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신 세번째 연성.
**이나갤 이후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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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가 지나가고 벚꽃 내음이 가득한 봄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신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공책과 필기구를 싹 바꾸었다. 2학년에 있었던 일들을 가지고 가되, 마음속에 담아둬서는 안 되는 일들은 무시하자고 생각하며 새 학기에 쓸 가방을 꺼내 들었다. 가방 속에는 예전에 같이 싸워준 동료들의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우주에서 싸운 그 시절로부터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사진을 보며 추억 속에 잠긴 신도는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다들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신도는 눈을 감고 그날의 추억을 되살려본다.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텐마와 츠루기는 학교에서도 매번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감이 잡히는 것은 이부키뿐이었다. 저번에 번호를 교환해서 가끔 문자를 보내는 등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부키도 어찌 되었든 신도와 같은 나이기에 나름대로 생각할게 많은 듯 보였다. 이대로 축구를 계속할 것인지, 다시 농구로 돌아갈 것인지.
"신도선배. 3학년 되신 걸 축하드려요!"
"고마워, 너도 2학년이구나. 앞으로도 라이몬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
"그럼요! 아참 아까 아침에 이부키를 봤는데 혹시 보셨어요?"
"이부키?"
갓산쿠니미츠중학교는 라이몬과 정 반대에 있었다. 텐마의 집에서 라이몬까지 오는 길에 절대 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온 걸까? 신도는 턱을 잡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텐마는 별거 아닌 것 같다며 해맑게 웃으며 신도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때마침 거센 바람이 불었고 새 학기를 맞이하는 종소리와 함께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라...?"
바람 속에서 무언가의 기운을 느낀 신도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신도는 그럴 리가 없겠다고 생각하지만 살짝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괜히 텐마한테 싱숭생숭한 소리를 들어가지고 새 학기부터 이상한 기분 들게 만들었다고 괜한 생각이라며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3학년 교실은 2학년과 확연하게 달랐다. 공기부터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원래부터 신도도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키리노하고도 멀리 떨어진 반이어서 덜컥 겁이 나버렸다.
"신도 타쿠토?"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실은 나 전학 왔는데 내 친구가 너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사진이랑 똑같이 생겨서 네가 맞나 싶었어."
무거운 3학년 교실에서 유일하게 가볍고 청량한 미소를 뽐내는 학생은 자신을 전학생이라 칭하는 학생이었다. 전학생은 신도에게 악수를 건넸고 주춤하던 신도는 얼떨결에 그 악수를 받아주었다. 신도는 자연스럽게 늘 앉던 자리에 앉으려 하자 전학생도 그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근데 그 친구가 누구길래 나를 아는 거야? 우리 학교 학생이야?"
"아니, 나 갓산쿠니미츠에서 전학 왔어."
거기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어? 신도는 목구멍 끝까지 그 말이 차올랐지만 욱여넣었다. 갓산에서 신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전학 간 미나미사와 선배랑 이부키뿐이다. 그렇다면 이 학생은 이부키의 친구인가?
"... 이부키 무네마사 말하는 거야?"
"알고 있구나! 맞아. 이부키가 내 친구야. 네가 걱정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 걔가 원래 좀 독단적인 면이 있잖아?"
전학생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말에 가시는 박혀있지 않지만 묘하게 남을 돌려 까는듯한 말투가 숨겨져 있는 것이 듣는 신도는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예전에 농구부에서 갈등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저 아이도 그 갈등 있는 사람에 포함되는 걸까?
"아무튼, 앞으로 그런 녀석 생각하지 말고 잘 지내보자."
"... 그런 녀석?"
"걔가 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했거든. 너도 걔가 뭐라고 말하면 짜증 나지 않았어?"
기묘한 바람이 불었다. 어둡고 무거운 3학년 공기 안에서 찾은 청량한 공기가 사실 더 어둠 속에 가라앉은 공기라니. 신도는 계속 그를 응시했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전학생도 그 기운을 눈치챈 건지 묘한 미소를 보내더니 신도에게서 떨어져 가방 안에서 필기구를 꺼내는 등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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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았던 수업이 끝났다. 수업내용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고등학교 진학과 관련된 사항을 듣다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분위기가 묘한 사람을 만나 기분이 안 좋았는데 쓸데없는 생각들도 같이 들어오다 보니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어서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빨리 옮겨 교문 밖을 통과하고 있을 때 그 녀석이 나타났다.
