠다며 머리에 전구를 띄우고 입을 크게 벌렸다. 

 "나의 첫번째 친구."
 "친구?"
 "응. 그리고 정말 소중한 사람. 그리고 포챠코님한테 지켜달라고 부탁받은 사람. 그리고... 죽이 잘 맞는 친구고.... 또....."
 "자,잠깐만 그거 다 말하려고?!"

 아루는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속사포로 말을 꺼냈다. 급하게 내가 그의 입을 막으며 다 말할 필요 없다며 그를 진정시키니까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도중에 말한 '포챠코님에게 지켜달라고 부탁받은 사람'이 뭔지 조금 신경 쓰이지만 그걸 하나하나 다 신경 쓰다간 내 명이 짧아질 것 같다. 자신의 입이 막힌 걸 알아차렸는지 다시 손을 잡아당겨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의 심장소리가 아루에게 들릴 것 같다. 아루의 가슴팍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그의 심장소리가 잘 전해졌다. 콩, 콩, 나의 소리보다 조금 더 큰 고동소리. 얼굴을 들어 시선을 마주치면 해맑게 웃고 있는 네가 보였다. 

 "헤헤, 챠코랑 같이 있는게 좋아. 계속 내 옆에 있어줄 거지?"

 샛노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단순히 어린아이의 변덕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놓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너랑 만난 이래로 한 번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거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올리가 없는 미래 따위 상상하지 않는다. 만약 시즈와의 싸움이 끝나고 각자의 왕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너와 함께 한 시간만큼은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처음으로 다른 왕국의 사람들과 만났다. 나하고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이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신선하고 좋았다. 아루를 말리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응. 당연하지. 계속 같이 있을거야."

 굳센 표정 안에 숨어있는 불안한 감정은 입꼬리를 통해 새어 나왔다. 너는 나와 함께 있자고 말하면서도 '옆에 없으면 불안해'라는 표정을 하듯 입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울상이었다. 안심을 시켜주는 게 우선이어서 급한 대로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내 진심이 담기지 않아서였을까 불안한 채였다. 나는 아루의 목을 끌어안고 다정하게 키스를 했다. 아루의 입안은 상쾌한 카보스의 향기로 가득했다. 

 "....!!"
 "이래도 못믿겠어?"
 "어.....어..... 한 번만 더 해주면 알 것 같아."
 "코피나 닦고 말하시지."

 아까의 당황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흔들리는 동공을 내비치며 한 번만 더해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이 사춘기 남자아이 같았다. 아니지 사춘기 남자아이가 맞던가. 주륵 흘리는 코피를 닦으라고 손수건을 내밀자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손수건을 코에 가져다 대었다. 아마 오늘은 나도 너도 잠을 제대로 못 잘 것이다. 둥근달이 밝게 빛났다. 너의 눈동자처럼 밝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그 주위를 맴도는 허여멀건한 구름과 안개는 나의 색깔과도 같았다. 풀밭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귀뚜라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화음을 만들어내서 귀에 듣기 좋은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자연의 소리가 좋다며 눈을 감고 흥얼거리는 아루를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너와 함께 있으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챠코."
 "응?"
 "시즈와의 결투가 끝나면 포챠코 왕국으로 돌아갈거지?"
 "그렇지. 아루도 아히루노페클 왕국으로 돌아갈 거잖아."
 "그렇네~ 이렇게 단둘이 대화를 하는 것도 얼마 안남았네."
 
 아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풀썩 누워서 팔다리를 쭉 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별의 개수를 세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고 한들 우리 둘만 이 팀을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다가올 이별이고 그걸 극복해 내야만 프라가리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루, 너는 눈치채고 있지 못하겠지만 우린 프라가리아다. 결국 너도 나도 서로보단 로드를 선택하게 될 거야. 

 '나랑 페클님이 위험에 빠진다면 너는 누굴 먼저 구할거야?'

 그런 말을 내뱉는다고 한들, 결국 먼저 구하는건 페클님일테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아루의 옆에 똑같이 누워서 별을 관찰했다. 오늘은 안개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별이 잘 보였다. 그만큼 나의 색깔이 줄어들고 너의 색깔이 가득 찼다는 의미이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면서 양을 세듯 별을 세었다. 새벽의 공기가 나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폐 안으로 들어오는 새벽의 공기가 어느 순간 온몸 구석구석을 다 훑고 있었다.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마치 너의 입안처럼.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눈앞에 별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귀뚜라미와 개구리의 화음이 자장가로 들렸다. 

 "챠코? 어라, 잠들었네. 오늘은 좋은 꿈을 꾸길."

 콧등에 무언가가 붙었다가 떼어졌다. 상쾌한 카보스의 향기가 더 진하게 났다. 눈을 감으면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게 아쉬워서 잠을 못 잤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향기로 너를 느낄 수 있다. 보지 않아도 네가 옆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밤산책을 끝내야겠다. 이젠 잠을 못 잘 이유가 없으니까. 불면증도 다 나았으니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