"벌써 하교해?"
"... 미안한데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먼저 가볼게."
"그래? 그러면 하는 수 없지 뭐."
전학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신도를 쿨하게 보내주는 척을 했다. 신도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은 여전했다. 신도가 뒤를 돌아봐서 그에게 다른 곳으로 안 가냐고 물으면 가는 길이 비슷해서 그런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였다. 새 학기 첫날부터 제대로 꼬인 기분이 들어 더 머리가 아파왔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던 꽃내음도 이젠 어지러울 정도였다.
"아야!"
"야 어딜 보고 걷는 거야 조심해라."
비틀대며 걷는 와중에 누군가와 부딪힌 신도는 찔끔 눈물이 나올뻔했다. 안 그래도 기분 나빠 죽겠는데 남과 부딪히기나 하고 제대로 풀리는 날이 없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얼굴 보고 사과하자는 마음에 고개를 들자, 마음 한편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하지만 겉으로는 부정했던 얼굴이 보였다.
"이부키?"
"뭐야, 벌써 얼굴도 까먹은 거야?"
"... 설마."
식은땀이 나는 신도의 얼굴을 보아하니 이부키는 신도의 어깨를 덥석 잡고는 저 멀리 뒤에 따라오고 있던 전학생에게 곁눈질을 하였다. 들켰다는 생각이 든 그 아이는 혀를 차며 매서운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고 있었고 이부키 역시 지고 싶지 않았는지 당장 꺼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단단히 잡고 있던 신도의 어깨를 놓은 이부키는 신도의 팔을 붙잡고 진심 어린 하지만 신도에게는 왱알대는 잔소리뿐인 말을 했다.
"저 녀석 너희반에 전학 온 애야? 조심해. 아주 간사한 녀석이야. 나한테 보여주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저딴 녀석한테 노려지고 있냐?"
"시끄러워.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너마저 그런 소리 하면... 나 화낸다."
"뭔 걱정을 해줘도..."
신도의 낮고도 단호한 말소리에 이부키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자신이 부딪힌 사람이 이부키라는 사실이 내심은 좋았는지 신도는 이부키와 나란히 꽃길을 걸었다. 이미 만개한 벚꽃들을 보니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그런 건 다 미신이라고 생각했던 신도였으나 이부키 옆에 있으나 마음도 진정되고 지금이라면 저 미신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도는 티가 안 나게 조용히 팔을 들었고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꽃잎을 받아내려고 손을 살짝 구부렸다.
"너 뭐하냐?"
"그냥 좀. 왜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으악 퉷퉷. 아 입 벌리고 있었더니 바람으로 꽃잎이 다 들어왔네.... 어? 아까 뭐라고?"
이부키는 베-하고 입을 벌려 입안에 붙은 꽃잎을 하나씩 떼기 시작했다. 모처럼 무드 있고 분위기 좋은 말을 하려고 했더니만 이 녀석이 다 망쳐버렸다. 이부키는 여전히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멀뚱히 신도를 바라보았고 신도는 그 상태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됐다. 다음에 얘기해줄게."
"뭐야 사람 궁금하게. 그냥 지금 얘기해. 나 못 들었다니까?"
"싫어. 두 번 말하는 건 질색이야."
"야!"
아까의 어지러움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지 신도는 그 상태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부키는 또 저런 개구쟁이의 모습을 보인 신도를 따라잡으려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 달렸다.
"빨리 얘기해!"
"네가 나 잡으면 그때 얘기할게."
어느덧 새 학기 첫날은 지나가고 있었고 아침에 봤던 그 무거운 공기도, 입시 이야기도, 분위기 묘한 사람들과의 묘한 만남도 다 잊어버린 채 봄 향기와 벚꽃 내음을 맡으며 희망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역시 마음에 진정이 된다니까.'
기분이 꿀꿀할 때는 이부키에게 가끔씩은 라이몬에 놀러 오라고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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